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정거장 우리가 할래"
날아오르는 민간 기업들

'인류의 실험실' 우주 정거장에 도전하는 기업들

러시아 연방우주국(Roscosmos)의 신임 국장인 유리 보리소프는 지난 7월 2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2024년 이후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철수하겠다"고 보고했다. 미국·러시아·캐나다·일본·유럽우주기구(ESA) 등 ISS에 각자의 모듈을 덧붙인 나라들과 기구들은 지구 위 400㎞ 우주를 날고 있는 470톤짜리 ISS를 2024년까지 가동하기로 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은 ISS를 2030년까지 독자적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상태였다.

 

이번엔 협박이 아니다? 러시아의 ISS 철수 선언

러시아의 ISS 철수 의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러시아는 이 다국적 ISS의 노화 상태와 안전상의 위험을 들어, 2021년부터 간헐적으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이 주도하는 각종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군사적 갈등이 '철수 발표' 배경에 더해졌다. 아예 로스코스모스는 독자적인 우주 정거장 모형까지 공개했다.

 

 

암부터 노화까지 연구, 인류의 거대한 실험실 

2000년 11월부터 우주인이 상주하기 시작한 ISS는 지난 22년 동안 모두 20개국에서 온 258명의 우주인이 미세중력과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만 가능한 혁신적 실험을 해왔다. 암과 알츠하이머, 근육이 퇴화하는 뒤센 근이영양증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험이 이곳에서 진행됐고, 생활용품 제조사인 프록터 앤 갬블도 ISS 실험을 통해 섬유유연제의 개선을 이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과학의 전(全)분야 걸친 연구와 실험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지구 저궤도엔 ISS 외에도, 중국이 2021년 9월에 쏴올린 '텐궁(天宮)' 유인우주정거장이 있다. '텐궁'은 앞으로 10년간 사용될 예정이다.

 

 "연간 유지비 30억달러, 그 많은 비용을 어떻게" NASA의 고민
러시아가 진짜로 2024년 이후 철수할지는 알 수 없지만, 러시아가 우주정거장을 독자 개발한다고 해도 최소 5~7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은 ISS 프로젝트가 러시아의 '철수 협박'에 노출되는 부담을 안고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NASA 혼자 ISS를 떠안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ISS의 연간 유지비는 30억 달러로, 이는 NASA의 우주 개발 예산의 3분의1을 차지한다.
그래서 나온 묘안이 ISS 프로젝트를 점차 민간 비즈니스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우주정거장이 민간·상업용 플랫폼으로 전환되면, NASA는 인간의 달 착륙, 달 기지 건설, 화성 탐사 등 더 깊숙한 우주로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중국의 '텐궁' 정거장도 모듈로 연결되는 민간 파트너들을 찾고 있다. 미국으로선 우방국과 주요 기업들이 노후한 ISS 대신에, 신(新) 모델인 '텐궁'에 붙는 것을 손 놓고 볼 수는 없다.
이에 따라, NASA는 지금까지 모두 5억500만 달러의 개발비를 지원하며 4개 민간 우주정거장 컨소시엄과 계약을 맺었다. 

 

 

액시엄, 나노랙스, 노스롭, 블루오리진...누가 성공할까
그 첫번째가 2020년 2월 미국 휴스턴에 기반을 둔 우주개발사인 액시엄(Axiom)사와 맺은, 1억4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민간 우주 모듈 개발 계약이었다. 액시엄은 2024년 ISS의 '하모니' 모듈에 첫 민간 모듈인 '액시엄 허브 1'을 결합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 5단계에 걸쳐 2028년까지 모듈을 붙이게 된다. 2028년 ISS와의 마지막 결합이 끝나면 약 2년간 ISS와 동거하다가, 2030년 ISS가 퇴역한 뒤에는 독자적인 민간 우주정거장으로 가동하게 된다. 

