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영국 콘월 우주공항에서 발사된 버진 오빗의 런처원(LauncherOne) 로켓은 영국 땅에서 발사되는 최초의 로켓이었다. 그러나 보잉 747에 탑재돼 11㎞ 상공에서 발사된 이 로켓은 목표 고도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 버진 측이 이날 실패로 날린 금액만 2억 달러였다.
모(母)기업인 버진 갤럭틱은 올해 1인당 45만 달러짜리 첫 우주 투어를 계획 중이지만, 작년 11월 미국의 주주들로부터 집단 소송을 당했다. 미 뉴욕시 동부 연방지법 판사는 버진 측이 기업 가치를 과대 선전하고 안전 상의 문제점을 숨겼다며 제기한 주주들의 소송을 승인했다. 2021년 7월 버진의 설립자인 리처드 브랜슨은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 VSS 유니티(Unity)를 타고 대기권 경계인 고도 80㎞ 이상까지 올라가는 우주 투어를 한 뒤 “완벽한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달에는 3억 달러 어치의 보유 주식을 매각했다. 그러나 이후 VSS 유니티의 복귀 항로가 애초 계획에서 벗어난 사실이 드러났고, “날개가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는 승무원들의 증언도 나왔다. 이후 미 연방항공국(FAA)은 VSS 유니티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2021년 2월 54달러를 넘었던 버진 갤럭틱의 주가는 1월26일 5.38달러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우주산업계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전세계 1791개의 우주 기업들을 민간 투자 현황을 집계하는 우주 벤처펀드인 스페이스 캐피탈(Space Capital)은 지난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2년의 우주산업에 대한 전세계 민간 투자 규모는 201억 달러로, 전년(2021년)의 474억 달러에서 58%나 빠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는 현 시점이야말로 ‘알짜’ 기업들에겐 성장의 기회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투자가들이 우주기업들이 내놓는 상품의 시장 적합성을 따지고, 시류에 편승하기보다는 기업의 펀더멘털(fundamentals)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우주경제를 보다 견실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주 르네상스 맞아 투자 몰렸지만…
최근 수년간 글로벌 우주산업계는 우주 탐사의 르네상스를 경험했다. 그 결과, 작년에 전세계에선180회의 성공적인 로켓 발사가 이뤄졌다. 물론 이 중 61회는 스페이스X가 이룬 것이었다. 특히 미국에선 미 항공우주국(NASA)·국방부와 민간 우주기업들 간 파트너십이 더욱 깊어졌다. 국방 관련 위성들의 제조와 발사, 우주정거장에 우주인과 화물을 보내는 미션들과 같이 민감하면서 굵직한 계약들이 민간에 돌아갔다. 인간이 다시 달로 돌아가는 아르테미스 1단계 계획이 11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진행됐다. 2021년 말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작년 7월부터 그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우주의 비경(秘境)을 지구로 보내왔다.
이런 우주 대항해의 시대를 맞아, 많은 우주기업들이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을 통해 민간의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SPAC는 인수·합병을 통해 우주기업을 상장(上場)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상장 회사들이다. 우주기업이라면 일단 투자하고 보자는 심리가 SPAC에 인수된 우주기업들에 돈을 쏟아부었다. 우주·테크놀로지 컨설팅 사인 브라이스 테크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20년 기간에 전세계 우주 창업기업에 쏟아진 민간 투자액은 367억 달러였다. 그런데 이중 72%인 262억 달러의 투자가 2015년 이후에 이뤄졌다. 우주 투자 열기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달아올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작년 한 해 연거푸 발사에 실패하거나 제시했던 기대치를 맞추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애초 과대 선전(hype)됐던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들의 실망이 깊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20일 “투자가들은 이제 ‘우주’를 ‘암호화폐’ ‘메타버스’와 같이 매우 리스크가 크고 투기성이 높은 테크 분야로 본다”고 진단했다.
작년에 민간 투자 58% 빠져…최근 15년 중 최악
설상가상으로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위협을 막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의 경우 기준금리를 작년 3월 0.25%에서 작년말 4.5%까지 계속 올렸다. 시중 금리가 치솟으면서, 테크주(株)가 몰려 있는 나스닥은 작년에 33.1%가 빠졌다.
영국에서 로켓 발사에 실패한 버진 오빗의 주가는 2021년 말 10달러를 유지하던 것이 26일 현재1.66 달러다. 주로 소형 위성들을 발사하는 로켓 기업인 애스트라의 주가도 2021년 2월 20달러에 육박했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작년 11월 순손실 5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주가는 26일 61센트로 마감했다. 모두 한때는 차세대 우주 기업으로 주목받던 회사들이었다.
