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우주 도전,
오래 걸린 이유

거대한 우주의 역사, 그동안은 남성이 주인공
달 착륙한 우주인 12명은 모두 백인 남성
621명 우주인 중, 여성은 전체의 11.2%에 불과
ISS너머 우주로 나가본 여성, 단 한명도 없어

NASA, 2025년엔 여성 1명 달에 착륙시킬 계획
최근 방사능 영향과 여성 우주인 등 활발한 연구

미국의 달 탐사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 1단계에 쓰인 오리온 우주선(캡슐)이 작년 12월30일 플로리다주의 케네디 우주센터로 돌아오면서,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캡슐에 기록된 수많은 데이터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오리온 캡슐은 작년 12월11일 시속 4만㎞로 20분간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2700 C°의 열을 견디고,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의 서쪽 태평양에 착륙했다. 


NASA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데이터 중 하나는 캡슐에 실려 보낸 3개 달 마네킹인 ‘무네킹(Moonikin)’에 기록된 데이터다. 특히 여성 인체를 따라 정밀하게 제작된 마네킹 헬가(Helga)와 조바(Zobar)가 받은 방사선 피폭량과 인체에 미친 영향을 담은 정보다. 마침 발사 4일째이던 11월19일엔 강력한 태양 플레어(solar flare)가 발생해, 우주방사선의 양이 급격히 증가했다. 따라서 헬가와 조바에 꽂힌 수천 개의 센서는 앞으로 여성 우주인들이 달 궤도와 심(深)우주 탐사를 하는데 필요한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으면서 “한 인간(for man)에겐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뒤 ‘거대한 우주 도약’의 역사를 써 내려간 것은 주로 남성이었다. 달에 착륙한 우주인 12명은 모두 백인 남성이었다. 작년 8월 현재, 621명의 우주인 중에서 여성은 전체의 11.2%인 70명에 불과했다. 이 여성 중에서 고도 400㎞의 지구 저궤도에 위치한 국제우주정거장(ISS) 너머 우주로 나가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리온 캡슐 속 여성 마네킹이 두 개인 이유
NASA는 아르테미스 3단계인 2025년말까지 여성 1명과 유색인종 1명을 달에 착륙시켜 1주일간 임무를 수행하게 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 반(半)세기 만의 달 복귀가 성공하려면, 내년에 예정된 아르테미스 2단계의 유인(有人) 달 궤도 탐사 비행에도 여성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단계에서 마네킹 2개가 정밀한 여성 모형이라는 것은 그만큼 특히 여성 인체에겐 우주가 미지(未知)의 세계라는 방증(傍證)이기도 했다. 

 

25.5일간 224만 ㎞의 거리를 비행한 오리온 캡슐의 선장석(席)에는 ‘아르투로 캄포스’라고 명명된 마네킹이 앉았다. 캄포스는 1970년 4월 지구에서 32만㎞ 떨어진 거리에서 우주선이 고장 난 아폴로 13호 우주인들의 안전한 지구 귀환을 이끌어냈던 NASA의 전기 엔지니어 이름이다. 캄포스는 유사 시에 대비해 자신이 미리 짜 놓은 동력 전환 시나리오에 따라, 서비스 모듈의 극저온산소 탱크가 파열돼 목숨이 위태롭게 된 우주인 3명이 이ㆍ착륙용 루나(lunar) 모듈에서 커맨드 모듈로 동력을 전달하는 과정을 실시간 통신으로 도왔다. 
 


선장석 밑에 위치한 두 여성 마네킹은 이런 ‘극적인’ 이름이 아니다. ‘헬가’는 독일우주항공센터(DLR)가, ‘조하’는 이스라엘우주국(ISA)이 이름 붙였다. 길이 95㎝인 두 마네킹은 미국 버지니아주의 CIRS라는 회사가 여성의 뼈와 피부 세포, 폐, 내장을 밀도까지 정확히 측정해서 인체와 흡사하게 제작했다.

