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다,
사무라이 우주 야망

[긴급진단= 일본 우주기술은 지금]

일본 민간 우주선 26일 달착륙 시도
애니메이션부터 군사 안보까지...
열도는 왜 우주를 꿈꾸는가

영원한 우주만화 은하철도 999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가면~ 우주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네~”  1980년대 이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TV 앞으로 달려갔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였다. 우주 기차를 타고 행성을 누비는 철이가 부러웠고, 아름다운 메텔과 동행하는 철이가 한편으론 미웠다. 내겐 우주를 향한 첫사랑과도 같은 작품이었기에, 훗날 은하철도 999가 일본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살짝 섭섭하기까지 했다. 은하철도 999 말고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재패니메이션(일본 japan+애니메이션 animation)은 수없이 많다. ‘우주전함 야마토’ ‘은하영웅전설’ ‘기동전사 건담’ ‘우주해적 캡틴 하록’ 등의 작품들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우주개발 경쟁이 벌어지며, 우주 능력이 곧 국가안보인 시대가 됐다. 일본의 기업 아이스페이스는 4월 26일 달 착륙을 시도한다. 성공하면 일본은 러시아, 미국,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달 착륙에 성공한 나라가 된다. 또한 민간 기업의 첫 달 착륙으로 기록된다. 만화부터 달 착륙선까지...섬나라 일본의 우주 야심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됐을까.

  

연필 크기 펜슬로켓에서 출발

일본 로켓의 아버지는 이토카와 히데오(1912~1999)라는 인물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제조회사에 근무하며, 전투기 설계와 함께 혼자서 제트엔진을 연구했다. 1945년부터는 도쿄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로켓 추진의 초음속기 연구를 시작했고, 길이 23cm(무게 200g)의 연필과 같은 초소형 화약식 로켓을 실험장치로 제작했다. 그 때문에 ‘펜슬로켓’으로 불렸다. 1955년에는 고체연료를 사용한 지구관측 로켓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게 되었고, 길이가 1m를 넘는 ‘베이비로켓’을 통한 다양한 실험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이토카와는 로켓 개발에 관심없던 정부와 기업을 설득해 연구에 투자하게 만들었다. 1960년엔 카파로켓이 고도 200km를 넘어, 본격적인 우주 관측이 가능해졌고 세계가 일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그 다음 목표를 인공위성 발사로 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500~1000km의 고도에 올라가는 로켓이 필요했다. 1970년 2월 11일, 일본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고체연료 엔진을 쓰는 람다로켓으로 일본 최초의 인공위성 ‘오스미’를 지구궤도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 총중량 23.8kg에 불과한 초소형 인공위성이었지만, 일본은 소련·미국·프랑스에 이어 세계 4번째로 자력으로 위성을 띄운 국가가 된 것이다. 

 


연필 크기의 펜슬로켓에서 출발해 고도 500km를 달성하는 인공위성까지가 일본 우주개발의 도약기라고 할 수 있다. 로켓이 사거리 1000km를 넘게 되면, 당연히 군사적 목적의 장거리 미사일로 전용 가능하기 때문에, 당시 일본 정부는 로켓 개발이 ‘평화적 연구’를 위함이라고 선언했다. 지구관측 등 과학적 연구목적을 내세워 전범국가로서의 꼬리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점점 가속도가 붙은 일본 로켓

일본은 도쿄대 이토카와팀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자주적인 기술과 더불어 미국으로부터의 기술 이전을 결합해 로켓 개발을 가속화했다. 1969년 과학기술청 산하에 ‘우주개발사업단(NASDA·우주개발추진본부의 후신)’가 발족됐고, NASDA는 5년 이내에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실용 로켓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뒤, 취약했던 액체연료로켓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쉽게 해결됐다. 바로 동맹 미국의 도움이었다.   


