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보다 먼저 텍사스에
머스크 유토피아 만든다

"캘리포니아는 규제천국" 비판하던 머스크
텍사스에서 서울 강남 크기의 땅 사들여
테슬라·스페이스X 직원들 숙소 등 건설중
최근엔 지하터널까지 만드는 정황도
자치시로 만들어 시장도 따로 뽑고
조례·과세 등 머스크 뜻대로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지구상 어느 나라의 간섭도 받지 않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 사는 자치(自治) 정착촌을 짓는 것이 목표다. 머스크는 2012년 10월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내면서 “화성은 자유 행성이고, 지구의 어떤 정부도 화성에 제공되는 서비스, 스타십(Starship)을 이용한 이동 등 화성 활동에 대해 권위나 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화성 정착촌에서의 분쟁은 선의(善意)로 제정된 자치 원칙을 통해 해결된다”고 말했다. 작년 4월에도 비영리 강연회인 TED 인터뷰에서 “10년 동안 해마다 100대의 스타십을 제조해서, (지구·화성 간 최근접 주기인) 26개월마다 30일의 발사 가능 기간에 1000대의 스타십을 화성으로 출발시키겠다”고 밝혔다. 
 

민간기업 스페이스X가 화성에 어느 나라의 간섭도 안 받고, 정착촌을 건설해 운영할 권리가 있느냐에 대해선 국제법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스페이스X의 인터넷 위성통신 서비스인 스타링크의 이용 약관도 “지구와 달에서의 서비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州法)을 따른다”고 밝혔지만, 달을 넘어선 심(深)우주에 대해선 불분명하다.  

 

그러나 머스크는 2050년의 화성 정착촌 건설 이전에, 지구 상에서 자치 도시를 먼저 설립하기로 한 듯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를 비롯한 미 언론은 지난 9일 “머스크의 계열사와 임원들이 대표인 유한책임회사들이 미국 텍사스주의 일부 카운티에서 광활한 면적의 목초지, 농장을 사들여 앞으로 계열사 직원들이 거주할 자치시(自治市)를 건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가 카운티의 등기 서류와 토지 기록 등을 통해 확인한 머스크 계열사의 부동산 면적은 14.16㎢. 이밖에 머스크는 개인 명의로도 인근 지역에 24.28㎢의 땅을 갖고 있다. 둘을 합치면, 서울 강남구 면적(39.54㎢)에 약간 못 미친다. ‘머스크 타운’은 독자적인 시장에, 머스크가 원하는 조례·규칙을 갖게 된다.

 

 

머스크, 캘리포니아 떠나며 “과잉 규제·과세” 비판
머스크는 2021년 말 캘리포니아주 프리먼트 카운티에 있던 자신의 전기차 테슬라 본사를 텍사스 주도(州都) 오스틴으로 옮겼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의 와중에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카운티에 있는 테슬라 공장의 조업을 재개하려다가 공중위생 관리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캘리포니아에는 테슬라 외에도, 주요 도시 사이에 터널을 뚫어 전기차를 비롯한 첨단 교통수단의 신속한 이동을 현실화하려는 머스크의 보링(Boring) 컴패니, 스페이스X 본사도 있었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보링의 본사를 이전하면서 “캘리포니아는 과잉 규제와 과잉 소송, 과잉 과세의 땅으로, 지나친 영향을 행사하고 있지만 곧 쇠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텍사스는 토지 용도 설정 계획이나 환경ㆍ노동 관련 요구 사항이 적고, 느슨하게 규제되는 토지가 많다. 또 캘리포니아와 달리, 법인소득세와 개인에 대한 소득세ㆍ자본이득세가 없다.

 

스페이스X·테슬라·보링 직원이 함께 사는 ‘유토피아’

광활한 토지 구입의 주(主)된 계약자는 보링 컴패니이고, 보링과 머스크 기업의 임원들이 대표인 4개의 유한책임회사들은 최근 3년간 오스틴에서 약 55㎞ 떨어진 배스트롭 카운티에서 약 3500 에이커의 땅을 사들였다. 이는 14.16㎢에 해당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여의도 면적(2.9㎢ㆍ한강 공원과 둔치 제외)의 3배가 넘는다. 또 뉴욕시 한복판 센트럴 파크의 4배 정도 된다. 모든 토지 구입은 머스크의 승인을 받아 이뤄졌다.
 