 

두 마네킹에는 DLR이 장착한 무려 5600개의 방사선 측정 센서와 각종 실험 장비가 꽂혔다. 또 이스라엘 ‘여성’ 조하의 상반신에는 이스라엘의 스템라드(StemRad)사가 만든 방사선 피폭 보호장비인 애스트로라드(AstroRad)를 입혔다. 두 여성 마네킹은 달 궤도 탐사 비행 중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됐고 인체 장기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호 장비는 얼마나 잘 작동했는지, 중력 가속도의 변화 등에 여성 인체는 어떻게 반응했는지 등을 정밀하게 비교 분석하기 위해 탑재됐다.
 


DLR은 “마네킹 두 개가 여성인 이유는 여성 우주인의 수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며 “남성 우주인에게 방사선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2004~2011년 ISS에서 실시한 자료가 있다”고 밝혔다.  NASA는 이미 아르테미스 2ㆍ3단계에서 달로 갈 우주인 후보 18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딱 절반인 9명이 여성이다. 그러나 여성이 후보 명단에서 이런 수적(數的) 동등을 이루기까지 부족한 것은 과학적 데이터뿐만은 아니었다. NASA는 과거에 여성 위생용품 탐폰과 우주복 사이즈 논쟁 등 여러 해프닝을 겪었고, 미국 사회 전반과 마찬가지로 성(性) 역할에 대한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6일간의 우주비행에 “탐폰 100개면 될까요?”
미국의 첫 여성 우주인은 1983년 6월1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타고 ISS에 간 샐리 라이드(2012년 사망)였다. 라이드의 우주선 탑승을 준비하던 NASA 엔지니어들은 고민에 빠졌다. ‘탐폰은 몇 개나 준비하지?’ 결국 라이드에게 “100개면 충분하겠느냐”고 물어봤다. 
왜 이렇게 황당한 개수를 정했을까. NASA의 수많은 과학자, 엔지니어들은 여성 우주인이 왜 필요한지 평소 고민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첨단 우주항공 기술을 적용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기초적인 생리학 지식도 없었다. 심지어 남자들끼리 마스카라와 리무버, 립스틱 3개로 구성된 라이드의 화장품 세트도 준비했다. 이건 우주로 나가지도 못했다. 라이드는 생전에 “남자들끼리 ‘화장용품에 뭐가 들어가야 할까’라며 논의하는 걸 상상해 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78년 샐리 라이드와 함께 여성 우주인으로 처음 선발돼, 세 차례 우주왕복선을 탔던 마거릿 레이 세든은 자서전에서 “인터뷰 때마다 ‘완벽한 남자를 만나면 우주인 되기를 포기하겠느냐’ ‘성적인 공격을 당한 적이 있느냐’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민간 자금으로 13명의 여성 선발했지만  
미국과 소련이 먼저 달에 가려고 경쟁하던 시절, NASA는 첫번째 유인 우주 프로그램인 머큐리(Mercury) 프로젝트(1958~1963)를 위해 전투기를 시험 비행하는 조종사(test pilot)들 중에서 우주인 후보를 뽑았다. 엄격한 군사 훈련과 신체적 테스트를 거친 이들을 선발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당시 여성은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었다.


랜돌프 러브레이스(Lovelace)라는 NASA의 내과 전문의는 민간 자금을 들여 남성 우주인 후보와 똑 같은 체력ㆍ정신력 테스트를 거친 여성 우주인 후보 13명을 선발했다. 고립감 테스트에선 여성이 오히려 뛰어났다. 이들 여성은 “왜 우주가 남성들만의 것이어야 하느냐”며 백악관과 의회에 압력을 넣었지만, NASA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18년에 나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머큐리 13’은 그들의 얘기를 담았다. 

 

 
1962년 2월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 비행에 성공한 존 글렌은 그해 의회 청문회에서 “남자들이 전선에 나가 전투하고, 비행기를 몰고, 비행기 디자인을 돕고 제조하고 테스트하는 것”이라며 “여성이 이 분야에 없는 것은, 하나의 사실인 사회 질서”라고 말했다.  심지어 러브레이스도 시대를 앞선 남녀 평등만이 이유는 아니었다고 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의 우주 역사 큐레이터인 마거릿 와이트캠프(Weitekamp)는 “러브레이스는 미래에 우주에서도 비서 역할을 하고, 전화도 받고, 실험을 도울 여성들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사실 실용적인 면에선 여성이 더 유리했다. 당시 비좁은 우주선에 여러 장비를 넣으려면, 남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신체가 작고 식품ㆍ산소ㆍ물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성 우주인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머큐리 13’ 여성들은 고립감 테스트나 심혈관 측정에서도 남성보다 나은 결과를 보였다. 그러나 러브레이스나 ‘머큐리 13’은 NASA의 뿌리깊은 남성 위주 세계관을 뚫지 못했다. 