사실, 로켓 기술을 보유하면 탄도미사일을 쉽게 개발할 수 있다. 이를 우려한 미국은 일본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이전해주고, 일본의 로켓 개발 전체를 관리 감독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일본과 우주협정을 맺고, 미 우주개발을 이끈 액체연료로켓인 ‘델타로켓’ 기술을 전수해주기로 한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기술을 도입하되, 독자 기술을 결합해 1970년부터 N1 로켓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1975년 9월 9일 N1 로켓 1호가 발사됐고, 100kg급의 기술시험위성을 정지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3번째로 정지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일본은 1981년부터는 자국산 액체연료로켓인 ‘H1 로켓’ 개발에 착수했다. 500kg급 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H1 로켓은 일 국산화율이 70% 정도에 달했다. 계속해서 직경 4m, 길이 49.9m에 달하는 ‘H2 로켓’이 개발됐고, 이 로켓은 3.8톤의 위성을 정지궤도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H2 로켓은 비용이 너무 비쌌고, 급격한 엔고 현상까지 겹치며 경쟁력이 극히 떨어졌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국산화에 집착하지 않고 해외의 저가부품을 썼으며, 단순한 구조로 재설계해 경제성을 갖춰 나갔다. 이러한 노력들은 ‘H2A, H2B’ 개발로 이어졌고, 이 로켓들은 이후 일본의 주력 상품이 되었다. H2A 로켓은 46회의 발사를 했고, 2024년까지 총 50회의 발사를 채우고 퇴역할 예정이다. H2B 로켓은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는 우주비행사들의 식량과 실험장비를 실어나를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또한 여러 개로 흩어져있던 우주 관련기관을 통폐합해, 2003년 10월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를 발족했다. 이 JAXA를 중심으로, 일본의 우주기술 개발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일본 우주의 핵심은 결국 군사안보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해 일본열도를 넘어서 태평양에 낙하한 사건이 일어났다. 대포동은 발사가 확인된 장소에서 미국이 붙인 닉네임으로 북한은 백두산 1호(혹은 은하 1호)로 불렀다. 일본은 이 북한 도발을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진행시키는 근거로 삼았고, 2003년엔 미국의 미사일방위망(MD)에 가입하는 데 이르렀다. 


일본은 북한의 도발을 계기로 정찰위성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1969년 중의원이 ‘우주 개발은 군사 목적 이외로 한정한다’고 결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군사용 위성은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일본 정부는 법률적 제한을 바꿔 2003년부터 정찰위성 발사 준비에 들어갔다. 또한 2008년 5월 ‘일본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우주개발 이용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우주기본법’을 제정했다. 일본은 현재 7개의 정찰위성이 북한의 지하 핵실험 장소 등 한반도와 주변 지역을 정밀 감시하고 있다. 해상도는 30cm 정도다. 

 

우주에서 앞서가는 일본 
일본은 올해 3월초 대형로켓 H3가 엔진 문제로 발사에 실패하긴 했지만, 요즘 우주시대에 대세가 된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2013년에는 2003년 발사한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가 소행성의 샘플을 채취해 귀환함으로써, 달 이외의 천체 샘를을 가쳐온 최초의 탐사선이 되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우주기술이 일본에 비해 최소 10년 이상 뒤처져 있다고 본다. 일본은 많은 실패 속에서도 꾸준히 우주 개발을 추진해 미국·러시아·EU·중국과 함께 우주 선진국이 되었다. 무엇보다 전범국가로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든다는 오해를 피해가며 기술을 쌓았고, 마침내 우주를 군사적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한국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북한과 중국에 맞서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부분에서 일본의 우주기술은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론 우경화되는 일본은 위협으로 다가온다. 특히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은 지난해 12월 안보문서를 개정해, 공격을 받았을 때 방위력만 행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적이 일본에 대한 공격에 착수했다고 판단될 때 상대의 미사일 기지 등을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을 보유할 것을 명시했다. 일본이 선언한 ‘반격 능력’은 우주 기술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주제이다. 정찰 위성, GPS 능력, 로켓 기술 등 모든 것이 우주기술과 연관돼있다. 결국 협력할 건 협력하되, 일본의 우주기술을 빨리 따라잡는 것이 한국 우주산업의 중요한 숙제가 됐다.   

 

※ 참고서적:  일본의 우주개발-평화에서 군사안보로’(Satoru Ikeuchi 저, 한은아 역, 박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