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고, 미뤄지고...
유럽 로켓이 없다

위성은 줄 섰는데, 발사할 로켓이 없는 유럽
작년말 베가-C, 발사 147초만에 파괴돼
아리안 6호, 시험 발사 일정 계속 늦춰져
아리안 5호는 올 4월이면 소진되는 상황  

2022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선 모두 186번의 로켓 발사가 시도돼, 96%에 해당하는 179번 성공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배(倍)가 뛰었다. 2017년엔 90번 발사해서 86번이 성공했다. 발사 건수가 이렇게 증가한 것은 중국(작년 64건)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61건) 덕분이기도 하다. 


특히 작년에 61건 모두 발사에 성공한 스페이스X는 로켓 시장의 ‘모범생’이다. 지난 3일엔 군소(群小)위성사업자들의 위성을 한데 모아서 싼 가격에 발사하는 ‘탑승 공유(rideshare)’ 프로그램으로 114개의 소형 위성을 팰컨9 로켓으로 우주에 쏴 올렸다. 이쯤 되면, 로켓 발사는 ‘일상(日常)’이 된 듯도 하다.


그러나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영 딴판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의 로켓은 그 동안 유럽 항공 회사들의 컨소시엄인 에어버스와 프랑스의 항공기ㆍ로켓 엔진 제조사인 사프란이 합작한 아리안그룹(ArianeGroup)이 제조하고, 유럽우주국(ESA)이 보유한다. 올해 들어서야, 독일과 스코틀랜드 등지의 민간 기업들이 유럽에서 지구 궤도에 로켓을 발사하는 첫번째 기업이 되려고 경쟁한다.


그런데 유럽의 로켓 시장을 독점해 온 ESA의 중ㆍ경량 로켓들이 말 그대로 하룻밤새 사라졌다. 유럽우주국(ESA)과 유럽연합(EU)이 팰컨9을 겨냥해 개발해 온 중량(重量)발사체 아리안 6호의 시험 발사 일정은 계속 늦춰지고, 전신(前身)인 아리안 5호는 올 4월이면 소진된다. 

 

작년 12월 21일엔 ESA의 경량(輕量) 발사체인 베가(Vega)-C도 공중 폭파되고 이후 발사가 중단됐다. ESA는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도 이용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의 우주 협력도 전면 중단됐다. 로켓 발사 기업들은 보통 수년 전부터 계약을 맺는다. 결국 ESA와 유럽 각국은 올해 계획한 위성 프로그램들을 쏴 올릴 로켓을 갑자기 구하기도 여의치 않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갇혔다.


4년 간 3번 실패한 발사체 베가-C
작년 12월20일 저녁, 남미의 적도 부근 프랑스령(領) 기아나의 프랑스ㆍESA의 쿠루 우주기지에서 베가-C 로켓이 하늘로 치솟았다. 4단 로켓인 베가-C는 2011년부터 사용해 온 베가 로켓의 일부 엔진을 교체해 지구 저궤도(LEO)까지의 탑재 중량을 기존보다 60%나 늘려 2.3t까지 가능하게 한 로켓이다. C는 ‘consolidation(강화)’를 뜻하며 수요가 폭증하는 저궤도 위성 발사 시장을 잡겠다는 목적이었다.


베가-C의 1단계 엔진은 계획대로, 2분만에 61㎞ 고도까지 로켓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2단계 엔진이 27초만에 연소실 기압이 떨어지면서 고도 110㎞에서 동력을 잃었다. 결국 프랑스 우주 당국은 발사 147초 만에, 로켓 파괴를 지시했다. 1단계 P120C 엔진과 2단계 제피로 40 엔진을 제조한 이탈리아의 아비오(Avio)사는 베가-C의 발사 실패에 따른 책임을 인정했다. 


베가와 베가-C는 최근 4년간 모두 3번 발사에 실패했다. 결국 ESA와 로켓 마케팅 회사인 아리안스페이스(Arianespace)는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져 개선되기까지 베가 시리즈의 발사를 중단시켰다. 원인이 밝혀지려면 반년 이상은 걸린다고 한다. 베가-C가 파괴되면서, 탑재됐던 990㎏ 중량의 프랑스의 첨단 광학 위성 플레이아데스(Pleiades) 5ㆍ6호도 사라졌다. 발사에 성공했으면, 앞서 발사된 플레이아데스 3ㆍ4호와 함께 지상을 30㎝의 초(超)고해상도로 관측하는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퍼펙트 스톰’에 갇힌 유럽의 인공위성들
베가 로켓의 실패는 시기적으로 최악이었다. 현재 ESA에 남은 로켓은 중랑발사체인 아리안5호 2기뿐인데, 1기는 2월16일 프랑스ㆍ스웨덴ㆍ독일의 군사통신위성 3개를 탑재해 발사되고, 나머지 1기도 4월14~30일 ESA가 목성의 주요 위성들을 관측하기 위해 제작한 탐사선 JUICE(Jupiter Icy Moons Explorer)를 싣고 떠난다. 이렇게 해서, 아리안5호는 25년의 역사를 마무리한다. 


