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미국 민간 이미지 위성인 플래닛 랩스(Planet Labs)는 북한 평안북도에 위치한 서해위성발사장에 새 발사장이 건설되는 사진을 공개했다. 가로 140m, 세로 40m의 직사각형 형태였다. 지난달 30일 촬영된 위성 사진에선 흙바닥이 드러났는데, 5월16일엔 콘크리트 타설이 끝났다. 22일 사진에선 발사장 전체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의 첩보 위성도 아닌 민간 이미지 위성이 어떻게 북한 미사일 발사기지의 변화를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을까. 이는 플래닛의 위성이 지구 어느 곳이든 하루 평균 12장의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관심 지역을 시차를 두고 모니터하니, 변화하는 모습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구 궤도를 돌며 원격으로 지상의 이미지와 무선 신호, 기타 데이터를 수집하는 위성은 정부와 군ㆍ정보기관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위성을 통해 군사시설을 모니터하고, 삼림 훼손이나 환경오염 실태를 파악하고, 금수(禁輸) 조치를 위반한 선박들을 적발했다.
그러나 최근 20년간 미국에선 민간 위성 관측 산업이 급속 성장했다. 민간의 지구 관측 위성 수는 2006년 11개였던 것이 작년에는 500개를 넘어섰다. 이 중 200여개가 플래닛의 군집 위성이다. 2013년에 설립된 플래닛 랩스는 이 위성들로 지구의 모든 곳을 찍어 하루에 25 테라바이트 (10의 12승)에 달하는 이미지 데이터를 생산한다. 그리고 농업수확량 예측, 불법 채굴 실태, 극지방의 얼음 두께 파악, 오염원 배출, 불법 조업 포착, 지진ㆍ화산 폭발 상황 등 정부와 민간이 원하는 다양한 목적에 따라 이미지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스페이스X가 민간 재사용 발사체로 로켓 발사 시장을 뒤흔들었다면, 플래닛은 막대한 이미지 데이터를 쏟아내는 위성 군집으로 기존 이미지 위성 업계를 뒤집었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하루에만 25 테라바이트씩 쌓이는 방대한 이미지 데이터를 적시에 판독하고, 용도에 따라 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플래닛의 상품ㆍ비즈니스 담당 사장인 케빈 와일은 지난 21일 “이 데이터를 함께 분석할 파트너 사를 찾는다”며, “우리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다 기록해 왔다. 플래닛의 데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덜 개발된 데이터일 것”이라고 말했다.
플래닛은 또 마이크로소프트 사와 함께 인공지능(AI)를 이용한 ‘플래닛GPT’를 통해 모든 사진을 색인화해 탐색이 쉽게 하고, 고객의 다양한 문의에 바로 ‘답’이 도출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구 관찰 기업을 넘어, 데이터ㆍ정보 제공 업체로 발전하려는 것이다.
5㎝ 식별하는 위성 가진 미 정보기관들도 플래닛 이용
플래닛은 작년에 미 국방부 산하 국가정찰국(NRO)과 5년간 위성 사진을 제공하는, 1억46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윌리엄 마셜은 4월말 경영 보고에서 “올해 1분기 매출은 4010만 달러로 작년 동기(同期)보다 26% 증가했고, 전세계 고객 수(826개 사)도 23% 증가했다”고 밝혔다. 플래닛 고객의 절반은 미국 정부다. 이 중에서도 절반은 국방 부서와 정보 기관들이다.
