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광고할까?
기발한 아이디어 전쟁

콜라, 아웃도어, 피자, 우유까지...
주인없는 우주에서 마케팅 전쟁
코카콜라 펩시콜라 우주에서 한잔
막상 마시니 우주인 속 불편하다는 의견도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 인튜이티브 머신(Intuitive Machines)이 보낸 무인 달 착륙선 노바(Nova)-C가 다음달 달의 남극에 도착할 예정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의뢰를 받아 과학 탐사 장비를 탑재한 노바-C가 착륙에 성공하면, 이는 전세계 민간기업 차원에서 처음일 뿐 아니라 미국으로서도 50여 년 만에 달에 돌아가는 것이 된다.


이 무인 우주선의 역사적인 착륙 장면은 노바-C에 장착된 카메라가 착륙 전에 동체에서 미리 떨어져 나와 촬영해 지구로 전송한다. 이 화면에는 노바-C의 동체와 연료 탱크를 감싼 금빛의 보온ㆍ단열재 위에 새겨진 아웃도어 스포츠웨어사 컬럼비아의 로고도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지난달 26일 최초의 민간 달 착륙을 꿈꿨던 일본 아이스페이스(Ispace) 사의 무인 달 착륙선 하쿠토-R의 동체에도 일본항공ㆍ스즈키ㆍ미쓰이스미토모 은행(SMBC) 등 일본 브랜드 로고들이 부착됐었다. 실패한 미션도 브랜드에겐 그다지 비극적이지 않다. 하쿠토-R의 불시착 뉴스가 전세계 TV와 인터넷에 보도될 때에는, 이 우주선에 붙은 로고들도 계속 화면에 나왔다.

 

 

기업들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비행기의 특수 연기로 하늘에 쓰는 글씨(skywriting), 경기장의 대형 전광판, 비행선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우주는 광고로부터 상대적으로 ‘덜 오염된’ 공간에 속했다. 2000년 미국 의회는 눈에 거슬리는(obtrusive) 우주 광고를 금지했다. ‘거슬린다’의 기준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천체(天體)상의 광고다. NASA는 설립 때부터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승인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한다. 2019년부터 저궤도의 상업화를 추진했지만,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광고를 찍은 브랜드는 장난감 제조사 마텔 사의 바비 인형, 에스티 로더 화장품, 스포츠웨어 아디다스 등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민간 차원의 로켓 발사와 우주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민간 우주선에까지 브랜드 로고가 붙는 등 ‘우주 마케팅’ 시대가 활짝 열렸다. 작년 9월 프랑스의 샴페인 회사인 G. H. 멈(Mumm)은 전위적(前衛的ㆍavant-garde) 정신을 강조하며, 민간 우주인들이 ISS를 오가는 액시엄 스페이스사 미션에 자사가 우주용(用)으로 개발한 샴페인이 탑재된다고 발표했다.

 

 

민간 우주 개발사들과 일반 기업들의 결합은 양측의 이해 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민간 차원의 우주 개발은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지만, 실패 확률은 여전히 매우 높다. 반면에, 기업들이 브랜드를 알리기에는 우주(Space)만큼 매력적인 ‘빈 공간(blank space)’도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종종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고, 민간 우주선에 로고를 부착한다. 이는 미국에서 현재 TV 광고 단가(30초 기준)가 가장 높은 프로 미식축구 챔피언전인 수퍼볼 광고(700만 달러ㆍ약 92억 원)과 맞먹는다고 한다.


컬럼비아 “우리가 개발한 소재가 우주선 보호”
애초에 인튜이티브 측은 컬럼비아에 자금을 대면, 달 착륙선에 로고를 부착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런데 컬럼비아는 자사의 스키 재킷 안감으로, 반짝거리는 ‘옴니-히트 인피니티(Omni-Heat Infinity)’가 -156°C에서 121°C를 오르내리는 달 온도에서 열 반사 효과가 뛰어난 것을 확인하고, 인튜이티브 측에 자사 소재를 쓰도록 권유했다. 컬럼비아의 혁신 담당 부사장 해스켈 베컴은 “우리 소재가 우주의 꽁꽁 얼어붙는 온도에서도 우주선을 보호하는 것을 본다면, 사람들이 컬럼비아 겨울 재킷을 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며 “우리가 얼마나 혁신적인 의료ㆍ신발 브랜드인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콜라 회사들의 우주 전쟁
기업들이 우주 마케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NASA의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었다. 대중의 눈이 쏠리면서, 광고가 따라붙었다. 1984년 코카콜라는 NASA에 자사 음료수를 우주 왕복선에 실어 달라고 했고, 이를 들은 펩시도 자사 음료수를 제공했다.

