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작전 뺨친다,
NASA 우주인 선발

베일에 싸인 우주인 선발 과정 들여다보니...
NASA가 발표한 아르테미스 2단계 우주인 4명
사전에 전혀 귀띔 없이 비밀리에 선발하고 통보

2년전 우주인 후보 선발 땐 1만2000여명 지원
10명이 뽑혀...합격률 0.01%, 하버드 입학보다 어려워

지난 3일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존슨우주센터는 2024년에 달 궤도를 돌고 오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2단계에 참여할 미국 우주인 3명과 캐나다 우주인 1명을 발표했다. 존슨우주센터는 NASA 소속 우주인들이 훈련과 우주·극지·심해 활동을 하는 근거지다. 


아르테미스 2단계는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 이래 처음으로, 인간이 38만여㎞ 떨어진 달의 뒷면까지 돌고 오는 거대한 계획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주인들은 고도 400㎞ 저궤도에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만 오갔다. 아르테미스 2단계 우주인은 또 우주에서 둥근 지구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도 갖는다. 지구의 둥근 원(圓)을 보려면 고도 3만6000㎞의 지구정지궤도 이상으로 나가야 하는데, 아폴로 시절의 우주인 24명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멀리 나가본 우주인이 없었다. 따라서 아르테미스 2단계 우주인으로 선발된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존슨우주센터의 우주인실(Office of Astronauts)이 선발을 통보하려고 미 우주인 3명을 본부로 소환했을 때, 시간을 지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선장(captain)으로 임명된 리드 와이즈먼(47)은 40여 분 늦게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로 합류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NASA가 소속 우주인 41명 중에서 누가 언제 무슨 임무를 맡게 되는지 사전에 전혀 귀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인 선발을 둘러싼 이런 비밀주의는 1958년 미국 최초의 유인(有人) 우주 비행탐사 계획이었던 머큐리 프로젝트 때부터 시작한 관행이라고 한다.


‘깜짝 파티’하듯이 개별 소환…아무도 시간 못 맞춰
아르테미스 2단계에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 참여하게 된 여성 우주인 크리스티나 코크(44)는 거대한 수영장인 중립부양연구소에서 우주유영 훈련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회의 소집을 통보받았다. 우주인실 책임자이자, 존슨센터에 속한 모든 우주인의 수석(chief) 우주인인 조지프 아카바는 아르테미스 2단계 미션에 뽑힌 해당 우주인들에게 ‘깜짝 파티’ 하듯이 선정 사실을 통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미국 우주인 3명이 모두 센터 주변에 있는 날을 골랐고, 3명이 함께 소환된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각기 다른 시간에 다른 성격의 ‘가짜’ 미팅을 잡았다.
 


중립부양연구소는 센터 본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코크는 인터넷 화상 회의를 할 생각으로, 아카바에게 문자를 보내 “버추얼(virtual) 미팅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카바는 단호하게 “노, 이건 직접 참석해야 한다”고 답했다. 코크는 급히 차를 몰았지만, “아주 많이 늦었다”고 미 언론에 털어놨다. 


‘조종사(pilot)’ 임무를 부여받은 빅터 글로버(46)도 동료들과 점심 먹고 있다가, 아카바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계속 “늦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참석했다. 리드 와이즈먼은 의사와 약속한 진료 시간이 시작하기 직전에 아카바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은 센터에서도 멀었다. 그래서 아카바에게 “못 갈 것 같다”고 했더니, 아카바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회의가 아니니, 비디오 회의로라도 꼭 참석하라”고 했다. 그러나 곧 진료가 시작했다. 40분이 지나서 아카바에게 “지금 접속하기엔 너무 늦었냐”고 물었고, 아카바는 “지금이라도 접속하라”고 했다. 와이즈먼은 차량 운전대를 잡았을 때 즈음에야 자신이 ‘선장’으로 뽑힌 사실을 알았다. 글로버는 “50년 만에 달에 가는 임무를 부여받는 순간이었는데, 우리 모두 늦었다”고 말했다. 한편, 네번째 우주인인 캐나다인 제러미 한센(스페셜리스트)은 캐나다우주국으로부터 따로 통보받았다. 그는 달에 가는, 최초의 비(非)미국인이 된다. 


