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처럼 뛸 필요없어요,
3000억 신상 우주복 [영상]

NASA, 액시엄 스페이스에 주문한 차세대 우주복 공개
남녀 공용, 깡총깡총 뛸필요없어...화장실도 옷에 장착한 듯

아폴로 17호(1972년) 이후 50여 년 만에 다시 달에 착륙하게 될 우주인이 입을 차세대 우주복이 15일 미 항공우주국(NAS)의 텍사스주 휴스턴 존슨 우주센터에서 공개됐다. NASA는 달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Artemis)의 3단계인 2025년말쯤 여성과 유색인종으로 구성된 우주인 2명을 달에 착륙시켜 1주일 간 머물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작년에 우주기술 기업인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액시엄(Axiom) 스페이스과 2억2850만 달러(약 3000억 원)짜리 1차 계약을 맺고, 새 우주복 제작을 의뢰했다.

 

 

NASA는 1981년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주유영(游泳)에 적합한 우주복을 제조했지만, 이후 40여 년간 새 우주복을 만들지 않았다. 2021년 NASA는 지상 훈련과 실제 우주유영에 쓸 수 있는 우주복은 모두 11개라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새 우주복은 거추장스럽게 두터웠던 기존 우주복보다 훨씬 날렵한 모양이었다. 이전 우주복은 타이어를 쌓아 놓은 것 같다고 해, ‘미쉐린 맨(Micherin Man)’이라 불렸다. 액시엄에서 새 우주복을 개발한 수석 엔지니어 제임스 스타인은 이날 직접 짙은 회색의 ‘액시엄 선외우주활동복(AxEMU·Axiom Extravehicular Mobility Unit)’을 입고 나와 몸을 굽혀 물건을 집고, 쪼그려 앉고 비트는 등의 여러 몸 동작을 시연했다. 

 


액시엄 측은 올해 늦여름까지 두 개의 차세대 우주복을 제작해, NASA에 전달할 계획이다. NASA는 또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사용할 새로운 우주유영 우주복의 제작도 다른 우주기술기업인 콜린스 스페이스에 의뢰했다. NASA가 이 두 종류의 우주복 제작 지원과 사용료를 위해, 두 기업과 2034년까지 맺은 계약비는 35억 달러(약 4조6000억 원)에 달한다.


남녀 공용에, 90%의 체형 수용할 수 있어 

이날 공개된 차세대 우주복은 남녀 공용이며, NASA는 “남녀 체형의 90%를 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액시엄에서 새 우주복을 개발한 부(副)책임자인 러셀 랠스턴은 “우주복의 팔·다리 각 파트는 사이즈별로 교환이 가능하고, 라지·미디엄·스몰 사이즈 내에서도 착용 우주인의 체형에 맞춰 조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NASA 우주복은 남성 위주였고, 다양한 체형을 소화할 수 없었다. 2019년 3월 NASA는 최초로 여성 우주인 2명만으로 ISS 밖 우주유영을 계획했지만, 애초 선발됐던 앤 매케인은 ISS에 있는 우주복이 그가 지상에서 착용했던 것보다 커서 다른 여성 우주인으로 교체됐다. 또 기존 우주복은 아래에서 위로 착용하지만, 새 우주복은 뒷면의 개구부(開口部ㆍhatch)를 통해 발부터 넣고 이어 팔을 넣은 뒤에 몸을 움직여 착용하면 외부에서 해치를 닫아주는 방식이다. 


새 우주복은 낮(지구일 14일)에는 120°C, 밤에는 -173°C까지 내려가는 달 남극의 극한 기온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다. NASA는 액시엄 측에 선외우주활동복(xEMU) 제작과 관련한 기술 조언을 하고, 새 우주복에 필요한 제원을 제시했다.

 

NASA ”더 이상 토끼처럼 뛸 필요 없다” 
새 우주복에서 헬멧에 해당하는 크고 투명한 버블(bubble)은 아르테미스 우주인들이 물과 얼음을 찾아 달 남극의 어두운 충돌구를 탐험할 때에 넓은 가시성(可視性)과 조명을 제공한다고, NASA 측은 밝혔다. 이 버블 헬멧엔 또 고화질 카메라가 장착돼, 우주인들의 활동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NASA 지휘센터로 전송한다. 생명유지 시스템을 포함한 배낭은 기존 것보다 더 작아져, 추가로 백업 시스템을 장착할 공간도 있다. 액시엄 측은 “멋진 스쿠버 탱크와 에어컨이 하나로 결합됐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밝혔다. 
 


