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짜리 부품이
버진 오빗 추락에 쐐기

‘공중 발사’ 로켓기업 '버진 오빗' 파산보호 신청
잘나가던 이 우주기업, 왜 추락했나

100달러짜리 연료필터 때문에
10억달러 거대 프로젝트 실패
1년에 발사 고작 2번꼴, 현금 부족에 시달려
영국 억만장자 브랜슨도 투자 의향 없어

영국의 억만장자 리처드슨 브랜슨이 75%의 지분을 보유하며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던 소형 위성 발사체인 버진 오빗(Virgin Orbit)가 지난 3일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챕터 11)을 했다. 파산보호 신청은 우리나라의 법정관리와 비슷하게 법원의 감독을 받으며 마지막 회생(回生) 노력을 하는 제도로, 이제 버진 오빗은 인수자를 기다리며 100명가량의 필수 직원이 남아 회사를 꾸려가는 처지가 됐다. 끝내 회생에 실패하면 청산(淸算) 절차를 밟는다. 
 


B747-400 점보 여객기에 장착한 소형 로켓을 공중에서 발사하는 버진 오빗은 2021년 12월 30일 미국 나스닥 시장에 처음 상장될 때만 해도 40억 달러(약 5조2427억 원)짜리 회사로 평가됐다. 그러나 불과 15개월 뒤인 3월 15일 비용 절감을 위해 일시적인 운영 중단을 발표했고, 3월31일 전체 인력의 85%인 675명을 해고했다. 주가는 4일 현재 15센트(약 200원)까지 떨어졌고, 회사 가치는 5021만 달러(시가총액 기준·약 658억 원)로 추락했다. 버진 오빗이 현재 보유한 현금 자산은 70만 달러에 불과하다. 브랜슨은 직원 퇴직금 및 감원에 따른 비용을 위해 1090만 달러를 투입했고, 버진 오빗 지분의 75%를 갖고 있는 버진 인베스트먼츠 사는 인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운영자금 3160만 달러를 빌려주기로 했다.
 


작년 1월 초,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스퀘어에 21m짜리 공중 발사 로켓인 런처원(LauncherOne)을 전시하고 기업공개(IPO)를 축하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현실이다. 한때 소형위성을 신속하게 발사할 수 있는 비즈니스로 주목받던 버진 오빗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버진 오빗은 분기별로 5000만 달러씩 까먹고 있었다. 반면에 로켓 발사는 1년에 두 차례에 불과했다. 우주산업 분석가들은 “이 같은 로켓 발사 빈도(cadence)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버진 오빗에게 흑자 전환의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었던 지난 1월 9일 영국 콘월 우주기지에서 있었던 발사는 2단 로켓이 궤도 진입에 실패하면서 공중에서 불타버렸다. 버진 오빗이 런처원 로켓을 개발하는 데 쓴 돈은 10억 달러(약 1조3142억 원)가 넘는다. 하지만, 기업의 몰락에 쐐기를 박은 콘월 기지 발사 실패를 초래한 것은 불과 100달러짜리 연료 필터의 이탈이었다. 

 

대형 여객기 뜰 활주로만 있으면 발사 가능한 로켓 
버진 오빗의 런처원은 ‘우주 소녀(Cosmic Girl)’라 부르는 B747-400를 개조한 여객기의 동체 하단에 부착돼 고도 10㎞까지 오른 뒤에, 분리돼 발사되는 2단 로켓이다. B747이 이·착륙할 수 있는 길이의 활주로만 있으면, 어느 나라에서든 신속하게 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 


비행기를 이용한 공중 발사 로켓은 버진 오빗이 처음은 아니었다. 1990년 5월 미국의 오비털 사이언스(Orbital Sciences)는 B-52를 통해 페가수스(Pegasus)라는 로켓을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오비털 사이언스는 이후 미국의 방산(防産)·우주기업인 노스럽 그러먼 사에 인수됐고, 페가수스는 지금까지 45차례 발사돼 소형위성을 저궤도에 올렸다.
 