우주인 선발 때는 ‘NSA(Never Say Anything)’가 되는 NASA
이렇게 비밀리에 선정되다 보니, “미션에 우주인을 선발할 때면, NASA는 보안이 생명인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A)처럼 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물론 이때의 NSA는 ‘결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Never Say Anything)’의 약자다. NASA 출신 우주인이었던 리로이 차오는 워싱턴포스트에 “우리는 종종 우리가 우주인 후보로 뽑힌 것부터 온통 비밀스럽다고 말하곤 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발표된 우주인이 나중에 석연찮게 바뀌기도 한다. NASA는 2017년 1월 미 중앙정보국(CIA) 기술정보분석가 출신인 여성 우주인 지넷 엡스가 “흑인으로선 최초로 러시아 소유즈 캡슐을 타고 ISS에 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년 뒤 엡스는 지원(backup) 우주인과 교체됐다. ‘엡스가 흑인이라서?’ ‘러시아 우주인들과 훈련 중에 다퉜나?’ 여러 억측이 돌았지만, NASA는 당시 명단 교체를 발표하면서 “여러 요인을 고려해 비행 임무를 부여하며, NASA는 개인적인 사항에 대해선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만 했다. 엡스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다고 미 언론에 말했다. 이후에 엡스는 보잉이 개발하는 유인(有人)우주선 스타라이너의 탑승 우주인으로 선발됐다. 그러나 스타라이너는 개발이 계속 지연됐고, 2009년에 NASA 우주인이 된 엡스는 아직 우주에 나가보지 못했다. 


한편, 세 차례 ISS를 다녀온 재닛 캐번디 전(前) 우주인은 “늘 느닷없이 연락을 받았다”며 “한 번은 1990년대 말 초등학교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행사에 참여했다가 교장실로 불려가, ‘급히 복귀하라’는 우주인실의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2002년 허블 망원경을 수리했던 우주인 마이크 마시미노에게 공식적인 미션 통보일은 월요일이었다. 차석(次席) 우주인은 전주(前週) 금요일에 그의 선정 사실을 알았지만 비밀유지 각서를 썼고, 토요일 마시미노의 생일 파티에서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월요일 오전 7시반에 마시미노에서 어린이용 허블 망원경 책을 잔뜩 선물하며 “많이 읽어 둬. 허블에 가야 하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주인 선발의 권한을 쥔 3인  
미국 CNN 방송은 지난 1월31일 10여 명의 전현직 우주인을 인터뷰해서 “존슨우주센터에서 3명이 우주인 선발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보도했다. 어느 미션이든, 팀 구성의 1차 선발권은 수석 우주인(chief astronaut)에게 있다. 이번 아르테미스 2단계 미션에선 조지프 아카바였다. 아카바도 우주인이지만, 수석 우주인으로 재직할 때에는 ‘관리(management) 우주인’ 신분이 된다. 따라서 자신을 추천할 수 없다.

 

아카바가 뽑은 명단은 존슨센터의 비행운영(flight operations)국장인 놈 나이트를 거쳐, 센터의 총책임자인 바네사 와이치가 최종 확정한다. 그러나 선발 ‘기준’은 여전히 미지(未知)의 영역이다. 분명한 것은 워싱턴 DC에 본부가 있는 NASA의 빌 넬슨 국장은 결정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워싱턴 DC는 아르테미스 2단계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빠져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아르테미스 우주인’ 애초 18명 뽑았다가 전체로 확대
‘관리직’인 수석·차석 우주인을 빼면, 아르테미스 2단계 우주인으로 선발될 수 있는 ‘활동(active)’ 우주인 수는 41명. NASA는 2020년 12월 이 중에서 18명을 ‘아르테미스 우주인’으로 따로 뽑았고 이들에게 달 미션에 특화된 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계인 조니 킴도 이때 포함됐다. 
 


하지만, 작년 11월 당시 수석 우주인이었던 와이즈먼은 아르테미스 우주인 명단을 41명 전체로 확대했다. 그는 “우리 중 누구를 뽑아도 아르테미스 미션에 적격이며, 중요한 것은 이 미션을 위한 ‘적확한 팀(a right team)’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합리적 추측’ 을 해보자면...
온통 비밀에 싸여 있지만, NASA 우주인단의 성비(性比)·인종적 배경·전문성, 해당 우주미션의 성격을 고려하면, ‘적확한 팀’의 윤곽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한다. 특히 이번 팀 구성에선 리드 와이즈먼이란 ‘상수(常數)’가 있었다. 와이즈먼은 작년 11월까지 수석 우주인이었다. 수석 우주인은 재직 중에 자신을 추천할 수 없지만, 일단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다음 미션의 최우선 고려 대상이 된다. 우주인단 전체를 위해 고생했으니, 보상해주는 취지다.


실제로 1월말 CNN 방송은 수석 우주인 자리에서 막 물러났고, 미 해군 항해사·시험비행 조종사 출신으로 ISS에서 165일을 보냈던 리드 와이즈먼을 아르테미스 2단계 우주인 후보 1위로 꼽았다. 50년 만에 달 궤도까지 가는 미션의 성격 상, 매우 대담하고 침착한 성격에 경험 많은 베테랑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와이즈먼이 ‘선장’으로 합류하면, 캐나다인을 제외하고 남은 두 자리는 여성과 유색인종 몫이 되고, 구체적인 임무는 ‘조종사’와 ‘스페셜리스트’다. 