NASA와 액시엄 측은 또 우주복의 하반부에 많은 관절을 장착해, 유연성과 이동성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이전 디자인에선 표면에서 물체를 집을 수 없었고,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기도 쉽지 않았다. NASA 존슨 우주센터의 디렉터인 바네사 와이쉬는 이날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토끼처럼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진짜 걸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액시엄 측은 “새 우주복의 절반가량은 NASA의 기존 선외우주활동복을 기반으로 했고, 부츠와 헬멧 버블, 상반신 부분에서 세부 사항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액시엄 측은 공기가 우주로 새는 것을 막는 압력복과 장갑에, 자사 엔지니어링이 집중적으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반인이 보기에는 팔꿈치의 관절식 연결 부위, 생명유지 장치를 위한 배낭, 헬멧으로 이어지는 몸통 등 기본 실루엣은 그대로였다. 


공개된 것은 짙은 회색이지만, 실제 우주복은 흰색
새 우주복은 무릎과 어깨, 발목, 부위에 오렌지색과 네이비색이 특징적으로 살짝 섞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짙은 회색이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은 이날 공개된 것만으로는 최종 외관을 짐작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짙은 회색의 외관은 액시엄 스페이스가 자사의 독점적 기술을 가리기 위해, 우주복 위에 씌운 보호 피막(皮膜)이기 때문이다. 실제 달에서 활동할 때 입는 우주복은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할 수 있도록, 이전과 마찬가지로 흰색이다. 또 극한의 온도와 방사선, 먼지로부터 우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단열층이 장착됐다.


애플+ TV가 제작한 달 드라마의 의상 전문가 조언 받아
액시엄 측은 특징 있는 우주복 디자인을 위해, 자동차와 석유ㆍ가스 분야, 드라마 업계 등 다양한 산업계 디자이너들로부터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애플 TV+의 달 식민지 드라마 시리즈인 ‘모든 인류를 위하여(For All Mankind)’에서 의상을 맡은 디자이너 에스터 마퀴스가 새 우주복의 디자인을 주도했다. MIT의 우주복 전문가인 니콜라스 드 만쇼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새 우주복이 앞으로 대중이 우주에 갖는 이미지와 상상력을 장악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디자인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스페이스X 사도 ISS를 오가는 자사의 드래곤 캡슐 내에서 우주인들이 입는 우주복의 디자인을, 영화 ‘배트맨 vs. 수퍼맨’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의상 디자이너였던 호세 페르난데스에게 맡겼다. 


NASA, 14년간 자체 개발 시도했지만…
NASA의 새 우주복 개발 과정은 최근 10년 간 NASA가 주요 프로젝트의 상당 부분을 민간의 창의성과 혁신에 의존해 과감하게 아웃소싱해 온 것과 방향이 일치한다. NASA는 ISS로 우주인과 화물을 이송하는 우주선 제작을 스페이스X와 노스럽 그러먼, 보잉에 의뢰했고, 현재도 달 탐사에 필요한 장비 이송을 민간 우주기업들에 맡기고 있다. 


NASA는 애초 새 우주복을 자체 개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14년 간 2억 달러를 쓰고도 제품을 내놓지 못했고, 2021년 8월 자체 감사에선 “NASA 우주복 제조는 빨라도 2025년 4월 돼야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작년에 자체 개발을 포기하고, 액시엄 스페이스와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두 기업과 계약을 맺었다. 새 우주복의 소유권은 액시엄 측에 있다. NASA는 렌터카처럼 이 우주복을 빌려 쓰고 사용료를 지불한다. 액시엄 측이 지상 훈련과 실제 우주활동에 쓸 새 우주복과 관련 하드웨어 일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액시엄은 현재 NASA 출신 우주인을 선장으로 한 민간 우주인들이 1주일 간 ISS에 머물고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여행 프로그램도 주관한다. 이미 작년 4월에 4명의 민간인이 17일간 우주를 다녀오는 Ax-1 미션을 마쳤고, 올 5월에 Ax-2 미션이 출발한다. 액시엄 측은 또 내년에 민간 차원에선 처음으로 ISS에 장착되는 모듈인 ‘액시엄 해브 원(Hab One)’도 발사한다. 액시엄은 새 우주복을 변형해, 이 모듈에 머무는 민간 우주인들의 우주유영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NASA는 액시엄으로부터 받은 새 우주복을, 2024년 한 해 동안 존슨 우주센터의 무중력부양연구소(neutral buoyancy lab)에서 테스트한다.  


우주복 속에 화장실 ‘빌트-인’ 된 듯
NASA는 새 우주복을 자체 개발하던 2018년에 우주인들이 우주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빌트인(built-in) 화장실’을 장착하겠다고 밝혔었다. 따라서 액시엄의 새 우주복에서도 ‘빌트인’ 방식이 적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날 발표에선 언급이 없었다. 

 


과거 남성 우주인뿐이었던 아폴로 시절에는 생식기와 연결된 튜브를 우주복 밖의 소변통으로 연결했다. 여성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우주왕복선 시절에도 우주복은 남성용으로만 제작된 탓에, 여성 우주인은 비상 시에 대비해 기저귀를 우주복 내에 착용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