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력도 촉각도 잃었지만,
보이저의 탐험은 계속된다

NASA, 보이저 1·2호 예비전력으로
최소 3년은 더 가동하기로 결정

1호는 플라스마 측정, 2호는 주파수 탐지 고장
아직도 유용한 데이터 지구로 보내
당초 임무 5년이었지만, 46년째 탐사중
원자력 전지 사용해 동력 유지

미 항공우주국(NASA)는 현재 성간(星間·interstellar) 우주를 날고 있는 탐사선 보이저(Voyager) 2호를, 이 탐사선의 예비전력(backup power)를 사용해 최소 3년간 더 가동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NASA 산하 제트추진연구소(JPL)의 보이저 프로젝트 책임자인 수잰 도드는 지난달 30일 “탐사선의 발전 용량이 떨어져 올해 안에 보이저 2호의 과학장비 5개 중 1개를 중단하려던 계획을 바꿔, 이 탐사선의 예비전력을 사용해 2026년까지 5개 장비를 모두 가동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예비전력 전용(轉用) 방안이 성공하면, 같은 문제를 겪는 보이저 1호에도 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보이저 1·2호는 태양계에서 지구 밖에 존재하는 외행성인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을 탐사할 목적으로, NASA가 1977년 8월과 9월에 발사한 쌍둥이 탐사선이다. 두 탐사선의 애초 예상 임무 기간은 5년이었고, 모두 주(主)임무를 완수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NASA가 이 보이저 프로젝트를 이어가려는 것은 현재 보이저 1·2호가 태양권(heliosphere), 즉 태양에서 나오는 플라스마인 태양풍과 태양 자기장이 지배하는 공간을 벗어나 지구에서 가장 먼 우주를 항해하는 탐사선이기 때문이다. JPL의 프로젝트 과학자인 린다 스필커는 “성간 우주는 완전히 빈 것 같아도, 여전히 태양 입자가 있고, 자기장 현상이 벌어진다”며 “태양에서 멀리 나갈수록 뭘 발견할지 몰라 더욱 흥미로워진다. 두 보이저는 우리에게 마치 우주를 들여다 보는 쌍안경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학기술 분야가 20세기 후반 이후 급격한 진전을 거듭한 것을 고려하면, 1970년대의 이 ‘구닥다리’ 탐사선이 46년째 우주를 날면서 지구에 유용한 데이터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예비전력을 사용하더라도 탑재된 과학·탐사 장비는 언젠가는 작동을 멈출 것이고, 두 탐사선은 지구와 통신이 끊긴 채 우주를 날게 될 것이다. 


이는 1972, 1973년에 발사된 파이오니어 10·11호가 겪은 운명이기도 하다. 2003년 파이오니어 2호를 끝으로, 교신이 끊긴 두 쌍둥이 탐사선은 지금도 심(深)우주 어딘가를 날고 있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우연히 파이오니어를 발견하면, 지구로 찾아올 수 있도록 ‘안내 지도’를 장착했다.  


지구에서 각각 200억, 240억 ㎞ 떨어진 곳 날아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는 2호가 1977년 8월에 먼저 발사됐고, 1호는 16일 뒤인 9월5일에 발사됐다. 기본 임무는 목성과 토성 탐사였고, 보이저 2호는 천왕성과 해왕성 탐사로 임무가 확대됐다. 13일 현재 1호와 2호는 지구에서 약 240억㎞, 198억 ㎞ 떨어진 우주를 시속 6만1500㎞으로 날고 있다.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를 뜻하는 AU(약 1억4960만 ㎞)로 환산해도, 보이저 1호의 위치는 지구에서 약 159 AU, 2호는 133 AU 떨어져 있다. 지구에서 보이저 1호로 원웨이 통신하는 데만 22시간 3분이 걸린다. 

