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는 아닙니다,
하지만 좀 심각합니다

[뉴스 따라잡기 - 중국이 띄운 스파이 풍선]

미국 상공 헤집고 다닌 미확인물체
미국 "중국의 정찰풍선" 격추시켜
중국 "민간의 기상 관측용" 반발
위성보단 낮고 여객기보단 고도 높아
정보 취득에 적합...가성비도 좋은 편

하늘에 UFO가 나타났다?
지난 2월 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인들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UFO(unidenified flying object·미확인 비행물체)를 의심케 하는 물체가 북미 대륙을 가로지르며 미국 상공을 제집처럼 휘젓고 다닌 것이다.  미 당국은 이 비행물체가 중국이 띄운 대형 정찰풍선(Spy balloon)이라고 공개했다. 이 풍선은 알래스카 근처 알류샨 열도를 지나 캐나다를 거친 뒤 미 몬태나주 상공에서 처음 포착됐는데, 이 지역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Ⅲ를 운용하는 공군부대가 멀지 않은 곳이다. 미국의 발표에 중국은 “상황 파악중”이라고 밝힌 지 6시간 만에 기상관측용 ‘민간 비행선’이 경로를 이탈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버스 3대 크기의 풍선을 정찰용으로 규정해 주권과 국제법 위반임을 내세워 강경하게 대응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예정됐던 방중 일정을 전격 취소했고, 국방부는 4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인근 해역 18~20㎞ 상공에서 정찰 풍선을 격추시켰다. 본토 상공에 있을 때부터 풍선을 관측했지만,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기다렸다가 대서양으로 빠져나가자 최신예 F-22 스텔스기로 미사일을 쏴 추락시킨 것이다. 

 

美·中 패권다툼, 풍선으로 폭발

미국은 이 정찰풍선을 비난하며 세계를 상대로 반중(反中)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격추된 중국 정찰풍선이 미국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적어도 5개 대륙의 상당수 국가에서도 탐지됐다고 8일 발표했다. 미 국무부는 “중국은 40개국 이상에 정찰풍선을 띄웠고, 중국군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라틴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유럽 등 5개 대륙에서 발견된 중국 정찰 풍선들은 ‘정찰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크기와 역량은 다양하다”고 했다. 

 


중국은 여전히 해당 풍선들이 ‘기상관측용’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위협을 확대·과장하는 것은 중·미 상호 신뢰와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지도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의 배경과 관련 “중국인민해방군이 앞서가는 라이벌인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군사 현대화에 매진하는 한편 기습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무기와 전략을 개발해 왔다며, 정찰 풍선도 그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풍선이라고 얕보지 마라 ‘가성비 갑’
풍선은 첩보위성 등 더 발전된 기술에 정찰병 지위를 내줬지만, 위성보다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정보수집이 가능해 여전히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식 정찰풍선은 위성보다는 낮고, 여객기·전투기·정찰기보다는 높은 고도에서 가동할 수 있다.

 

 

여객기가 보통 12km 상공을 비행하는 데 비해, 정찰풍선은 약 18km 높이를 떠다닌다. 지구 저궤도를 도는 인공위성보다 '목표물'이 있는 지상과 훨씬 가까워 정보를 취득하기가 훨씬 쉽고, 조용히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풍선엔 항로 변경 프로펠러가 달려있어 원격 조종이 가능하고, 부력 조종용 기낭이 부착돼 있어 고도를 조절한다. 그렇게 오르내리면서 필요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을 탄다. 


카메라·레이더는 풍선에 장착된 태양열 집열판에 의해 가동되고, 적외선 카메라는 강력한 줌 기능 외에도 밤에 열을 이용해 사물을 포착·촬영할 수 있다. 또한 위성이 탐지하지 못하는 저출력 무선 주파수를 감지해, 미국 무기체계의 소통방식을 파악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정찰 풍선은 ‘배터리가 필요 없는 드론’이라고 할 수 있다. 로켓으로 쏘아올리는 위성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적은 비용으로 쉽게 띄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성비 갑’이다. 