 

 

두 회사는 이어 무중력 상태에서 탄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340㎖ 크기의 캔을 개발했다. 1985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코카콜라 측은 250만 달러를 썼다. NASA 측은 이를 우주에서 쓸 수 있는 용기 개발이란 차원에서 접근했지만, 두 기업에겐 어디까지나 ‘광고’였다. 

 

 

1990년대에 두 회사는 다시 맞붙었다. 1992년 펩시는 러시아 우주인에게 당시 러시아의 우주정거장인 미르(Mir) 밖에서 우주 유영을 하며 1.2m 크기의 모형 펩시콜라 캔을 부풀리도록 했고, 수백만 달러를 지불했다. 코카콜라는 1996년 우주왕복선 인데버에서 우주인들이 쓸 자사 음료 디스펜서를 개발해 제공했다.


무중력 환경에서 탄산 음료를 마시면 속 불편해
그러나 탄산수를 마신 뒤 기분은 지구에서와는 영 딴판이었다. 지구에선 음식물을 먹으면 고체와 액체는 중력에 의해 내려가면서 소화되고, 가스는 방귀나 트림을 통해 인체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우주에선 고체와 액체, 기체가 몸 안에서 다 섞여 묵직한 거품(chunky bubbles)를 형성해 거북한 느낌을 줬다고 한다. NASA는 탄산 음료를 우주인 제공 음료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두 회사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기업이 원하면, 직접 로켓과 위성을 사서 광고를 할 수 있게 세상이 곧 오게 됐으니 말이다.

 

러시아 프로톤 로켓에 등장한 피자헛
러시아 우주당국(Roscosmos)은 NASA와는 달랐다. 돈이 되니, 기업 광고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1999년 11월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발사된 러시아 프로톤(Proton) 로켓에는 약 9.1m 길이의 피자헛 광고가 붙었다. 

 

피자헛은 당시 미식축구 수퍼볼의 30초 TV 광고비(250만 달러)의 절반 정도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자헛은 애초 달에 레이저 빔을 쏴서 지구에서 피자헛 로고를 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로부터 달에 쏜 피자헛 로고가 지구에서 보이려면 레이저빔 투사 면적이 텍사스 주 만해야 하며 수억 달러가 든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1997년 이스라엘 낙농회사인 트누바(Tnuva)는 러시아에 약 80만 달러를 지급하고, 90초짜리 광고 영상을 만들었다. 지구와 교신이 끊겼던 미르의 러시아 우주인이 다시 통제센터와 연결되자 “이스라엘 우유를 먹고 싶다”고 말하고, 러시아 우주당국은 다음 번 로켓으로 트누바 우유를 보낸다. 러시아 우주인은 미르에서 우유팩을 눌러 방울처럼 튀어나온 우유를 꿀꺽 삼킨다.

 


무산된 저궤도의 우주광고판(space billboard)  
1993년 8월, 미국의 한 마케팅 기업이 고도 240㎞의 저궤도에 광고판(billboard)을 띄우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구에서도 맨눈으로 보름달의 절반만 하게 보이는 크기였다. 광고주가 원하는 지역에서만 10분 정도 노출되고, 2주 뒤에는 대기권으로 떨어져 불타 사라진다는 안(案)이었다. 당시 발사와 제작, 운영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은 2500만 달러로 추정됐다.


이 우주광고판을 찬성하는 측은 “의도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글로벌 대기업이 우주연구를 후원하는 것으로 생각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소비자 행동주의자인 랄프 네이더 등이 “우주 연구를 지원한다고, 하늘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게 할 수는 없다” “이런 광고를 하는 제품은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강력하게 반대해 무산시켰다.  


한편, 2021년 8월 캐나다의 스타트업인 지오메트릭 에너지 코퍼레이션(GEC)은 새로운 개념의 ‘우주광고판’을 제시했다. 10㎝ X 10㎝ X 10㎝ 크기의 큐브샛에 달린 스크린에 브랜드 로고를 띄우고, 지구를 배경으로 큐브샛에 달린 셀카봉으로 찍어 유튜브 등으로 방송한다는 것이었다. 광고주는 픽셀 단위로 가격을 지불한다. 

 

 

우주처럼 인간에게 경이와 감탄, 호기심을 자아내는 곳도 드물다. 그러나 우리 생활의 모든 구석처럼 우주도 인류의 발과 눈이 닿는 모든 곳이 점차 광고로 덮일 때에, 우리의 우주에 대한 신비감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일부에선 TV와 온라인에서 무시되는 수많은 광고처럼, 우리의 반응이 우주 광고에도 무디어지는 날이 의외로 빨리 올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