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심층분석- 차세대 우주복 개발 어디까지 왔나]

지금 우주복은 48년 전에 만들어
헬멧 물 차고 기압 상승 등 사고
NASA,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앞두고
1300억원 투입, 신제품 제조 계약

우주복 없으면 15초 내에 의식 잃고 2분 내 사망
최대 16겹으로 제작, -156°C부터 120°C 까지 견뎌야
우주복 속옷 '가먼트'엔 열 제거하는 냉각수 튜브
팔 올리기도 어렵지만, 앞으론 팔굽혀펴기 가능하게

미 항공우주국(NASA)는 지난 8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샬럿에 본사를 둔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사가 이끄는 콘소시엄과 9720만 달러(약 1268억 원)에 우주복(spacesuit) 제조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제조한 지 수십년 돼 안전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현재의 우주복을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우주복은 우주인이 우주정거장(ISS)이나 우주선 밖에서 태양광 패널을 수리ㆍ교체하거나 앞으로 달이나 화성 표면에서 ‘선외(船外) 활동(EVAㆍExtravehicular Activity)’을 할 때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장비다. ‘EMU(Extravehicular Mobility Unit)’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옷’이라기 보다는, 우주에서 우주인이 안전하게 개인 활동을 하고 이동할 수 있는 ‘개인 우주선’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우주 장비는 최근 몇 차례 사고를 겪었다. 지난 3월23일 7시간 가까이 우주유영(spacewalk)을 하던 독일 우주인의 헬멧 바이저(visor)에 폭 20~25㎝의 얇은 수막(水幕)이 형성됐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NASA는 이후 7개월가량 우주인의 EVA(선외활동)를 금지했다. 작년 6월에도 ISS에 새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던 우주인의 우주복에 장착된 디스플레이 유닛의 정보가 갑자기 사라지고 우주복 내 기압 수치가 올라가 EVA를 중단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2013년에는 우주유영을 하던 이탈리아 우주인의 헬멧에 무려 1.5L의 물이 들어와 코와 입의 일부까지 물이 찼다. 이 우주인은 말 그대로 익사 직전에 간신히 ISS의 에어로크(airlock)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에어로크는 진공 상태인 우주와 지구와 같은 기압인 선내(船內) 간의 기압 차를 조절해 주는 모듈이다. 


달ㆍ화성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은 우주인을 다시 달에 착륙시킨다. 따라서 이에 맞춰 낡은 우주복을 전면 교체하겠다는 것이다. NASA는 전부 몇 개의 우주복을 제조하는지, 개별 가격은 밝히지 않았다. NASA는 또 과거와 달리, 새로 제작하는 우주복을 ‘소유’하지 않는다. NASA가 요구하는 구체적인 성능ㆍ비용ㆍ일정대로 제조하되, 콜린스를 비롯한 민간 콘소시엄이 우주복들을 소유하고 NASA와 민간 우주개발ㆍ관광업체에 대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해, NASA가 주문하는 우주복의 제조 단가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주복 보다는 ‘1인용 미니 우주선’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ISS가 떠 있는 저궤도에선 로봇이 하는 것 외에, 인간이 EVA를 통해 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주복 없이 우주에 노출되면 2분 내 사망
우주복은 EVA를 하는 우주인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우주와 태양에서 쏟아지는 유해(有害)한 방사선과 전자들로부터 보호하고,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기압을 제공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우주복 없이 우주선 밖으로 나가면, 산소가 없어서 15초 내에 의식을 잃고, 2분 내에 사망하게 된다. 진공 상태인 우주로 몸 안의 산소와 모든 가스가 빠져나가며, 물속에서처럼 숨을 참으려고 하면 폐가 확대돼 터지면서 더 빨리 사망에 이르게 된다. 

 

 