 

파티용 풍선만 있는게 아니다, 군사용 풍선의 역사
풍선의 원리는 주변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넣어 공중에 띄우는 것이다. 1783년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개발한 최초의 열기구는 뜨거운 공기를 썼다. 풍선이 인류 역사에서 처음 정찰기구로 쓰인 건 1794년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등 동맹군과 맞선 플뢰뤼스 전투에서였다. 개전 초 밀렸던 프랑스군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한 정찰풍선 덕으로 승기를 잡았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엔 북부 연합군 병사들이 열기구를 타고 남부 동맹 활동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1852년 프랑스의 앙리 지파르는 풍선에 수소를 넣고 증기 엔진을 달아 비행선을 만들었다. 비행선은 곧 군사용으로 활용됐다. 1차 대전 초반엔 독일 비행선이 런던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느려터진 비행선은 하늘에 떠있는 손쉬운 표적에 불과해, 곧 전장에서 퇴출당했다. 


풍선을 정찰이 아닌 폭탄에 사용한 나라는 일본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 미 본토 공격에 이용했다. 폭탄을 매단 풍선에 수소를 채워 9㎞ 상공에 띄우면 제트기류를 타고 북미 대륙까지 날아간다는 원리였다. 거대한 산불을 일으켜 미국을 패닉에 빠뜨릴 목적으로, 일본은 1944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9000개 이상의 풍선을 날려보냈다. 하지만 미 본토에 도달한 풍선은 전체의 3%인 300개 정도였다. 게다가 오리건주 산에 추락한 풍선 폭탄을 민간인 6명이 건드렸다가 숨진 것을 제외하곤 별 파괴 효과도 없었다. 


2차대전 이후 부각된 미·소 냉전은 풍선을 다시금 역사의 전면으로 불러냈다. 미국은 풍선을 이용한 소련 핵 감시 작전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역대 가장 유명한 UFO 음모론의 대명사인 ‘로쓰웰 사건’의 배경도 여기에서 나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47년 7월, 미 뉴멕시코주 로스웰 인근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체가 추락했다. 미 당국의 모호한 해명과 일부 주민의 외계인 사체 발견 주장으로, 이후 로스웰은 ‘외계인 이슈’의 대명사가 됐다. 1994년 미 공군은 보고서를 내고 로스웰 추락 물체는 외계인이 타고 온 비행접시가 아닌 정찰풍선이라고 밝혔다. 당시 소련의 원자폭탄 제조를 감시하기 위해 관측 장비를 풍선에 띄워 보내는 비밀작전 ‘모굴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었는데 사고로 기기 잔해가 로스웰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 발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정찰풍선이 불러낸 소동은 유래가 깊은 셈이다.

 

풍선이 때론 역사를 바꾼다
냉전 시기였던 1951년 4월, 뮌헨에 있던 미국의 자유유럽방송이 동유럽을 향해 라디오 방송을 보냈다. 공산화된 동유럽 지역에서 이 방송을 못 듣게 하려고 소련에서 전파를 방해하자, 미국은 서독 국경지역에서 공산당 압제를 풍자·비판하는 전단을 실은 풍선 35만개를 동쪽으로 날려 보냈다. 이렇게 1950년대에 전단 수억 장이 체코·헝가리·폴란드 등에 뿌려졌다. 이에 공산 정권은 항공기와 대공포를 활용해 풍선을 격추하거나 전단을 회수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공산권 주민들은 이 전단을 보고 심리적 동요가 일었고, 훗날 ‘풍선이 철의 장막을 뚫었다’는 말이 나왔다. 철의 장막이란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 진영에 속하는 국가들의 폐쇄성을 빗댄 표현이다. 한국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도 이를 모델로 한 것이다. 북한이 2014년 대북전단이 담긴 풍선에 조준사격을 하는 등 격하게 반응하는 것도 체제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아날로그인 풍선이 때로는 그 어떤 디지털 장비보다 힘을 발휘한다.

 

풍선, 한국은 무풍지대? 

중국 풍선이 일본·인도·대만·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집중 비행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라 나오자, 한국 영공도 침범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우리 군은 방공레이더를 다시 분석한 결과 “한반도에 중 풍선이 통과한 적 없었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탐지 과정에서 놓쳤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 드론이 아무도 모르게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닌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제재로 돈줄이 막힌 북한이 정찰풍선처럼 ‘가성비 갑’인 군사용 기구를 활용하지 않았을까? 적에게 정찰을 허용한 나라는 승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