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일론 머스크(51)는 두 달 전에 인수한 트위터를 구조 조정하겠다며, 연일 직원들에게 위협적인 트윗을 날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빌 넬슨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머스크가 소유한 스페이스X의 NASA 관련 개발 일정까지 차질을 빚을까 봐 안달이 났다. 머스크의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 주가는 작년에 60% 이상 빠졌다.
12월5일 넬슨은 결국 스페이스X의 한 임원을 만났다. “이봐요, 일론이 트위터에 정신 뺏겨서, 스페이스X에 영향을 주진 않겠죠?” “안심하세요. 전혀 걱정하실 것 없어요.” 넬슨은 1주일 뒤 NBC 방송 인터뷰에서 “이 말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그를 껴안았다”고 말했다. “스페이스X를 움직이는 건 이 사람이거든요!”
넬슨 NASA 국장을 안도시킨 사람은 바로 스페이스X의 사장이자, 사업과 개발을 책임 진 최고운영(COO) 그윈 숏웰(Gwynne Shotwellㆍ59)이었다. 숏웰은 작년에 스페이스X가 쏴 올린 61건 로켓 발사를 관장했다.
머스크는 NASA의 달 착륙선인 스페이스X의 ‘스타십’ 제조 일정이 계속 늦춰지자, 작년 11월 숏웰에게 아예 텍사스주에 있는 스페이스X 우주기지인 스타베이스(Starbase)까지 관장하도록 했다. 스타베이스는 스타십을 개발해 테스트하고 제조하는 핵심 시설이다.
스페이스X의 주인은 머스크지만, 성질 급하고 편집광적인 그를 조용히 ‘조율’하는 사람은 숏웰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작년 말 스페이스X의 ‘로켓 맘(Rocket Mom)’ 숏웰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1위로 선정했다.
스페이스X 성공의 원천, 머스크의 ‘조용한 조율자’
숏웰은 침착하면서도, 고객과 직원들에겐 환하게 웃는 타입이다. 똑똑하지만 사교성 떨어지는 ‘괴짜들(nerds)’이 득실거리는 회사에서 독보적이다. 물론 숏웰도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고교 시절 농구선수이자 치어리더로도 활약했던 기질이 그대로 살아 있다. 숏웰은 2002년 스페이스X 직원이 채 10명이 안 되던 창업 초창기에 합류했다.
미 우주항공업계에선 숏웰이 머스크의 충동적 기질을 잘 통제하면서, 우주에 대한 그의 꿈을 현실로 만든 ‘조용한 조율자(silent mastermind)’이자, 스페이스X 성공의 ‘원천(secret source)’이라고 평한다. 머스크가 NASA의 심(深)우주 계획을 공격하는 미 의회의 ‘무식한’ 의원들을 퉁명스럽게 조롱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불필요하게 정치권에 적(敵)을 만들지 않도록 그를 막는 것도 숏웰이다.
미국 언론은 그의 침착하고 따듯한 매너 덕분에, 많은 임원이 들락날락한 테슬라와는 달리 직원이 1만1000명에 달하는 스페이스X가 지금까지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를 머스크의 ‘오른팔’에 비유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 NASA 국장이었던 찰스 볼든은 “나는 일론과 얘기한 적이 거의 없다. 그윈이 회사를 운영하니까”라며 “그는 인간적이고, 사업 외에 가족에 대해서도 얘기한다”고 회상했다. 스페이스X에 발사를 의뢰하는 위성사업자들도 “숏웰과 얘기하면, 그가 머스크가 관계된 부분까지 도맡아 결정하는 것을 안다”고, 미 언론에 말했다.
NASAㆍ국방부 등 모든 對정부 비즈니스 관장
스페이스X에 합류하기 전에 이미 미 우주산업계에서 14년가량 경력을 쌓은 숏웰은 폭넓은 인맥으로, 대인 관계엔 영 소질이 없는 머스크를 보완했다.
2013년 NASA가 민간에 임대하려고 내놓은 케네디 우주센터의 39A 발사대를 스페이스X가 장기임대할 수 있었던 것도 숏웰 덕분이었다. 미국의 달 착륙 아폴로 프로그램의 산실(産室)인 이 발사대에 모두가 눈독을 들였지만, NASA 간부로부터 숏웰은 사전에 미리 언질을 받고 이 발사대의 사용 계획서까지 제출했다. 오히려 나중에 법적 분쟁이 일지 않게, 스페이스 측이 공개 경쟁을 조언했다.
스페이스X가 NASA로부터 연간 수십억 달러를 받고, 국제우주정거장(ISS)까지 우주인과 화물을 수송하는 캡슐인 드래곤(Dragon)도 숏웰이 개발을 지휘했다. 스페이스X는 2020년 5월 처음으로 우주인들을 ISS에 보낼 수 있었다.