”우주인이 되고 싶어요” 초등학교 여학생의 편지
1962년 3월 NASA는 우주인이 되고 싶다는 한 초등학교 여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답신을 보냈다. “여성 우주인을 자원해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생각은 칭찬하지만, 우주인이 되는데 필요한 과학적 비행 훈련과 육체적 특성 때문에, 우리는 현재 여성을 우주 비행에 채용할 계획이 없습니다.” 


 


나치 독일에서 V-2 로켓을 만들고 미국에서 ‘로켓 공학의 아버지’라 불렸던 베르너 폰 브라운은 “모든 남성 우주인들은 여성들의 참여를 찬성한다”며 “여흥 장비(entertainment equipment)가 들어갈 110파운드(약 50㎏) 정도 탑재 중량 여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머큐리 13’ 중 한 명이었던 월리 펑크는 82세였던 2021년 7월20일, 제프 베이조스와 함께 뉴세퍼드(New Shepard)를 타고 준(準)궤도 비행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 들어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면서 바뀌었다. 탑승 인원도 7명으로 늘어나, 우주인 모두가 공군 조종사일 필요도 없었다. 과학자, 의사들도 필요했고, 우주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도 퍼졌다. NASA는 1978년에 처음으로 여성 우주인 후보를 뽑았다. 5년 뒤, 샐리 라이드는 왕복선 챌린저호에 탑승한 우주인 7명 중 유일한 여성으로서 미국의 첫 여성 우주인이 됐다. 그가 돌아왔을 때에, 누군가 그에게만 축하 장미꽃을 건네주려 했다. 라이드는 거절했다.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도 소련에서 나와
소련은 다르게 생각했다. 이미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12일 인류 최초로 궤도 비행에 성공한 소련은 “우주에서의 첫번째 여성이 미국인이 된다는 것은 소련 여성의 애국심에 모욕적”이라고 생각했다. 소련은 미국과의 우주 경쟁에서 세우는 이정표(里程標)는 무엇이든지, 결국 체제 경쟁에서 큰 홍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800명 넘는 여성이 우주인 모집에 지원했고, 최종적으로 23명을 선발했다. 이상적인 여성상은 30세 미만, 키 167㎝ 미만, 체중 70㎏ 미만이었고, 학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소련도 남성 우주인은 테스트 조종사 중에서 뽑았지만, 여성에겐 이 직종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대신, 여성들 사이에서도 스카이다이빙이 큰 유행이었다. 또 소련 우주선의 초기 모델은 귀환 시에 우주인이 캡슐에서 탈출해, 캡슐과는 별도로 낙하산으로 지상에 내려오는 방식이었다. 섬유공장 노동자였던 26세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126회 고공 낙하 경험이 있었다. 결국 그는 1963년 6월16일 보스토크 6 우주선에 앉아, 3일간 지구를 돈 최초의 여성이 됐다.
 

연방 하원의원에 이탈리아 대사를 지낸 작가 클레어 부스 루스는 라이프 잡지에 에세이를 기고했다. “미국이 그렇게 결정하기만 했어도 여성을 우주에 보내는 첫번째 나라가 될 수도 있었는데, 소련 여성 테레시코바는 성차별을 딛고 궤도를 돌 수 있었다.” 잡지의 표지 제목은 “소비에트의 우주 소녀가 미국 남자들의 말을 멍청하게 했다”였다. 하지만, 소련도 ‘여성 우주인 1호’라는 목적을 이룬 뒤에는 1982년까지 19년 간 여성 우주인을 배출하지 않았다. 