우리 몸의 피와 체액도 끓기 시작한다. 지구의 해수면 기압을 1기압(atm)이라고 할 때에, 우주는 기압이 제로(0)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처럼 물분자를 억누르는 ‘뚜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압이 없으므로, 우주에선 20°C면 물이 끓는다. 0.33 atm인 에베레스트산 정상에서 68°C 에서 물이 끓는다. 심장과 내장 기관도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인체의 피부는 강인하기 때문에, 일부 영화에서처럼 몸이 터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온몸의 액체가 증발하고 나면, 몸은 서서히 동결된다. 따라서 우주복은 우주인에게 생존할 수 있는 산소와 기압을 제공해야 하고, 우주인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주의 온도는 절대 온도에 가까운 -270도라서, 노출 즉시 동결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진공 상태인 우주에는 열(熱)을 전달할 매질(媒質)인 분자가 없어서, 전도와 대류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빛과 같은 복사로만 열이 이동해, ISS가 떠 있는 지표면 400㎞ 고도와 같은 저궤도에서 빛이 닿는 부분은 120°C 까지 오르고,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100°C 까지 내려간다. 앞서, 일부 우주인들의 우주 유영 때에 헬멧에 물이 스며들고 습기가 찬 것도, 이런 열을 냉각시키기 위해 우주복에 장착된 쿨링(cooling) 시스템의 냉각수가 침수된 탓이었다.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서 깡총깡총 뛴 이유
따라서 우주복이 지표면이나 우주선 내부처럼 1기압을 유지하고 산소를 공급한다면, 딱 좋을 법하다. 그런데 진공 상태인 우주에서 우주복이 1기압이면, 우주복을 이루는 직물 수트는 매우 부풀어오른다. 그 안에 들어간 우주인은 우주복의 팔다리나 장갑의 손가락 관절을 움직이기가 매우 힘들다. 우주복을 ‘풍선’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공기가 최대한으로 들어간 풍선은 구부리기가 어렵다. 


지금은 7~8시간 우주유영을 하지만, 초기에 우주인들은 ‘뻣뻣한’ 우주복 탓에 불과 몇 분 움직이고도 녹초가 됐다고 한다. 1965년 3월 세계 최초로 12분 9초 동안 우주유영을 했던 소련의 알렉세이 레오노프는 우주복이 너무 부풀어올라 우주선 복귀 시에 에어로크 입구에 우주복이 걸렸다. 그는 단계적인 감압 조치를 포기하고, 목숨을 걸고 스스로 우주복을 감압(減壓)해야 했다. 


1969년 11월 두번째로 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의 선장 피트 콘라드는 깡총깡총 뛰며 “토끼가 된 기분”이라고 외쳤다. 지구의 6분의1밖에 안 되는 달의 중력을 즐기는 듯했지만, 사실은 거추장스러운 우주복 탓에 여러 번 넘어지고, 일어나다가 또 넘어지기를 수차례 하다가 차라리 깡총깡총 뛰기로 한 것이었다. 


현재는 우주복의 움직임을 보다 부드럽게 하려고, 우주복 내 기압을 0.3 기압 정도로 맞춘다. 그런데도, 2016~2017년 ISS에서 체류했던 미 우주인이자 미생물학자인 캐슬린 루빈스는 지난 4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우주에서 태양광 패널을 고치는 것은 마치 스케이트보드 위에 서서, 두툼하고 딱딱한 오븐(oven) 장갑을 끼고 자동차를 정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주복 속의 산소는 100% 순수 산소
우리가 지구에서 편안하게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서 진짜 필요한 산소는 21%이고, 나머지는 질소가 대부분(78%)이다. 그런데 우주복의 기압을 이렇게 낮추면, 지구에서처럼 산소를 충분히 호흡할 수 없다. 그래서 우주복에는 100% 산소만 제공한다. 또 내뱉는 이산화탄소는 수산화리튬 장치를 이용해 제거한다. 

 

하지만, 그래도 남는 문제가 흔히 ‘잠수병’이라고 부르는 ‘감압병(減壓病)’이다. 수중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뒤에 갑자기 지상으로 올라오면, 물속에서 압력에 억눌렸던 질소 가스가 혈류에서 일시에 거품으로 나오면서 생명까지 위협하는 증상이다. 1기압인 우주선에서 0.3기압인 우주복으로 환경을 바꾸면, 똑같은 증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우주인들은 우주복 착용 전에 단계별로 기압을 낮춰가며 적응하고, 마지막 30분 동안은 몸속에 남아 있는 질소를 없애기 위해서 순수한 산소만 들이마시는 사전 호흡(pre-breathing) 단계를 밟는다. 


우주복 최대 16겹으로 제작 
우주복은 이 모든 우주 환경을 고려해서 제작된다. NASA는 웹사이트에서 “용도가 각각인 섬유들을 덧대서 최대16겹까지 제조된다”며 “우주복은 -250°F(-156°C)에서 250°F(120°C)를 견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미니어처(miniature) 우주선”이라고 밝혔다. 즉, 우주복의 내의에 해당하는 ‘가먼트(garment)’에는 약 91m 길이의 냉각수 튜브가 들어가 있으며, 신축성이 좋은 스판덱스 재질의 의류로 3개 피복층으로 구성된다. 이 쿨링 가먼트는 우주유영 중에 우주인의 체온을 조절하고 체내에서 나는 열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산소를 공급하고 일정 기압을 유지시켜주는 ‘블래더(bladder)’와 이를 지탱하는 피복층(層), 강화 섬유인 립스톱(ripstop)층, 체온 유지를 위한 절연층, 방수ㆍ방탄ㆍ방화 용도의 3개 재질로 된 하얀색 외피 등으로 나뉜다.
우주복의 무게는 127㎏. 그러나 무중력 공간에서 이 지구상의 무게는 의미가 없다.