숏웰과 사업을 진행한 NASA 간부들은 “그윈은 팀을 잘 이끌면서도, 직원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직원이 수십~수백 명일 때나 가능한 기업 문화를, 스페이스X는 성장하면서도 잘 적용하고 있다”고 평했다.
”농담이라도, 보스 험담은 안 해”
스페이스X의 임원이라도, 더러 사교적인 자리에서 까칠한 머스크를 종종 농담으로 삼는다. 그러나숏웰을 아는 이들은 “그윈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고 일론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고 말한다. 2018년 CNBC 방송 인터뷰에선 “일론과 일하는 건 정말 좋다. 그는 웃기고 공정하고 영감을 주는 굉장한 보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에서 머스크는 때때로 아주 기술적이고 어려운 디테일까지도 얘기를 한다. 사업 전략과운영을 맡은 숏웰이 어떻게든 해내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숏웰은 “일론이 얘기하면, ‘그건 불가능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라고 즉시 대꾸하고 싶지만, 입을 다문다. 그리고 그걸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한 여성 엔지니어의 멋진 정장에서
숏웰은 사실 엔지니어 꿈이 전혀 없었다. 2014년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어릴 적 그에게 엔지니어들이란 “괴짜, 사회 부적응자, 코나 후비는 인간들”이었다. 다섯 살 때인 1969년 아버지와 함께 TV로 본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의 달 착륙 방송은 지루하기만 했다. 그는 그 당시 인기 TV 시리즈였던 스타 트렉(Star Trek)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교생 때 엄마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던 여성엔지니어협회 모임에서 연사로 나온 한 여성 기업인의 멋진 모습에 반했다. “백, 구두, 정장이 얼마나 멋지게 어울리던지…” 당시 태양광 에너지, 친환경 소재 건축을 얘기하던 그 연사와 얘기하면서, 자기도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전과목 A를 받던 모범생이었지만, ‘그 사건’ 이후 특히 물리학 시간에 흠뻑 빠졌다.
대학은 별 고민 없이 집 근처의 노스웨스턴대 한 군데만 지원해 합격했다. 다만 공학에만 강한 대학은 가기 싫었다. MIT에서 지원하라는 편지가 왔을 때, 숏웰은 거절했다. ‘대학 이름에 ‘테크놀로지’가 들어가다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얻은 첫 직장은 크라이슬러였다. 자동차를 좋아했고 트랜스미션ㆍ밸브 작업하는 것을 즐겼지만, 진짜 재미있고 공학적으로 어려운 일들은 대부분 외부 기업이나 외국에 하청을 주는 게 싫었다.
다시 노스웨스턴대로 돌아와 응용수학 석사를 받았고, 에어로스페이스 사에 취업했다. 숏웰에게 첫 우주 기업이었다. 여기서 그는 국방부ㆍNASA를 비롯한 미 정부 부처, 전세계 우주과학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우주왕복선 관련 업무를 하게 된다. 숏웰의 일은 열(熱)분석가로서,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수학적인 모델을 만들어, 유지해야 할 온도가 제각각인 우주왕복선 화물칸의 온갖 실험 기기와 물질들에 적정 온도를 부여하고 실시간으로 이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숏웰은 여기서 10년 일하면서 위성과 발사체에 대해 엄청난 지식을 쌓았고, 이어 미국 정부와 우주기업들에게 로켓 제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크로코즘이란 회사로 옮겨 매출을 담당했다. 숏웰이 4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인건비 감소’가 슬로건이었던 이 회사의 매출은 10배나 뛰었다. 그러나 숏웰에겐 늘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 더 있을 텐데…”라는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동료 만나러 갔다가, 머스크와 운명적 만남
2002년 5월 마이크로코즘에서 함께 일하던 친한 동료가 스페이스X로 옮겼다. 막 창업해, 직원이 10명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 동료와 점심을 먹고, 사무실 구경을 갔다가 머스크를 만났다. 한 10분이나 만났을까. 숏웰은 “머스크의 우주에 대한 지식에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숏웰은 직접 로켓 엔진과 주요 부품을 만들어서, 발사 비용을 줄이려고 한다는 머스크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페이팔 창업)에서 번 돈으로, 뭐 좀 해볼 것 없나’하고 뛰어든 게 아니었다. 머스크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숏웰은 미 우주산업계가 의외로 얼마나 변화에 느린지 잘 알고 있었다.