 

 


NASA는 또 2021년 12월에 보이저스페이스 사가 소유한 나노랙스(Nanoracks)와 록히드마틴 사가 주도하는 스타랩(Starlab) 컨소시엄,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과 시에라 스페이스가 이끄는 '오비탈 리프 프로젝트(Orbital Reef Project)', 노스롭 그루먼의 달 탐사 전초기지 플랫폼 제작 등에 추가로 개발비를 지원했다.


나노랙스의 스타랩은 금속 소재가 아니라, 케블라 소재를 기반으로 해서 우주에서 팽창될 수 있도록 한 모듈이다. 팽창되므로, 더 큰 부피의 모듈을 더 적은 수의 로켓 발사를 통해 우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부 모듈은 이미 저궤도에 '우주 쓰레기'로 떠도는 2단계 로켓 등을 회수해 제조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새 모듈을 지상에서 우주로 발사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궤도 상의 산호초'라는 뜻을 지닌 '오비탈' 프로젝트는 10명의 우주인이 상주하는 약 2787㎡(840여 평) 크기의 우주정거장으로, 산업·연구·관광의 생태계를 우주에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노스롭 그루먼 사는 우주인 훈련과 과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앞으로 달 탐사의 전초기지가 될 플랫폼을 제조한다. 최대 8명의 우주인이 상주하게 된다. 노스롭은 2014년 ISS로 가는 화물 전용 우주선 '시그너스'를 제조하기도 했다. 

 

NASA 3년 뒤에 파트너사 선정 
이들 민간 우주정거장은 아직 하나도 떠 있는 것은 없다. NASA는 분명한 지속 성장 모델을 갖춘 컨소시엄을 2025년쯤 ISS의 파트너사로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민간 기업이 수익을 내며 독자적으로 우주 정거장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상업화 초기엔 적자 예상되지만... 
투자은행 시티(Citi)는 2040년까지 전체 우주 경제는 연간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지만, 이 중에서 민간 우주 정거장의 매출은 약 8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봤다. 민간 우주정거장에서 진행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우주인의 우주 적응 훈련·의학적 실험·제조 공정 연구·우주 창고·소행성 물질 채광(採鑛) 등이 있고, 이 밖에 인공위성의 제조와 결합도 이곳에서 할 수 있다. 


2017년 미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우주 시장의 규모를 2025년까지 4억5500만~12억 달러로 추산했다. 반면에 하나의 민간우주정거장을 운영하는 비용은 4억6300만~22억5000만 달러로 봤다. 또 현재는 우주 기반 제조 공정과 생의학적 실험에 관심이 있는 단체나 기업이 NASA의 특별 대우를 받아 무료로 우주에서 이런 연구를 하고 무료 우주 여행을 한다. 그러나 상업화가 되면, 그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 초기엔 막대한 적자가 예상된다는 얘기다.


또 민간 컨소시엄이 우주에 실제로 플랫폼을 구축하기까지는 20억~3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1억 수천만 달러 규모인 NASA의 개발 지원금 외에, 상당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 NASA가 주요 고객이 되지 않으면, 민간 우주정거장 비즈니스가 독자적으로 살아나기는 힘들다. 

 

민간 우주정거장 현실화 땐, 운영비 ISS의 20% 수준

그러나 우주 정거장 비즈니스에 뛰어든 민간 기업들은 희망적이다. 시에라 스페이스 사의 CEO인 톰 바이스는 "우주에 영구적인 기반을 구축하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심대한 산업혁명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 우주정거장의 운영 비용은 현재 ISS의 5분의1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스타랩 우주정거장 컨소시엄의 주력사인 보이저 스페이스의 CEO인 딜런 테일러는 "2020년대말까지 지구 궤도에 여러 개의 민간 우주정거장이 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액시엄 측은 이미 민간 기업의 우주 관련 미션, NASA와의 우주복 개발, 민간 실험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20억 달러의 매출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지금까지 ISS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한국과 같은 우주개발 후발주자들이 민간 우주정거장의 주요 고객이 될 것이다. 


초속 7.66㎞의 속도로 하루에 지구를 15.5바퀴 도는 ISS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1년 1월 지구 대기권으로 밀려나 재진입하면서 연소되고 잔해는 남태평양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