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과 그 숭배자를 경계하라"
우주大서사시 <듄> 영화&원작

과학책 쓰는 변호사가 본 드니 빌뇌브 감독 대작 <듄>연작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감독 드니 빌뇌브는 우아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고, 고풍스러우면서도 파괴적인 연출로 전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듄>을 위한 서주에 불과했다.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장편 <듄>은 1965년 작품으로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 한 작품을 위해 행성의 생태계부터 종교들과 경전까지 창시해낸 거대한 스케일의 역작이기 때문에 J. R. R.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위해 세계와 언어를 창조해냈던 것과 비견되곤 한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초심자들이 발을 담그기에는 다소 진입장벽이 있다. 그 허들을 넘어보자.


초인은 전지전능하지만, 그의 숭배자들로 인해 치명적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어찌하지 못한다. 

 

초인 때문에 발생하는 치명적 현실

 

먼저 복잡한 <듄>의 세계관을 간단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크게 세 주요 집단이 등장한다. 황제와 그 아래에서 행성계를 지배하는 대가문들, 영화에서는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우주여행을 독점하고 있는 우주조합,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가진 남자 ‘퀴사츠 해더락’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긴 세월 동안 대가문들을 상대로 유전자 교배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 정신적 훈련을 거친 여성 집단 베네 게세리트. 이 세 집단을 중심으로 미래의 환영을 볼 수 있게 해주어 우주여행에 필수적인 환각물질이자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 '스파이스'의 생산지인 사막행성 아라키스, 즉 ‘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음모와 전쟁 이야기가 <듄>의 세계다.

 

그냥 즐겨도 흥미롭기 그지없는 이야기 보따리지만, 그 중에서도 이 ‘퀴사츠 해더락’이라는 존재와 그 의미가 <듄>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퀴사츠 해더락’은 ‘길을 단축하기’라는 의미로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의 지혜와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꿰뚫어보며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익숙한 영웅담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야기 속의 ‘초인’들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이용해 세상 모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구원자였다. 하지만 <듄>에서는 그렇지 않다.

 

폴은 퀴사츠 해더락이 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로 인해 수십억이 사망하게 되는 성전이 벌어지게 되는 미래 또한 보았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정의를 실현하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 자체로 인해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친구들은 숭배자가 되고 숭배자들은 전우주의 파괴를 자행할 것이다. 그는 이 저주의 실타래를 풀 방법을 찾고자 몸부림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주저앉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가능성들의 우주에서 자신의 존재는 그저 모래알과 같기에(“이 우주에는 답이 전혀 없는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네. 정말 어떻게도 손을 써볼 수가 없어.”). 그는 후일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말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자유다.”

 

프랭크 허버트는 그렇게 천명한다. 초인과 그의 숭배자들을 경계하라.

 

사막행성 아라키스, '듄'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전쟁 이야기가 <듄>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사막행성 전쟁

 

<듄>의 또 하나의 특징은 SF 작품임에도 SF적인 면모, 즉 첨단 기술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다. 설정상 방어막의 존재로 인해 ‘미래적인 무기’ 없이 칼로 근접전을 벌이는 전투가 발달했으며, 무엇보다 컴퓨터와 생각하는 기계, 의식이 있는 로봇 등에 반대하는 성전인 ‘버틀레리안 지하드’가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눈을 희번덕 뒤집으면서 의식의 저편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묘사된 인간 컴퓨터 ‘멘타드’,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 재능을 극도로 훈련시킨 ‘베네 게세리트’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옛날에 사람들은 생각하는 기능을 기계에 넘겼다. 그러면 자기들이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기계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것이 1965년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곳곳에 둥둥 떠다니며 불을 밝히는 발광구, 잠자리 같은 오니솝터, 거대한 스파이스 수확기와 그것을 옮기는 캐리올 등 상상력이 돋보이는 기계장치들이 많이 등장하여 치밀하고도 거대한 설정을 뒷받침하며 지적쾌감을 선사한다.