스페이스X는 당시 최초의 로켓인 팰컨1을 개발 중이었다. 숏웰은 “당신, 근데 이 로켓을 팔 사업개발자가 있어야겠네요”라고 머스크에게 말했다. 나중에 그는 “불쑥 튀어나왔는데, 사실 매우 무례한 말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날 오후 머스크가 전화했다. 부사장으로 와서, 로켓의 세일즈 파트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숏웰은 직장을 옮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혼 과정 중이었고, 이제 곧 마흔이 되는 나이에 두 아이도 키울 ‘안정된 삶’을 원했다. 머스크는 밤낮으로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머스크 같은 사람이 우주산업계에 뛰어들어 뒤흔들면 좋겠지만, 숏웰은 자신이 그 일부가 되기는 망설였다.
팔 로켓도 없는데, 세일즈 담당 부사장으로
하마터면 거절할 뻔했다. 그러나 수 주간 고민 끝에 ‘이 일이 어차피 내가 하는 분야인데, 지금 방식이 좋은가, 머스크가 가려는 방향에 함께 가는 게 좋은가’ 생각했고, 머스크에게 전화했다. “이봐요. 지난 몇 주간 내가 지독하게 멍청했는데(fucking idiot), 그 일 하겠어요.”
하지만 발사 계약을 딸 로켓도 없었다. 스페이스X가 처음 내놓은 2단 로켓인 팰컨1은 2008년 9월에야 발사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9년에 후속타로 나온 것이 지금의 팰컨9이었다. 하지만, 모교인 노스웨스턴대 동문회보 인터뷰에서 숏웰은 “도전을 좋아하기 때문에, 합류에 망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머스크 “사업 계획서는 관심 없으니, 그냥 하세요”
첫날 숏웰은 팰콘1 로켓의 판매 계획서를 보여줬다. 머스크는 힐끗 보더니 “나는 그런 계획에는 관심 없으니, 그냥 일을 하세요”라고 했다. 숏웰은 “오, 이거 신선하네. 이런 망할 계획서는 안 만들어도 되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머스크의 경영 스타일은 ‘뭘 하겠다고 얘기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식이다. 머스크는 2018년 한 컨퍼런스에서 “나는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며 “비즈니스 플랜이란 게 없다”고 말했다. “1995년 처음 창업했을 땐 그런 게 있었는데, 늘 계획대로 안 됐다. 그 뒤로는 사업 계획서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머스크처럼 당돌하면서도, 미 정치ㆍ우주산업 지형에 익숙해
머스크는 공학적 지식이 해박했고 투자를 받는 일에도 능숙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ㆍ러시아ㆍ유럽의 로켓 산업계는 철저하게 자신들의 발사 비즈니스를 보호하고 있었다. 수요자인 NASA와 미 공군, 정부 기관들도 이런 비즈니스에 만족하고 있었다. 미 우주항공ㆍ방산(防産)기업들은 또 의회에 탄탄한 로비 인맥을 갖추고 있었다. 머스크가 이걸 뚫으려면, 그의 당돌함을 공유하면서도 정치ㆍ산업계 지형을 잘 알고 교묘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숏웰이었다.
둘은 기질이 비슷했다. 무모해 보이는 것을 도전해서, 우주산업계를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 놓겠다는 철학을 공유했다. 다만, 머스크가 퉁명스럽고 종종 사회성이 결여된 반면에, 숏웰은 늘 웃고 부드럽게 말했다.
둘은 기존 통념에 모두 도전했다. 팰컨1이 세 번씩이나 발사에 실패했을 때에도, 숏웰은 “우리가 해내리라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불과 7주 뒤에 다시 쏴서 성공시켰다. 당시 미 우주항공업계에선 전례가 없던 속도였다. 대부분의 발사대에 설치된 에어컨은 50만 달러에 가까웠다. 스페이스X는 3만5000달러로 줄였다.
2021년 5월에 나온 ‘아마존 언바운드(Amazon Unbound)’라는 책에 따르면, 제프 베이조스는 계속된 로켓 발사 실패와 막대한 자금 소요에 초조해져 숏웰에게 자신의 우주기업인 블루 오리진의 CEO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 숏웰은 “그건 옳게 보이지 않는다”고 즉각 거절했다고 한다.
”당신이 콘트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성공한 기업인이 된 숏웰은 TED를 비롯해 여기 저기 강연에 나선다. 아무리 바빠도, 여성 엔지니어들을 키워내는 자리엔 거절하기 힘들다고 한다. 숏웰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당신이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될지는 당신이 결정할 수 없다. 스페이스X같이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에선 특히! 그러나 당신이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어떤 결과물을 얻게 될지는 당신이 콘트롤 할 수 있다.”
숏웰은 그에게 엔지니어의 꿈을 심어줬던 그 여성 기업인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살아 있다면, 80대 후반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공학도들을 위한 강연에 나설 때면, 여전히 고교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갔다가 흠뻑 빠졌던 그 멋진 정장의 여성 엔지니어 스토리로 얘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