미국 첩보 위성의 해상도는 화소(pixel) 당 5㎝ 이하다. 반면에, 플래닛 위성 중 해상도가 가장 뛰어난 스카이샛(SkySat)도 화소 당 50㎝에 불과하다. 왜 굳이 플래닛 위성을 이용할까. 고도 3만5800㎞ 의 정지궤도에 위치한 미 국방ㆍ정보기관의 최첨단 정찰위성은 1개를 만들어 발사, 운영하는 비용이 10억 달러(약 1조3300억 원)에 달한다. 이렇게 비싼 위성은 CIA도 원하는 만큼 충분히 보유하기 힘들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플래닛 위성1개의 제작비는 100만 달러가량에 불과하다. 또 한 번에 수십 개씩 제조ㆍ발사되며, 1개 위성이 지구를 하루에 16번 돈다. 매달 전세계 수천 곳의 활주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미 국방ㆍ정보기관으로선 신뢰할 만한 민간 위성업체에 이를 위탁할 필요가 있었다.
작년 8월 우크라이나군의 드론이 크림 반도의 러시아 공군기지를 공습했다. 러시아는 “피해가 미미하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정부는 곧 러시아 전투기들이 파괴된 플래닛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미국 정부는 보유한 최첨단의 첩보 위성이 찍은 이미지를 공개하거나 외국 정부와 공유하려면 내부의 복잡한 기밀 해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민간 이미지는 기밀이 노출될 위험 부담도 없다. 민간 위성 업체인 플래닛에 대한 수요가 늘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원들 몇이 레고(Lego)로 만든 모형 인공위성이었다.
시작은 레고로 만든 모형 위성
캘리포니아주 에임스에 있는 NASA 연구센터의 20대 연구원 윌리엄 마셜과 크리스 보쉬하이젠은 2009년 이곳을 방문한 대학생들과 한동안 일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당시 달 궤도를 돌다가 표면에 충돌해 물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우주선을 개발 중이었다. 그러나 에임스 센터 측은 외국인 학생들이 포함된 것을 알고 기밀 노출을 꺼려, 두 사람에게 상자로 모형 위성이나 만들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은 레고 사의 프로그램이 가능한 교육용 장난감 로봇에, 시중에서 구입한 자이로스코프(gyroscope), 자기계, 카메라와 여러 센서를 부착해 런치박스만 한 모형 위성을 만들었다. 이걸 천장에 매달고 원격 조종을 했더니, 이 모형 위성은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을 토대로 위성을 만들 수 없을까
그때 두 사람에게 번득 스친 아이디어가 소형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위성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당시 애플과 안드로이드폰 제조사의 스마트폰은 데이터 저장 능력과 속도계, GPS, 카메라, 자이로스코프, 무선 통신 등 인공위성에 들어갈 기본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다. 혁명적 변화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전통적인 위성 제조사들은 우주의 혹독한 환경을 견디려면 뭐든지 튼튼하고 특수하게 주문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은 NASA 에임스 센터 측에 스마트폰을 토대로 위성을 만들자고 했지만, “우리는 X박스(게임기)나 셀룰라폰 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다”고 퇴짜 맞았다.
은밀히 시작한 NASA의 폰샛 프로젝트
두 사람은 조용히 ‘폰샛(PhoneSat)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사서 해체하고 필요한 일부 장치들을 붙여서 우주로 보내기로 했다. 센터에는 알리지 않았다. 이 작업이 알려져 ‘미션’이라는 NASA의 타이틀이 붙으면, 진행상황을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관리 감독을 받는 등 관료주의적 간섭이 따르기 때문이었다. 상관이 융통해준 예산은 3000달러. 2010년 7월 초기 폰샛 원형이 만들어졌다. 이 폰샛이 발사 시 로켓의 진동과 여러 물리적 힘을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해야 했지만, 로켓이 없었다. NASA가 발사하는 대형 로켓의 탑재공간 한쪽이라도 얻으려면 엄청난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들은 네바다 주의 한 사막에서 벌어진 아마추어 로켓 경연대회를 찾아 테스트를 했다.
