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착륙은 세컨드맨,
우주열정은 퍼스트맨

[우주人] 93세에 네번째 결혼식 올린 우주인 버즈 올드린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
그러나 늘 암스트롱에 가려졌던 사람
6·25땐 전투기 몰고, 달에선 성조기 꽂았던 사람
영화 토이스토리 '버즈'의 실제 모델
영화보다 우주보다 드라마틱한 그의 삶

인생은 길다, 1인자보다 빛나는 2인자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빛나는 재능을 질투한다.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의 영웅 주유는 제갈량과의 지모대결에서 밀리자 “왜 하늘은 나를 낳고, 제갈공명을 낳았는가”라며 죽기 전 탄식했다.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작화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렇듯 1인자에게 가려진 2인자의 삶은 슬프고 운명적이다. 

 

그러나, 여기 한 사나이가 있다. 인류 최초로 달을 밟는 퍼스트맨의 영광을 빼앗겨 술독과 우울증에 빠졌지만, 시련을 딛고 일어나 우주 전도사가 된 버즈 올드린(Buzz Aldrin)이다. 

 

 

6·25 참전용사, 우주인이 되다
그의 정식 이름은 에드윈 유진 올드린 주니어이다. 별명인 ‘버즈’가 더 유명한데, 그가 어렸을 적 누이가 브라더(Brother)를 버저(Buzzer)로 잘못 부르는 것을 가족들이 줄여서 버즈라고 지은 데서 유래해 훗날 개명까지 했다. 올드린은 1930년 미국 뉴저지주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미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공군에 들어가 조종사 생활을 했다. 그는 6·25 참전 용사였는데, 공군 파일럿으로 출격해 소련 전투기 두 대를 격추하기도 했다.

 

그는 뛰어난 비행조종 능력뿐 아니라 훌륭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1961년엔 미 명문 MIT에서 유인 궤도 랑데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63년 NASA(나사·미 항공우주국)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의 그는 조앤이라는 배우자(다섯번 데이트하고 결혼)와 마이클·제닛·앤드류 세 자녀가 있었다. 

 

만 39세에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 조종사로
19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하자, 미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달 착륙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달 탐사를 위한 우주인이 선발되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69년 아폴로 11호가 발사되었다. 11호 대장인 닐 암스트롱은 총지휘를, 버즈 올드린은 달 착륙선 조종을, 세 번째 우주인 마이클 콜린스는 달 착륙선의 도킹을 기다리며 달의 궤도를 도는 사령선 조종을 맡았다.  

 

 

원래는 버즈 올드린이 달을 밟는 최초의 인간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NASA는 달 착륙선의 조종사인 올드린이 먼저 내렸다가 뒤에 사고가 발생하면 귀환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이유를 들며 암스트롱을 퍼스트맨으로 결정했다. 일설엔 NASA가 암스트롱의 과묵함, 절제력, 겸손한 성품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9년 7월 20일 일요일 오전 9시56분,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탄 이글호(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가 달 표면의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먼저 암스트롱이 선실 바닥의 작은 출입문을 통해 기어나갔다. 공기도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생명체도 없는 그곳으로. 올드린은 19분 후 암스트롱의 뒤를 따라 내렸다. 그는 달에 성조기를 꽂는 등 임무를 수행했고, 암스트롱은 그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 유명한 달 착륙 우주인 사진도, 달 표면에 찍힌 발자국도 모두 올드린이 주인공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암스트롱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2인자의 비애라고나 할까.  


달 위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올드린은 다음과 같은 방송을 했다. 
“나는 달 착륙선 조종사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이 방송을 듣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 누구이든 상관없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시고 지난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고 각자 나름대로 감사드릴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는 인류 최초로 달에서 성찬식을 조용히 거행했다. 성찬식이란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며 살의 의미하는 빵과 피를 의미하는 포도주를 나누는 의식이다. 물론 종교적 논란을 의식해 그 후 몇 년간 아내에게조차 비밀로 했지만. 


그는 딸에게 최고의 선물을 한 아빠이기도 했다. 딸의 이름을 달 표면에 새겼는데, 대기의 흐름이나 지각 활동이 없는 달의 특성 때문에 그 글씨는 운석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지워지지 않는다. 즉 딸의 이름을 달에 영원히 새긴 것이다. 올드린은 달에서 인류 최초의 성찬식을 행했을 뿐 아니라, 최초로 음주(성찬식 때 포도주)를 했고, 최초로 소변을 봤으며, 우주에서 최초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달에 다녀온 후, 방황이 시작됐다
지구로 귀환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닐 암스트롱에게만 향했다. 아폴로 3인방은 25개 나라를 누비며 환영행사를 펼쳤는데, 어디를 가든 인류 최초 타이틀을 가진 암스트롱에게만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버즈 올드린은 크게 상심했고, 다시 달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사고를 우려한 미 정부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열등감과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1971년 나사를 떠났고, 2년 뒤엔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가정에도 문제가 생겨 아내와 이혼을 했고, 급기야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토이스토리 주인공 ‘버즈’의 모티브가 되다
하지만 버즈 올드린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는 지인들의 지지와 응원 속에 알코올 중독을 극복해냈고, 우주정거장에 관한 특허를 내고 자서전을 쓰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엄청난 유명세에 압박감을 느껴 교수생활을 하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하던 암스트롱과는 정반대 행로를 걸었다. 특히 세계적 흥행을 한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1995년작)’에서 버즈 올드린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버즈 라이트이어(buzz lightyear)’는 그를 어린이들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했다.


사실 암스트롱만 부각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에선 자랑거리인 달 착륙의 역사를 깊이있게 다루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에 대해 잘 알고 친숙하게 여긴다. 미 교과서와 아동용 과학책들은 암스트롱만큼은 아니어도 올드린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룬다. 토이스토리의 ‘버즈’를 보고 대다수의 미국인이 버즈 올드린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는 영화 ‘트랜스포머3:다크 오브 더 문’에 카메오로 나왔고, 시트콤과 TV토크쇼·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달 착륙은 암스트롱에 가려진 2인자였지만, 달과 우주에 대한 홍보는 1인자를 앞선 ‘위대한 2인자’였다.

 

달 착륙은 2번째, 결혼은 4번째
버즈 올드린은 현재 아폴로 11호 3인방 중 유일한 생존자다, 닐 암스트롱은 2012년 사망했고 사령선 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2021년 세상을 떠났다. 올드린은 최근 서른살 연하인 오랜 연인과 4번째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는 트위터에 "93세에 나의 오랜 사랑인 포르 박사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다"고 썼다. 인류 최초로 달을 밟고 싶어했던 사나이답다고나 할까. 여하튼 대단한 노익장이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가 반세기만에 다시 달과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이때, 버즈 올드린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래서 그의 삶을 돌아보는 건 가치가 있다. 토이 스토리의 멋진 우주비행사 ‘버즈’에게서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얻는 것처럼.     

 

*참고 문헌
로켓을 꿈꾼 소년들 (정규수·정광화 지음, 지성사),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곽재식 지음, 동아시아)
달의 뒤편으로 간 사람(베아 우스마 쉬페르트 지음, 비룡소)
버즈 올드린 홈페이지(buzzaldrin.com), 조선일보(2013년10월19일자 C2면, 2007년9월15일자 B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