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영국 언론은 지구 궤도로 발사되는 버진 오비트(Virgin Orbit)사의 로켓 ‘런처원(LauncherOne)’이 영국 남서부의 ‘콘웰 우주기지(Spaceport Cornwall)’에 도착한 뉴스를 크게 보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정대로 10월29일 발사되면 ‘런처원’은 영국이 자국 본토에서 지구 궤도로 발사하는 첫 로켓이기 때문이다.
이 로켓은 일반적인 수직 상승 로켓과는 달리, ‘우주 소녀(Cosmic Girl)’라고 개조된 보잉 747기에 탑재돼 지상 10㎞까지 올라간 뒤, 수평 상태에서 분리돼 2만8000㎞의 시속으로 하늘로 치솟는다. 발사에 성공하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영국이 독자적으로 ‘우주 경쟁’에 돌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하지만 우주 산업계의 눈은 특히 이 로켓이 지상 500㎞ 상공에서 쏟아내는 9개의 위성 중 하나인 ‘포지스타(ForgeStar)-0’라는 위성에 쏠린다. 스페이스 포지(Space Forge)라는, 영국 웨일즈의 위성 제조 스타트업이 만든 빵 굽는 토스터만 크기의 초소형 큐브샛(cubesat)이다. 아직은 테스트용이라 ‘0’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그런데도 이목을 끄는 것은 이 위성이 지구상에는 온도와 오염 물질, 중력 등의 영향을 받아 만들 수 없는 물질을 우주 공간에서 로봇 공정으로 만드는 ‘우주 공장(space factory)’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포지스타-1’을 시작으로 계속 덩치가 커진 위성들이 우주로 발사된다. 이 공장 위성은 또 지구로 귀환한 뒤 재발사되는 재활용 위성이다.
유럽 최대의 인공위성 제조사인 탈레스알레니아(ThalesAlenia)에서 일하던 영국인 엔지니어 조슈아 웨스턴과 앤드류 베이컨 두 사람은 2018년에 이 ‘우주 공장’ 아이디어로 ‘스페이스 포지’를 창업했다. 이후 영국 정부와 유럽우주국(ESA)에서 총 220만 파운드(약35억4000만원)를 받는 것을 비롯해 여러 벤처 금융사들의 투자를 받아, 올해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우주 스타트업 명단에 들게 됐다.
왜 우주인가?
지구에서 물질을 제조할 때에는 중력과 기압, 기온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순수한 성분의 물질 제조를 불가능하게 한다.
중력의 영향을 살펴보자. ‘스페이스 포지’의 CEO인 웨스턴은 “지구에서 하듯이 고속(高速)의 원심분리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알루미늄과 납을 합금하면, 꽤 좋은 질(質)의 합금이 나오긴 하지만 중력 탓에 완벽하게 섞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미세 중력(microgravity) 상태인 우주에선 부력(buoyancy)이 발생하지 않고 균일한 합금이 이뤄져 완벽한 결정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구에선 세포를 생성하려고 해도, 배양 과정에서 중력에 의해 쉽게 붕괴된다. 그러나 우주에선 중력이 거의 없으므로, 연구진의 애초 디자인 의도대로 배양할 수 있다. ‘미세중력’ 상태에선 백신 연구, 신장(腎臟)과 같은 장기를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는 3D 바이오프린팅이 훨씬 쉬어진다.
대기도 마찬가지다. 지구에선 제조 과정에 영향을 주는 초(超)미세 오염물질이 많다. 그러나 우주의 기압은 지구의 10조분의 1밖에 안 되는 ‘진공 상태’다. 일체의 오염 물질이 없어, 최고의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다. 또 원자 크기로 수백, 수천 개 층으로 쌓은 합성물을 제조할 수 있다.
우주에선 또 태양 복사를 받는 위성의 위치 변경 등을 통해, 절대 영도( −273.15 °C)에서부터 아주 뜨거운 상태까지 극한의 온도를 조성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다. 스페이스 포지 측은 “절대 영도에 가까운 우주의 평균 온도( −270.4°C)를 활용하면 초정밀 광학 센서와 같은 퀀텀 디바이스의 활용과 초(超)전도체의 제작이 쉬어진다”고 밝혔다.
완전 자동화한 세계 최초의 ‘우주 공장’ 꿈꾼다
스페이스 포지가 우주에서 제조하려는 물질들은 대부분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미국의 과거 우주정거장이었던 ‘스카이랩’에서 우주인들이 실험하며 가능성을 확인한 것들이다. 그러나 스페이스 포지의 우주 공장은 완전 로봇 공정이다.
우주에서 제조하는데 필수적 환경인 극한의 온도와 무공해 상태를 유지하고, 물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독(有毒)한 환경을 고려하면 로봇 공정밖에 없다는 것이다. 웨스턴은 “인간이 버튼ㆍ핸들을 조작하면서 발생시키는 진동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이스 포지’ 측은 우주에서 만드는 물질은 지구 상에서 본 적이 없는 것들로, 우선 대상은 최첨단 반도체ㆍ의약품ㆍ금속 합금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웨스턴은 “지구에선 중력 탓에 불가능했던 합금을, 우주에선 원소의 주기율표를 따라 수십억 가지의 방법으로 할 수 있다”며 “결국 이를 통해 새로운 기술로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에서 만든 물질ㆍ제품의 회수는?
‘스페이스 포지’는 ‘우주 공장’을 2주~6개월 가동시킨 뒤에, 다시 지구로 불러들여 ‘위성 파트’에서 ‘공장 파트’를 떼어내고 새 ‘공장 파트’를 붙여 재발사한다는 계획이다. 웨스턴은 “이 기술은 앞으로 수명이 다해가는 위성을 재활용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이스 포지’는 이 ‘공장 위성’이 연소되지 않고 안전하게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에테르(Aether)’라는 독자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달 말 발사되는 ‘포지스타-0’ 위성은 실험용이고 초소형이라, 재진입 엔진이 없다. 지상에서 우주에서의 공정 과정을 원격으로 확인하고 나면, 재진입 시 불타게 된다.
스페이스 포지 측은 내년에 발사할 ‘포지스타-1’은 사이즈도 4배로 키우고, 영국 해안에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후 계속 ‘포지스타’ 위성의 사이즈도 키우고 연간 10~12개의 위성을 제작해, 5년 뒤에는 연간 100개 이상의 재활용 공장 위성을 발사한다는 계획이다.
스페이스 포지의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앤드류 베이컨은 “많은 회사가 ‘어, 우리도 이런 거 한번 연구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저 연구만 했고 만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진짜 바꾸려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