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장난감 회사가
우주로 쏜 8cm 공의 정체

일본이 쏜 민간 달착륙선 하쿠도-R에
장난감 회사가 만든 초소형 탐험로봇 '소라-Q' 탑재

공 모양 로봇에서 바퀴와 카메라 튀어나와
달에서 2시간동안 촬영해 지구로 전송
작지만 강한 일본의 기술 담겨

지난 11일 오후(한국시간) 일본의 민간 우주기업인 아이스페이스(ispace)가 만든 무인 달 착륙선 하쿠도-R이 팰컨 9 로켓에 실려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의 미 우주군 기지를 출발했다. 높이 2.3mㆍ폭 2.6m 크기에, 무게가 340㎏인 하쿠토-R은 성공하면 세계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이 된다. 
 

 

‘흰 토끼’란 뜻의 하쿠토-R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만든 약 10㎏ 무게의 무인 로버(rover) 라시드(Rashid)와 일본특수도업(NGK)의 고체연료, 캐나다 회사의 광각 렌즈, 투자자들의 명판(名板) 등 30㎏의 물품도 싣고 있다. 그리고 내년 4월말 하루토-R이 달의 앞부분 북쪽 끝에 위치한 ‘얼음의 바다(Mare Frigoris)’에 도착하면, 이 짐보따리 속에서 야구공만 한 은빛 공이 ‘또르르’ 달 표면으로 굴러 나올 것이다. 


변형 로봇 트랜스포머 장난감 제조사로 유명한 일본의 타카라토미 사가 제조한 초소형 무인 로버인 소라-Q다. ‘소라’는 일본어로 ‘하늘’이란 뜻이고, Q는 구(球)와 발음이 같다. 동시에 Question이란 뜻도 있고, 알파벳 Q는 ‘변신’을 마친 이 초소형 로버의 모습과도 닮았다.
 

소라-Q는 달 표면에서 자율 운행으로 하쿠토-R 착륙선에서 멀어진 뒤에, 착륙선 사진을 찍는다. 무인 착륙선의 경우엔 그동안 ‘셀피(selfie)’를 찍을 수 없어, 지구 콘트롤 센터에서 착륙 후 이상 유무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재 달에서 활동하는 무인 로버는 120㎏짜리 중국의 유튜(玉兔ㆍ옥토끼)-2가 유일하다. 이어 미국이 2024년 무인 로버 바이퍼(VIPER)를 달 남극에 보낸다. 지름 8㎝에, 무게도 255g에 불과한 소라-Q는 성능 면에서도 미ㆍ중의 무인 로버에 비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요미우리 신문은 “6년의 제작 기간을 거친 소라-Q엔 일본이 자랑하는 장난감 기술의 정수(精髓)가 담겼다”고 평했다. 소라-Q는 내년에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달에 보내는 SLIM 착륙선에도 탑재된다. 그런데 왜 장난감 회사가 굳이 ‘우주 탐사’에 뛰어들었을까.


”최소한의 모터와 부품으로 디자인…우리가 하던 일”
2015년 JAXA가 민간 협력 강화를 위해 세운 ‘우주탐사혁신허브’가 도쿄에서 연 전시회에 장난감 제조사 타카라토미의 한 임원이 방문했다. 그는 ‘가장 적은 수의 모터로 디자인하고, 필수부품 수도 최소로 줄이는 것은 우리가 수십 년간 해 온 건데’라고 생각했다. JAXA는 곤충 모양의 자율 운행이 가능한 로봇을 원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타카라토미는 처음엔 자사(自社)의 대표 트랜스포머인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라이거 제로, 또 이 회사가 대량생산하는 초소형 인간형 로봇인 i-소봇(Sobot) 등을 응용해서 만들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리’는 충격에 부러지기 쉽고, 빻은 가루 같은 달 표면의 모래 레골리스(regolith)에 파묻힐 가능성도 컸다.
그러던 중에, 대학원에서 우주공학을 전공한 이 회사 직원이 로봇을 구체(球體)로 만들면 더 압축적으로 제조할 수 있고, 강한 충격도 잘 견뎌낼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6년 걸려 만든 소라-Q
타카라토미에서 장난감 하나를 개발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년. 그러나 소라-Q는 6년이 걸렸다. 공 모양으로 외형을 확정했지만, 로봇의 표면이 레골리스에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거친 표면을 선택했다가, 공에 벌집 모양으로 구멍을 내기로 했다. 
또 ‘다리’ 대신 ‘바퀴’를 장착했지만, 모래 수렁에 빠지면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작동 불능’이 됐다. 소라-Q 개발을 책임진 이 회사의 요네다 요스케씨는 일본 언론에 “작고 가벼운 것이 이 탐험 로봇의 특징이지만, 빻은 가루 같은 모래에서 어떻게 로봇을 움직이게 할 것이냐가 매우 어려운 숙제였다”고 말했다. 결국 바퀴 축의 위치를 로봇의 코어 박스(core box) 가운데서 앞쪽으로 옮기고, 양 바퀴가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했더니 접영(蝶泳)이나 크롤(crawl) 수영을 하는 것처럼 제작 모델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타카라토미는 디자인을 완성한 뒤, 도시샤(同志社) 대학, JAXA와 협력해 항공우주용으로 쓰는 알루미늄 합금과 플라스틱으로 골격을 만들었다. 이어 소니(SONY) 사가 제작한 소형 전자장치와 광학장치를 통합해 지름 8㎝의 공 안에 넣는 최종 버전을 완성했다. 모든 부품은 각각의 엄격한 중량과 크기, 내구성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예를 들어, 낮에는 110°C까지 오르다가 밤에는 -170°C까지 내려가는 달의 극심한 일교차를 견뎌야 했다.


