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억만장자 라이벌인 제프 베이조스와의 오랜 갈등에 다시 불을 지폈다. 12월 18일 ‘킴 닷컴(Kim Dotcom)’이란 필명(筆名)으로 소셜미디어에 논쟁적인 악평을 쏟아내는 독일계 핀란인 인터넷 기업가의 트윗에 대한 댓글이었다.
닷컴은 트위터에 “일론(머스크)이 로켓을 만드니까, 제프는 따라 하고, 일론이 전기차를 만드니까, 제프는 따라 하네. 일론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니까, 제프는 또 따라 하네.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를 따라 했던 빌(게이츠)이랑 같이…”라고 썼다.
제프 베이조스가 작년 말 전기차 리비안(Livian)의 주식 20%를 인수한 것, 2016년 머스크가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고 칩(chip)을 이식하는 뉴로테크놀로지 기업 뉴럴링크를 설립하자 12월 16일 베이조스가 빌 게이츠와 함께 뇌와 컴퓨터 인터페이스 회사인 싱크론(Synchron)에 75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을 비꼰 것이었다. 베이조스는 자율주행 택시인 죽스(Zoox)도 2020년 12월 선보였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아마 우연이겠지”라고 댓글을 쓰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모티콘을 붙였다. 속내는 ‘베이조스는 모방꾼(copycat)’이라는 것이었다.
글로벌 우주 발사체 시장의 대표적인 거물인 머스크와 베이조스의 언쟁은 ‘우주’만 소재로 한 것이 아니다.
지난 9월 초 베이조스가 아마존이 제작한 ‘반지의 제왕’ TV 드라마 시리즈가 첫날 2500만 시청자를 끌었다며 “가자, 가운데땅으로(Go Middle-earth)!”으로 트윗하자, 바로 머스크는 “원작자 J.R.R. 톨킨이 열 받아서 무덤에서 돌아눕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남자 캐릭터는 모두 겁쟁이이거나 멍청하거나 둘 다”이고 “갈라드리엘(여자 주인공)만 용감하고 똑똑하고 괜찮다”는 것이었다.
베이조스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올해 4월 뉴욕타임스 기자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설을 처음 트윗하면서 “중국은 테슬라에게 두번째로 큰 시장이고, 테슬라는 중국산 배터리에 의존한다. 현재는 중국에서 트위터가 금지돼 중국 정부가 트위터에 대한 영향력이 없지만, 이 역시 바뀔지 모른다”고 하자, 바로 댓글을 달았다.
베이조스는 “이제 중국 정부가 그 마을 광장[트위터]에 대해 좀 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일까”라고 물었다. 머스크가 트위터의 중국 시장을 열려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해서라도, 중국 정부의 비위를 맞추려 들지 모른다는 뉘앙스였다.
그런가 하면, 지난 23일 한 미국인 작가가 “머스크의 트위터 매입을 반대하는 이들 중에서 베이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살 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트윗하자, 머스크는 즉시 “좋은 지적(Good point)”라고 응수했다.
둘은 때때로 제3자의 지적에 호응하는 댓글로 상대를 에둘러 비꼬지만, ‘우주’라는 본질(本質)에 들어가면 정면으로 부딪쳤다. IQ가 150인 베이조스와 IQ 155인 머스크는 종종 소송에서 맞붙었고, 머스크는 베이조스의 우주 사업을 ‘빈약한’ 남성성(男性性)에 비유했다.
두 사람의 이력을 보면, 충돌은 불가피했다. 머스크는 신용카드 회사들과 전세계 자동차 회사들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페이팔과 테슬라로, 베이조스는 오프라인 대형 매장ㆍ서점 체인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아마존 온라인 상거래로 성공했다. 그리고 마지막 프런티어(frontier)라 불리는 우주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1인자 자리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처음부터 틀어진 식사 자리
둘은 비슷한 시기에 우주 사업을 시작했다. 베이조스는 2000년 블루 오리진을 설립했고, 2년 뒤에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세웠다.
베이조스는 1999년 영화 ‘옥토버 스카이(October Sky)’를 보고 우주에 대한 어릴 적 품었던 꿈을 다시 좇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옥토버 스카이’는 광부가 되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로켓 공학자가 되길 원했고 결국 미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엔지니어가 됐던 호머 히컴의 실화(實話)를 다룬 영화였다. 머스크 역시 대학 졸업 때 이미 “기후 재앙을 피하려면, 인류는 결국 다(多)행성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히고, 삶을 ‘인류 구원’에 쓰기로 했다고 한다.
