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머스크만큼
우주에 신경쓴다

"화성에 왜 가냐, 차라리 백신을 만들라"
머스크에 비판적이었던 게이츠
알고보면 친환경 로켓·통신에 지속적 투자

지난 7일 미국 우주사령부는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 있는 중소형 로켓 발사시설(launch complex) 4곳을 추가로 미 로켓제조사에 임대했다.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센터와 우주군 기지를 관리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와 우주사령부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발사대를 민간 로켓제조사에 임대한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2014년 달 착륙 아폴로 프로그램의 산실이었던 39A 발사대를 NASA로부터 20년간 사용권을 얻었다. 


이날 임대된 발사대 중엔 우주발사 콤플렉스(SLC) 14도 있었다. SLC 14는 1960년 2월 머큐리-애틀라스 6 로켓이 미국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데 성공한 존 글렌이 탄 우주선 프렌드십 7호를 쏴 올렸던 곳이다. 머큐리(1958~1963년)는 미국의 첫번째 유인(有人) 우주프로그램이었다. 


이런 의미 있는 발사대를 임차하게 된 로켓 제조사는 미국 워싱턴주 켄트에 소재한 스토크 스페이스(Stoke Space). 그런데 2019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아직 단 한 대의 로켓도 발사해 본 적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투자한 회사다. 이런 신생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며 전용(專用) 발사대를 얻게 된 것도 게이츠 덕분이다. 스토크 측은 “유서 깊은 SLC 14를 재가동할 수 있도록 신뢰를 받아 매우 기쁘며 영예스럽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평소 미국의 다른 억만장자들이 지구의 환경 재앙 방지가 아니라, 우주 여행ㆍ행성 탐험에 돈을 쏟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게이츠는 지난달 3일 BBC 방송 인터뷰에서도 (머스크가) 화성에 가려는 것이 돈을 잘 사용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내 견해로는 아니다”며 “화성에 가는 것은 사실 매우 돈이 많이 든다. 1000달러 당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따지면, 홍역 백신을 사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화성에 가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로켓 제조사에 투자한 것일까. 물론 2단 로켓을 개발 중인 스토크 스페이스는 친환경적인 클린 로켓 연료를 개발하고, 1ㆍ2단 전체를 재사용할 수 있는 로켓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친환경’이란 게이츠의 테마를 담고 있다.


 


사실 게이츠의 ‘우주 꿈’은 훨씬 오래됐다. 그는 1994년 지구 저궤도를 500개의 소형 위성으로 덮는 위성군집(群集) 네트워크에 처음 투자했다. 머스크의 스타링크 군집 위성, 제프 베이조스의 카이퍼 프로젝트보다 20년 이상 빨랐다. 그러나 게이츠의 위성은 단 한 개도 발사되지 못했다. 너무 일렀다. 지금처럼 인터넷 위성통신 수요가 많지 않았고,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지구 환경 보호를 테마로 한 우주 개발에 여전히 투자한다. 


스토크 스페이스 “달나라 여행 가는 로켓은 안만든다”
스토트 스페이스에 대한 게이츠의 투자는 그가 세운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에너지의 자회사인 브레이크스루에너지 벤처를 통해 이뤄진다. 브레이크스루에너지는 여러 건의 재생·클린 에너지 개발에 투자한다. 브레이크스루에너지 벤처는 2021년 12월 스토크에 대한 65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펀딩을 주도했다. 시리즈 A는 씨드(seed) 펀딩 다음 단계의 초기 투자를 말한다. 


