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선 뭘 탈까?
Moon Car 달린다

우주항공·자동차·타이어 기업까지...
달에서 타는 차량 개발에 한창

GM,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추진
노스롭은 미쉐린 타이어와 콘소시엄
일본은 토요타와 루나 크루저 개발중
한국의 현대 기아차도 뛰어들어

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 복귀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5단계가 시작하는 2028년쯤 우주인들은 달 남극에 기지를 구축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에 따라, 북미의 우주항공, 자동차 기업들 간에는 우주인들이 이 시기에 달표면에서 쓸 차량의 개발이 한창이다. 


NASA가 아르테미스에서 계획하는 달 유인(有人) 차량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주정거장ㆍ달 기지처럼, 지구와 유사한 기압 상태가 유지되는 여압(與壓) 차량이다. 우주인 2명이 한 달 간 먹고 자면서, 먼 곳까지 탐험할 수 있는 ‘캠핑 카’이자 거주 공간 개념의 차량이다. 필요한 경우에만, 수트도크(suitdock)를 통해 선외(船外)우주복(EMU)을 착용하고 차량 밖으로 나간다. 현재 계획으론 2030년 아르테미스 7단계에서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우주인들이 우주복을 착용하고 운전하는 달 지형차량(Lunar Terrain Vehicle·LTV)이다. NASA는 아폴로 15~17호(1971년 7월~1972년 12월) 때 최초의 LTV라 할 ‘문 버기(Moon Buggy)’를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월면차(月面車)는 배터리 수명이 수 시간에 불과했다. 

 


새로운 LTV는 일교차가 300°C에 달하고 낮과 밤이 2주 넘게 번갈아 지속되는 달 남극의 극한 상황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 NASA는 2028년 8월 이전에 LTV를 착륙 지점에 미리 보내, 우주인들이 도착하자마자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미ㆍ일, 애리조나 사막에서 여압 차량 공동 테스트
작년 10월 중순, NASA는 미국 애리조나주 북부의 용암(熔岩) 지대에서 2주간 달 모의(模擬) 차량을 테스트했다. NASA는 지형과 지질학적 요인뿐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단절 측면에서도 우주인이 달에서 맞는 상황과 흡사한 이곳에서 1960년대부터 우주인들을 훈련시켜왔다.
 


NASA의 사막리서치기술연구팀(D-RATS)이 진행한 이 테스트에는 우주인들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엔지니어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낮에는 차량을 운전하고 내부에서만 생활하면서 여압 차량에 필요한 기능들을 점검했고, 밤에는 스포트라이트에만 의존해 문워크(moonwalk) 훈련을 했다. 3mⅹ5m 크기인 이 테스트 차량은 2005~2009년 애초 NASA가 달에 복귀하려고 했던 컨스털레이션(Constellation) 프로그램 때 만든 것이다. 여압 능력은 없지만, 작은 돌과 바위가 많은 달표면에서 시속 10㎞로 달릴 수 있게 제작됐고 화장실도 갖췄다. 독립적으로 구동하는 6개의 바퀴로, 게처럼 옆으로 이동할 수 있고 제자리에서 180도 회전도 가능하다. 


각각 NASA 우주인 2명과 JAXA 엔지니어 1명으로 구성된 두 팀은 48시간씩 교대로 이 차량에서 생활했다. 테스트 요원들은 밤에만 문워크 훈련을 위해 차량 밖으로 나오는 것이 허용됐고, 모든 것을 차 안에서 해결했다. JAXA 엔지니어들은 조이스틱으로 이 차량을 운전하며, 현재 JAXA가 개발 중인 여압 차량에 필요한 경험과 데이터를 쌓았다. 미션 책임자인 마크 레이건은 미국 PBS 방송을 비롯한 언론에 “최소 한 달 간 생활해야 하는 차량의 크기와 내부 구성 요소, 조이스틱ㆍ휠(wheel) 운전 방식의 장단점 등을 판단하고 우주인이 맞게 될 도전적 상황을 예상하기 위한 테스트”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달의 남극은 충돌구가 많고 지형의 고저가 심하다. 낮이 지속되는 시기에도 태양은 낮게 떠, 길고 깊은 그늘이 진다. 이런 상황에서 모의 차량에 장착된 큰 창문은 운전에는 도움이 되지만, 로켓의 탑재중량엔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차량 외부에 장착된 카메라에 연결된 스크린만 보고 운전하기도 쉽지 않다. 또 착륙 후보지 중 한 곳인 섀클턴 충돌구의 깊이는 4.2㎞로, 그랜드캐년에서 가장 깊은 곳(1.8㎞)보다도 훨씬 깊다. 영상 데이터를 간섭하고 소프트웨어의 오작동을 일으키는 우주 방사선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여압 차량의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도 주요 과제 중 하나다.


NASA, 우주복 입고 모는 LTV 제작은 민간 기업에 맡겨
한편, NASA는 우주인들이 선외(船外)우주복(EMU)을 입고 달표면을 주행하는 LTV(달지형차량)은 민간 기업들에게 발주(發注)한다.  이미 수 차례 이 LTV에 들어가야 할 구체적인 성능과 제원(諸元)에 대해 기업들과 논의했고, 올해 상반기에 최종 제안요청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달 남극에서 사용하는 LTV는 지구는 물론, 아폴로 시절에 문 버기가 달렸던 너른 분지와도 다른환경을 고려해 제작돼야 한다. 중국이 2013년 12월에 착륙시킨 무인 로버 유투(玉兎)-1은 낮이 계속되는 기간(lunar days)에도 일교차를 견디지 못해, 이틀만에 고장 났다. 또 최대 3주까지 계속되는 달 남극의 밤 기간을 버틸 수 있는 태양광 패널과 연료 전지를 갖춰야 한다. 태양과 우주에서 쏟아지는 방사선은 차량 기능을 손상시키고 민감한 전자 장비를 망가뜨린다. 지구 중력의 6분의1밖에 안 되는 달에선 차량의 서스펜션과 제어 측정 장치들도 모두 계산이 달라져야 한다.


