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민간 위성들,
인터넷처럼 연결한다

미 국방부 DARPA, 2025년 ‘스페이스-베이컨’ 가동
저궤도 민간 위성들 연결, 군용 네트워크로 활용
원조 인터넷 만들었던 DARPA, 우주에서도 시도
일부 민간위성들, 이미 레이저 빔으로 서로 통신

지난 17일 스페이스X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팰컨 9 로켓으로 자사의 스타링크 인터넷 서비스 위성 51개를 추가 발사했다. 현재 지구 저궤도(LEO)를 도는 스타링크 위성 수는 3981개. 스페이스X의 최종 목표는 4만2000개다.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도 지난 8일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자사의 인터넷 서비스 위성인 카이퍼(Kuiper) 3000개 발사를 허가 받았다. 스타링크나 카이퍼는 레이저로 연결된 위성들이 군집(群集)을 이루며 저궤도를 덮는다. 고도 2000㎞까지인 이 저궤도엔 10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군사 위성도 존재한다. 통신·감청·정찰·조기 경보·기상 관측·미사일 방어·무기 유도(誘導) 등 다양한 목적을 띤 이들 위성은 현대전에 필수적인 우주기반 군(軍)자산이다.
 


그러나 위성은 기본적으로 소속이 다른 위성이나 지상국(地上局)과는 ‘얘기’하지 않는다. 특별한 파트너십이 없는 한, 스타링크는 스타링크끼리, 카이퍼는 카이퍼끼리만 교신한다. 미 국방부·미 항공우주국(NASA)·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정부 소유 위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군사 위성의 최신 데이터가 지정된 지상국에서 수신되고 처리되기까지는 수 시간~수 일이 걸린다. 위성으로부터 적(敵)탱크 정보를 받아 대응에 나섰는데, 이미 탱크는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군사 위성들은 갈수록 위성파괴 무기의 공격에 노출되고, 전파로 위성과 교신하는 지상국은 해킹과 재밍(전파교란) 대상이 된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앞으로 수천~수만 개에 달할 미국의 저궤도 민간 위성들을 레이저 통신으로 연결한 군용 ‘저궤도 인터넷’을 만들자는 것이다. 


시작은 저궤도 군사위성들 연결한 ’블랙잭’
미 국방부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2017년부터 20개의 소형 위성들을 저궤도에 띄워 레이저로 연결하는 ‘블랙잭(Blackjack) 프로그램’을 출범했다. 지구정지궤도에 위치한 고가(高價)의 대형 군사 위성들 대신에, 저렴한 상업용 위성 본체(bus)에 군용 탑재체를 실어 군집으로 저궤도에 띄우고 레이저로 연결한다. 적의 공격으로 몇 개가 파괴돼도, 다른 위성들로 통신을 이을 수 있고 저가의 대체 위성을 바로 띄울 수 있다. 카드의 숫자 합이 21에 가까운 수를 먼저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카드게임 ‘블랙잭’처럼, 소형 위성들을 연결해 동일한 군사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다. 
 


DARPA는 2021년에는 이를 민간위성으로 확대해 2025년 저궤도에서 군용 통신 네트워크로 활용하는 ‘스페이스-베이컨(SPACE-BACN)’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우크라이나에서 증명된 저궤도 위성 스타링크의 위력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의 지상 통신망부터 파괴했다. 그래서 투입된 것이 민간 위성인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였다. 그러나 스타링크는 군용을 훨씬 능가하는 통신 수단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고도 3만6000㎞에 위치한 대형 통신위성을 이용했다. 이는 지구 절반을 커버하는 고도이지만, 그만큼 사용자가 많아 이용자의 대역폭(시간당 정보량)은 제한됐다.


반면에 광대역 통신 위성인 스타링크는 고도 550㎞에 위치해 좁은 지역을 커버하지만, 위성 하나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무렵이면 또 다른 스타링크가 나타난다. 지표면과의 거리가 짧아, 스타링크의 통신 지연은 평균 30 밀리초(1밀리초는 1000분의1초). 지구정지궤도에 위치한 위성의 통신 지연은 500 밀리초 이상이다. 작년 10월 우크라이나군은 7대의 해상 드론으로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정박한 러시아 해군 전함을 공격할 때, 스타링크로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가 제공하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며 작전을 수행했다.

 

우크라는 어떻게 위성으로 실시간 작전을 수행했나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작년 10월29일 러시아 전함의 해상 드론 공격 시 일부 영상/우크라이나군)

 

이런 수준의 통신 연결은 최근까지도 일반적인 군작전에선 불가능했다. 2011년 5월 오사마 빈라덴 사살과 같이, 백악관으로 현장 상황이 실시간 전달된 특수부대 작전에서나 볼 수 있었다. 정보를 필요한 곳에 적시(適時)에 공급하는 것은 늘 숙제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군 헬기가 폭발물이 있다는 곳으로 가는 동안, 드론이 폭발물의 이동 영상을 위성으로 여단 본부에 알리면 여단 본부는 중대 본부에 위성 전화로 이를 알리고 중대 본부는 순차적으로 무전으로 이 정보를 헬기에 전달했다. 그때마다 통신 지연 시간은 누적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사령부와 최전선 분대가 드론의 실시간 영상을 스타링크로 같이 보면서 공격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인터넷 통신 서비스를 하는 상업용 위성도 합법적인 타깃이 될 수 있다”고 협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부 민간 위성들은 이미 레이저 빔으로 교신
일반적으로 위성은 지상국 및 자사 위성과 전파로 교신한다. 그러나 스타링크와 같은 일부 민간 군집위성들은 이미 우주에선 레이저 빔(beam)으로 통신한다. 레이저 통신은 순식간에 일어나, 감청이나 재밍이 거의 불가능하다. 위성 간 통신이 발생했는지도 알 수 없다. 


