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13호 구조 주역 사망
NASA "영웅을 잃었다"

빌 넬슨 NASA 국장, 감동의 애도성명 전문

NASA 홈페이지에 게재된 TK 매팅리 추모사진. / NASA

 

아폴로13호. 실패한 달 미션이지만, 누구보다 영웅적 궤적을 남긴 달 탐사선이다. 1970년에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는 그 아폴로13호의 조종사로 임명됐으나, 건강 문제로 제외됐다가 아폴로13호에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관제센터에서 우주선의 대기권 재진입에 필요한 방법들을 고안해, 기적적인 생존 드라마가 가능하도록 한 미국의 전설적 우주비행사 토머스 K 매팅리 주니어(Thomas K. Mattingly II)가 사망했다. 87세.

 

빌 넬슨 NASA 국장은 현지시간 2일 애도성명을 발표해 10월 31일, 아폴로13호 생환작전에 기여했고, 아폴로16호 조종사로 참여하는 등 모험적인 삶을 살아온 TK 매팅리의 사망을 세계에 알렸다. NASA 최초의 우주비행사 생존 작전을 지휘한 TK 매팅리의 사망을 NASA를 비롯한 미국이 애도하고 있다. 

 

TK라는 애칭으로 불려온 매팅리는 1970년 달 탐사에 나선 아폴로 13호의 지휘모듈 조종사로 임명됐다. 그러나 발사 72시간 전 건강에 이상(풍진, 홍역)이 생길 가능성이 불거져 임무에서 제외되고 관제센터에 남게 됐다. 달로 향하던 아폴로 13호가 산소탱크 폭발로 위급 상황에 처하자 매팅리는 관제센터에서 우주선이 대기권에 재진입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뮬레이터 안에 들어가 직접 조종 실험을 하면서, 부족한 전력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우주선에 타고 있던 3명의 비행사는 모두 생환할 수 있었다. 이후 매팅리는 아폴로 16호 임무에서 다시 조종을 맡았으며 두차례의 우주왕복선 임무에서 우주선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지구에서 32만km 떨어진 곳에서 우주고아가 될 뻔한 아폴로13호의 3명의 승무원은 TK매팅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극단적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관제센터와 교신하면서 스스로의 생명과 미션을 살린 자신들 덕분에 생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성공한 생환 미션. 그래서 아폴로13호는 '성공한 실패(successful Failure)'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고, 3명의 우주인은 '지구에서 가장 멀리간 사람들'로 불렸다. 달 착륙선은 달의 저궤도를 돌면서 대기하게 되는데, 아폴로13호는 지구로 돌아오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 고궤도를 돎으로써 달에서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가본 사람이라는 진기록을 얻게 했다. (이 기록은 2022년 NASA의 달 탐사선 오리온에 의해 불과 1000마일 차이로 깨졌다. 오리온은 24만9666마일, 약 40만1798km이고, 아폴로13호는 24만8655마일, 약 40만km를 갔다.) 

 

영화 <아폴로13호>에서 매팅리 역할을 열연하고 있는 개리 시나이스. 생환에 성공한 뒤 "귀환을 환영한다"고 교신한다. 

 

아폴로13호의 극적인 생환작전은 1995년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됐다. 론 하워드 감독이 톰 행크스를 주연으로 기용해 역사적인 우주작전을 스크린에 담았다. 톰 행크스와 함께 애드 해리스, 빌 팩스턴, 케빈 베이컨 등이 출연한 이 영화에서 TK 매팅리 역할을 맡은 배우는 개리 시나이스. 그는 영화 속 귀환 성공 장면에서 울먹이면서 "휴스턴이다, 웰컴 홈"을 외친다. 

 

'성공적인 실패'라고 불리는 아폴로13호 생환 드라마에 참여했고, 수많은 우주비행의 기록을 남긴 TK 매팅리를 추모하며 빌 넬슨 NASA 국장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미지의 것에 용감하게 도전한 우리의 영웅'이라고 추모성명을 발표했다.   


다음은 빌 넬슨 NASA 국장의 성명 전문(번역+영문). 

 

"10월 31일, 우리는 우리나라의 영웅 중 한 명을 잃었습니다. NASA의 우주비행사 TK 매팅리는 우리의 아폴로 계획의 성공의 열쇠였고, 그의 빛나는 개성은 역사 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미국 해군에서 경력을 시작한 TK는 1960년에 날개를 달았고 여러 임무를 수행하면서 다양한 항공기를 조종했습니다. 그가 공군 항공우주 연구 파일럿 학교에 학생으로 입학하자 NASA는 1966년에 그를 우주비행사 반에 선발했습니다. 우주에서 비행하기 전에 그는 우주비행사 지원 승무원으로 일하는 아폴로 계획을 도왔고 아폴로 우주복과 배낭의 개발에 앞장섰습니다.

그가 아폴로16호의 조종사와 STS-4와 STS 51-C 우주왕복선 임무를 위한 우주선 지휘관의 역할을 맡았을 때, 조종사로서의 그의 비할 데 없는 기술은 우리를 도왔습니다. 혁신에 대한 헌신과 반대에 대한 탄력성은 TK를 우리의 임무와 국가적 존경을 구현하는 훌륭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NASA에서 그의 가장 극적인 역할은 아폴로13호의 발사 직전에 풍진의 위협 때문에 탑승하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뒤에 남아서 부상당한 우주선과 아폴로13호의 승무원들(NASA 우주비행사 제임스 러벨, 잭 스위거트, 프레드 헤이즈)을 성공적으로 집으로 데려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TK의 헌신은 우주를 향한 우리의 학습의 발전에 커다란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그는 우주궤도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대단히 명확하게 두렵다.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본다면, 그것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 때문에. 그것들은 그냥,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는 우주의 방대함을 무한한 가능성의 광장으로 보았습니다. 모험적인 미션의 리더로서, TK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미지의 것에 용감하게 맞선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We lost one of our country’s heroes on Oct. 31. NASA astronaut TK Mattingly was key to the success of our Apollo Program, and his shining personality will ensure he is remembered throughout history.

 

Beginning his career with the U.S. Navy, TK received his wings in 1960 and flew various aircraft across multiple assignments. Once he joined the Air Force Aerospace Research Pilot School as a student, NASA chose him to be part of the astronaut class in 1966. Before flying in space, he aided the Apollo Program working as the astronaut support crew and took leadership in the development of the Apollo spacesuit and backpack.

 

His unparalleled skill as a pilot aided us when he took on the role of command module pilot for Apollo 16 and spacecraft commander for space shuttle missions STS-4 and STS 51-C. The commitment to innovation and resilience toward opposition made TK an excellent figure to embody our mission and our nation’s admiration.

 

Perhaps his most dramatic role at NASA was after exposure to rubella just before the launch of Apollo 13. He stayed behind and provided key real-time decisions to successfully bring home the wounded spacecraft and the crew of Apollo 13 – NASA astronauts James Lovell, Jack Swigert, and Fred Haise.

 

TK’s contributions have allowed for advancements in our learning beyond that of space. He described his experience in orbit by saying, ‘I had this very palpable fear that if I saw too much, I couldn’t remember. It was just so impressive.’ He viewed the universe’s vastness as an unending forum of possibilities. As a leader in exploratory missions, TK will be remembered for braving the unknown for the sake of our country’s f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