2019년 그녀들만의 우주 유영 무산된 까닭
2019년 3월 NASA는 ISS에 체류 중인 앤 매클레인과 크리스티나 코크, 두 여성 우주인으로만 첫 우주 유영을 한다고 크게 홍보했다. 태양광 패널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매클레인은 남성 우주인인 닉 헤이그로 바뀌었다. 매클레인에게 맞는 선외(船外)활동 우주복(EMU)이 없었다. 1978년에 만든 우주복은 남성 체형에 맞춘 중형ㆍ대형 사이즈밖에 없었다. 소형은 애초 계획했지만, 경비 절감을 위해 제작하지 않았다. 

 

 

매클레인이 지상에서 물속 무중력 체험을 할 때만 해도 중형 사이즈가 맞는 듯 했으나, 막상 우주에서 입어보니 컸다. 우주복이 크면, 우주 유영 시에 팔과 다리를 움직이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위해 새로 제작되는 우주복에선 이런 해프닝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새 우주복은 남녀 체형은 물론, 팔ㆍ다리의 길이를 다양하게 제작해 각각 조립할 수 있는 모듈형 우주복이다. 심지어 화장실도 2020년에 심지어 용변기도 2020년에 2300만 달러(약 284억 원)짜리 최신 모델을 보내기 전에는, 여성 우주인들도 남성 위주로 된 소변기를 자신의 몸에 맞춰 일을 봐야 했다.
 


남녀의 방사선 피폭 허용량도 새로 설정해야
지구에서 인간이 노출되는 연간 피폭 방사선량은 3~4 밀리시버트(mSv)다. 지구의 자기장이 우주에서 날아오는 대부분의 방사선을 가두기 때문이다. 고도 400㎞의 ISS는 사정이 다르다. 우주인들은 통상 6개월 머물면서 50~180mSv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NASA는 인간의 달과 화성 탐사를 앞두고, 미 국립과학ㆍ공학ㆍ의학아카데미(NASEM)에 새로운 피폭선량 허용 기준 설정을 의뢰했다. NASEM은 2021년 6월에 남녀 동일하게 우주인 재직 중에 600mSv의 한도 선정을 권고했다.


NASA는 앞으로 성별ㆍ연령에 관계없이 우주인을 선발하고, 저궤도가 아니라 심우주를 탐험하려면 새 기준이 필요했다. 화성까지 오고 가는 21개월(3개월 체류 포함)에만 1000 mSv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NASEM의 600mSv는 캐나다ㆍ유럽ㆍ러시아 등이 자국 우주인에게 허용하는 1000mSV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수치다.

 

600 mSv는 35세 여성에게 최대로 허용될 수 있는 방사선량이다. NASA의 우주인 그룹에선 가장 어린 이 연령대에서 우주방사선으로 인한 암 발생 및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또 40세 여성 우주인에게 1000 mSv는 암 발생 확률을 5%로 높인다. 여성은 또 우주에서 요도 감염에 더 잘 걸리고, 방사선 탓에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20% 높아진다고 한다. 남성은 미세중력 하에서 골밀도가 낮아지면서, 몸속으로 배출된 칼슘이 신장 결석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다. 여성이 미세중력에서 받는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방사선이 심우주에 장기간 체류하는 남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물론 실제로 인간이 화성에 가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에 더 효과적인 방사선 차단 장치가 발명될 수 있다.

 

미국 주도로 우주 선진국들이 참여한 아르테미스는 다시 달에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인간이 지구 밖 다른 곳에서 장기간 생활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고, 화성을 가기 위한 시작이다. 닐 암스트롱(2012년 사망)은 생전에 자신이 실제로 말한 것은 “사람을(for man) 위한 작은 걸음이 아니라, one small step for [a] man”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은 “한 남성[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라고 말했는데, 이게 ‘사람(man=the human race)’라는 뜻으로 확대 해석됐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사람’이나 ‘인류’나 같은 뜻인데, 그가 앞뒤로 같은 말을 반복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분명한 것은 암스트롱의 첫걸음이 누구를 염두에 둔 것이었든지, 여성이 달에 발을 딛는 순간이야말로 인류가 우주로 ‘거대한 도약(one giant leap)’을 시작하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