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같은 기업,
유럽엔 왜 없나

아마존·애플·구글 등 혁신적인 기업
유럽엔 없는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유럽엔 미국처럼 막대한 벤처 자본도
실패 위험 감수하는 문화도 없어

"유럽 우주산업도 NASA처럼 바뀌어야
큰그림은 그리고, 로켓 등은 민간에 맡겨야"

유럽우주국(ESA)은 유럽 대륙과 영국, 캐나다 등 22개 참여국이 우주로 나가는 관문(關門)이다. ESA의 작년 예산은 72억 유로(약 9조6244억 원). 미 우주항공국(NASA)의 240억 달러(29조7135억 원)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1550억 엔(약 1조4950억 원)보다는 훨씬 많다. 참고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5712억 원이었다.


유럽 국가들이 기존의 로켓개발기구와 우주탐사기구를 합쳐 1975년에 ESA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우주개발에 뛰어든 지도 50년이 돼 간다. 그런데 아직도 유럽 우주인의 국제우주정거장(ISS) 접근은 미국ㆍ러시아 로켓과 우주선(캡슐) 없이는 불가능하다. ESA는 소행성 탐사선도 아직 발사하지 못했다. 작년 9월 NASA의 쌍(雙)소행성 궤도수정 실험(DART) 우주선이 충돌했던 소행성 디모르포스(Dimorphos)의 충돌 결과를 관찰하는 탐사선 헤라(Hera)의 발사가 내년 10월로 예정돼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 JAXA가 2014년 11월 발사한 하야부사 2호는 왕복 52억4000만 ㎞를 날아 소행성 류구(龍宮)에서 암석 샘플을 채취하고 2020년 12월 지구로 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12월 21일엔 ESA의 신형(新型) 중간급 발사체인 베가-C가 두번째 발사에서 실패했다. 올해 1월 9일엔 영국 본토에서 처음 발사된 버진 오비트(Virgin Orbit)의 로켓 원(Rocket One)도 9개의 마이크로 위성들을 궤도에 올리는데 실패했다. 4월로 예정된 아리안 5호의 발사가 끝나고 나면, 유럽은 보유 로켓이 없어 한동안 자력으로는 우주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ESA의 아리안 5호 후속 모델인 아리안 6호도 개발 일정이 계획보다 3년 지연돼, 올해 말에야 첫 시험 발사를 한다. ESA가 재사용 발사체로 개발하려는 테미스(Themis)는 올해 들어서야 1단계 로켓 테스트와 경제성 검토가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에, 일론 머스크의 재사용 발사체인 팰컨 9과 팰컨 헤비는 지금까지 165회 발사된 뒤에 지상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고, 이 로켓들을 139회 다시 쏴 올렸다. 중국과 인도도 달과 화성 등 심(沈)우주 탐사에서 유럽을 앞질렀다.
 


유럽에 자본이나 우주 관련 인재 풀(pool), 창업 열기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인터넷에서 아마존·애플·구글·넷플릭스·틱톡 같은 기업을 단 하나도 배출하지 못한 유럽은 우주산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요즘 유럽 우주산업계가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왜 우리는 스페이스 X 같은 기업이 없지?”라고 한다.

 

이와 관련, ESA의 요제프 아슈바허(Aschbacher) 사무총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ESA와 유럽 우주산업계를 NASA 모델로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ESA는 필요한 발사체나 우주선의 임무 내용과 성능에 대한 지침만 발표하고, 구체적인 개발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말고, 민간의 경쟁에 맡겨서 ‘완성품’을 구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유럽 우주산업계의 구조 개편 필요성엔 동의하면서도, 유럽은 벤처 자본의 토양이 다르고 ESA 22개 회원국이 합의해야 해 NASA 모델을 이식(利殖)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ESA 사무총장 “로켓 개발, 민간 주도로” 
아슈바허 사무총장은 지난 9일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유럽이 주권적인 발사 능력을 갖추려면, 시장 주도로 로켓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발사시스템을 어떻게 개발할지, 민간 기업들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로켓은 아리안그룹(Ariane Group) 등이 제조하지만, ESA도 직접 로켓 개발ㆍ제조 과정에 참여해 왔다. 완성된 발사체는 에어버스와 사프란의 합작사인 아리안스페이스(Arianespace)가 마케팅한다. 아슈바허는 “이런 구조에선 기업이 자기 책임하에 원하는 조직을 구성하고 독자적으로 개발과 생산 자원을 최적화해 배분할 수 없다”고 말했다.


NASA는 원하는 성능ㆍ제원 명시, r경쟁 입찰 민간에
NASA는 민간 기술이 이미 성숙한 분야에선, NASA가 계획하는 미션의 성격, 필요한 장비의 구체적인 성능ㆍ제원 등의 정보를 담은 제안요청서(RFPㆍRequest For Proposal)를 발표하고, 민간 기업의 참여를 요청한다. NASA 과학자들이 전반적인 기술 지원은 해도, NASA가 원하는 장비를 어떻게 구현하느냐는 민간 기업의 몫이다. NASA는 또 최종 제안요청서를 내기 전에, 계속 기업계의 의견을 청취한다.
NASA는 이런 과정을 통해, 아르테미스 3단계에서 사용할 달 착륙선과 선외(船外)활동우주복(EMU), 우주인 착륙에 앞서 미리 달표면에 과학기구ㆍ장비를 가져다 놓을 무인 착륙선 등을 제작할 기업을 선정했다. NASA가 현재 ISS에 우주인과 화물을 보내는 캡슐인 스페이스X의 드래곤 우주선과, 오비털 사이언스와 노스럽 그루먼이 만든 시그너스 화물 우주선도 이런 공개 경쟁의 결과물이다.