2018년에 나온 책 ‘스페이스 배런스(Space Barrons)’에 따르면, 둘이 우주발사체에 대해 처음 얘기를 나눈 것은 2004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아직 변변한 로켓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첫 대화부터 삐걱거렸다.
로켓의 구조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머스크가 보기에는 베이조스가 엉뚱한 데를 짚고 있는 게 기술적으로 너무나 자명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엔진 구조 중 일부는 완전히 잘못된 길이었다”는 것이었다. 머스크는 “이 보게, 그거 우리가 다 해봤는데 정말 엉망으로 끝났어. 진짜 우리가 한 멍청한 짓 되풀이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정말 좋은 조언을 주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베이조스는 대부분 무시했다”고 회고했다.
머스크 "제프...누구요?"
그 이후 두 사람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은 2013년 9월이었다. 두 기업은 NASA의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 내 39A 발사대를 서로 임대하려고 했다. 이 발사대는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프로그램의 새턴 5호 로켓들과 이후 우주왕복선들이 발사되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발사대였다. 그러나 당시 NASA는 더 이상 이곳에서 발사할 초대형 로켓이 없어 유지비로만 한 해 120만 달러를 쓰고 있었다.
이미 2009년에 팰컨1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고 팰컨9을 개발 중이던 스페이스X는 39A를 전용 발사대로 임대하려고 했다. 아직 이렇다 할 발사체가 없어 ‘로켓 신뢰도’가 딸렸던 블루 오리진은 대형 우주항공 기업인 ULAㆍ보잉ㆍ록히드마틴과 합쳐서 “모든 민간 발사체 기업이 쓸 수 있는 발사대로 운영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39A 발사대는 스페이스X에게 돌아갔고, 베이조스는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베이조스는 미국회계감사원(GAO)에 항의했지만 기각됐다.
머스크는 “5년 내에 NASA 기준에 맞는 발사체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기쁘게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블루 오리진의 제대로 된 발사체보다는) 화염 속에서 춤추는 유니콘들을 더 볼 것 같다”고 비꼬았다. 베이조스의 로켓이 앞으로도 발사에 실패해, 불길에 휩싸일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였다.
2015년 11월 23일 블루오리진의 뉴셰퍼드 로켓이 고도 100㎞까지 올랐다가 다시 지상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흥분한 베이조스가 TV 방송에서 뉴셰퍼드는 “가장 보기 힘든 괴수(beast)”라고 자찬(自讚)하자, 머스크는 바로 “가장 보기 힘든 것은 아니지. 스페이스X의 그래스호퍼 로켓은 이미 3년 전에 6번 다녀왔고, 지금도 활약 중인데”라고 반박했다. 그래스호퍼는 팰컨 9 재사용 로켓의 개발 모델이었다. 머스크는 또 뉴셰퍼드가 올라간 지점은 우주가 시작하는 고도이지, 진정한 우주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한 달 뒤인 12월 팰컨 9의 1단계 부스터 로켓이 고도 115㎞까지 올라갔다가, 발사 지점으로 돌아왔다. 베이조스가 “고도 100㎞(카르만 라인)를 넘어서야 우주”라는 머스크의 주장에 동조할 리가 없었다. 그는 바로 머스크를 겨냥해 “(우주) 클럽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고 트윗했다.
2017년 10월 BBC 방송 인터뷰에서 기자는 머스크에게 “당신은 매우 경쟁적이고, 또 제프 베이조스와도 경쟁하고 있고…”이라고 했다. 머스크는 싱긋 웃더니 말을 끊었다. “제프 누구요(Jeff who?)”
베이조스 ”화성? 에베레스트에서 먼저 1년 살라고 해요”
2019년 한 강연에서 베이조스는 화성 식민지를 얘기하는 머스크를 겨냥해 “우리는 태양계의 여러 행성에 탐험선을 보냈지만, 지구가 최선”이라며 “화성에 간다는 말하는 친구들?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에베레스트산에 가서 우선 1년 살아보고, 그게 좋은지 알아보라고. 에베레스트산은 화성에 비하면 천국의 정원”이라고 말했다.
2019년 4월 MIT의 테크놀로지 저널이 3000여 개의 위성을 쏴 올리는 베이조스의 군집 위성(satellite constellation) 계획을 다뤘다. 이미 그 전부터 스타링크 군집 위성을 발사하고 있었던 머스크는 바로 “베이조스는 모방꾼(copycat)”이라고 조롱했다.
