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작년 3월, 첫 우주인이 화성에 착륙하는 시점을 2029년으로 제시했다. 그의 계획은 2050년까지 화성에 100만 명이 사는 지속 가능한 식민지를 세우는 것이다. 머스크는 “자급자족하는 도시를 세우려면, 1억 톤의 화물이 있어야 한다”며 “톤당 로켓 발사비용을 10만 달러로 잡으면 이런 도시를 화성에 건설하는데 1000억 달러(약 126조 원), 가장 높게 잡아도 10조 달러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8월엔 이런 도시를 화성에 여러 개 짓겠다고 했다.
2050년이라는 목표 연도는 물론 근거 없이 나온 것은 아니다. 2019년 당시 머스크의 계산으로는 “26개월마다 지구와 화성이 가장 가까워지는 것을 고려해, 5년 뒤(2024년)부터 그때마다 로켓을 발사해 10번이면(총 260개월 기간·약 22년) 도시 하나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계산에서 키워드는 그의 스페이스X가 개발 중인 스타십(Starship) 로켓·우주선이다. 한 번에 100톤의 화물 또는 100명을 수송할 수 있다는 스타십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액체·고체 연료(추진제)와 산화제를 결합해 연소시켜 에너지를 얻는 현재의 화학 로켓으로는 화성까지 가는데 7개월이나 걸리고, 그만큼 인체가 우주 방사선에 노출되는 위험이 너무 커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작년 4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마틴 리스(Martin Rees)는 ”머스크의 꿈은 위험한 망상(delusion)”이라며 “지구의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일은 화성을 거주할 수 있게 만드는 일에 비하면, 식은죽 먹기”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4일 미 항공우주국(NASA)이 핵 추진 로켓을 개발해 “빠르면 2027년 궤도 비행 테스트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핵 추진 로켓은 로켓에 탑재된 원자로에서 핵분열이 일어나고 여기서 방출되는 열로 수소 가스(연료)를 팽창시켜, 이 가스의 힘으로 나가는 로켓이다. 이렇게 하면, 화학적 반응으로 추력(推力)을 얻는 지금의 로켓보다 훨씬 연료 효율성도 높고 우주 항해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영국의 롤스-로이스 사도 연쇄 핵분열 반응에서 다량의 에너지를 얻는 로켓용 원자로 디자인을 공개했다.
”머스크 계획대로라면, 노르망디 상륙작전 매일 치러야”
미국의 로켓 제조기업인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ULA)의 CEO 토니 브루노는 작년 11월 블로그 플랫폼인 미디엄에 머스크 계획의 산수(算數)가 얼마나 근거가 없는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지구와 화성은 26개월마다 한 번씩 가장 가까워진다. 이 때 두 행성 간 거리는 약 5460㎞. 과거 미국을 비롯한 우주 선진국들의 화성 탐사 미션이 2년꼴로 진행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에도 두 행성 모두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돌기 때문에, 로켓은 실제로는 약 4억8200만 ㎞를 7개월간 날아가야 한다. 또 태양과 주변 행성의 중력 영향 탓에, 지구~화성 간 거리는 계속 변한다.
2050년까지 모두 14차례 두 행성은 가까워지고, 화성 이주 로켓은 그때마다 1개월의 발사 기간을 갖게 된다. 이건 변할 수 없는 상수(常數)다. 따라서 2050년까지 100만 명을 옮기려면, 26개월마다 찾아오는 발사 기회를 한 번도 놓치지 말고, 매번 1개월의 발사 기간에 모두 7만2000명을 태워 보내야 한다. 작은 도시의 인구에 해당하는 규모다. 스페이스 X가 100명이라고 밝힌 스타십의 수용 인원을 1000명으로 잡아도, 한 달에 72번 발사가 이뤄져야 한다. 매일 2~3번 발사하는 꼴이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이 7개월간 항해하고, 또 화성에 정착하려면 초기에 막대한 식량과 물, 건축 자재도 함께 가야 한다. 한 달 동안 매일 거의 매시간 화성 발사 로켓이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브루노는 “이는 2차 대전 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준비를 매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전적으로 비현실적이고, 물리와 산수를 무시하고 인간의 생명을 갖고 터무니없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제조 과정이 매우 복잡한 의약품과 특수화학물, 합금, 제조 상품은 불가피하게 26개월에 한 번씩 지구에서 가져와야 한다. 브루노는 “화성이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의 ‘구조선’이 되려면, 앞으로도 100년은 지나야 한다”고 썼다. 그는 달 자원을 먼저 충분히 활용해 거주하면서, 여기서 터득한 경험을 토대로 화성으로 점진적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ASA ”핵 추진 로켓은 기록적 속력으로 화성 갈 수 있어”
작년 12월 달 궤도를 돌고 온 아르테미스 1 단계의 오리온 우주선은 달~지구 공간을 시속 4만㎞로 날았다. 이는 음속의 32배에 해당하는 속력이다. 이 정도면 달을 오가는 데에는 충분한다. 그러나 우주선이란 좁은 공간에 갇혀서 7개월을 날아간다는 것은 숨막히는 고문이다. 게다가, 우주에서 쏟아지는 방사선 양은 지구에서의 100배다. 가려면 훨씬 빨리 가야 한다.
