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궤도까지
스파이 위성 띄운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각국의 치열한 우주 전쟁
위성 간에는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하는지,
누가 먼저 피해야 하는지 규칙도 없어
스파이 위성 둘러싸고 세계는 우주작전중
유사시 적국의 위성 우주서 로봇팔로 공격할수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苦戰)하는 러시아 정부는 10월27일 유엔에서 “서방 위성을 직접 공격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지상 통신망이 완전히 파괴된 우크라이나군 지휘부와 전선(前線)을 잇는 통신을,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사가 지구 저궤도(LEO)에 띄운 수천 개의 ‘스타링크’ 위성들이 제공하는 것을 겨냥한 말이었다. 러시아는 이미 작년 11월 15일 스타링크 위성처럼 저궤도인 약485㎞ 상공에 있던 자국의 고장 난 위성 코스모스-1408호를 탄도미사일로 파괴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지난 5월, 중국에서도 스타링크 위성을 파괴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스타링크 위성의 기능과 작동 체계를 파괴하려면 소프트(재밍ㆍ해킹)와 하드(물리적 충돌) 킬(kill) 방식을 결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중국도 고도 500~1145㎞의 저궤도에, 지구 자전축과 30~85도의 경사각을 둔 1만3000개의 인터넷 통신 위성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미 국방부는 이 저궤도 위성 군집(constellation) 경쟁에선 오히려 중국에 밀린다.
지구 궤도만이 아니다. 미 우주군은 지구 궤도 밖 우주 공간(xGEO)과 지구ㆍ달 너머의 심(深)우주에 대한 안보 강화에 나섰다. 달 궤도에서 각국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는 이미 강대국들의 전쟁터다. 


미국, 달을 모니터할 ‘눈’이 없어
미 우주군 우주작전사령부의 스티븐 파이팅 준장은 5월16일 한 강연에서 “각국이 달 궤도에 오르고 있어, 그들이 거기서 뭘 하는지 관심있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외에도 중국ㆍ인도ㆍ한국ㆍ러시아ㆍ일본ㆍ아랍에미리트(UAE) 등 달 탐사에 돌입한 각국이 앞으로 달 자원에 대한 접근권과 주권을 주장하고 나서면, 미 우주인들의 안전한 달 탐사 활동과 미국의 이익이 침해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달 탐사에 나선 중국이 달에도 남중국해처럼 막무가내로 선점(先占)한 지역을 ‘배타적 구역’으로 선언하고 나서면, 미국으로선 재앙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 우주 영역(domain) 인식에 사용하는 모든 센서들은 지구에서 3만6000㎞ 떨어진 GEO 안에 있는 인공 물체들을 추적하는데 특화돼 있다. 지구에서 38만5000㎞나 떨어진 달은 주(主)감시권 밖이다. 각국이 달 주변에서 하는 활동은 현재로선 해당 국가의 자발적인 공표 내용에 의존한다. 파이팅 준장은 “지구 궤도 하나를 감시하는 것도 엄청난 도전이지만, 달 궤도에서 보는 관점에서 우주 영역 인식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 궤도 주변을 전담으로 감시하는 위성이 없다 보니, 미 우주군은 미 항공우주국(NASA), 미 공군연구소(AFRL), 대학들과 협업하며 지상 레이더와 미 학술기관과 기업들의 망원경, 우주 기반 센서와 같은 기존 장비를 활용해 xGEO 공간을 관찰한다. 미국은 2019년 세계 최초로 달의 뒷면에 착륙한 중국의 ‘창어 4호’와 이를 지구와 연결하는 통신 중계 위성인 작교(鵲橋) 위성, 2020년 달 토양 샘플을 가져온 ‘창어 5호’의 활동 상황을 이런 식으로 모니터했다. 

 

달 표면에 떨어진 중국 로켓 잔해, 8년 뒤에야 확인
지난 3월, 달 표면에 정체불명의 상단 로켓 잔해가 떨어졌다. 이는 나중에, 2014년 10월 중국의 무인(無人) 달 탐사선 ‘창어5호 T1’을 쏴 올렸던 발사체 ‘창정(長程) 3C’ 호에서 떨어져 나온 상단 로켓 부분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국제적으로 ‘2014-065B’라고 명명된 이 상단 로켓의 행방은 당시에도 논란 거리였다. 그러나 1년 뒤인 2015년, 미국은 이 발사체의 상단 로켓은 대기권에 재진입했다고 발표했었다. 대신에 달에 떨어진 로켓 잔해는 2015년 스페이스X사가 발사한 팰컨9 발사체의 2단계 로켓 잔해로 추정됐다.


