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블랙홀 사진
어떻게 찍었을까

<서평>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하이노 팔케·외르크 뢰머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

지구 8개의 전파망원경 동시가동
파리 카페에서 뉴욕의 신문 읽는 정밀함 갖춰
2년동안 데이터 결합해 세상에 내놓아

블랙홀을 아십니까 

블랙홀(black hole)이란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어린시절 만화방이었다. ‘타짜’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 화백의 1989년작 ‘블랙홀’은 당시 독특한 SF 소재를 다루며, 뭐든지 빨아들이는 무서운 무엇인가로 뇌리에 깊이 박혔다. 성인이 되어 블랙홀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였다. 주인공이 블랙홀 안에 들어가 시공간을 유영하는 장면은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블랙홀’은 현대인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다. 신문 헤드라인만 봐도 사랑의 블랙홀, 이슈 블랙홀, 특검 블랙홀 등 각종 블랙홀이 판친다. 그렇다면, 블랙홀의 정체는 뭘까? 영화 ‘인터스텔라’나 과학책에 등장하는 블랙홀 그림은 모두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상상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블랙홀을 추적한 끝에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있다.

 

책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하이노 팔케·외르크 뢰머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는 우주에서 가장 신비한 천체인 블랙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학자들의 고군분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들은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5500만년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거대한 은하 중심부에서 2017년 4월 약 열흘에 걸쳐 블랙홀을 관측한 뒤 2년간의 분석을 걸쳐 공개했다.  

 

죽은 별에서 태어나는 블랙홀
블랙홀은 우주의 무덤이자, 우주 먹보이다. 블랙홀은 연료를 다 소모해 완전히 타버린, 죽은 별에서 생성된다. 우주는 이런 초대질량 블랙홀에 거대가스 성운, 행성, 별 등을 먹이로 제공한다. 블랙홀의 질량 때문에 주변의 우주 공간은 아주 심하게 휘어서 시간조차 멈춰버릴 것처럼 보인다. 블랙홀 가까이에 접근한 모든 것은 블랙홀을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빛조차 블랙홀을 빠져나갈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천체이다. 중력은 블랙홀에 가까울수록 커지므로, 블랙홀 중심으로부터 어느 특정 거리 이상에서는 블랙홀에 가까이 갔더라도 다시 빠져나올 수 있는 반면, 그 경계면을 넘어서면 빛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 경계면을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한다. 가수 윤하의 음원차트 역주행으로 유명한 노래, 바로 그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본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게 되는 경계면을 의미한다. 사건의 지평선을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블랙홀의 경계면으로, 결국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블랙홀과 블랙홀 아닌 곳 사이의 경계선 뿐이다. 원래 인간이 어떤 물체를 보려면 그 물체가 빛을 내뿜거나, 빛을 반사해줘야 한다. 그러나 블랙홀은 빛조차 삼켜버리기 때문에,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블랙홀은 마치 검은 구멍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019년 4월 10일, 한 장의 사진이 전세계 언론을 열광시켰다. 검은 바탕에 도넛 같은 붉고 노란 원형 고리가 떠 있는 사진이었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하 EHT)’ 협력단의 EU 대표 하이노 팔케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천체물리학 교수는 당시 벨기에 브뤼셀의 기자회견장에서 이 사진을 공개하며 말했다.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EHT팀은 처녀자리 은하단의 한가운데에 있는 M87 블랙홀 관측에 성공했다. M87 블랙홀은 지구에서 5500만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Km) 떨어져 있으며 질량은 태양의 6500억배에 이른다. 그동안 상상의 영역으로만 존재했던 블랙홀의 모습이 드디어 그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이날 EHT팀이 공개한 블랙홀 사진은 한쪽이 밝게 빛나는 초승달 모양이다. 이는 블랙홀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물질에서 나온 빛이다. 이 물질과 블랙홀 경계면, 즉 사진의 가운데 검은 원과 붉은 고리 경계선이 바로 앞서 언급했던 ‘사건의 지평선’이다. 연구진은 빛이 나오지 않는 블랙홀을 직접 관측하는 대신 블랙홀의 윤곽인 ‘그림자’를 관측하는 방법을 택했다. 쉽게 비유하자면, 보자기가 감싸고 있는 모양을 보고 그 안의 물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과 같다. 관측 결과 블랙홀은 마치 달걀 속 노른자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위치해 있고, 크기는 지름이 약 150억Km였다.


팔케 교수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블랙홀을 ‘지옥의 문’에 비유한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블랙홀로 들어가는 것은 블랙홀 안에 머무른다. 블랙홀은 이 세상과는 다른 저쪽 세계, 즉 일종의 내세(來世)다.”
       

지구의 전파망원경 8대가 연대하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 연구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다. 그동안 블랙홀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하나의 점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전파망원경은 커다란 접시 형태 안테나를 이용해 천체가 보내는 전파를 수집하고, 이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만들어 관측한다. 안테나가 클수록 성능이 좋아지는데, 무작정 안테나 크기를 키울 수 없다. 그 결과 여러 전파망원경의 데이터를 모아 마치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처럼 활용하는 기술이 쓰이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블랙홀에서 나온 전파가 지구까지 도달하려면 파장이 1.3mm 정도여야 한다고 계산했고, 이 파장대의 전파를 포착하려면 전파망원경 지름이 지구와 비슷해야만 했다. 

 


EHT팀은 칠레·하와이에 2대씩, 스페인·멕시코·미국 애리조나·남극에 1대씩 총 8개의 전파망원경을 동시에 가동해 지구만한 망원경과 같은 효과를 냈다. 그리고 2017년 4월 우주의 동일 지점을 응시하며 블랙홀을 관찰했다. EHT팀은 망원경 정밀도가 “프랑스 파리의 카페에 앉아 지구 반대편 미국 뉴욕의 신문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고, 각 망원경이 관측해 모은 데이터들을 2년간 결합하고 이미지화했다. 


美연구진이 나온 넷플릭스의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다큐멘터리에선 이런 비유를 들었다. “거울을 가져다가 망치로 부순 다음, 그 조각을 전 세계에 배포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다음 각 조각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그걸 하나로 모아 수퍼컴퓨터에서 거울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이 바로 그것이다”
 
블랙홀에 이르는 우주여행으로의 초대
이 책은 팔케 교수와 떠나는 우주여행으로의 초대다. 1부 ‘시공간으로의 여행’은 태양계와 천문학의 초기 역사를 다룬다. 2부 ‘우주의 신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블랙홀의 탄생, 빅뱅의 발견 등 현대천문학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쉽게 알려준다. 3부 ‘이미지로의 여행’는 전세계 13개 기관과 348명의 과학자들이 협력해, 인류 최초로 블랙홀 사진을 찍는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4부 ‘경계 너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저자가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겸손하게 고백한다.  

 


인류 최초로 블랙홀 관측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국제협력이 주요했다. 우주는 미국이나 중국 같은 몇몇 강대국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자산이자 미래인 이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해선, 인류 모두의 기술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가 블랙홀 사진 포착이 아닐까.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팔케 교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우리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공간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 위에 앉은 먼지 알갱이일 뿐이다. 그러나 우주에 감탄하고 질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아주 특별한 별 먼지로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아주 특별한 별 먼지인 우리들이 더 많이 우주에 감탄하고 질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