반세기 전에 만든 현재 우주복, 4벌밖에 안남아
지금 NASA가 ISS에서 사용하는 우주복은 사실 1974년에 만든 것으로, 그동안 외장 하드웨어만 일부 개량한 것이다. 당시 1개당 가격이 1500만~2200만 달러(약 200억~286억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가로 환산한다면, 개당 1억5000만 달러(약2000억원)에 달한다.  당시 모두 18개를 제작했는데, 애초 사용 기한은 15년이었다. 1호는 검증용이었고, 2호는 지상 테스트 중에 파괴됐다. 또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2008년 컬럼비아호 폭발 때 각각 2개가 사라졌다. 가장 최근엔 2015년 6월 스페이스X의 화물우주선(드래곤)을 탑재한 로켓이 폭발하면서 ISS에 전달하려던 1개가 없어졌다. 결국 남은 우주복은 11개다. 이 중 7개는 정비ㆍ보수 중이라, 당장 우주유영에 쓸 수 있는 것은 현재 ISS에 있는 4개뿐이라고 한다.  

 

아르테미스 계획에 걸맞은 미래형 우주복은?
그런데 지금의 우주복은 ‘무중력’ 공간에서 우주유영하기에 적합한 우주복이다. 지구 중력의 38%, 16.5%인 화성과 달에선 활동하기엔 부적합하다. 2025년의 달 착륙 목표를 앞두고, 새로운 우주복 개발이 시급한 것이다. 

 

 

사실 NASA도 이 때문에 지난 14년간 적잖은 돈을 들였고 간헐적으로 ‘Z 수트(Suit)’와 같은 ‘차세대 우주복’ 모델<사진 위>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제품이 나온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와 ILC 도버, 오셔니어링 3개사로 구성된 컨소시엄인 ‘애스트로(Astro)’에 우주복 제작을 맡긴 것이다. NASA의 EVA(선외활동)부 책임자인 크리스 핸슨은 “새 우주복은 좀 더 유연해야 하고, 한 시간이나 걸리는 우주복 착용 시간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애스트로는 현재 방탄용 소재로 들어간 ‘케블라’보다 더 강력하면서 탄력적인 ‘벡트란’을 써서, 팔굽혀펴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의 우주복은 팔을 위로 올릴 수도, 몸을 굽힐 수도 없다. 또 달에서도 최소 10㎞는 걸을 수 있을 만큼, 가볍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헬멧의 바이저 디스플레이는 우주인이 달과 화성에서 한참 걸은 뒤에도 쉽게 돌아갈 수 있도록, 걸어온 길을 눈앞에서 보여준다. 또 별도의 통신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헬멧 안에서 동료 우주인 및 통제센터와 바로 통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귀 부분이 툭 튀어나와 ‘스누피 캡’이라고 불리는, 통신장비가 장착된 모자를 따로 착용했다. 

 

 

또 우주인이 짊어진 생명보조장치를 없애고, 산소ㆍ냉각수 공급과 기압 조절 등을 우주선에서 ‘탯줄’로 연결하면, 우주인의 이동성은 제한되지만 비용은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저궤도에 필요한 것은 1인용 우주선” 주장도
하지만 저궤도에서 ISS를 중심으로 일하는 우주인들은 로봇 팔과 자체 추진기가 달린 ‘1인용 우주선(SPSㆍSingle-Person Spacecraft)’을 선호한다. 이 우주선만 있으면, 굳이 우주복을 입고 유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미니 우주선은 ISS에 도킹돼 있어서, 우주복 착용 시와 같이 별도의 감압이나 순수 산소 사전호흡 과정도 필요 없다. 필요할 때에, 도킹된 미니 우주선에 들어가 해치(hatch)를 닫으면 된다. 미니 우주선 외관은 우주복보다 더욱 강력하게 제조될 수 있고, 우주인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본체에서 원격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다. 

 

 

1인용 우주선의 단점이라면 대당 가격이 7000만 달러(약 912억원)나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복은 개인 맞춤형이 아니라서, 그 옷을 착용할 우주인에게 맞게 사전에 피팅(fitting) 작업이 필요하다. 또 우주복을 입고 벗는 과정과 사용 후 소독 등 1회 우주유영을 하기 위해서는 ISS에서 63시간이 소모된다고 한다. 1인용 우주선을 사용하면, 우주인이 그 노동력을 보다 창조적인 일에 쏟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