머스크 “베이조스가 달 착륙선? 지구 궤도까지 발기(勃起)가 안 돼”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은 2019년 NASA가 달 탐사 계획 ‘아르테미스 3단계’에서 사용할 29억 달러짜리 착륙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해 5월 베이조스가 ‘블루 문(Blue Moon)’이란 이름의 자사 달 착륙선을 소개하자, 머스크는 “오, 제프! 그만 좀 애태워”라며 윙크 이모티콘과 함께 착륙선 이름을 ‘블루 볼스(Blue Balls)’로 바꾼 사진을 트윗했다. 블루 볼스는 성적 흥분 상태가 지속되고 해소가 되지 않아, 고환에 통증이 오는 증상을 뜻한다. 블루오리진이 말뿐이지, 달 착륙선을 우주로 보낼 발사체도 없다는 것을 성적(性的)으로 비꼰 것이다.
베이조스의 잇단 소송
미국특허청(USPTO)은 2014년 3월 블루오리진이 제출한, 지상에서 발사된 재사용 로켓이 해상에 착륙하는 방안의 특허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1998년 미 항공우주학회 저널에 일본인 과학자가 기고한 방안으로, 로켓 발사업계에선 널리 알려진 것이었다.
스페이스는 미 특허심판ㆍ항소위원회에 제소했고, 이듬해 8월 결국 ‘특허 취소’를 이끌어냈다. 머스크는 당시 “블루오리진은 지난 10년간 애썼는데도 재사용 발사체는커녕, 단 한 개의 준궤도 발사체도 성공적으로 발사하지 못했다”며 특허의 부당성을 공격했다.
NASA는 작년 4월 아르테미스3의 달 착륙선 사업자로 스페이스X의 스타십을 최종 선정했다. 머스크는 베이조스의 상처 난 자존심에 소금이라도 뿌리듯이, “(제프는) 궤도까지 발기가 안 돼(Can’t get it up to orbit), 하하”라는 트윗으로 조롱했다. 블루 오리진의 뉴셰퍼드 로켓은 고도 100㎞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준(準)궤도(suborbital) 탄도 로켓이라, 도저히 달에 착륙선을 보낼 수 없는 점을 꼬집은 것이었다. 당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은 이미 고도 585㎞까지 오를 수 있었다.
베이조스는 8월 NAS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머스크는 작년 8월12일 “이건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지”라며, 전시가 끝나고 기체가 빠진 블루 문 착륙선 모형 사진을 올렸다.<아래 사진>
그는 9월29일엔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스에서 열린 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베이조스를 겨냥해 “당신네 변호사가 아무리 훌륭해도, 계속 고소장을 제출해서 달에 갈 수는 없다” “제프는 소송보다는 좀 더 궤도로 올라가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고 일침(一針)을 놓았다.
블루 오리진은 “과거 미국 정부를 상대로 많은 소송을 제기했던 스페이스X가 다른 기업의 비슷한 행동을 비판하니 당혹스럽다”고 반박했다. 머스크는 1시간도 안 돼 트위터에서 반격했다. “스페이스X의 제소는 경쟁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블루 오리진은 경쟁을 막아 달라는 것이잖아.” 블루 오리진은 작년 11월 초 NASA의 달 착륙선 사업 선정 무효 소송에서 끝내 졌다.
베이조스는 작년 10월11일 “아마존이 설립 초기 미 금융가의 비판적인 평가를 딛고,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성장했다”며, 과거 아마존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과대 평가된 시한폭탄으로 묘사한 경제 주간지 배런스의 표지 기사 사진을 트윗했다.
머스크는 바로 그 밑에 ‘2’라고 쓰인 은메달을 주는 댓글을 달았다. 그해 포브스와 블룸버그 경제전문지들의 전세계 부호 랭킹에서 베이조스가 자신에게 밀려 2위로 주저앉은 것을 조롱하는 댓글이었다.
머스크 “나는 1주일에 80~90시간 일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작년말 머스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머스크는 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제프가 상당히 좋은 공학적 성격을 갖고는 있는데, 공학적 디테일에 정신적 에너지를 더 쏟으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근데 악마는 늘 디테일에 있는 법”이라며 “나는 어떤 면에선 그가 블루 오리진에 더 시간을 쏟도록 그를 자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파티를 즐기고 느긋한 베이조스의 성격을 겨냥해 “뜨거운 목욕보다, 블루 오리진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프로젝트를 관장하기 위해서 1주일에 80~90시간을 일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