아마도 최초의 '과학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자임한 칼 세이건. / NASA
"보통사람들에게 우주를 더 명확하게 만든 과학자." 칼 세이건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말이다.
1996년 12월 20일. 위대한 과학자 칼 세이건이 세상을 떠났다. 골수성 백혈병으로 62세의 나이에 우리곁을 떠난 그는 수백편의 논문과 20여권의 책을 써 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1975년에 쓴 <에덴의 용>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를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 만든 텔레비전 시리즈 <코스모스>는 공영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시청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60개국 5억명 이상의 시청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으로 나온 <코스모스>는 전세계에서 6억부 이상 판매되며 우주에 대한 지구인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하버드대에서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했던 칼 세이건은 1968년 코넬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행성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외계 생명체의 가능성을 연구하는 외계 생물학 분야의 선구자.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내면서, NASA에 우주 탐사를 확대해 달라고 끊임없이 호소했다.
193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칼 세이건은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과학소설을 즐겨 읽었고,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끊임없이 품었던 학생 칼 세이건은,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16세에 시카고대에 진학해 천문학과 우주과학을 전공했다.
칼 세이건은 행성 대기, 외계 생명체, 우주 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성과를 이루었다. NASA의 여러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해 우주 탐사선에 탑재될 메시지를 디자인하는 등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 유명한 그림도 칼 세이건의 외계생명체에 대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NASA
1972년 발사된 파이어니어 10호는 목성에 13만km까지 접근해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하고, 목성의 중력을 이용해 태양계를 탈출하도록 만든 최초의 우주선. 거기에는 '지구인이 ET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주 어딘가에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이 메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칼 세이건이 주도해 만든 것으로 금으로 된 명판과 지구의 남성 여성의 모습, 태양계 내에서의 지구의 위치 등이 그려진 알루미늄 판으로 구성됐다. 이후 우주탐사의 상징 같은 이 그림이, 바로 칼 세이건이 있어 가능했던 업적인 셈이다.
칼 세이건은 단순히 우주의 기원과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류가 우주 속 작은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함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과학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같은 생각을 담고 있으며, 칼 세이건을 역사에 뚜렷하게 남도록 만든 또하나의 이슈가 바로 '창백한 푸른 점(The Pale Blue Dot)' 사건이다. 저 유명한 보이저 1호가 완전히 우주 속으로 사라지기 전,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한번 돌려 지구를 촬영하자고 주장했고, 많은 반대 속에서 강행된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찍은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 사진에는 지구를 포함한 6개의 행성들이 찍혀있고, 흔히 '가족사진'이라고 불린다.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와 보이저 1호가 찍은 '창백한 푸른 점' 지구 모습. / cosmos times
칼 세이건은 이 '사건'을 담은 책 <창백한 푸른 점>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하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라. 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라.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는다."
우주의 광대함과 인간의 미약함을 함께 생각하면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또, 그래서 위대하다. 우주 속에서 인류의 위치를 확인한 위대한 선각자의 풍모를 지닌 과학자 칼 세이건은 그의 명저 <코스모스>를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