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지금 달은 몇시죠?

세계 각국 너도나도 달 탐사 나서는 지금
시간은 발사한 우주센터 기준으로 제각각
달을 오가는 수십건 미션 진행되는데...
국제적 표준 시간부터 정하는게 급선무

달의 하루는 지구일 기준으로 29.5일
지구의 시간 '세계협정시' 달에 적용 어려워

지난달 27일 유럽우주국(ESA)는 “달의 표준시를 정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성명을 냈다. ESA의 항법(navigation)시스템 엔지니어인 피에트로 조르다노는 “작년 11월 네덜란드의 유럽우주기술센터(ESTEC)에서 달에 구축할 문라이트(Moonlight)와 루나넷(LunaNet)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를 논의하다가, 달의 표준시를 정하는 것이 주요 선결 과제 중 하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문라이트는 ESA가 달 궤도에 구축하는 달 전용 항법ㆍ통신 위성 네트워크이고, 루나넷은 지구와 달의 원활한 통신을 위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네트워크 프로젝트로, 둘은 보완 관계에 있다. 
 


사실 달 표준시의 제정 필요성은 지난 수십년 간 달 탐사가 시작된 이래 꾸준히 제기됐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달 탐사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말 아르테미스 1단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각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의 달 미션이 앞으로 수년간 줄을 이었다. 올해만 해도, 4월엔 일본의 첫 민간 무인 착륙선 하쿠토-R이, 6월엔 미국의 노바-C 착륙선이 달에 도착한다. 미국의 또다른 민간 착륙선 페러그린도 조만간 발사 예정이고, ‘달 조사 스마트 착륙선(SLIM)’이라 명명된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탐사선도 3월말 발사된다. 이 밖에도, 인도의 찬드라얀-3 달 착륙선이 하반기에 달 착륙을 시도하고, 러시아가 작년에 세 차례 연기한 달 착륙 미션인 루나 25도 올해 계획이 잡혀 있다.

 

 
또 달 궤도엔 작년 말 한국의 달 탐사선 다누리호도 합류했고, 내년 11월부터는 달과 심(深)우주 탐사의 국제 관문(關門)이 될 루나 게이트웨이도 건설을 시작한다. 이어 달 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게이트웨이를 중심으로 달을 오가는 수십 건의 미션이 진행된다. ESA는 “이들 미션은 달 표면과 달 주위에서 동시에 활동할 뿐만 아니라, 종종 교신하고 통신을 중계하고, 합동으로 작업ㆍ관찰을 할 수 있다”며 “이 모든 상호 작용이 부드럽게 진행되려면,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달 표준시를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달의 시간을 정하는 게 그리 만만하지 않다. 많은 세부적인 사항들이 결정돼야 한다.


지금은 미션 수행 국가마다 제각각  
현재 달에서 활동하는 탐사선ㆍ착륙선의 시간은 그 우주선을 통제하는 센터가 위치한 지구의 현지 시간에 맞춰져 있다. 즉,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발사한 달 로버는 그 로버가 달의 어느 위치에서 언제 활동하든지 상관 없이 플로리다 현지 시간(미 동부시간)이 적용된다. 우주 탐사국은 자국 시간 기준에 따라, 대형 심우주 안테나를 이용해 자국 우주선에 탑재된 시계의 시간을 동기화했다. 

 


인간이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날은 종종 1969년 7월20일 오후10시56분으로 기록되지만, 이건 미국 동부시간(EST) 기준일 뿐이다. 우리나라 시간으론 다음날 오전4시56분이었다. 만약 미국 플로리다에서 통제하는 로버가 오전8시에 중국 하이난성의 원창(文昌)위성발사센터에서 발사한 착륙선과 조우한다면, 중국 착륙선은 이를 오후 9시로 기록한다. 
지금까지는 전세계 우주 탐사 건수가 소수이고 독립적으로 진행돼, 달 시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초(超)정밀 시간을 요하는 항법ㆍ통신 위성들의 배치, 지구와의 통신 네트워크 구축과 같이, 장기적인 달 체류 탐사에 필요한 인프라를 설계하면서 각국에 공통으로 적용돼야 할 ‘달 시간’이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지구에선 원자시계로 정하는 세계협정시(UTC)가 기준
전세계는 1884년 미국이 주도해서 지구의 남북극을 지나는 가상의 선을 정하고,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선을 경도 0°의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으로 합의했다. 이를 기준으로 경도 15°마다 한 시간씩 달라지는 그리니치평균시(GMT)가 시작했다. 국제사회는 1967년부터는 태양 대신에, 세슘과 같은 원자의 일정한 진동수를 기준으로 1초를 정하는 세계협정시(UTC)를 채택했다. UTC를 정하고, 전세계를 각각의 시간대로 나눴다. 우리나라는 GMT와 마찬가지로 UTC+9 시간대에 속한다. 


