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화물선 시그너스
"씨앗 배달왔어요 "

국제우주정거장 ISS에 애기장대 식물의 씨앗 전달
우주에서 재배하면서 DNA변화 등 관찰...품종 연구 나서
DNA 변화 지구에선 수천년 걸리지만, 우주에선 급속도로 일어나
ISS에서 칠레 고추 재배해, 우주인들 타코 만들어 먹기도

7일 저녁(한국 시간) 우주화물선 ‘시그너스(Cygnus)’가 아타레스 로켓에 실려, 미국 버지니아 주 월롭스 아일랜드의 우주 기지를 출발했다. ‘시그너스’가 고도 400여 ㎞ 위의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전달할 품목 중에는 이전에 우주에서 생산된 속씨식물 애기장대의 씨앗들이 포함돼 있다. 

 


독일 항공우주센터(DLR)은 2017년 가을부터 남극 기지에서 흙과 햇빛이 전혀 없는 ‘에덴(EDEN)-ISS’라는 콘테이너 온실을 설치하고 인간의 노동력도 최소화한 환경에서 농작물을 재배한다.  이는 모두 미래에 인류가 지구가 아닌 제2의 공간에서 살 때에, 지속적으로 먹거리를 자급(自給)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실험이다. ISS에 체류하는 우주인들은 지난 20년 간 건조된 포장 식품과 지구에서 배달되는 신선한 음식물로 살아왔다. 하지만, 보존 식품은 시일이 지날수록 비타민 C와 K와 같은 핵심적인 영양소가 감소되고, 신선한 식품을 화성에 배달하려면 9개월이 걸린다. 경제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지구발(發) ‘배달 음식’에 의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우주농업(space farming)’ 연구의 시작은 구(舊)소련이 우주정거장 살류트 7호에서 양배추ㆍ겨자가 속한 애기장대속(屬) 식물의 재배에 처음 성공한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우주 선진국들은 ISS에서 상치ㆍ근대ㆍ무ㆍ배추ㆍ양배추ㆍ완두콩 등을 발아해 수확하며 연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현재도 기아(饑餓)가 만연하고 2050년까지 인구의 40%가 식량 부족을 겪을 지구를 놔두고, 왜 우주인 식량 공급에 이렇게 매달리는 것일까. 미 항공우주국(NASA)는 “혹독한 우주 환경에 최적화된 품종을 개발하는 것은 기후 변화로 극심한 가뭄과 토양의 황폐화가 번지는 지구에서 농사를 짓는 데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거대 시장을 형성한 도심 빌딩 속 ‘수직농업(vertical farming)’과 대규모 수경(水耕) 재배와 같은 것들은 모두 앞선 우주 농업 연구에서 파생된 부산물(副産物)이다. 


지구에선 수천 년 소요되는 식물의 DNA 변화, 우주에선 급속 진행 
중력이 미약한 우주 환경에 인체가 장기간 노출되면 근육량 손실, 노화(老化) 가속화, 심장 외형의 변화 등 악영향을 받듯이, 지구의 중력과 환경에 맞춰 진화한 식물도 우주에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ISS에서 자라는 식물은 미세중력 환경에 적응하려고 일부 유전자(gene)의 작동을 켜고 끄는 방식을 조절하도록 DNA에 새로운 정보를 입력한다. 우주인들은 ISS에 설치된 ‘플랜트 해비타드-03(Plant Habitatㆍ식물 재배 공간)’에서 이렇게 변화가 누적된 DNA의 집합인 게놈(genome)이 다음 세대 식물로 유전되는지 후생(後生)유전학적 관찰을 한다.

 

 

 

7일 ‘시그너스’ 화물선에 실린 애기장대 씨앗들은 애초 ISS에서 재배한 애기장대가 생산한 ‘우주 1세대’ 씨앗들이다. 이후 지구에서 가공 처리돼, 다시 ISS의 이 ‘플랜트 해비타트-03’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이 씨앗들이 ISS 농장에서 발아해 새로 생산할 ‘우주 2세대’ 씨앗의 DNA를 분석하면 우주에서 처음 생긴 이 식물의 DNA 변화가 유전되는지 알 수 있다. 이 변화가 누적된 세대에서도 안정적으로 나타나면, 미래 미션에선 보다 우주 환경에 최적화된 품종을 얻을 수 있게 된다.


NASA의 우주생물학 프로그램 담당 과학자인 샤밀라 바타챠랴는 “지구에선 DNA 변화가 일어나는 데 수천 년이 걸리지만, 미세중력 상태인 ISS의 농장에서 키우면 식물의 DNA 변화도 급속히 일어나 실험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플랜트 해비타트-03을 통해, 후생유전체(epigenome)가 환경적 스트레스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누대(累代)에 걸쳐 잘 이해하게 된다”며 “지구 궤도ㆍ달ㆍ화성은 물론, 지구의 극한적 환경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의 품종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석 달 키운 칠레 고추로 ISS에선 작년 말 ‘타코 파티’ 
작년 11월 26일, 우주인들은 ISS 내 또다른 농장인 ‘플랜트 해비타트-04’에서 두번째 칠레 고추(Chile pepper)를 수확했다. 발아에서 수확까지 석 달이 넘게 걸려, ISS가 실시한 재배 실험 중에서 가장 길었다. 우주인들은 수확한 것 중 12개의 고추는 DNA 분석을 위해 지구로 보냈고, 나머지는 타코(taco)를 만들어 먹었다. 

