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정월 대보름,
저 달에 토끼가 있을까

검은 토끼의 해, 달을 바라본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어렸을 적 엄마와 두 손을 마주잡고 쎄쎄쎄를 한 뒤, 노래를 부르며 손바닥을 마주치는 놀이를 하곤 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이랬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 몇십 년이 지나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지금도 리듬이 입에 착착 감기는 것을 보면, 이런게 구전노래가 아닐까 싶었는데 원작이 있었다. 윤극영 선생이 1924년에 지은 이 '반달'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다. 


노랫말을 보면 반달을 은하수에 떠 있는 하얀 쪽배에 비유했다. 또 달에 사는 토끼 한마리가 등장하며, 마지막 구절은 달이 서쪽으로 지는 것을 표현했다. 조금 과장하면 이 동요는 우주를 담고 있다. 이 동요를 흥얼거리고 손바닥치기 놀이를 하는 우리 민족은 부지불식간에 영재 우주교육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달에 토끼가 살까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권엔 달에 옥(玉)토끼가 산다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달을 보면 어둡게 보이는 부분(음영·陰影)이 토끼를 닮았기 때문이다. 달의 어두운 부분은 과학적 발견이 이뤄진 뒤부터는 '바다'(라틴어로 mare)라고 불렸다. 17세기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망원경 관측으로 발견한 달의 어두운 부분을 물이 가득 찬 곳이라고 생각해 ‘바다’라고 명명했고, 후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동의해 널리 쓰이게 됐다.  물론 달에 바닷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달의 바다는 비교적 평평하고 매끄러운 분지로, 지대가 낮고 암석이 어두운 현무암이라, 지구에서 볼 때 어둡게 보이는 것이다. 이는 달 생성 초기 크레이터(운석 구덩이)를 용암이 메워 생겨난 지형으로, 운석의 충돌로 인해 내부의 마그마가 분출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문화권에선 달의 음영을 바라보며 사자·두꺼비·당나귀 등을 떠올렸다고 하는데,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니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달에 사는 옥토끼 설화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절구로 약초를 빻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떡방아를 찧고 있다. 또한 중국과 한국에서는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절구를 찧는다고 전해지지만, 일본은 나무가 등장하지 않는다.


옥토끼는 서방세계에도 낯설지 않다. 1969년 미국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도착했을 때 나사(NASA) 본부에서는 우주인들에게 토끼 관련 농담을 교신으로 주고받았다. 
 "중국 전설에 따르면 달에 큰 토끼가 있다는데, 한번 찾아봐 주겠나." (NASA)
 "알았다. 토끼 소녀가 있는지 주시하겠다."(달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

 

달은 한쪽 얼굴만 보여준다
지구에선 달의 앞면만 보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달 표면은 ‘앞면’인 59%에 불과하다. 이상하지 않은가? 달도 위성이고 자전을 하는데, 왜 지구에서 달의 민낯을 전부 볼 수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과학적인 정답은 달이 지구를 도는 시간과 스스로 한 바퀴 도는 시간이 똑같기 때문이다.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는 27.3일로 같다. 지구 한 바퀴를 27.3일에 걸쳐 도는데 거기에 맞춰 달도 자체적으로 움직이니 지구에서는 늘 달의 한쪽만 보게 되는 것이다. 이를 과학용어로는 ‘동주기 자전’이라고 부른다.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데 중간에 A친구를 세워놓고 다른 B친구가 그 주위를 빙빙 도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이때 도는 B친구가 항상 중간에 서 있는 A친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돈다면, 중간에 서 있는 A친구 입장에서는 도는 친구의 뒤통수나 옆모습을 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이 달에서도 발생하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한쪽 방향, 즉 토끼 모양의 무늬가 있는 방향밖에 볼 수 없다. 이는 달과 지구 사이에서 서로 당기는 중력이 어중간하면 서로 한 방향으로 마주 보도록 붙잡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힘에 의해 바라보는 방향이 맞추어져 고정된다고 해서 ‘조석고정(tidal locking)’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달의 앞면은 영어로는 ‘the near side of the moon’이라 부르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뒷면은 ‘the far side of the moon’ 표현이 널리 쓰인다. 영미권에서는 달의 뒷면을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전설적인 앨범명처럼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때 ‘dark(어둡다)’는 태양 빛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의미이다. 
   
달의 뒷면에 나치의 비밀기지?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각종 음모론을 양산했고, 여러 SF 소설·영화에서 미스터리 단골 소재로 쓰였다. 독일 나치의 달 기지설이 대표적인데,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나치 잔당들이 보유했던 탄도로켓 기술을 활용해 달의 뒷면 지하에 비밀기지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다.
 

1960년대에는 우주 경쟁에서 소련이 앞서가자, 미국은 소련이 달의 뒷면에 군사기지를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지구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달의 뒷면에 아무도 볼 수 없는 비밀기지를 지으면 핵무기를 숨겨놓기 좋겠다는 상상을 고위층이 했다는 것이다. 이후엔 미국의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이 달 뒷면에서 UFO를 목격했으나,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돌았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들은 인류의 달 탐사가 진행되면서 쏙 들어가게 되었다. 달 뒷면 사진을 최초로 찍은 건 1959년 소련이 보낸 루나 3호였다. 우주에서 달 뒷면을 직접 목격한 최초의 사람은 1968년 미국 아폴로 8호의 승무원 윌리엄 앤더스였다. 

 


2019년 1월 3일엔 중국의 창어 4호가 달의 뒷면에 최초로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달 뒷면은 지구와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 그동안 인류가 탐사선을 착륙시키지 못했던 것인데, 중국은 8개월전 통신위성 ‘췌차오(오작교)’를 먼저 쏘아올린 다음 창어 4호를 실은 로켓을 발사해 통신 문제를 해결했다. 
 
2023년 검은 토끼의 해, 우주로 퀀텀 점프하라!
새해를 맞으면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바라보는 ‘해돋이’는 지구 표면에서 해가 뜨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최근 해돋이와 다른 개념인 ‘지구돋이’가 화제가 됐다. 달 궤도에 진입한 한국의 달 탐사선 다누리호가 달 상공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다누리 발사는 미국 발사체 힘을 빌렸지만, 달로 가는 궤적 설계부터 탑재한 과학 장비들은 국내 기술진의 작품이다. 다누리호가 보내온 달과 지구 사진도 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고해상도 카메라가 찍은 것이다. 

 


다누리호의 성공으로 한국도 지구 궤도 너머의 심(深)우주 탐사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 선진국들에 비해 경쟁력은 뒤지지만, 우주 탐사도 시작이 반이다. 최근 우리 군에서도 고체연료 발사체 시험을 계속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우주는 이제 바라만 보는 곳이 아니다.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우주를 외면했다간 안보마저 무너진다. 각국이 우주에서 정찰하고 감시하고 타격하는 시대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퀀텀 점프(Quantum Jump)’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원래 대약진·대도약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인데, 단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이나 발전을 할 때 사용하는 말로 여러 분야에 쓰이고 있다. 2023년 검은 토끼의 해, 대한민국이 우주로 퀀텀 점프하기를 기원해 본다. 또한 우리 다누리호가 탐사하는 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보름달 뜨는 날, 가족들과 함께 옥토끼를 상상하며 ‘달의 바다’에 빠져보기를 추천한다. 

 

*참고문헌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곽재식 지음, 동아시아), ‘중국의 우주 굴기’(이춘근 지음, 지성사), 조선일보 2018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