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반, 브랜슨 집에
맨발의 머스크가 어슬렁

영국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
그가 털어놓는 꿈, 그리고 머스크와의 인연

"나와 머스크는 샤인맨, 그리고 쇼맨"
"110세 생일에도 우주여행 하고싶어"

영국의 대표적인 우주기업인 ‘버진 그룹’의 회장 리처드 브랜슨(72)은 “이미 80세, 90세, 100세 생일까지 버진 갤럭틱에 우주여행 좌석을 예약했다”며 “아마 110세 생일에도 우주여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에 자서전 ‘버진다움을 찾아서(한글번역판 제목·Finding My Virginity)’의 최신 증보판을 낸 브랜슨은 최근 영국의 타임스 일요판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우주기업 경쟁자들인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와의 친근한 관계를 소개하면서도, 자신은 머스크와는 달리 “다른 행성에서 죽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인류의 화성 이주를 꿈꾸는 머스크는 “화성에서 죽고 싶다, 물론 추락사는 아니고”라고 말한 적이 있다. 

 


머스크, 전기 스포츠차 자랑하려고 스위스 산장으로 몰고와
브랜슨은 머스크가 무작정 찾아와 자신을 즐겁게 했던 두 차례 일화를 소개했다. 2008년 가족과 스위스의 유명한 스키 명소인 베흐비에에 머물고 있는데, 머스크가 자신이 만든 스포츠카 로드스터(Roadster)를 몰고 나타났다. “나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공통의 친구이자,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의 결혼식에서 만났다.  2007년이었다. 결혼식장은 브랜슨의 개인 섬인 카리브해의 네커 아일랜드(Necker Island).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스물 한 살이다. 


브랜슨이 보기에, 머스크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닮은 구석이 있었다. 머스크는 즐겁게 떠드는 자리를 피했고, 생각이 깊었고, 말할 때에 머뭇머뭇했다. 둘 다 ‘샤이맨(shy man)’에서 출발해 나중에 쇼맨(showman)이 됐지만, 여전히 대중 앞에서 혀가 굳었다. 머스크는 당시 실리콘 밸리 밖에선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둘은 그때 지구온난화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고, 둘 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머스크가 로드스터를 몰고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타 보니, 매우 편안하고 멋졌다. 브랜슨은 ‘내가 자기 회사에 투자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머스크 회사는 작은 규모였다. 하지만, 브랜슨이 보기엔 영국제(製) 로터스 스포츠차 외형에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구겨 넣은 이 작은 2인승 차가 세상을 바꿀 것 같지는 않았다. 브랜슨은 투자하지 않았다. 그때 투자했더라면 200배의 투자 수익을 거뒀을 것이다. 브랜슨은 더 타임스에 “아주 잘한 결정이라곤 할 수 없다”며 판단 실수를 인정했다. 브랜슨은 더 타임스에 “일론은 엄청나게 똑똑하고, 매우 승부욕이 강하다. 치밀하게 계산된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고 계속 밀고 나가는 타입”이라며 “그는 자기 세대의 헨리 포드”라고 평했다.


첫 우주여행 하는 날 새벽, 맨발로 찾아온 머스크 


2021년 7월 11일, 브랜슨이 이끄는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 VSS 유니티(Unity) 호가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여행을 하는 날이었다. 브랜슨도 이 우주선에 탈 예정이었다. 오전 2시반에, 미국 뉴멕시코주의 우주공항(spaceport) 인근에 있는 브랜슨의 집으로 머스크가 ‘깜짝 방문’ 했다. 브랜슨이 2층 침실서 내려가보니, 머스크가 VSS 유니티의 성공적인 첫출발을 기원한다며, 맨발로 부엌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문을 열어준 모양이었다. 
 


브랜슨은 계획했던 것보다 2시간 먼저 깼지만, 결국 둘은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브랜슨은 “일론은 기본적으로 야행성 동물로, 밤에는 안 자고 낮에 잔다”고 말했다. 둘은 밖에 앉아서 별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눴다. 그날 아침에, 머스크는 브랜슨의 90분짜리 첫 우주여행을 지켜보려고 우주공항까지 찾아왔다. 브랜슨은 이날 성공적인 민간 우주여행으로,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이 계획한 우주여행을 9일 앞지르며 생애 일곱 번째 기록을 세웠다. 브랜슨은 이전에 열(熱)기구로 대서양ㆍ태평양을 최초로 건넌 사람, 수륙양용차로 가장 빠르게 영국 해협을 건넌 사람 등의 기록을 갖고 있었다. 