하지만, 일부 천문학자들은 고성능 광학 천체 망원경으로 1월 이후 이 물체를 계속 관찰 추적하며 3월에 달에 떨어질 것을 예측했고, 이후 중국 발사체의 상단 로켓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갈수록 많은 나라와 기업들이 달 탐사ㆍ착륙 프로그램에 나서는 상황에서, 달 주변에 대한 추적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달 주변 감시할 ‘달 고속도로 순찰’ 위성 곧 발사
10월 26일 미국의 우주선 플랫폼 제조사인 ‘퀀텀 스페이스’는 우주 환경에 대한 상황(space situational awareness)을 파악할 제1호 큐브샛인 QS-1을 2024년 10월 달 궤도에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QS-1에는 GEOST라는 회사가 제공한 우주 감시 센서와 비(非)공개 고객들이 요청한 장비가 탑재된다. GEOST는 정지궤도와 그 너머 심(深)우주의 물체를 추적하는 미 우주군의 지상 감시 시스템에 광학 센서 장비를 제공하는 회사로, 이른 바 ‘우주 영역 인식(space domain awarenessㆍ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에 대한 모니터링)에 특화된 회사다. 

 


‘퀀텀 스페이스’의 수 홀(Sue Hall) 프로그램 담당 부사장은 “QS-1의 목적은 우주 공간에 있는 각국의 인공 물체들이 우리가 그것들이 위치하고 있다고 파악한 곳에 계속 있는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가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QS-1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두 천체의 중력이 상쇄돼 실질적으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라그랑주 포인트(Lagrangian point) L1과 L2 주변에서 3년간 활동하게 된다. 


이와는 별도로, 지난 3월 미 우주군은 수 년 내에 달 궤도를 상시 순찰할 CHPS라는 실험용 감시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밝혔다. ‘달 고속도로 순찰 시스템(Cislunar Highway Patrol System)’란 말의 약어(略語)다. 달 주변까지 확대된 우주 공간에서 인공 물체를 감지ㆍ추적ㆍ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NASA가 지난 6월 발사해 현재 달을 돌고 있는 캡스톤(Capstone) 큐브샛은 NASA가 앞으로 달 주변에 건설할 달 관문 기지(Lunar Gateway)의 안전한 궤도를 계산해내는 것이 주(主)목적이다.  

 

 

우주에서 벌이는 위성들의 숨바꼭질
지난 6월, 정지궤도(GEO)에선 미국과 중국 위성들 간에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GEO 위아래 수십 ㎞를 오르내리며 각국이 발사한 위성들의 목적과 기능을 파악하는 스파이 위성인 미국의 USA 270 위성은 중국의 쌍둥이 위성인 스옌 12-01호와 스옌 12-02호에 접근했다. 작년 말 중국이 발사한 이 위성들은 모든 것이 비밀에 싸여 있는 위성들이었다.

 

그러나 USA 270이 접근하자, 중국의 두 위성은 슬쩍 자리를 옮겼다. 또 스옌 12-02호는 태양 빛을 등지는 위치로 이동해, 오히려 USA 270호를 관찰했다. USA 270는 태양을 등진 스옌 12-02를 관찰할 수 없었다.

 

8월1일 러시아는 스파이 위성 코스모스 2558호를 미국의 스파이 위성인 USA 326호와 동일한 궤도로 발사했다. 코스모스 2558호는 수일 뒤 바로 USA 326호에 바짝 붙어 미국 위성의 기능과 임무를 파악했다. 당시 미 우주사령부의 제임스 디킨슨 사령관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분노했지만, 현재 우주 관련 국제법규에는 위성 간에는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하는지, 두 위성이 제각각 기동(機動)하다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어느 쪽이 먼저 자리를 피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기본적인 ‘에티켓’도 없다. 

 

 

정지궤도(GEO)는 저궤도(LEO)처럼 위성들로 붐비지 않았었다. 또 대부분의 GEO 위성들은 할당된 자리에서 붙박이처럼 지구를 24시간 돌며, 관측ㆍ기후ㆍ통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ㆍ스파이 위성들은 이 궤도를 마음대로 헤집고 다니면서 수시로 적국 위성 근처에 접근해 위성의 임무와 기능을 검열(inspection)해 왔다. 
그러던 것이 수년 전부터 러시아와 중국이 스파이 위성들을 GEO로 계속 쏴 올리면서, 거꾸로미국 정부와 기업들의 위성들을 따라붙는 상황이 된 것이다. GEO 위성의 수도 2012년 2월 400개 가량이던 것이 지난 6월 현재 589개로 늘어났다. 미국으로선 이들 적국이 자국 위성의 능력에 대해 뭘 알아낼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자국 위성을 보호할지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유사시 로봇 팔로 적국 위성을 낚아채고, 끌고 갈 수도

 


지난 1월22일, 중국의 SJ-21호 위성은 고장 난 자국의 글로벌 위성항법시스템(GNSS)인 베이더우(北斗) 위성을 로봇 팔로 잡아 GEO 밖 3000km 떨어진 ‘위성 묘지’ 구역으로 끌고 갔다. 그런가 하면, 2020년 자체 엔진과 재급유 능력을 갖춘 미국 노스럽 그루먼 사의 위성 2개는 연료가 바닥난 2개의 민간 통신 위성에 달라붙어, 이들 통신 위성들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각각 우주를 청소하고 위성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유사시 적국 위성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적국의 위성을 로봇 팔로 납치할 수도 있고, 적국의 통신 위성에 가깝게 위성을 갖다 붙여 적국 위성과 지구 사이 통신을 교란하고 지구에서 받는 데이터를 가로챌 수 있음을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