 

 

두 탐사선의 진행 방향은 다르다. 태양계를 평면으로 볼 때, 1호는 토성을 지나고 평면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다가 태양계 밖으로 나갔고, 보이저 2호는 해왕성을 지난 뒤 위아래를 오르내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외행성 탐사 장비는 모두 끄고, 성간 탐사를 위한 장비를 작동했다. 1·2호는 태양계가 성간 우주에서 쏟아지는 고에너지 입자와 방사선으로부터 지구를 어느 정도 보호하고 있는지에 대해 귀중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러나 오래된 기술이다 보니, 계속 잔고장이 발생한다. 작년 5월에도 보이저 1호는 탐사선의 자세와 방향을 통제하는 시스템에서 이상한 오류가 발생했다. 우주선의 자세와 각도는 분명히 정상인데, 송신 데이터는 왜곡된 것이었다. NASA 과학자들은 보이저 1호가 새 컴퓨터가 아니라 이전 컴퓨터를 이용해 데이터를 보내면서 발생한 오류라는 것을 발견하고 고쳤지만, 오류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알아내지 못했다. 보이저 2호는 2020년 1월 정상 상태인데도, 기기의 오류 모드에서 촉발되는 전원 보호 장치가 작동했다. 이는 오류 가동 상태에서 전원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지만, 이 탓에 정상 가동 중이던 과학장비의 전원이 모두 꺼졌다. 1호는 또 플라스마 측정기가 고장 났고, 2호는 일부 주파수를 탐지하지 못한다. 도드는 “쌍둥이 자매가 하나는 청력을 잃었고, 하나는 촉감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당 전력 생산능력 470와트인 원자력 전지 사용
보이저 1·2호의 수명이 이렇게 긴 것은 RTG라고 불리는 방사성동위원소열전(熱電)발전기(Radioisotope Thermoelectric Generator)에서 동력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RTG는 방사성동위원소인 플루토늄-238이 자연 붕괴할 때 발생하는 열을 전력으로 바꾸는 원자력 전지다. 쌍둥이 탐사선을 만든 엔지니어들은 탐사선이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효율이 매우 떨어지는 태양광 패널 대신에, 초당 470와트를 생산할 수 있도록 1·2호에 각각 3개의 RTG를 장착했다.

 

 

두 탐사선은 5년간 목성과 토성, 토성의 고리, 또 이들 행성의 주요 위성을 탐사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그러나 동력이 계속 공급되면서, 임무와 가동 기간이 계속 확대됐다. 그래서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모든 외행성과, 이들 외행성이 지닌 48개의 주요 위성을 모두 탐사하게 됐다. 또 1970~1980년대는 보이저가 최소한의 동력과 기간으로 탐사를 이어가는데 유리하게, 이들 외행성이 175년에 한 번 꼴로 배열되는 시기였다. 예를 들어, 보이저 2호는 행성이나 위성의 중력을 이용해 다음 목표물로 날아가는 이른바 중력보조(gravity assist)를 통해 해왕성까지 통상 30년 걸리는 항해 기간을 12년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탐사선이 영구적으로 날 수는 없다. 의존해야 할 동력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NASA가 밝힌 현재 RTG의 발전 용량은 249 와트 정도다. 갈수록 연료도 줄고, 온도측정센서 등 관련 기능도 약화되면서 매년 4와트씩 발전 용량을 잃고 있다. 더 많은 과학장비를 사용하면, 전력 소모는 더 커지고 미션은 더 빨리 끝나게 된다. 


’안정적인 전압’ 위해 따로 설정해 놓았던 예비전력 쓰기로 
보이저 2호는 이미 2019년 7월에 우주선 측정 장비를 보호하기 위한 1차 히터와, 다른 비(非)필수적인 파트의 전원을 껐다. 이에 따라, 발사 전 테스트에서 -45°C에서도 작동할 수 있게 디자인된 우주선 측정 장비의 주변 온도는 -59°C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장비는 여전히 데이터를 보내고 있다. NASA는 이어 올해 중에 보이저 2호에 탑재된 자력계·플라스마 측량기·플라스마 과학실험 장비·우주선 탐지기·저에너지 입자 탐지기 등 5개 과학장비 중 하나를 끌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말 예비전력을 사용해 이들 장비를 당분간 계속 사용하기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예비전력은 원래 탐사선과 장비에 공급되는 전압의 안정성을 위해 따로 설정된 것이었다. 주(主)회로에서 순간적인 전압 변화가 발생하면, 탐사선을 전기적 과도 현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력 공급이 예비회로로 전환한다. 예비전력은 이 예비회로용(用)으로 따로 설정한 RTG 전력이다. 따라서 예비전력을 쓰면 유사시 갑작스러운 전압 변화가 발생해도 대책이 없어진다.