 

 

"110세 생일에도 우주여행할 것”
브랜슨은 90세에 블루오리진에 올라 우주여행을 했던 배우 윌리엄 섀트너의 기록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더 타임스에 “나는 80세, 90세, 100세 생일까지 버진 갤럭틱 좌석을 예약해 놓았다”며 “나는 영원한 낙관주의자라, 아마 110번째 생일에도 우주여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랜슨은 새로 증보(增補)한 자서전에서 죽을 뻔했던 사례가 79차례였다고 밝혔다. 1896년엔 스카이다이빙을 하다가 엉뚱한 줄을 잡아당겨서 주(主)낙하산이 떨어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교관이 비상 낙하산 줄을 잡아당겼다. 2004년에는 빅토리아 폭포에서 번지 점프를 했다가 머리가 깨졌다. 


그는 매일 “아이디어와 생각들, 요청 사안, 기억할 것 등”을 빼곡히 노트북에 적어 놓는다고 말했다. 깜빡 잊는 것을 우려하는 것일까. 브랜슨은 더 타임스에 “너무 당연하다. 기억을 못한다. 아직은 뇌가 꽤 예리하지만, 워낙 많은 일이 머리 속에서 돌아가니까 어떨 때는 뇌가 완전히 꽉 찼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900명 우주여행 예약…결국 30만 달러로 내려갈 것
현재 브랜슨이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는 우주여행 예약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900명이 예약을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안젤리나 졸리, 저스틴 비버도 이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보도됐다. 다음 번 버진 갤럭틱의 우주여행 일정은 이번 여름. 이걸 지키려면, 지금의 우주선 외에 세번째 우주선을 제조해야 한다. 첫번째 우주선 VSS 엔터프라이즈 호는 테스트 중에 폭발했다. 1회 탑승객 수가 6명 밖에 안 돼, 예약 손님들이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브랜슨은 머스크도 10여 년 전에 1만 달러 예약금을 냈다고 밝혔다. 그는 “일론이 탑승하면 참 좋겠지만, 그가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라고 말했다. 


배우자 동반 할인 정책이라도 없을까. 브랜슨은 “전혀 없다”며 “일론 머스크라도 예외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궁극적으로는 탑승료가 지금의 45만 달러에서 30만 달러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자신의 스페이스X 로켓과 우주선이 고도 400㎞의 국제우주정거장(ISS)과 그 너머까지 오가는데, 왜 머스크는 고도 80㎞에 그치는 브랜슨의 우주여행에 관심이 있을까. 스페이스X의 드래곤 우주선은 우주인을 ISS을 보내는데 특화된 반면에,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은 말 그대로 ‘관광’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머스크는 한때 “음속의 3배 정도 속력만 내면 되는 준(準)궤도 비행과, 음속의 25배가 필요한 지구 궤도 비행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주 기업은 17년 노력이 들어간 인생 최대의 도박
버진 갤럭틱은 브랜슨에겐 최대의 도박이었다. 첫 민간 우주여행을 성공하기까지 17년이 걸렸고, 1000명 가까운 엔지니어와 기술자, 조종사들이 노력을 쏟아부었다. 자신의 돈 10억 달러도 들어갔다. 우주선 지상 테스트에서 3명이 숨졌고, 2014년에는 우주선 VSS 엔터프라이즈 호가 공중에서 폭파돼 조종사를 잃었다. 그때 브랜슨은 “인간의 능력과 기술을 테스트하는 경계선에서,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어제 우리는 그 어깨에서 떨어졌다”고 말했다.