이어 가로ㆍ세로ㆍ높이가 각각 10㎝인 금속 박스에 들어가는 큐브샛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일부 대학에서 큐브샛 개념이 제안되고 있었다. 폰샛 팀의 목표는 300달러짜리 스마트폰으로 우주에서 10일간 작동할 수 있는 위성을 만드는 것이었다. 8개월 걸려 만들었지만, 고도 32㎞ 의 혹한에서 폰샛의 스마트폰이 자동으로 꺼졌다. 금속 박스 안에 보온재를 추가하는 등 보완을 거듭해, 2013년 4월 큐브샛 3개를 NASA의 다른 화물을 탑재한 안타레스 로켓에 끼어 넣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 큐브샛 발사 과정에서 NASA의 워싱턴 DC 본부를 방문했고, 이곳에서 NASA가 3억5000만 달러짜리 기상관측 위성 군집을 구축하려는 것을 알았다. 마셜은 “우리 방식대로 하면, 예산의 10분1이면 가능하다”고 제안했지만, 본부의 해당 책임자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보쉬하이젠은 ‘나가서 직접 이런 위성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이들이 만든 3개의 큐브샛이 우주에 올랐을 무렵, 두 사람은 이미 NASA를 떠났다.
5년 걸려 제작하는 첩보 위성을 발사하느니…
당시 미국 정부의 정찰ㆍ첩보 위성은 발주(發注)에서 발사하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정부의 제작 의뢰 발주→기업 견적서→복수(複數)의 정부 부서 검토 후 선정→디자인 승인→실물 제작→발사 로켓 선정 등 매 단계마다 수개월~1년이 소요됐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단계에선 첨단이었던 기술도 발사 시점에선 첨단이 아니었다. 그리고도 2억500만~10억 달러가 들었다. 크기도 소형 스쿨버스만 했다. 이런 대형 위성 하나가 잘못되면 여러 사람의 목이 날아갔다. 또 기껏 찍은 것이 구름에 가리면 낭패였다.
마셜과 보쉬하이젠, 이어 합류한 NASA 연구원인 로비 슁글러는 다르게 생각했다. ‘리튬 배터리, 태양광 패널, 컴퓨터는 신형이 쏟아지는데, 수년에 걸쳐 초강력ㆍ초고가의 대형 위성을 만드는 것은 낭비다. 3~5년짜리 수명의 저렴한 저궤도 위성을 계속 업데이트해서 쏘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대략 큐브샛 100개면 지구 전체를 매일 찍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큐브샛 군집 위성은 또 시차를 두고 계속 같은 장소를 찍어 지속적인 관찰이 가능하다. 이들이 샌프란시스코의 한 창고를 빌려 ‘플래닛 랩스’를 세우자, NASA와 실리콘 밸리에서 젊은 인재들이 속속 동참하면서 직원 수는 30명으로 불어났다. 네바다 주의 아마추어 로켓 대회에서 만났던 벤처자본가가 300만 달러를 댔다.
이들이 대당 100만 달러도 안 들여 5 ㎏ 무게의 큐브샛인 첫 위성 도브(Dove)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자, 창업 첫 해인 2013년에 페이팔 창업자이자 투자가인 피터 틸, 구글 회장이었던 에릭 슈밋 등이 투자했다. 2015년엔 1억7000만 달러의 투자금을 더 받아 100개의 도브 위성을 제작했다. 플래닛은 스페이스X, 뉴질랜드의 로켓 랩, 러시아와 인도 우주당국을 찾아가 발사 로켓을 구하느라 바빴다.
위성 수가 많아지면서 초기의 판단 실수도 드러났다. 최초의 도브 위성은 너무 수명이 짧았다. 또 수십 개의 위성을 몇 안 되는 지상국에서 관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카메라 렌즈는 극한의 기온에서 종종 초점이 흐려졌다. 위성의 송출 신호는 수집한 모든 데이터를 보내기엔 너무 약했다. NASA의 베테랑들은 “위성 제작이 얼마나 힘든데, 철부지 변절자들이 화(禍)를 자초했다’며 고소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플래닛은 차근차근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갔다.