이 UTC는 파리에 있는 국제도량형국(BIPM)이 관리한다. BIPM은 전세계 70여 개 연구소에 위치한 약 450개의 원자시계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한달에 한번 전세계 표준 시간을 발표한다. 이 UTC는 인터넷과 국제 금융결제, 항공 등 우리 일상의 표준이 되는 시간이다. 


전세계 어디서든 정확한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의 GPS와 유럽의 갈릴레오와 위성항법시스템도 이 UTC가 있어서 가능하다. 이들 항법위성은 원자시계를 탑재하고 있다. 지구상의 GPS 수신기는 4개 이상의 항법위성들로부터 위성의 궤도상 위치와 전송 시간 정보를 받아 이를 초당 광속(光速)으로 곱한다. 이렇게 해서, 수신기와 각각의 위성 간 거리를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수신기의 정확한 위치를 도출한다.  그러나 우주엔 정해진 시간이 없다. 그래서 현재 고도 436㎞에서 지구를 하루에 16번(매90분 1회 공전)씩 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은 UTC+0으로 맞춰져 있다. ISS에도 초정밀 원자시계가 장착돼 있고, 이는 지구 시간과 계속 동기화된다.


달에도 그냥 UTC를 적용하면?
달의 시간을 정할 때에, 국제사회가 결정해야 할 우선 사항은 달에 ‘고유한’ 시간을 부여할 것이냐, 아니면 ISS처럼 지구의 UTC와 동기화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UTC를 그대로 달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UTC는 지구의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달의 하루는 지구일 기준으로 29.5일이다. 즉, 지구 기준으로 각각 14.75일에 해당하는 낮과 밤이 번갈아 되풀이된다. 또 지구와의 중력 관계 때문에, 달의 하루는 수초 간의 차이가 있다. 초정밀 원자시계에 기초한 UTC를 적용하기엔 달의 하루가 들쑥날쑥하다는 얘기다.


또 달에선 원자시계가 지구보다 ‘빨리’ 간다. 지구에서 원자의 움직임은 중력ㆍ기온ㆍ자기장 등의 영향을 받는데, 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1밖에 안 된다. 따라서 달에서 원자시계는 매일(24시간 기준) 56마이크로초(1마이크로초=100만분의1초)씩 빨리 간다. 이 중력차에 의한 ‘오차’는 사실 지표면의 원자시계와 약 2만㎞ 고도에 있는 GPS 항법위성의 원자 시계 간에도 발생한다. 그러나 GPS와 같은 항법위성의 원자시계는 계속 지표면과 비교해 보정(補正)하며, 환경적 요인에 의한 오차를 줄이는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앞으로 달 궤도 활동 증가해, 고유 시간 제정이 유용
NASA가 2025년말 우주인을 달에 착륙시키면, 이후엔 달 궤도 상의 루나 게이트웨이와 달 표면 간 통신과 협업 등의 상호 작용이 지구ㆍ달 사이보다 증가할 것이다. 유럽과 캐나다, 일본이 공동 제작하는 대형 달 우주화물선인 아르고넛(Argonaut)도 달에 착륙한다. 중국도 2030년까지 기지 건설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달 시간도 달에서 활동하는 우주인들에게 실용적이게 제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더(UCL)의 천문학자인 프랜시스코 디에이고는 유로뉴스에 “지구의 24시간이 태양의 위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듯이, 달도 태양이 뜨고 지는 낮 기간인 14일의 시간을 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달의 정가운데인 위도 0°를 기준으로, 태양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려해 달에도 시간대(time zone)를 설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원자시계의 정밀성이 달의 미약한 중력으로 더 빨리 가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ESA 측은 중력 차이 탓에, 달 궤도에 설치한 원자시계와 달 표면에 설치한 것 간에도 미세한 시간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달의 정확한 시간 정하기는 앞으로 NASA가 달에서의 정확한 위치 파악 및 지구와의 원활한 통신을 위해 구축하려고 하는 위성 네트워크인 루나네트(LunaNet)나, 달 궤도에 4개 이상의 항법위성을 띄워 이를 유럽의 26개 갈릴레오 위성과 연결하려는 ESA의 문라이트 이니셔티브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콜로라도대의 탐험ㆍ우주과학센터장인 잭 번스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달에서 시간을 맞춘다는 것은 달의 국제적인 개발 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달의 시간 제정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다음엔 화성 등 다른 행성들의 시간도 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