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의 날개
그리스 신화에 ‘이카루스의 날개’가 등장한다. 다이달로스라는 건축가가 황소괴물이 있는 미궁에서 탈출하기 위해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이고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들은 아버지의 경고를 잊은 채 너무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후 ‘이카루스의 날개’는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한편으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의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은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수많은 실패들을 거쳐 결국 비행기를 발명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에 대한 욕망은 오늘날 우주탐사를 가능케 한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지구 탈출의 적, 중력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 사과를 끌어당기는 지구중력 때문이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고, 그 힘의 크기는 질량에 비례하고 두 물체 간 거리제곱에 반비례한다. 이것이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사람 사이에도 이 힘은 작용하지만 그 크기가 미미하여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지구, 달, 태양 등 질량이 거대한 천체가 작용하는 만유인력, 즉 중력은 매우 크다. 태양의 중력으로 지구는 태양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공전하며, 달은 지구의 중력에 붙들려 지구 주위를 돌며 밤하늘을 비춘다.
야구선수 박찬호가 공을 하늘로 힘껏 던져도, 그 공은 결국 낙하한다. 만약 야구공이 떨어지지 않고 꾸준히 올라간다고 가정한다면, 그 공의 속도가 ‘초속 11.2Km’에 이르면 지구 중력권을 벗어나 영원히 지구로 돌아오지 않게 된다. 이 속도를 ‘지구 탈출속도(Escape Velocity)라고 한다. 이 초속 11.2Km는 음속(소리)의 삼십 배가 넘는 엄청난 속도이다. 사람이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나가려면 반드시 지구중력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인류가 개발한 건 로켓이었다.
#소설 한권이 바꾼 인류의 미래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은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로 유명한 SF(Science Fiction·공상과학) 소설의 개척자이다. 그는 엄청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경이의 모험’이라는 시리즈물을 펴냈는데, 이 중 1865년 발표한 ‘지구에서 달까지’는 후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포를 개발하던 사람들로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 할 일이 없어지자, 클럽을 만들어 초대형 대포(포신 길이가 무려 300m)를 개발하고자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초대형 대포로 발사한 포탄을 타고 사람이 함께 달로 간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은 정치풍자 성격이 강하지만, 과학적인 측면에선 가히 예언서라고 할 수 있다.
쥘 베른은 달 여행에 포함돼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라이트 형제가 만든 동력 비행기가 날아오르기 38년 전에, 그는 우주공간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속 유인 우주비행을 위한 여러 가지 이론은 나중에 아폴로 계획과 비교해 봐도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엄밀한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령 대포를 발사할 때 지구의 자전 속도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미국 영토 내에서 위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에 대포를 설치하는데, 이 위치가 실제 케네디 우주센터와 거의 일치한다. 또한 소설에 나오는 포탄의 궤도마저 실제 아폴로 계획의 궤도와 유사한 수치였다.
#로켓 시조새 3인방은 ‘쥘 베른 키즈’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는 사람이 대포를 타고 달로 가는 판타지를 제시했고, 이 이야기에 매료된 3명의 소년이 있었다.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미국의 로버트 허칭스 고더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헤르만 율리우스 오베르트. 이 3명의 ‘쥘 베른 키즈’들은 각자 자기의 일생을 걸고 매달린 끝에 이 판타지를 구현할 과학적 비전을 제시한 로켓 선구자가 되었다.
#로켓 방정식 만든 치올콥스키(1857~1935)
1857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치올콥스키는 독학으로 교사 자격증 시험을 통과한 인재였다. 그는 수학교사로 근무하며 공기역학 등 우주여행과 관련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반작용 추진 운반체에 의한 우주공간의 연구’를 필두로 논문 등 400편 이상을 저술했다. 그의 논문에는 추력방향 전환이 가능한 로켓엔진, 다단로켓, 우주정거장, 액체로켓 엔진 등 현대 로켓기술의 기본 개념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었다. 1903년 그는 오늘날 ‘치올콥스키 로켓 방정식’이라고 명명된 공식을 도출해냈고, 이후 ‘우주 항해학의 아버지’로 위치를 확고히 했다. 1935년 78세로 사망한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57년에 발사되기도 했다. 치올콥스키는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지만 우리가 영원히 요람에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소련의 인공위성과 달 탐사를 이끈 천재 코롤료프는 치올콥스키의 논문들을 읽으며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다.
#액체로켓 아버지 고더드(1882~1945)
미국에서 태어난 고더드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흥미를 보였다. 물리학과 교수가 된 그는 한 잡지에 발표한 ‘극히 높은 고도에 도달하는 방법’ 보고서를 통해, 지구중력을 벗어나 달까지 갈 수도 있음을 계산으로 보여주었다. 1926년 고더드는 비밀리에 로켓을 발사했다. 얇은 알루미늄으로 만든 길이 3.4m, 무게 4.8Kg의 ‘넬’이란 이름을 가진 로켓의 비행시간은 2.5초, 고도는 12.5m, 비행거리는 56m였다. 그가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은 세계 최초의 액체로켓 발사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여론은 로켓에 대해 적대적이었고, 미 군부는 고더드의 반복되는 요청에도 로켓 연구지원을 거절했다. 그 결과 미국은 로켓연구의 주도권을 독일과 소련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뒤처진 미국 정부는 결국 1960년 고더드 부인에게 200만달러를 지불하고 액체로켓 특허를 사들였다. 이렇게 해서 고더드는 ‘액체로켓의 아버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 로켓여행 꿈꾼 오베르트(1894~1989)
트라실바니아(현 루마니아의 도시)에서 독일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오베르트는 11세 때 어머니에게서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선물로 받고, 그 내용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 그는 사람을 대포로 쏘아 달까지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액체연료를 태워 분사 가스를 내뿜는 반동의 힘으로 날아가는 로켓을 이용한다면 달까지의 여행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923년 그는 ‘로켓을 이용한 행성 여행’이라는 97쪽짜리 책을 출판해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로켓 실험을 후원하기 위해 로켓 동아리 ‘우주여행클럽(VfR)이 만들어졌고, 독일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특히 주목할만한 사실은 오베르트가 천재 로켓공학자 폰 브라운의 멘토였다는 사실이다. 폰 브라운은 나치 독일에서 V-2로켓을 개발하고, 훗날 미국에 투항해 우주탐사를 이끈 인물이다. 95세까지 장수한 오베르트는 1969년 달을 처음으로 밟은 아폴로 11호를 실은 새턴-V 로켓의 발사 장면까지 현장에서 함께하며, 그의 어릴적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았다.
#한국에도 '다누리 키즈' 나오기를...
치올콥스키·고더드·오베르트에게 우주개발은 개인적인 열정이자 미래에 대한 환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불과 수십 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은 로켓을 쏘아올리며 뜨거운 경쟁을 벌였고, 이는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우주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되었다. 한국도 최근 다누리호를 쏘아올리고 ‘우주 로드맵’을 발표하며 우주 개척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에 앞으로 수많은 ‘다누리 키즈’들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로켓개발의 도화선이 된 ‘쥘 베른 키즈’들처럼.
*참고서적 : 로켓을 꿈꾼 소년들(정규수·정광화, 지성사),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열림원),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곽재식, 동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