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칼럼 SF읽기] "레디~"
게임 속 권력 vs 현실 속 관계

2025.02.21 10:49:54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가 본 스필버그 <레디 플레이어 원>과 원작

 ※ [주말칼럼 SF읽기]를 쓰는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 우주시대의 씨앗을 뿌린 SF명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해온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명작 읽기'를 개편해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는 칼럼코너로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매일같이 우리를 감탄하게 만드는 우주 개발과 가상현실과 관련된 신기술 개발에 대한 소식이 쏟아지는 요즘. 우리가 이들 기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둘은 우리를 ‘다른 세계’에 데려다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세계’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지금의 현실’이 탐탁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기술발전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되는 다른 세계가 충분히 환상적이라면,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난 삶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까지는 더 긴 시간과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 환경에 맞추어 진화해온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 환경에 맞추어 갖추어온 감정과 욕구들을 여전히 지니고 있기에.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기에...

 

게임 속에서 보물을 찾으면 엄청난 재산과 권력을 선물 받을 수 있지만, 인간관계의 상실이 댓가라면.... 우리의 선택은?

 

▶ 작품 <레디 플레이어 원>

어니스트 클라인의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2011)>은 2045년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사회는 경제 붕괴, 환경 오염,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황폐해졌으며, 사람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상 현실 세계 OASIS(존재론적 인간중심 감각 몰입형 시뮬레이션. Ontologically Anthropocentric Sensory Immersive Simulation의 약자다)에 의존한다. OASIS는 천재 개발자 제임스 할리데이가 만든 방대한 가상 세계로, 교육, 업무, 오락 등 모든 활동이 가능하다.

 

할리데이는 사망 전, OASIS 안에 거대한 이스터에그를 숨겨놓고, 이를 발견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막대한 재산과 OASIS의 통제권을 넘기겠다고 발표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건터(Gunter, Egg Hunter의 줄임말로 말그대로 이스터에그를 쫓는 사람을 의미한다)'가 되어 퍼즐을 풀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단서를 찾지 못한다.

 

주인공 웨이드 와츠는 오클라호마의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10대 소년으로, OASIS 안에서는 파르지발(Parzival)이라는 아바타를 사용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할리데이의 취향(주로 1980년대의 게임과 음악, 그리고 영화)을 연구하며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해 매진해왔고, 결국 첫번째 단서를 발견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거대 기업 IOI (Innovative Online Industries)의 표적이 되어 위험에 처한다. IOI는 OASIS를 상업적으로 지배하려는 악랄한 기업으로, 웨이드를 방해하기 위해 협박과, 심지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웨이드는 같은 건터인 아르테미스(Art3mis), 에이크(Aech), 쇼토(Shoto), 다이토(Daito)와 협력하여 퍼즐을 풀어나간다. 그는 위협적인 IOI의 거대자본과 기술에 맞서 할리데이의 이스터에그를 찾고 OASIS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현실, 그리고 인간

어니스트 클라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은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다루면서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 소외라는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소설 속 OASIS는 현실보다 더 매력적인 대체세계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물리적, 감정적 교류를 단절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클라인은 기술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지만, 인간 본연의 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술은 분명히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도구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본연의 관계와 현실의 중요성을 대체하기는 아직 어렵다. OASIS에서 최고의 지위를 획득한 주인공 웨이드는 현실의 아르테미스와 사랑에 빠지고 자신이 OASIS에서 이룬 모든 것과 목숨까지 걸어가며 IOI와 대적한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결국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현실의 삶이다.

 

보물을 찾고 싶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킹콩이 출몰하는 목숨 건 자동차 경주 같은 것?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2018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작품을 소재로 동명의 영화를 발표한다. 소설과 영화 모두 핵심적인 설정은 동일하며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 사람들이 가상현실(OASIS) 속으로 도피하는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런데 두 작품은 줄거리, 캐릭터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소설은 1980년대 대중문화와 게임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둔 퍼즐 중심의 모험 이야기인 반면, 영화는 액션 중심의 블록버스터로 재구성되었다.

 

소설에서는, 웨이드는 세 개의 열쇠(구리, 옥, 크리스탈)를 찾고, 퍼즐을 풀며, 1980년대 대중문화 속 명작들을 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할리데이가 사랑했던 영화 속 장면을 재현하거나 '던전 앤 드래곤'의 설정을 이해해야 하는 등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과 머리싸움이 주를 이룬다. 반면 영화에서는, 퍼즐을 단순화하고 시각적으로 극적인 연출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첫번째 과제는 킹콩이 난입하는 고속 자동차 경주, 두번째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의 공포 속으로 뛰어드는 체험으로 변경되었다.

 

▶다시 인간으로...

스필버그 감독은 원작의 '현실에서의 삶과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더더욱 강조했다. 웨이드가 OASIS의 운영권을 넘겨받은 뒤 가장 먼저 만든 제도는 ‘OASIS에 접속을 할 수 없는 날’을 만들어 현실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한 것이다.

 

웨이드는 극의 초반, “우리한테 의미가 있는 세계는 오아시스 뿐이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험을 거치고 사랑을 알게되며 성장한 그는 할리데이의 마지막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현실은 두렵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사실을. 스필버그는 다시, 우리는 인간임을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 <법무취업길라잡이>(박영사, 2024), <웃게 하소서>(바른북스, 2024) 등이 있다. 

최기욱 변호사/작가 newsroom@cosmos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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