지구의 어느 장소든 7년간 누적된 이미지 2000장
1개의 도브 위성은 하루에 51만8000㎢에 달하는 면적의 사진을 찍는다. 한반도 전체 면적의 2배 반에 해당한다. 각 위성이 하루 10차례, 8분의 각 세션에 이미지 데이터를 지상으로 전송한다. 하지만, 도브의 해상도는 1 화소당 3m에 불과하다. 빌딩이나 차는 볼 수 있어도, 더 작은 것은 식별할 수 없다.
2017년에 플래닛은 1화소당 50㎝의 해상도를 지닌 위성을 보유한 스카이샛이란 회사를 샀다. 스카이샛 위성은 냉장고 사이즈만 하다. 고객으로선 도브 이미지로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한 뒤에, 스카이샛으로 관심 지역을 보다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플래닛은 현재 고도 450㎞의 저궤도에 떠 있는 180여 개의 도브 위성과 21개의 스카이샛으로 하루에 4000만 장의 사진을 찍는다. 지구 상의 어느 장소든 누적된 이미지가 평균 2000장이라고 한다.
중국이 고비 사막에 짓던 ICBM 사일로, 대학생이 찾아내
2021년 5월 플래닛의 위성 사진을 판독하는 것이 취미인 캘리포니아주의 한 대학생은 중국이 고비 사막에 건축 중이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사일로(silo) 120개를 발견했다. 당시 중국의 ICBM 사일로 건설 소문이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중국이 새로 짓는 사일로도 이전 것들처럼 에어돔(air dome)으로 입구를 막았으리라 생각하고 한 달 동안 이런 특징적인 이미지를 찾았다. 드디어 의심되는 지역을 확인했고, 플래닛에 스카이샛으로 이 지역을 집중 촬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무려 120개에 달하는 ICBM 사일로 신축 현장의 전모가 드러났다. 다음날 미 국무부는 “우려스럽다”는 성명을 냈다.
방대한 데이터를 적시에 판독, 분석하는 것이 관건
해상도가 아무리 뛰어나도, 우주에서 기껏해야 1화소가 수 ㎝로 보이는 위성 사진을 판독하는 것은 지금까지 전문가 영역에 속했다. 예를 들어, 전문 판독가는 러시아의 탱크ㆍ전투기 등 각종 무기들의 모습과, 이것들이 위성 사진에서 보이는 특징을 사전에 소상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또 워낙 데이터가 방대하다 보니, 전문 인력들도 요주의 관찰 지역을 집중적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관심이 없던 지역에서 의외의 일이 발생해도 제때에 포착하지 못하게 된다.
플래닛 랩스도 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 그래서 AI가 한 번에 수천 장씩 판독하면서 사전에 지시한 관찰 대상을 집중적으로 찾도록 전환하는 것이다. 또 이미지 데이터를 더욱 부가 가치가 있는 정보로 가공할 파트너 사를 찾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플래닛이 등장하기 전에는, 특정 지역의 이미지를 원하는 기업과 개인은 촬영 임무를 받은 위성이 그 지역을 찍은 사진을 얻기까지 수개월 기다려야 했다. 공교롭게도 구름에 덮였다면, 다시 위성에 임무를 내려야 했다. 또 급박성에 따라, 가격이 달라졌다.
플래닛은 이 모든 것을 바꿨다. 플래닛은 저렴한 이미지 군집 위성으로 매일 지구 전체를 고해상도 화질로 반복해서 찍는다. 고객은 언제든 로그인해서 원하는 지역의 실시간, 시기적으로 바뀐 모습을 고해상도 화질로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의 NASA에임스 센터는 보수적 관행을 중시하는 문화와 관료주의가 팽배했다. 그러나 몇몇 연구원은 ‘다르게’ 일하기를 원했다. 이들은 우주에 대한 사랑과, 우주에 대한 주도권을 정부와 군으로부터 민간에게 옮겨 인류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상주의로 뭉쳤다. 시작은 레고로 시작한 모형 인공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