 


아리안5호의 후속 모델인 아리안6호는 계획대로라면 2020년에 첫 발사를 했어야 했다. 3만6000㎞의 정지궤도(GEO)까지 11.5t을 나를 수 있는 헤비리프트(heavy-lift) 로켓으로, 지금까지 40억 유로(약 5조3366억 원)을 개발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1ㆍ2단 로켓을 발사할 극저온 액체연료 엔진의 개발이 쉽지 않아 일정이 늦춰졌다. ESA는 작년 10월 “아리안6호의 발사는 2023년 4분기가 돼야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한편, 아리안5호의 생산 라인은 아리안6호의 생산ㆍ조립 라인으로 바뀌었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에 반발해 기아나의 쿠루 기지에서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 기술자들을 철수시켰다. 결국 베가ㆍ베가Cㆍ아리안5호ㆍ아리안6호ㆍ소유즈(러시아) 로켓의 마케팅을 하는 아리안스페이스 사로선 연말까지 팔 로켓이 한 기도 없게 됐다. 


이 탓에, 당장 지구의 지형ㆍ해양ㆍ대기를 측정해 기후변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ESA의 ‘코페르니쿠스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센티널(Sentinel) 위성 4개가 궤도를 돌고 있는데, 30기 이상으로 예정된 프로그램의 후속 위성들은 당분간 발사할 수가 없다. 지금의 센티널 위성들은 모두 베가 로켓이 궤도에 올렸다. 2026년까지 센티널 5기의 발사를 포함해서, 베가-C는 모두 13건의 발사 계획이 있었는데 모두 중단됐다. 

 


자체 위성도 소화하지 못하게 된 ESA는 졸지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나눠 먹던 전세계 위성 발사 시장에서 갑자기 ‘퇴장’당한 꼴이 됐다.  


ESA, 경쟁사인 스페이스X에 “도와줘요!” 
아리안6호는 작년말까지 약 30건의 발사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아리안6호의 개발이 늦어지고 소유즈 로켓이 유럽시장에서 사라지면서, 마케팅사(社)인 아리안스페이스와의 계약 파기도 잇따를 전망이다. 1호 이탈자는 아이러니하게도 ESA였다. ESA는 2024년 10월 8일 헤라(HERA) 과학 위성을 탑재한 아리안6호를 발사할 예정이었다. 이 위성은 작년 9월 NASA(미 항공우주국)이 우주선을 충돌시켜 궤도 수정에 성공했던 소행성 디디모스의 충격 현장을 관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약 1100만 ㎞을 날아가 2026년 2월28일엔 지름 163m짜리 소행성 디디모스의 궤도에 도착해야 한다. 도착 시점이 정해져 있는 탓에, 발사 시점까지 아리안 6호가 완전히 검증되지 않으면 큰 낭패다. ESA는 작년 10월 스페이스X의 팰컨9으로 발사체를 바꿨다. ESA는 또 애초 러시아 소유즈 로켓으로 발사하려던 2개의 관측 프로젝트 중 유클리드(Euclid)도 팰컨9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른 관측 프로젝트인 ESAㆍ일본 공동 위성인 어스케어(EarthCARE)는 2024년 초 베가-C로 발사하는 것으로 수정했는데, 이번엔 베가 로켓이 중단됐다. 


유럽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원웹(OneWeb)은 애초 소유즈 로켓으로 군집(群集) 위성을 발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소유즈 사용이 금지되면서, 같은 서비스를 하는 스타링크를 운영하는 경쟁 기업인 스페이스X에 자사 위성의 발사를 의뢰해야 했다. 작년 12월 8일 스페이스X의 팰컨9은 원웹의 위성 1차분 40기를 저궤도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아리안 6호만 기다리는 프랑스 스파이 위성
프랑스의 스파이 위성인 3.5t짜리 CSO-3는 사정이 다르다. 이 위성은 프랑스군을 위해 에어버스가 제작한 것으로, 앞서 발사된 CSO-1,2와 함께 고도 480㎞ 고도에서 광학과 적외선 카메라로 24시간 지표면을 감시하며 초(超)고해상도의 3차원 입체 이미지를 생산한다. 보안상 외국 발사 기업에 맡길 수 없는 위성이다. 애초 발사 계획은 내년 말이었으나, 아리안 6호가 여러 번 발사돼 검증이 끝나면 탑재될 예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세군도에 위치한 로켓 스타트업인 ABL 스페이스 시스템은 신형 RS1 로켓 발사를 11월17일부터 12월8일까지 4번 취소했다. 발사 30분 전, 1.8초 전, 1.75초 전, 6분 전에 이상 데이터가 포착됐다. 매번 원인도 달랐다. 이 회사는 특히 세번째 발사 취소의 경우에는 “아슬아슬했다”며 “우리가 0.3%만 덜 보수적이었다면 이날 로켓은 발사됐을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ABL은 9일 다시 발사를 시도한다.


“이게 로켓 공학은 아니다(It ain’t rocket science)’라는 말은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는 뜻으로,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시작한 영어 표현이다. 로켓 공학은 그만큼 매우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유럽우주국이 현재 겪는 딱한 사정은 1957년 인류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로켓 발사는 ‘일상’이 아니라 여전히 ‘로켓 공학’임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