”ESA는 장기적 플랜에 주력해야” 
아슈바허의 주장은 기술이 성숙한 우주산업 부문은 과감히 민간에 넘겨 유럽의 우주개발을 ‘상업화’하고, ESA는 이 민간시장의 신뢰할 만한 ‘제1고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ESA는 민간 기업이 투자할 의사가 없고 초(超)정밀ㆍ최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장기적인 과학 플랜에 집중한다. ESAㆍJAXA 공동 프로젝트인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BepiColomboㆍ2025년 12월 수성 궤도 도착 예정), 지구 대기권의 풍향을 조사하는 기상관측위성 아이올로스(Aeolus), 화성샘플 회수 프로그램 등이 후자에 속한다. 

 


2021년 스페이스X의 매출은 280억 달러였는데, 이 중 56%가 NASAㆍ국방부ㆍ연방통신위원회(FCC)와의 계약에서 왔다. 특히 NASA와의 계약이 전체 매출의 44%인 123억 달러였다. 아슈바허는 “NASA가 없었으면 스페이스X는 존재할 수 없었다”며 “우리도 ESA가 주(主)고객이 되는 민간 발사체 시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전세계 우주경제 규모는 3860억 달러였다. 이 중에서 위성 제조(137억 달러)와 발사체(57억 달러)는 전체의 5%에 불과했다. 그러나 두 부문이 수많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데이터 송수신 산업과 기지국ㆍ소비자 장비 등의 우주경제 생태계를 이끌어갔다. 아슈바허는 “우선 초소형 위성(microsats)와 같은 경량 탑재중량을 발사하는 로켓 시장부터 NASA식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 변환은 ESA 전체 회원국들의 동의를 거쳐야 가능하다. 영국 평론지 스펙테이터(The Spectator)는 작년 11월 “ESA가 ‘우주적으로(galactically)’ 실패한 것은 22개 회원국이 가장 나쁜 계획에만 동의할 수 있었고, 프로젝트를 정치권과 기업의 답합에 의해 나눠먹기식으로 운영한 탓”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엔 있고 유럽엔 없는 것 
그러나 아슈바허의 개혁 방안은 유럽과 미국 벤처 자본의 근본적 차이로 인해 실행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NASA의 민간 아웃소싱이 가능한 것은 미국에 광범위하고 성숙한 민간 자본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21년 한 해 미국 내 우주산업 투자금액은 3300억 달러였다. 미국을 제외한 벤처 자본은 중국ㆍ유럽을 포함해서 90억 달러에 불과했다. 

 

 

즉, 유럽의 벤처 자본은 우주발사체 기업 같은 기간(基幹) 프로젝트를 지원하기엔 너무 규모가 작은 것이다. 스페이스X의 최초 투자금 1억 달러는 당시 유럽의 벤처 자본 전체 규모에 해당했다. 스페이스X는 1월 2일에도 7억7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모았고, 작년 한 해 투자금이 20억 달러를 넘었다. 같은 해 ESA의 전체 우주수송[발사체] 프로그램 예산(10억 유로ㆍ약10억8000만 달러)보다 많았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우주경제 전문가인 시니어드 오설리번은 또 “미국과 유럽의 벤처 자본은 모두 부호 가문이 주축이 되는데, 미국 부호들의 목적이 부의 창출인데 반해 유럽은 부의 유지”라고 말했다. 따라서 유럽 벤처 자본은 리스크가 큰 대규모 테크놀로지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 또 아슈바허의 희망처럼, 유럽연합(EU)이나 ESA가 미국 정부 수준의 ‘신뢰할 만한’ 주고객이 될 수 있지도 의문이다. 우주산업을 촉진하는 미국의 국방 예산은 2021년에 8006억 달러였다. 작년 12월8일 발표된 유럽연합(EU) 26개국의 2021년 국방 예산 총액은 2140억 유로(약 2312억 달러). 미국의 4분의1을 조금 넘었다.  

 


작년 11월 22~23일 ESA의 장관급 회의에서 유럽 회원국들은 앞으로 5년 내에 ESA 예산을 169억 유로까지 대폭 늘리기로 했다. 또 발사체 예산도 28억 유로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간 기업 위주의 소형 발사체 시장을 장려하자는 독일과, 아리안 6과 그 이후 유럽이 함께 쓸 수퍼 로켓 개발에 주력해야 하다는 프랑스의 입장은 여전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이 정도 증액된 정부 투자 규모로, 우주산업을 보는 유럽 벤처 펀드와 사모(私募) 자본 시장의 보수적인 시각이 바뀔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