 

드니 빌뇌브는 <듄>과 <듄 : 파트2>에서도 어김없이 자신의 특기를 발휘했다. 자신만만하게. 시작은 느리지만 점차 빨라지며 관객을 죄어오는 템포,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유지되는 긴장감, 대자연과 군중의 모습에서 특히 강조되는 압도적 스케일의 영상미, 그리고 우리를 순식간에 미지의 세계로 빨아들이는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충격적인 음향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이 모두 완벽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아라키스 토착민 프레멘의 '크리스나이프'처럼.

 

 

장대한 원작, 어쩔 수 없는 변주들

 

영화의 원작 충실도도 꽤 높은 편이다. 다만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두 편의 영화에 담아내기 위해 시간적 간격을 좁혔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폴의 혁명이 있기 전, 영화에서는 계속 태아 상태로 등장하는 폴의 동생 알리아가 태어나고 자라나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까지 하는데, 이러한 시간적 간극을 영화 3편에서 어떻게 녹여낼지도 관전 포인트다. 또한 권력 구도의 큰 축인 ‘조합’의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주인공들의 정신싸움과 지략이 많이 생략되었다.

 

또 다른 인상적인 변주는 ‘페이드 로타’라는 인물. 영화에서 폴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하코넨의 조카 페이드 로타는 사이코패스적 면모가 강조된다. 하지만 원작은 조금 결이 다르다. 결투에서는 굉장히 야비한 방법을 사용하지만 어느 정도 분별력과 매너를 갖춘 인물로 묘사한다(게다가 머리카락도 있다! ‘곱슬곱슬하게 다듬어진 그의 검은 머리’). 그리고 영화에서는 페이드 로타가 전쟁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표현되지만 오히려 원작에서 하코넨은 폭군 라반을 이용해 원주민들을 괴롭힌 후 로타에게 이들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주어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아마 폴의 대척점에 있는 페이드 로타라는 인물을 폴과 대적할만큼 충분한 ‘실력’을 갖췄으나 인격적 측면에서는 망가진 악당으로 그리고 싶었던, 그렇게 함으로써 폴의 윤리적 우위를 강조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영화 <듄>과 <듄 : 파트2>는 원작소설 1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뭔가 뒤에 남겨둔 듯한 찝찝함을 남겨두고 끝나기에 ‘아, 이걸 여기서 끊네!’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는데, 실제 원작 1편도 동일하게 끝나며, 2편 '듄의 메시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폴 무앗딥'의 이야기가 완결된다. 다행히 최근 원작 2편인 '듄의 메시아'를 바탕으로 하는 듄 영화의 세번째 작품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뉴스가 전해졌고 전세계 'Dunatic(듄친자)'들은 기뻐하며 경배를 드리고 있다. ‘리산 알 가입!’(‘외계에서 온 목소리’)

 

그런데 다소 우려가 되는 점이 있다. 원작 소설 1편은 전투와 생존, 그리고 전쟁이라는 큰 그림이 있었던 반면에, 2편은 정치적 음모에 초점을 맞춘 정치스릴러에 가까운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두 편의 영화에서는 드라마틱한 이야기 진행을 위해 정치적 음모와 정신적 싸움을 묘사한 부분들을 상당부분 삭제하거나 충분하지 않게 설명하는 데에 그쳤기 때문에(덕분에 무척 재미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여러 조직과 인물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관람객들의 이해가 부족한 상태이다. 이 상태로 '듄의 메시아'의 정략을 이해가능하게 설명하면서도 ‘즐길 수 있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드니 빌뇌브 감독에게 남겨진 최대의 숙제일 것이다.

 

P.S. 영화를 보고 물이 그렇게 부족하다면서 프레멘들이 인공연못을 왜 가만히 두는지, 잘 납득이 안간다는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영화에서는 그저 죽은 사람에게서 채취한 물을 모아두는 신성한 곳이라는 설명이 전부이니 그럴만하다. 원작에서는 행성의 생태학자 ‘카인즈(여주인공 ‘챠니’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여성으로 표현되었으며 챠니와의 관계가 명확지 않다)'가 듄을 녹화시켜(“사막에서 초원으로, 그리고 숲으로”) 물이 풍족한 행성으로 변모시킬 수백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프레멘들은 이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물을 비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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