NASA가 원하는 대략적인 LTV 성능 
NASA가 2021년 8월에 밝힌 LTV에 대한 개략적인 성능 조건은 이렇다. 달표면에서 8시간, 영하 180°C 이하까지 내려가는 충돌구의 영구 음영지역에서도 2시간 이상 가동돼야 한다. 태양광 패널과 연료 전지는 해가 전혀 없는 기간에도 최소 150시간 가동돼야 한다. 


1회 충전으로 20㎞, 최고 시속 15㎞으로 주행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우주인 없이, NASA의 미션 통제센터와 달궤도의 루나 게이트웨이에서 LTV에 원격으로 과학 탐사활동을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 NASA가 원하는 기본 수송 능력은 2명의 우주인과 과학 탐사 장비 등 800㎏. NASA는 구입한 LTV를 10년간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우주항공·타이어 기업들이 뭉쳤다
NASA가 LTV의 최종 제안요청서를 내지도 않았는데, 많은 북미 지역 기업들은 이미 콘소시엄을 구성했고 콘셉트카 개념도를 내놓았다. 아폴로 프로그램의 전기차 문 버기를 제작했던 제너럴 모터스(GM)과 우주항공기업인 록히드 마틴은 국제우주정거장에 로봇팔을 제공한 캐나다의 MDA와 한 팀을 이뤘다. GM에서 LTV 제작팀을 이끄는 제프 보그트는 “극한의 조건에서도 잘 작동하는 배터리와 달과 같이 일관성 없는 지형에서도 잘 달리는 차량을 제작하는 기술들은 지구에서도 활용도가 높다”고 밝혔다. 그는 달의 중력을 고려하지 않고 지구에서 쓰는 차량의 서스펜션을 장착하면 마치 트럭을 타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력은 줄어도 질량은 달라지지 않아, 관성은 LTV 제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달표면의 오르막길에서 가속 페달을 힘있게 밟으면, 차량은 붕 뜬다는 것이다. LTV는 최악의 눈 폭풍 속에서 빙판 위를 운전하는 것처럼 아주 부드러운 가속과 방향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GM의 컨셉트 카는 과거 문 버기의 좌석에 달의 흙가루인 레골리스(regolith)가 달라붙었던 것을 감안해, 좌석이 앞바퀴 위쪽으로 배치됐다.


우주항공기업 노스롭 그루먼과 루나 아웃포스트, AVL, 에비에이션도 2021년 11월 컨소시엄을 출범했다. 과거 우주왕복선의 바퀴를 제작했고 에어리스(airless) 타이어를 만드는 미쉐린도 합류했다. 노스롭이 디자인을 주도하고, 자율 주행과 전기 배터리 시스템 기술을 갖춘 AVL과 열(熱)에너지·먼지 제거 기술에 특화된 루나 아웃포스트, 작년 9월에 전기 비행기를 선보인 에비에이션 등이 각각의 전문성을 보탠다. 또 아폴로의 마지막 달 착륙선이 된 16호와 17호에서 직접 달을 밟았던 생존 우주인(87세) 2명이 이 콘소시엄에 자신의 달 경험을 조언한다. 

 


NASA 산하의 제트추진연구소(JPL)과 민간기업 스페이스X 출신 엔지니어들과 NASA 우주인이 세운 벤튜리 애스트로랩은 이미 달 지형에서 운행이 가능한 플렉스(FLEX)라는 이름의 LTV 모델을 제작했다. 작년 3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 밸리 인근 사막에서 캐나다 우주인 출신의 엔지니어 등 2명이 5일간 테스트 드라이브도 했다. 또 플렉스가 원격 로봇 차량으로 작동하는 모습도 선보였다. 이 회사는 “아르테미스 5단계부터는 매달 수백 톤의 화물이 달에 도착하게 돼, LTV는 어떤 종류의 화물도 바로 탑재해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우주·항공·국방 분야의 전자 장비와 센서, 통제 장치에서 특화된 복합기술 기업인 텔레다인 브라운도 작년 4월에 닛산 북미 법인, ISS로 우주인과 화물을 태워 보내는 드림 체이서(Dream Chaser)를 개발 중인 시에라 스페이스, 여객기 견인차량과 오프로드 레저 차량과 같은 특수 차를 만드는 텍스트론과 콘소시엄을 구성했다. 작년 9월엔 일본의 타이어 회사인 브리지스톤도 합류했다.


현대·기아차도 작년 7월, 6개 국내 연구기관과 함께 파트너십을 맺고 달표면에서의 모빌리티 솔루션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기아차의 비밀 병기는 자율 보행 로봇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 JAXA는 토요타와 함께 ‘루나 크루저’라고 이름 붙인 여압차량을 개발하고 있다. 전기차인 토요타 미라이에서 쓰는 수소연료 전지가 들어가며, 우주인 2명이 14일간 생활할 수 있는 차량이다. 이 차량에는 기타이 사의 로봇팔이 장착된다. 

 

일부에선 작년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일(訪日) 때 토요타의 ‘루나 크루저’ 모형 앞에서 미·일 양국의 아르테미스 협력을 강조한 것을 두고, NASA가 JAXA·토요타와 협력해 아르테미스 7단계에서 쓸 여압 차량을 제작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NASA는 형상기억합금으로 된 촘촘한 망(網) 형태의 타이어 제작 등 자체적으로도 LTV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