스토크 스페이스는 2019년에 블루오리진과 스페이스X 직원들이 나와서 만든 회사다. 클린 연료를 사용하고, 1단 로켓과 탑재물이 들어가는 원추형의 페어링(fairing)공간을 포함한 2단 로켓까지 완전히 재사용하는 로켓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블루오리진 출신인 스토크의 대표 앤디 랩사는 “2020년 후반이 될수록 로켓 발사 수요가 더욱 늘어나, 지금의 우주발사체 산업은 이를 다 소화할 수가 없다”며 “완전 재사용 로켓을 만들어, 매번 로켓 만드는데 들이는 노력을 로켓의 성능 개선ㆍ신뢰성 향상과 같은 효과적인 운영에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브레이크스루에너지 벤처 사의 파트너인 크리스천 가르시아는 지난 1월 CNBC 방송 인터뷰에서 “스토크의 로켓은 달이나 화성에 가는 여행용이 아니며, 지구 기후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그는 “우주관련 기술은 탈(脫)탄소화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메탄 누출ㆍ산불 발생의 실시간 감지, 탄소를 포획하는 숲과 바다와 같은 자원의 보호 등에 초점을 맞춘 위성을 많이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토크 스페이스는 또 대기권 재진입 시 우주선 동체의 마찰열을 줄이는 히트쉴드(heat shield)의 소재도 통상 쓰이는 세라믹 대신에 금속성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작년 12월 성공적으로 복귀한 NASA의 아르테미스1 오리온 캡슐도 대기권에 들어와 약 2760도의 고온을 견디면서 일부 방열 소재가 떨어져 나가고, 외관도 그을렸다. 
 

 

스토크 스페이스가 재사용 로켓 개발에서 현재 넘어야 할 첫 관문은 호퍼(hopper) 테스트. 낮은 고도에서 로켓 원형(prototype)을 수직으로 이·착륙시키며, 엔진과 랜딩 레그(landing legs) 등 주요 부품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로켓 모양이 ‘뛰는 벌레’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호퍼라 불린다. 


재사용 로켓의 선두 기업인 스페이스X는 주(主)로켓인 팰컨 9의 호퍼 테스트를 2021~2013년에 마쳤다. 스토크 스페이스가 언제 SLC 14에서 풀(full) 테스트를 할지는 미정이다. 


스타링크·카이퍼 위성 20년 전에 텔레데식 있었다
게이츠는 지금 군집위성으로 유명한 스타링크와 카이퍼가 있기 훨씬 전에, 지구 저궤도를 수백 개의 소형 위성으로 덮는 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의 텔레데식(Teledesic) 위성 프로젝트였다. 시애틀의 케이블 TVㆍ통신업계 거물이었던 크레이그 매코(McCaw)가 아이디어를 냈고, 게이츠는 “매코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통신 산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며 합세했다. 매코의 생각은 2000년까지 840개 위성을 고도 800㎞의 저궤도에 올려, 전세계의 어느 오지(奧地)에서도 음성ㆍ데이터ㆍ영상의 광대역 인터넷 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전체 사업규모는 무려 90억 달러. 두 사람이 최초에 각각 500만 달러를 냈고, 게이츠는 이후 수백만 달러를 더 투자했다. 이어 보잉 사가 1억 달러, 모토롤라가 7억500만 달러, 사우디의 부호 왕자인 알왈리드 빈 탈랄이 2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나 ‘수요 예측’이 틀렸다. 게이트는 텔레데식의 이용자가 수천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텔레데식은 또 핸드폰이 아니라, PC 기반의 통신이었다. 지상 기반의 통신 네트워크가 엄청난 속도로 확대되면서, 결국 사막이나 해상, 깊은 산속과 같은 곳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려는 컴퓨터 이용자나, 지상 네트워크의 ‘비상용’으로 위성 인터넷 연결을 하려는 선진국 이용자 수는 제한돼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1999년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위성통신 기업 이리듐이 파산했다. “하늘에 인터넷을 깔겠다”는 매코의 생각은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는 프로젝트로 간주됐다.


보잉과 손잡은 것도 실책이었다. 당시 보잉은 위성의 설계와 제작, 발사에 이르는 전(全)과정에서 ‘공룡’이었지만, 보잉 자체가 중대형 통신 위성을 제작하고 있었다. 보잉은 소형 위성의 숫자를 줄이고 중대형을 포함할 것을 고집했고, 결국 텔레데식 군집위성 수는 288개로 줄었지만, 끝내 단 한 개의 위성도 발사하지 못했다. 2002년 텔레데식은 영구 동면(冬眠)에 들어갔다. 


지구 곳곳을 24시간 생중계하는 어스나우(EarthNow)
2018년 4월 게이츠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회장, 에어버스와 함께 저궤도에 약 500개의 위성을 띄워 지구의 거의 모든 곳을 24시간 생중계하는 군집위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총 사업비는 10억 달러. 영국의 위성통신사 원웹이 설계한 위성을, 에어버스가 프랑스 툴루즈와 미국 플로리다에서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이었다. 