 


또 레이저는 전파보다 전송 속도가 훨씬 빠르다. 레이저는 지금도 초당 약 2기가비트(GB)를 전달한다. 전파를 통한 것보다 200배가량 빠르다. 2시간짜리 고화질 영화(4GB)를 1분20초에 보낼 수 있다. 1GB는 1000 메가비트(MB)로, 지난달 전세계 4위를 기록한 우리나라의 이동통신 전송 속도는 초당 124메가비트였다.


’원조 인터넷’ 만들었던 DARPA “위성 인터넷 만들자”
DARPA는 2021년 9월에 ‘우주기반 적응형 통신 접속(Space-Based Adaptive Communications Node)’이란 프로그램을 발족했다. 앞 글자만 따서, 스페이스 베이컨(SPACE-BACN)이라고 부른다. 위성 제조ㆍ운용 주체에 따라 ‘끼리끼리’만 이뤄지는 위성 간 레이저 통신을 표준화해, 미 국방부의 광범위한 저궤도 위성 통신 네트워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DARPA는 1969년에 인터넷의 원조라 할 ‘아르파넷(ARPAnet)’을 구축한 기관이다. 당시에는 이름에 ‘D(국방)’가 없었던 ARPA는 국방 관련 연구소ㆍ대학들이 독자적으로 운용하던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패킷 교환 방식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위성 간 통신도 독자적으로 구축하지 말고 모든 위성이 연결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투기ㆍ미사일ㆍ지상국 등의 통신 루트가 그때그때 탄력적으로 달라진다. 지금은 스타링크 위성을 이용하지만, 10분 뒤에는 최단 거리에 있는 다른 민간 위성이나 미 우주군 소속 위성, 미 항공우주국(NASA) 위성을 경유할 수도 있다. 

 

스페이스-베이컨, 초당 100GB 전송 속도 원해
DARPA가 스페이스-베이컨 프로그램에 합류하는 민간 위성에 요구하는 레이저 송수신기(transceiver)의 전송 속도는 초당 100GB다. 1초에 여러 편의 고화질 영화를 보낼 수 있는 데이터 양이다.  약 10만 달러인 이 레이저 송수신기의 비용은 민간 위성사업자가 부담하되, 미국 정부가 이용료를 낸다. 스페이스-베이컨 시스템에 소속된 민간 위성은 이 표준 레이저 송수신기로 다른 기업 위성에 데이터를 전달하고, 그 위성은 적절한 지상국 안테나에 도달할 때까지 또 다른 기업 또는 정부 위성에 릴레이한다. 


스페이스-베이컨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그레그 쿠퍼먼은 “목표 지상국이 파괴되거나 적의 공격에 취약한 상태라면, 인근의 다른 위성이나 지상국으로 민감한 군사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당 7.8㎞ 나는 위성들을 레이저로 잇기 
이 프로그램에서 최대 과제는 두 위성을 레이저 빔으로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궤도 위성들은 초당 7.8㎞로 날아가면서, 자세가 바뀌고 구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 위성의 레이저 헤드를 연결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그러나 최근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 분야에서의 진전은 이미 인상적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뮌헨의 마이나릭(Mynaric)사는 모터로 구동하는 렌즈와 회전 거울을 이용해 레이저 궤적을 5700만분의1도로 조정할 수 있다. 1000㎞를 연결해도, 레이저 변위가 1m 미만이라는 얘기다. 또 아일랜드의 엠브리오닉스(mBryonics)사는 잠재적인 수신 위성을 찾기 위해서 먼저 나선형으로 넓게 신호를 보내고, 이 신호가 닿은 위성은 자신의 위치를 송신 위성에게 다른 주파수로 알려줘 중간에서 ‘악수’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스타링크 등 일부 민간 위성, 이미 장착한 듯
스페이스X는 작년 12월5일 민간 위성인 스타링크에 이어, 군용인 ‘스타쉴드(Starshield)’로 위성 사업을 확장한다고 발표하면서, 스페이스-베이컨 참여 의사를 밝혔다. DARPA는 작년 8월 스페이스X, 인텔, 아마존 등에 참여를 요청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스타링크와 카이퍼 위성은 이미 스페이스-베이컨의 표준 레이저 트랜시버를 장착했을 수 있다”며, 정지궤도에서 5개의 대형 통신 위성을 운용하는 바이어샛(Viasat)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광범위한 지상국 네트워크를 구축한 바이어샛은 앞으로 14개월 내에 3개의 정지궤도 위성을 더 발사한다.


DARPA는 올여름까지 최선의 서브(sub)시스템을 선택해서 2025년까지 저궤도에서 테스트를 하고, 이를 정지궤도 위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위성들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동맹국들에게도 스페이스-베이컨 합류를 종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