우주ㆍ방위산업계의 공룡기업이라고 할 보잉도 예외는 아니다. 보잉은 NASA로부터 2014년 42억 달러의 계약을 맺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우주인과 화물을 보내는 우주선 스타라이너(Starliner)를 제조하기로 했지만, 계속 지연되다가 지난 19일에야 크루(우주인 탑승) 모듈과 서비스 모듈이 결합된 모습을 처음 선보였다. 이 캡슐은 3월쯤 첫 시험 발사를 하게 된다. 스페이스 캐피탈 보고서는 “우주기업에 대한 작년 민간투자 환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전세계 경제가 대침체(Great Depression)을 겪었던 2007년 이래 15년 중에서 성장세가 꺾인 최악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10년간 민간 투자 규모는 2723억 달러
우주 산업은 크게 ▲스타링크ㆍ원앱 등과 같이 위성을 연결하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위성 네트워크(distribution) ▲우버·리프트·스냅챗과 같이 우주 기반 자산을 이용해 데이터 비즈니스를 하는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s)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같이 우주 기반 자산을 제조·발사·운영하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로 나뉜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 10년 동안 이 3개 부문의 우주 산업계는 2723억 달러의 민간 투자를 받았다. 이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애플리케이션으로 2084억 달러의 투자가 집중됐고, 통신망은 93억 달러, 인프라스트럭처는 547억 달러였다.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민간 투자에서도 미국 내 투자가 전체 글로벌 투자의 67%를 차지했고, 이 중 25%를 스페이스X가 가져갔다. 또 작년에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글로벌 투자는 63억 달러였는데, 이 중 20억 달러는 스페이스X가 받은 것이었다. 스페이스X는 워낙 예외적(outlier)이어서, 보고서를 작성한 채드 앤더슨은 “스페이스X를 빼면, 당분간 이렇다할 자생력 있는 인프라스트럭처 기업이 없을 것”이라며 “스페이스X의 스타십이 성공적으로 발사되면 우주정거장, 달 궤도, 우주 제조 산업, 우주 파편 청소 등 우주 산업 전반에 걸쳐 거대한 기회와 격변의 시기가 온다”고 전망했다. 한편, 인프라스트럭처 부문에서도 위성과 우주선을 제작·운영·발사하는 기업들을 제외하고 우주정거장·우주채굴·심(深)우주탐사 위성·에너지 생산 및 비축과 같이 상대적으로 신생 산업계(emerging industries)에 대한 투자는 작년에 5억 달러에 불과했다.
”우주경제 다시 병속에 넣을수는 없어”
경기침체기에는 정부 지출이 우주 기업들에겐 더욱 절실하다. 특히 미국에선 국방부의 우주 관련 예산이 빠른 속도로 증가해, 우주군 예산(263억 달러)이 NASA 예산(254억 달러)보다 많다.
미·중을 비롯해서 주요 국가들의 전략적 경쟁이 우주로 번지면서, 발사·위성·지구 저궤도 활용·달 궤도 탐사 등에서 정부 예산은 계속 증가될 수밖에 없다. 또 중국의 민간 자본도 지난 10년간 위성·발사시스템과 같은 인프라스트럭처에 몰리면서, 미국(66%)·영국(14%)에 이어 세번째(8%)를 기록했다.
우주산업 투자 전문가들은 앞으로 2~3년이 펀더멘털이 튼튼한 알짜 우주기업들을 선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스페이스 캐피털 보고서는 “우주기업에 대한 가치 평가는 좀 더 균형이 잡히겠지만, 시장에 적합한 상품을 내놓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퀄리티 우주기업들로서 특히 정부·국방·지구 이미지 촬영·위성 통신 등과 관련된 기업들은 2023년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앞으로 2년간 경쟁자는 줄고 탤런트 풀(pool)은 확대돼, 우주 관련 테크 기업을 창업하고 투자하기엔 적절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앤더슨은 워싱턴포스트에 “우주 산업은 지난 10년간 엄청난 성장을 하면서 전세계 산업계의 보이지 않는 등뼈(backbone) 역할을 담당했다”며 “우주경제라는 ‘지니(genie)’를 도로 병 속에 넣을 길은 없으며 거시경제에 불어 닥친 맞바람에도 우주에 대한 우리의 전망은 매우 낙관적(bullish)”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