그러나 버진 오빗은 이보다 훨씬 싼 비용에 로켓을 발사하겠다고 했다. 브랜슨은 2019년에 “버진 오빗은 전쟁으로 위성이 파괴돼도, 24시간 내에 교체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로켓 기업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또 작년 10월 중순, 이 회사의 CEO 댄 하트는 파이낸셜 타임스(FT)에 “저궤도에 소형위성을 안착시키는 것이 안정화되면, 런처원에 3단 로켓을 장착해 저궤도보다 훨씬 높은 중궤도ㆍ지구정지궤도까지 위성을 쏴 올리겠다”고 말했다. 런처원 로켓은 2020년 5월25일 처음 궤도에 진입하는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수시로 저궤도의 위성들을 교체 발사해야 하는 각국 군(軍)당국과 소형위성 운영사들이 주목했고, 작년말까지 밀린 발사 주문량은 1억4300만 달러에 달했다.


1년에 고작 두 번 꼴로 발사…만성적인 현금 부족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 본사를 둔 버진 오빗은 2021년 1월 큐브샛 10개를 저궤도에 진입시킨 것을 시작으로, 작년 7월까지 4차례 연속으로 런처원 발사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33개의 위성을 궤도에 올렸다. 모두 캘리포니아주의 모하비 항공우주기지에서였다. 그러나 소형위성 발사에 특화됐다고는 하나, 발사 빈도가 너무 미미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예상과는 달리, 탄력적인 발사 일정을 활용할 미 국방부의 ‘전술적’ 소형위성 발사 수요가 많지 않았다. 또 여객기 날개에 붙어 이륙하는 런처원은 스페이스X의 로켓들에 비해, 전체 탑재용량이나 신뢰도 면에서 떨어졌다. 


미 경제전문 방송인 CNBC는 3일 “반기(半期)에 5000만 달러가 소요되는 운영 비용을 상쇄하려면 연간 12번 이상의 발사가 이뤄져야 했다”고 분석했다. CEO인 댄 하트도 기업 공개 때 “2022년엔 7번 발사하겠다”고 했지만, 작년 발사 건수도 전년(前年)과 같은 2회에 그쳤다. 


또 나스닥 상장을 통한 신규 자금 유입은 기존 투자가들이 보유 주식을 현금화하면서 2억2800만 달러에 그쳤다. 애초 예상은 4억8000만 달러 규모였다. 자매 회사인 우주여행 전문 기업인 버진 갤럭틱과 버진 인베스트먼츠가 투자와 채권 발행을 통해 지금까지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부었지만, 버진 오빗은 늘 현금이 부족했다. 결국 버진 오빗은 “열기와 혁신적인 테크놀로지만으로는 상응하는 멋진 기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우주산업에서 종종 있는 얘기의 되풀이”(CNBC 방송)가 됐다. 


우주산업 분석기관인 유로컨설트(Euroconsult)의 전문가 맥심 퓨토는 FT에 “영국의 콘월 우주기지로 발사 장소를 옮긴 것도 실책이었다”고 말했다. 그때까지 버진 오빗은 런처원을 미국 모하비 기지에서만 발사했다. 퓨토는 “4차례 발사에 성공하고 추가로 바로 투자금을 끌어 모았어야 했는데, 버진 오빗은 국제 고객들을 겨냥해 영국에서의 역사적인 발사라는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게 성공하면, 일본·브라질·호주·중동 지역의 기존 민간 공항에서 런처원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정부도 영국에서 처음 있는 로켓 발사를 통해, 위성 제조에서부터 로켓 발사에 이르기까지 전(全)과정에서 우주강국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영국우주국(UKSA)는 콘월 뉴키 공항을 저궤도 위성 발사의 허브(hub)로 만들기 위해 2100만 파운드(약 343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1월의 콘월 기지 발사는 실패했고, 잠재적인 고객과 투자가들에겐 최악의 홍보가 됐다. FT는 “버진 오빗은 발사체 외에, 위성 추적 데이터 수집, 탑재물량의 통합 능력, 위성의 교체와 수리에 필요한 위성 주변 방사선·압력·온도 측정 등의 지상 지원 서비스도 부족했다”며 “결국 사업성 없는 상품이었다”고 비판했다.