선데이 타임스에 인터뷰 기사가 나오고 하루 뒤인 1월9일에도 그의 로켓 기업 버진 오빗은 영국 본토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데 실패했다. 민간 발사체 시장을 놓고, 결국 친구인 머스크와도 다투겠다는 것일까. 브랜슨은 “일론과 나는 매우 다른 종류의 사람이지만, 잘 지낸다. 경쟁자와 저녁에는 친구처럼 지내고, 낮에는 공정하게 치열하게 다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화성에서 죽고 싶은 생각 없어”
머스크와 달리, 브랜슨은 “다른 행성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자신의 유해 분골(粉骨)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두번째 아내인 지금의 아내 조안 템플턴의 마음을 사려고, 1978년도에 구입한 카리브해의 네커 아일랜드에서 잠자듯이 죽고 싶다고 말했다. 이 섬은 당시 호가(呼價)가 600만 달러인 것을 오래 기다려서 18만 달러에 샀다고 한다. 


그의 인생에 후회가 있다면? 브랜슨은 “나같이 굉장한 삶에, 멋진 가족과 부모, 아내, 아이들, 손주들, 훌륭한 친구들까지 둔 사람이 후회가 있다면 아주 슬픈 일”이라며 “나는 매우 매우 운이 좋았고, 후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브랜슨은 “궁극적으로 죽음을 맞게 될 때에는 또 다른 기록을 깨려고 애쓰지 않고 자다가 평온하게 맞고 싶다”면서도 “110세에 말이요”라고 했다.


베이조스와도 좋은 관계 유지
2021년 7월이 되자, 언론에선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과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중 어느 쪽이 먼저 우주여행에 성공할 것이냐를 놓고 과열 보도를 했다. 브랜슨은 증보판에서 “베이조스와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좋게 얘기하고, 이메일도 주고 받는 사이”라고 밝혔다. 브랜슨은 버진 갤럭틱의 첫 우주여행에 베이조스를 초정했다. 하지만, 베이조스는 자신도 일이 바쁘니 응할 수 없었다. 그때도 베이조스는 ‘따듯한’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한번은 블루 오리진 측이 소셜미디어에 버진 갤럭틱에 대해 매우 미성숙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브랜슨은 “그 글은 곧 철회됐고, 베이조스가 이걸 미리 알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주로 나가기 전에, 기저귀에서 소변이 새
브랜슨은 2021년 7월1일 자신도 우주선 VSS 유니티 호에 탑승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더욱 열심히 체력 훈련을 했다.그리고 안 사실이 대부분의 조종사들이 기저귀를 찬다는 것이었다. 브랜슨도 팀 닥터가 건네 준 미디엄 사이즈의 기저귀를 차고 우주공항으로 출발했다. 테스트도 할 겸, 커피를 엄청 마시고 출발했고 일부러 기저귀에 소변을 봤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 바지에 소변이 샜다. 기저귀가 작았다. 다시 차로 들어가 준비한 여벌의 바지로 갈아 입는데 홍보 담당 직원이 와서 역사적인 장면을 찍고 있는데, 브랜슨이 빠졌다고 안달이었다. ‘재킷으로 아래를 덮고 젖은 바지를 발목까지 내린 상태인데…’ 브랜슨은 거울로 자신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기권과 우주를 가르는 푸른 선에 감명
드디어 우주선 VSS 유니티 호가 모선(母船) VMS 이브(Eve)에서 떨어져 나왔고, 시속 4000㎞까지 로켓이 불을 뿜었다. 로켓 굉음에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 같더니, 갑자기 정적(靜寂)이 흐르고 우주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중력 상태에선 엉덩이 사이에 호두를 꽉 낀 것처럼 힘을 주라”는 교관의 말이 기억났다. 푸른 하늘에서 검은 우주로 넘어가면서, 창밖으로 그 사이를 가르는 푸른 선을 봤다. 저 아래 가족을 상상했고, 그 아름다움은 압도적이었다. 좌석벨트를 풀었을 때, 브랜슨의 어린 시절 피터 팬 꿈은 현실이 됐다. 

 


브랜슨은 자서전에서 “그동안 우주인들로부터 우주에서 지구를 보며 갖는 경외감과 돌아가면 보다 긍정적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조망 효과(overview effect)’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우주여행이 얼마나 한 사람을 한 순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지 깨달았다”고 적었다. 그는 “우리 버진 갤럭틱 승객들도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a pale blue dot)’을 보면 이걸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돌아오리라고 확신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