WSJ는 이밖에, 머스크 개인 명의로도 인근에 약 6000에이커(24.28㎢)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사들인 면적을 합치면,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하다. 
 


머스크의 ‘유토피아’가 들어설 도시의 이름은 스네일브룩(Snailbrook). 현재 보링과 스페이스X의 창고 시설, 이동식 주택들, 수영장, 체육관, 야외 체육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 지난 1월 배스트롭 카운티에 제출한 문서에는 이곳에 110채의 주택을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이 도시 계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머스크 개인의 주거 콤플렉스도 들어선다. 
 


작년부터 보링 사 직원은 약 800달러의 월세를 내는 침실 2~3개 딸린 주택을 신청할 수 있었다. 또 스페이스X 직원도 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퇴사하거나 해고되면 30일 내에 집을 비워야 한다. 배스트롭 카운티의 중간(median) 임대료는 월 2200달러. WSJ는 “머스크의 임원들이 머스크 소유 모든 회사 직원들에게 주택을 개방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도 따로 뽑고, 머스크가 조례 정할 수 있는 자치시가 목표
보링 컴패니의 대표이자 머스크의 최측근 참모인 스티브 데이비스는 ‘정착촌’만의 시장을 따로 뽑는 자치시 자격을 신청하는 것을 비롯해, 도시 전체를 새로 짓는 것에 대한 생각을 직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공유했다고, WSJ는 보도했다. 자치시로 승인되면, 과세ㆍ토지 사용 규제, 경찰ㆍ소방대 제공 등에서 독립성을 유지하게 된다. WSJ는 “머스크는 자신의 자치시에서 일부 규정을 설정하고, 자신의 도시 관련 계획을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전했다. 
 


텍사스 주법에 따르면, 거주민 201명 이상이 자치시 신청을 할 수 있으며, 스네일브룩이 속한 베스트롭 카운티의 판사가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카운티 측은 머스크나 그의 기업들로부터 관련 신청 서류가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관료주의 아웃! 중요한 것은 스피드
머스크가 주도 오스틴이 속한 트래비스 카운티에 위치한 10㎢(약300만 평)의 땅에 지금의 테슬라 공장인 기가 팩토리 텍사스를 지을 때에도, 거듭 확약을 요구한 것은 관료주의가 자신의 여러 프로젝트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오스틴 시장이었던 스티브 애들러는 WSJ에 “그가 시로부터 원하는 것은 스피드였다”고 말했다. 보링 컴패니와 스페이스X는 현재 오스틴 외곽의 배스트롭 카운티 곳곳에 시설물을 짓고 있다. 
 


베스트롭 카운티의 한 관리는 WSJ에 “카운티 규모가 작아서 바로 현장에서 공무원과 직접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머스크에겐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운티의 도시공학 파트 일부 관리들은 작년 6월 “머스크 회사들이 카운티 규정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불완전한 신청서를 접수하고는 신속히 승인해 달라고 많이 괴롭혔다”고 주변에 얘기했다고 한다. 


기존 주민들 “온통 비밀” 불만
그러나 이곳의 얼마 안 되는 기존 주민들은 카운티도 밀어붙이기만 하고, 모든 것이 비밀과 의문투성이라고 말한다. 이곳에 사는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WSJ에 “이 사람들은 모든 것이 비밀이고, 남들이 뭘 하는지 알기 전에 일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드론을 띄워, 이곳의 새로운 보링 컴패니 시설과 스페이스X 건물 사이에 지하 터널이 건설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보링 측은 최근 주정부에 하루 최대 14만 갤런(530톤)의 공업폐수를 콜로라도 강에 방류하는 것을 허가해 달라는 신청서를 냈다. 

 


일부 주민은 터널 공사와 폐수 방류 등이 지하 대수층(帶水層)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한다. 그러나 머스크와 그의 측근, 변호사는 모두 WSJ의 ‘텍사스 유토피아’와 관련한 인터뷰 요청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