”100달러짜리 부품이 개발비 10억 달러 프로젝트 망쳐”
버진 오빗의 추락에 쐐기를 박고, 글로벌 우주파워로 도약하려는 영국의 추진력을 떨어뜨린 것은 100달러짜리 연료 필터였다. CEO 댄 하트는 2월7일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소형위성 컨퍼런스에서 “초기의 모든 조사는 연료 필터 이탈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며 “조립 때에 분명히 있었던 필터가 고도 110 마일(177㎞) 상공에서 2단 로켓 엔진이 점화됐을 때에 없었다. 엔진이 과열된 어느 순간에서 이 필터가 떨어져 나갔고, 로켓이 변칙 작동(anomaly)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를 망가뜨린 것은 100달러짜리 부품이었다”고 말했다. 

 


작년 9월에 이미 1억5350만 달러의 빚이 쌓였던 버진 오빗은 네 번의 성공에도, 한 번의 실패로 3월15일 운영 중단을 선언해야 했다. ‘우주 공장’을 꿈꾸던 스타트업 스페이스 포지(Space Forge)사의 큐브샛을 비롯해 런처원에 탑재됐던 위성 9개도 사라졌다. 


집행력 결여…우주산업에서 느린 보잉 출신 임원 다수
일부 분석가들은 34년 보잉에서 재직했던 CEO 댄 하트를 비롯해, 최고전략임원, 최고운영임원이 모두 보잉사 출신인 것도 버진 오빗의 몰락에 일조했다고 말한다. 스페이스X의 드래곤 캡슐이 2020년 11월부터 국제우주정거장(ISS)에 6차례 우주인을 보내는 동안에, 스페이스X와 함께 NASA와 개발 계약을 맺은 보잉의 유인(有人)우주선 스타라이너는 올해 7월 이후에야 첫 시범 운행을 한다. 
 


익명의 직원들은 CNBC에 “부서마다 성(城)을 쌓고 협조가 안 돼 일정 조율도 엉망이고, 직원 500명일 때나 750명일 때나 로켓 발사는 1년에 두 건이었다” “유효 기간이 짧은 고가(高價) 부품을 로켓 10여 개 만들 만큼이나 주문하고선 1년에 2개만 제조해, 원자재 값만 수백만 달러 날렸다”고 말했다. 사내 의사소통 채널도 엉망이었다. 3월15일의 운영 중단도 CEO 하트는 인터넷 가상 회의에서 발표했고, 직원들은 3월 말의 직원 75% 해고 방침도 사내 입소문으로 알았다. 당시에도, 롱비치의 본사 공장 곳곳에선 6개의 로켓이 제조 단계에 있었다.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적잖은 우주 기업들이 파산보호 신청을 통해 새 주인을 만나고 회생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26일 인도 발사체를 통해 36개의 위성을 쏴 올리면서, 지구 전체를 커버하는 총 618개의 위성군집 네트워크를 완성한 광대역 위성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원웹도 한 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전세계에 수십 개의 소형 발사체 기업이 존재하는데, 누가 또 로켓 제조·발사 기업을 살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CEO 하트는 “우리는 첨단 발사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큰 매력이 있다”고 말했지만, 지난 1월의 발사 실패는 이 주장의 신뢰성도 떨어뜨렸다.
 


분명한 것은 리처드슨은 더 이상 버진 오빗에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리처드슨의 최우선 우주 관심사는 ‘여행’이다. 로켓 기업 버진 오빗도 애초 리처드슨의 우주여행 기업인 버진 갤럭틱에 투자한 UAE 투자펀드 아바르(Aabar)의 아이디어였다. 아바르 측은 갤럭틱에 대한 투자 조건으로 갤럭틱이 위성 발사와 유인 우주선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버진 갤럭틱은 이렇게 시작한 버진 오빗을 2017년 갤럭틱에서 분사(分社)했고, 지금도 버진 오빗의 지분 14%는 아바르를 합병한 UAE 투자펀드 무바달라(Mubadala)가 갖고 있다. 버진 오빗의 한 임원은 FT에 “금융적으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발사 빈도에 근접하던 시점에서 멈춰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면서도 “우주는 어렵고,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