2시간 동안 영상 데이터 지구로 전송 
달표면에서 소라-Q는 양쪽이 갈라지면서, 코어 박스(core box)에 연결된 독립된 두 개의 바퀴로 변신한다. 동시에 코어 박스에 접혀 있던 전후방 2개의 카메라가 튀어나오고, 뒤로 젖혀지는 금속성 꼬리(tail)는 ‘방향타’ 역할을 하면서 카메라가 위에 위치하도록 소라-Q의 균형을 잡아준다. 소라-Q가 뒤뚱거리며 전진하는 모습은 오리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2019년 봄 도시샤대 교수가 태엽식 오리 장난감에 착안했다고 한다. 두 바퀴의 축이 독립돼 있어, 장애물이 나타나면 한쪽 바퀴만 돌면서 방향을 틀어 우회가 가능하다. 또 30도까지 모래 경사면도 오른다. 


 

 

전방 카메라는 주변을 찍고, 후방 카메라는 소라-Q가 나아가면서 남긴 바퀴 자국을 찍는다. 지구에 위치한 미션 통제관이 원격으로 소라-Q를 조종해서, 착륙선 쪽으로 돌게 해 하쿠토-R 착륙선의 ‘셀피’ 사진을 찍는다.  소라-Q의 내장 배터리 수명은 2시간. 이 초소형 로버가 찍어 지구로 보내는 달표면의 이미지 데이터는 현재 유인 로버를 개발 중인 JAXA가 달표면의 주행 환경과 필요한 운전 기능을 고려해 디자인하는 데 쓰인다. 


장난감이 우주 개발에 영감을 준 경우
소라-Q 이전에도 장난감은 우주로 나갔다. 헬로 키티 캐릭터를 제작한 일본 기업 산리오는 2014년 캐릭터 제작 40주년을 맞아, 헬로 키티 인형을 일본 위성 호도요시-3호에 태워 우주로 보냈다. 20202년 11월에도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곤으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가는 우주인이 베이비 요다 인형을 갖고 갔다. 
 


그런가 하면, 장난감에서 우주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NASA가 우주선의 대기권 진입 때감속과 열(熱) 차단을 위해 개발한 히트쉴드(heat shield)는 아기들의 ‘고리 쌓기’ 장난감에서 디자인을 따왔다. 또 2014년 NASA가 착륙선과 이동수단으로 함께 쓸 수 있는 개념으로 실험 제작한 수퍼볼 봇(Super Ball Bot)은 아기들이 갖고 노는 텐세그리티(tesegrity)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장력(張力)을 뜻하는 tension과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integrity의 합성어인 이 장난감은 주저 앉았다가도 금세 복원되고 튕겨서 이동할 때도 충격을 잘 흡수한다.   

 


그러나 소라-Q는 정부 기관이 우주 미션을 위한 장비 설계를 장난감 회사에 맡긴 최초의 사례다. JAXA의 연구원 다이치 히라노는 미국 잡지 뉴요커에 “장난감 회사 직원들은 우리에겐 결코 떠오르지 않을 아이디어로 시스템을 결합했다”고 말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우주와 과학에 대한 흥미 커져”
타라카토미나 JAXA 모두 소라-Q 개발ㆍ제작 비용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이미 이비용은 뽑았다”고 말한다. 소라-Q는 또 귀엽고 앙증맞은 소품을 ‘카와이’라며 좋아하는 일본인 특유의 대중 문화에도 딱 들어맞아,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우주ㆍ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타라카토미 사는 소라-Q를 위한 트위터 계정까지 열어서 달과 이 초소형 로봇의 소식을 전한다. 
이 회사의 타카시 오이 기획개발부장은 “장난감 기술을 이용해, 우주 개발의 설레는 마음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JAXA의 히라노 씨는 “미래의 로봇 시스템이 다양한 크기ㆍ기능의 로봇들이 그룹을 지어 각자 업무를 수행하는 분산 시스템을 추구하게 되면, 소라-Q는 그 일부가 될 수도 있다”며 “한 장난감 회사의 초소형 로버가 일본의 다음 세대에게 별을 마음에 품는 영감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