 

 

그러나 지난 45년 동안 보이저 1·2호의 전류는 꽤 안정적이었고, JPL은 예비전력 사용이 ‘감당할 만한’ 리스크라고 판단했다. JPL의 보이저 프로젝트 책임자인 도드는 “가변 전압은 장비에 악영향을 주지만, 과학장비를 더 오래 사용해 얻는 새로운 발견이라는 보상에 비하면, 작은 리스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일 “예비전력을 사용한 보이저 2호의 작동을 수 주간 모니터한 결과, 이 새로운 접근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방식이 입증되면, NASA와 JPL은 보이저 1호도 예비전력을 사용하도록 전환할 계획이다. 보이저 1호는 탐사 초기에 5개 장비 중 한 개가 고장 나서, 전력 소모 면에서 최종 선택을 할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있다.  


보이저가 새롭게 알아낸 과학적 발견
보이저는 천문학 교과서를 여러 번 다시 쓰게 만들었다. 보이저 이전에는 목성의 달인 이오(Io)가 지구의 10배쯤이나 화산 활동이 활발한지, 또다른 달인 유로파 표면의 두터운 얼음층 밑에 물로 된 바다(ocean)가 있는지 몰랐다. 태양계에선 지구에만 바다가 있는 줄 알았다. 보이저 2호가 1986년 천왕성을 방문해 10개의 달을 찾아내면서, 이전까지 알려졌던 천왕성 달의 수는 3배로 증가했다. 이후 허블 우주망원경과 성능이 향상된 지구 천체망원경으로 천왕성 주변의 달은 모두 27개로 늘어났다. 또 태양의 자기장이 성간 우주에선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기존 모델도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촬영
그러나 일반인에게도 가장 인상이 깊은 사건은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14일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해왕성과 명왕성 궤도 밖에서 찍은 지구와 태양계 행성들의 ‘가족 사진’이다. 태양에서 약 60억 ㎞ 떨어진 곳에서, 보이저 1호는 금성ㆍ지구ㆍ목성ㆍ토성ㆍ천왕성ㆍ해왕성을 찍었다.

 

 

그 전날 NASA와 JPL은 보이저 1호에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향하도록 명령했고, 다음날 1호는 3장의 지구 사진을 찍었다. 64메가 화소 크기의 사진에서 지구는 고작 0.12 화소 크기에 푸른 빛의 흰 점에 불과했다. 보이저는 모두 60장의 태양계 가족 사진을 찍었고, 이 모든 사진을 다운로드하기까지 두 달이 넘게 걸렸다. 


보이저 1ㆍ2호의 동체 외벽에는 또 지름 30㎝짜리 구리로 된 ‘골든 레코드’가 부착됐다. 여기엔 지구에 사는 다양한 인종의 삶과 문화, 동식물 이미지 115장과, 55개 언어의 인사말, 90분 가량의 동서양 고전ㆍ민속 음악이 담겼다.

NASA는 보이저를 발사하면서, 이 탐사선이 한 외계 행성에 닿기까지는 4만50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2035년까지도 가동할 수 있을까…이후 ‘침묵의 여행’
두 쌍둥이 탐사선의 임무 수행 기간이 46년째 접어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보이저 1호는 2012년 8월에, 이보다 속도가 늦은 보이저 2호는 2018년 11월에 태양권 밖을 넘어섰다. 수잰 도드는 “보이저 2호가 해왕성을 지나 30년 넘게 계속 성간 우주를 항해하리라고는 최초 개발자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대부분 사망했다”며 “우주선을 만든 과학자 세대는 모두 사라져도, 그 우주선은 계속 날기 때문에 이 우주선에 대한 세대간 지식 전수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이저 탐사선과, 이를 계속 가동할 수 있는 영리한 방법(예비전력 마련)을 고안해낸 엔지니어들에게 계속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예비전력 사용이라는 ‘도박’이 성공하면, NASA는 보이저 쌍둥이 탐사선이 발사 후 50년까지도, 좀 더 욕심을 내면 208 AU에 도달하는 2035년까지도 작동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2026년쯤 보이저 2호의 과학장비 하나를 끄고 나머지 것들도 순차적으로 꺼 마지막 장비의 파워를 끌 때까지 임무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상상이다. 그리고 지구와의 마지막 통신도 끊기고 나면, 보이저 쌍둥이 자매는 침묵 속 여행을 계속 할 것이다. 앞서 파이오니어 자매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