 

 

우주인들은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는 지루함을 없애려고, 2015년부터 11개 작물을 키웠다. ISS에서 키운 칠레 고추는 미국 뉴멕시코 주 해치 계곡에서 나오는 칠레 고추 20여 종 중에서도 케네디 우주센터의 통제된 재배 공간 테스트에서 우주 재배에 최적으로 판명 난 것이었다. 

 

또 ISS의 ‘플랜트 해비타트-05’에선 1월부터 유통기업 ‘타겟(Target)’이 지원하는 목화 재배가 진행되고 있다. 목화는 재배 과정에서 물과 비료, 살충제의 자원 소요가 막대한 식물이다. 따라서 청바지 등 면직물 판매량이 중요한 ‘타겟’으로선 생산량이 크게 늘어날 품종의 개발은 경제적 효과뿐 아니라, 자원 관리 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지상에선 물을 찾는 목화 뿌리가 중력에 의해 땅 깊숙히 내려간다. 중력 요인이 제거된 우주에선 어떤 요인이 뿌리의 방향을 결정하는지 확인하는 게 1차 목표다.


우주인이 화성 도착 시점에 맞춰, 자동으로 열매가 수확되는 온실
독일 항공우주센터(DLR)의 남극 온실인 ‘에덴-ISS’의 최종 목표는 농부가 없는 농장을 만드는 것이다. NASA가 개발한, 푸른 빛과 붉은 빛이 조합된 LED 등을 각 농작물의 필요에 따라 계속 공급해 광합성 작용을 돕고, 매달린 뿌리에는 수 초마다 영양소가 풍부한 안개를 뿌린다. 또 천장에 달린 로봇 팔은 다양한 각도에서 농작물의 사진을 찍고 마른 잎과 가지를 자동으로 잘라내고 잘 익은 열매를 판단해 수확한다. 수확은 시설 관리 다음으로 인간의 손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완전자동화 온실이 실현되면, 이런 온실 우주선을 달과 화성에 먼저 보내 우주인이 도착할 때쯤 가장 신선한 상태로 먹게 할 수 있다. 또 물과 공기만큼이나 희소자원인 우주인의 노동력은 더 중요한 임무에 쓸 수 있다. 그러나 이 곳을 관리하는 파울 자벨 연구원은 지난 6월 미국 CNBC 방송 인터뷰에서 “하루 3~4시간 모니터하는 것 외에도, 가끔 터진 파이프를 수리하는 데만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DLR은 이 차세대 온실 우주선을 2030년까지는 띄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독일의 남극대륙 온실 프로젝트 책임자인 다니엘 슈버트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지구와는 완전히 독립된, 독자적인 바이오스피어(biosphereㆍ생물권)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2만4000평 도심 건물서 88만평 야외농장 생산량 수확
농작물 생산에서 기후ㆍ자연 환경을 떼어 놓는 것에도 시작한 우주농업은 지금 전세계 농업혁명을 이끌고 있다. NASA는 1980~1990년대 다양한 농업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뜨거운 백열등을, 푸른 빛과 붉은 빛의 특수한 LED 광으로 대체한 것도 NASA와 위스컨신대 연구에서 시작했다. 붉은색 LED는 에너지 효율성이 높고 식물의 광합성을 돕는다. 그러나 식물이 지나치게 길고 가늘게 자라는 것을 막으려면 푸른 LED도 필요하다. 오늘날 실내 농업이 종종 보라 빛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80년대말 NASA 케네디 우주센터의 식물학자였던 레이먼드 휠러는 재배 매체로서 흙을 대체해, 대형 실린더형(型) 통에 4개의 선반을 놓고 영양소 용액으로만 밀ㆍ감자ㆍ콩 등을 키웠다. 지금 미국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 수직농업의 시작이었다.

 


작년 6월 3억 달러의 투자를 받은 뉴욕 시의 ‘바워리 파밍(Bowery Farming)’는 낡은 건물에서 NASA의 수경 재배법을 응용했다. 자체적으로 물ㆍ영양소ㆍ산소를 흡수하는 뿌리 매트를 개발했고, 뿌리 끝으로 얇은 수막(水幕)이 계속 흐르게 했다. 이 회사의 농작물 재배는 야외 재배에 비해 물을 2~5%밖에 안 쓴다. 
또 캘리포니아 주의 도심(都心) 농장인 ‘플렌티 언리미티드(Plenty Unlimited)’의 물 소비량은 재래식 농업의 1%도 안 된다. 완전히 통제된 환경에서 연중 수확하며, 가뭄이나 해충의 공격 가능성은 제로(0)다. 2만4000평 건물 농장에서 야외 농장 88만 평에서 내는 생산량을 거둔다.


일론 머스크의 동생 킴벌 머스크가 창업한 오하이오 주 스프링필드의 ‘스퀘어 루츠(Square Roots)’는 향신료로 쓰이는 미나리과의 한해살이풀인 딜과 파슬리, 고수는 수직농업으로, 상치ㆍ바질 등은 인큐베이터에서 키워 옮겨 심는다. 작물에 따라서 한 달에 한 번씩 수확하며, 운송하기 쉽게 아예 콘테이너에서 수경 재배해 최종 소비 지역으로 옮긴다. 수확해서 식탁에 오르기까지 24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미국에선 이런 환경제어식 농업(Controlled Environment Agriculture) 시장은 2025년까지 73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14억 인구 중국도 텐궁 우주정거장서 농사 실험 
중국 언론은 최근 중국 우주인들이 톈궁(天宮) 우주정거장에서 알팔파ㆍ귀리 등 1만2000개의 씨앗을 우주 방사선과 미세 중력에 노출시키고 다시 지구로 보내 재배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학원은 텐궁의 원톈(問天) 모듈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애기장대 씨앗과 벼 모종이 지난 7월부터 싹을 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