어스나우는 특정 시간에 촬영한 이미지만 제공하는 위성 사진과는 달리, 24시간 내내 이용자가 스마트폰과 PC로 원하는 곳을 계속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불법 조업 현장을 추적하고, 분쟁 지역에서의 난민 이동 경로, 화산 폭발ㆍ홍수와 같은 재난 상황을 계속 볼 수 있게 해, 민간과 국가 안보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이었다. 또 위성에 장착된 인공지능(AI)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에 따라 이용자들이 보고 있는 것을 ‘해석’해 줄 수 있게 했다. 


당시 어스나우의 CEO 러셀 해니건은 “칼라 영상으로 지평선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관찰할 수 있고, 줌인해서 특정 지역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이 프로젝트가 처음 알려지자, 개인 사생활 침해 여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어스나우 측은 개인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해상도는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어스나우가 상용화됐으면, 지금쯤 일반인도 누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었겠지만, 어스나우는 후속 뉴스가 전혀 없고 휴면 상태다. 


위성 통신 안테나 카이메타에 7800만 달러 투자
그러나 빌 게이츠는 우주를 기반으로 한 통신에 대한 투자를 멈춘 적이 없다. 게이츠는 지구 저궤도와 정지궤도의 위성, 지상 통신망에 모두 접속하는 안테나를 제조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카이메타(Kymeta)의 주요 투자가다. 2012년에 설립된 비상장 기업인 카이메타가 작년 2월 8520만 달러 어치의 투자 펀딩을 했을 때에도, 게이츠 회사가 7800만 달러를 투자하며 주도했다. 피자박스 크기만 한 카이메타의 U8 안테나는 비행기·자동차·기차 등 모든 이동수단에 장착돼서 지상 네트워크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최적의 통신이 가능하게 정지궤도·저궤도 위성과 연결한다. 이미 구급대원들이 U8 안테나를 통해 외상(外傷)센터의 외과 의사와 위성으로 연결해, 오지에서 사고를 당한 환자를 응급 수술을 하고, 소방대원들이 드론으로 찍은 영상을 몸에 부착된 스크린으로 보면서 진화(鎭火)하는 시범을 보였다. 


카이메타의 CEO 더그 허치슨은 작년 CNBC 방송 인터뷰에서 “우리 안테나는 시속 965㎞로 나는 여객기, 급격한 턴(turn)과 급강하하는 전투기를 시속 2만7300㎞로 나는 위성과 연결시켜 준다”며 “머스크가 테슬라 차량에 위성통신 기술을 장착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우리에겐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미국과 같은 지역에서) 자동차가 도심의 이동통신망에서 벗어나서도 완벽하게 자율주행을 하려면 여유 있게 4,5개의 광대역 통신망과 연결돼야 해, 카이메타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카이메타는 초당 1기가비트(1000 메가비트) 송수신 연결을 목표로 한다. 스타링크의 다운로드 속도는 평균 300 메가비트다. 


NASA의 달 원자로 개발에도 게이츠 회사 참여?
빌 게이츠는 또 2008년에 차세대 첨단 원자로를 개발하는 테라파워(TerraPower)를 설립했다.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많은 양의 에너지로 물을 증기로 바꿔,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한다. 게이츠는 클린 에너지로서 원자력 발전을 주창한다. 테라파워가 개발하는 차세대 첨단 원자로는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를 원료로 쓴다. 현행 원자로에서 쓰는 우라늄 235 연료의 농축 정도가 5%인 것인데 반해, HALEU는 5~20%에 달해 단위 부피 당 전력 생산량이 많다. 또 원자로의 냉각제로, 물 대신에 비등점이 높고 더 많은 열을 흡수할 수 있는 액체나트륨을 쓴다. 이렇게 되면, 원자로 내에서 증기가 쌓여 고압이 형성돼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기존보다도 훨씬 낮아진다. 또 핵폐기물의 배출량도 기존보다 훨씬 적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조선해양이 425억원, SK가 3000억원을 테라파워에 투자했다.  

 


한편, NASA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따라 달에서 우주인들이 장기 체류하면서 쓸 동력원으로 HALEU 연료로 가동되는 10KW급 원자로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게이츠가 관심을 갖는 분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