1월24일 NASA와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핵 추진(Nuclear Thermal Propulsion) 로켓을 공동 개발해서, “빠르면 2027년까지” 첫 궤도 비행 테스트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두 기관은 아폴로 프로그램의 새턴 5 로켓부터 인공위성 연료의 재급유, 지구 궤도에서의 로봇 활동 등에서 종종 연구·개발을 협업했다. 이 핵 추진 로켓이 얼마나 빨리 화성에 도착할지는 엔지니어들도 아직 모른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이날 발표에서 “기록적인 속력으로, 인간과 우주선이 심우주를 탐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두 기관이 공동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로켓의 이름은 DRACO. ‘지구~달 궤도에서의 민첩한 임무 수행을 위한 시범 로켓(Demonstration Rocket for Agile Cislunar Operations)’이란 뜻이다. 핵 추진 로켓은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로 액체 추진제(수소)를 가스로 만들고, 이 팽창된 가스를 로켓의 노즐을 통해 분사하면서 추력을 얻는다. 핵 잠수함이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열로 추진력을 얻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론상으로는, 화학 반응으로 액체가스를 연소시켜 추력(推力)을 얻는 지금의 화학 로켓보다 3배 이상 연료 효율적이고, 또 항해 시간을 단축시킨다. 탑재할 수 있는 중량이 훨씬 늘어난다.
두 기관의 협정서에 따르면, NASA는 핵 추진 로켓 엔진의 개발과 제조 과정에서 최종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이 DRACO를 탑재해서 우주를 나는 비행물체인 X-NTRV에 대한 권한은 DARPA에 있다. 이 비행물체는 지구 고도 700~2000㎞에서 테스트 비행을 하게 된다.
NASA와 DARPA 두 기관의 이익 일치
두 기관은 그동안 각각의 필요성에 따라 핵 추진 로켓 개발을 추진해왔다. NASA는 화성으로 우주인과 화물을 보다 빠르게 보낼 수 있는 로켓이 필요했다. NASA는 이미 1969년에 25톤의 추력을 내는 초소형 로켓용 원자로를 개발했고, 1979년까지 핵 추진 로켓으로 유인(有人) 화성 미션을 수행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예산이 삭감되고 미ㆍ소 냉전 확산 등을 우려해 이 프로그램은 폐기됐다. 또 로켓과 우주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원자로 사고의 위험성도 해결하지 못했다.
DARPA 역시 달과 지구 주변에서 유사시 우주 비행물체를 신속하게 기동(機動)해 적의 공격에 대응하고 타격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스파이 위성과 같은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에서 보면 ‘붙박이’처럼 떠 있어 적에겐 고정된 과녁이다. 그러나 기존의 핵 전지 또는 화학 추진 방식으로는, 우주에서 효율적인 추력 대(對) 중량비(thrust-to-weight ratio)를 얻을 수 없었다.
NASA와 미 에너지부는 2021년 초 핵 열추진(Nuclear Thermal Propulsion) 로켓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고, BWX 테크놀로지를 비롯한 3개 기업에 몇몇 기업에 NTP 원자로 디자인의 제작을 의뢰하는 계약을 맺었다. DARPA도 비슷한 시기인 2021년 4월에 제너럴 아토믹스에 원자로를 개발하고, 블루 오리진과 록히드 마틴에 이에 기초한 우주선을 개발하도록 하는 1단계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우주국은 롤스-로이스와 협업
영국우주국(UKspace)과 계약을 맺은 롤스-로이스도 1월27일 로켓용 원자로의 디자인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이 원자로는 우주선에 장착되거나 달과 화성의 우주 기지에 전력 공급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자로는 극한의 우라늄 핵분열 반응을 견딜 다중(多重) 보호막의 격납 시스템(containment system)을 갖췄다.
한편, 핵 자체는 이미 그동안에도 우주탐사에 사용됐다. 현재 항성간 탐사 중인 NASA의 보이저 1ㆍ2호, 화성에서 암석 샘플을 수집ㆍ보관하는 퍼시비어런스와 현장에서 샘플을 수집해 검사하는 큐리오시티 로버 2대도 핵 전지(RTG)를 장착했다. 그러나 RTG는 핵분열 원자로는 아니며,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