 
41명 중에서 여성은 3분1가량이고, 유색인종은 12명. 또 미션 ‘조종사’로 지명될 만한 경력을 갖춘 우주인은 16명이고, 나머지는 생물·지리·해양·엔지니어링·의학 등에서 전문성을 지닌 ‘스페셜리스트’라고 한다. 이런 합리적 추측을 거쳐 CNN 방송이 지난 1월말 예측 보도한 소수의 2단계 우주인 후보 명단에는 시험비행 조종사 출신에 4번의 우주유영 경험이 있는 흑인 우주인 글로버와, 여성 중에서 ISS에 가장 오래(328일) 체류했고 전기공학 석사인 코크도 포함돼 있었다. 또 캐나다 우주인 4명 중 한 명인 한센은 14년 전에 선발됐지만, 아직 우주 경험이 한 번도 없어서 캐나다에선 후보 물망 1순위였다.

 

공정과 전문성이 우선…사소한 실수가 수십억 달러짜리 프로그램 망쳐
워싱턴포스트는 우주인 선발 과정이 비밀인 이유와 관련, “기본적으로 인사(人事) 문제이면서,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인 우주인들의 자아(ego)가 걸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선발 과정이 알려지면, 의회를 비롯한 정치권과 외부의 청탁이 작용할 여지도 커진다. 또 우주인 임무는 개인별 성과보다 팀워크가 우선돼야 하는데, 군(軍)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에는 우주인 선발을 둘러싸고 군별 경쟁심도 대단했다고 한다.


2009~2012년 존슨우주센터의 수석 우주인이었던 페기 휫슨은 ““NASA가 수십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를 맡기는 우주인의 선발 과정은 혹독할 수밖에 없다”며 “실수는 치명적이며, 가장 중요한 잣대는 해당 임무를 성공으로 이끌 요인들”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요 미션이 ISS의 정비와 수선이라면 우주유영에 능한 사람을 고려하고, 세포 배양이나 설치류 연구와 같이 과학 실험이 주(主)미션이면 그쪽에 전문 지식을 지닌 우주인을 선발한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선 드래건 캡슐을 처음 시험 비행할 때, 비상 시 최대한 침착할 수 있는 조종사 출신의 베테랑 우주인 2명으로 팀을 짠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이번에 아르테미스 2단계에서 빠졌어도, 7월 이후 시험비행할 스타라이너와 기존의 스페이스X 드래건 캡슐을 타고 우주로 나갈 기회는 많다. 또 오히려 2025년말까지 달 표면에 직접 착륙하는 아르테미스 3단계 우주인(4명)이 될 확률이 더 커졌다고 반길 수도 있다.

 

아이비리그 합격보다 훨씬 어려운 우주인 후보 선발
올해 하버드대 지원자들 중에서 합격률은 5%였다. 다른 아이비리그 대학인 프린스턴대는 6%, 예일대 6.9%. 하지만, NASA의 우주인 후보가 되기는 이보다도 훨씬 어렵다. 

 
가장 최근인 2021년 12월 NASA가 우주인 후보를 모집했을 때에는 1만2000여 명이 지원해서 겨우 10명을 뽑았다. 불합격율이 99.9%다. 이들은 1959년부터 뽑기 시작한 NASA 우주인단에서 ‘23기 우주인 그룹(Astronaut Group 23)’이 된다.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등 이른바 STEM 분야 석사 학위 소지자이거나 의사 출신, 공인된 시험비행 조종사이어야 한다. 양쪽 눈의 교정 시력도 2.0이 돼야 한다. 
 


2017년 6월에 선발한 ‘22기 우주인 그룹’은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SEAL) 출신에 하버드대 의대 출신 의사였던 한국인 교포 조니 킴을 비롯해 12명이었다. 당시엔 1만8000명이 지원해, NASA 역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때까지 러시아 소유즈 캡슐에만 의존하던 미 우주인들의 ISS 접근이 스페이스X·보잉 유인우주선으로 확대되고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이 본격화한다는 전망에 따라, 미국에서도 우주인 붐이 일었다. 짐 브리덴스틴 당시 NASA 국장은 아폴로 우주인과 같이 잊힌 미국의 영웅들을 되살리고, 우주에 대한 전국적인 열기를 지피기를 원했다. 그는 “우주인들이 TV 광고, 시리얼(cereal) 박스 표지에도 나와 대중문화의 일부가 돼야 한다. 아이들이 프로 스포츠 선수가 되기 보다는, NASA 과학자·우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주인 그룹으로 선발되면, 존슨우주센터에서 2년간 선외(船外)우주유영 훈련, 새 유인우주선에 대한 공부 등 정부 우주인으로서 예상되는 수백 가지의 임무를 수행하는 훈련을 받게 된다. 이를 졸업하면, 정식으로 NASA소속 우주인이 된다. NASA 우주인은 ‘풀타임(full-time)’ 직업이며, NASA 웹사이트는 우주인 연봉은 미 연방정부 공무원 기준에 따라 10만4898 달러(약 1억3800만 원)에서 16만1141달러(약 2억1200만 원)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