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달의 야심'
하쿠토-R 왜 추락했나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 꿈꿨지만 실패
소프트웨어 오류로
달 표면 근접한 줄 알고
추진 로켓 조기 가동
결국 연료 떨어져 마지막 5㎞ 자유낙하 충돌

“착륙선이 하강을 다 마쳤다고 판단했을 때, 사실은 아직도 5㎞ 상공에 있었다.” 지난달 26일 ‘연료 고갈’로 달 착륙에 실패한 일본의 민간 무인 달 착륙선 하쿠토(白兎)-R의 상세한 실패 원인이 공개됐다. 하쿠토-R은 일본의 민간 우주기업인 아이스페이스(iSpace)가 작년 12월 11일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으로 발사한 우주선이다. 착륙에 성공했으면 세계 최초로 달을 밟는 민간 착륙선이 될 뻔했다. 그러나 예상 착륙 시간을 넘겨 통신이 두절됐다. 하쿠토-R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우주국의 로버와, 일본 장난감회사 토미가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함께 개발한 초소형 변형 로버인 소라-Q 등이 탑재돼 있었다.

 

 

추락한 지 한 달이 지난 25일, 아이스페이스사의 하카마다 다케시 대표는 기자 브리핑에서 “착륙선의 고도를 계산하는 소프트웨어에서 오류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즉, 착륙선인 하쿠토-R의 컴퓨터에는 하강 코스를 반영해 사전에 달 표면과의 거리[고도]가 입력돼 있었는데, 이 수치와 착륙선에 장착된 레이저 센서가 측정한 고도 사이에 편차가 너무 크자, 컴퓨터는 실제 측정치를 오류로 판단해 거부했다. 그리고 착륙선 컴퓨터는 달 표면에 근접했다고 판단하고, 예상보다 일찍 추진 로켓을 가동해 초속 1m로 서서히 하강했다. 그 결과 이 착륙 로켓의 연료가 다 떨어진 시점에서, 착륙선은 여전히 달 표면에서 5㎞ 상공에 있었다는 것이다. 하쿠토-R은 이 마지막 5㎞를 초속 100m가 넘는 속력으로 떨어져 달에 충돌했다.


지난 23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 궤도선(LRO)은 하쿠토-R의 충돌 지점과 60~80m로 흩어진 잔해를 확인해 이미지를 공개했다. 일본으로선 작년 10월 소형 고체연료 로켓인 입실론 6호기 실패, 3월 7일 차세대 주력 로켓으로 개발한 H3의 발사 실패에 이어, 잇달아 우주 개발에서 제동이 걸렸다.


충돌구 가장자리의 높은 고도를 입력 안 해
4월 26일 오전 0시40분(한국시간) 하쿠토-R은 달 고도 100㎞에서 하강 모드에 들어갔다. 작년 12월11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스페이스X 사의 팰컨 9에 실려 발사된 지 4개월 여 만이었다. 마지막 단계에선 초당 1m의 속력으로 하강해, 오전1시43분 착륙을 마칠 예정이었다. 하강 코스 내내, 착륙선에 입력된 예상 고도와 레이저 센서가 실제로 측정한 고도는 일치했다.

 

그런데 착륙선이 착륙 지점인 애틀라스 충돌구 주변의 가장자리(rim)를 지날 때에 약 3km라는 편차가 발생했다. 이 가장자리는 달 표면보다 수 ㎞가 높았지만, 착륙선 컴퓨터의 입력 값에는 이것이 반영돼 있지 않았다. 컴퓨터의 입력 값은 ‘고도 0’에 가까웠다. 하쿠토-R의 컴퓨터는 센서 측정치가 입력된 예상 고도에서 크게 벗어나면, 센서 값을 ‘비정상’으로 간주해 무시하도록 프로그램돼 있었다. 하쿠토-R은 즉시 하강 속력을 줄이기 위해 로켓을 연소했다. 결국 5㎞ 상공에서 연료가 떨어졌고, 이후 통제를 벗어난 착륙선은 자유낙하했다. 


착륙 지점을 변경한 것도 오류 발생의 한 원인 
고도 측정을 둘러싸고 이런 소프트웨어 오류가 일어난 데에는 애초 계획했던 착륙 지점을 나중에 바꾼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아이스페이스 측은 밝혔다. 즉 원래는 지구에서 보이는 달의 북동쪽 현무암 평원인 ‘꿈의 호수(Lacus Somniorum)’에 착륙하려고 했고, 이를 토대로 우주선의 최종 디자인이 2021년 2월 결정됐다. 그러나 발사 수개월을 앞두고, 보다 평평한 지역인 애틀라스 충돌구로 착륙 지점을 바꿨다. 아이스페이스 측은 “탑재 화물을 맡긴 고객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쿠토-R의 소프트웨어는 이 착륙선이 애틀라스 충돌구의 가장자리 절벽을 지나면서 발생하는 고도의 급격한 변화를 소화하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 또 미리 입력된 고도 수치에 따른 시뮬레이션도 이를 반영하지 못했고, 충분한 테스트가 이뤄지지 않았다. 착륙선의 소프트웨어 개발은 미국의 우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드레이퍼(Draper)가 맡았다. 


착륙선의 엔진, 유도ㆍ통제 시스템, 통신은 모두 정상이었다. 아이스페이스의 최고기술담당 임원(CTO)인 우지이에 료는 “이건 하드웨어의 결함이 아니다. 하드웨어 쪽은 보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이긴 하지만, 착륙 지점을 바꾸지 않았다면 성공적으로 착륙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우주선의 하드웨어적 결함을 고치는 것보다, 소프트웨어 조정 작업이 더 쉽다. 

 

 

한편 지난 23일 NASA는 달 궤도선(Lunar Reconnaissance Orbiter)이 지난 4월26일 하쿠토-R의 추락 지점 상공을 지나면서 찍은 잔해 사진을 공개했다. LRO가 이전에 같은 지역을 찍은 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없었던 밝은 점과 어두운 점들이 있는 것이 확인된다. 


폭락했던 주가는 다시 회복 중
아이스페이스는 지난 4월 도쿄 증시에 처음 상장됐다. 주가는 기업공개(IPO) 시 주가의 9배가 넘는 2373엔(약 2만2330 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추락하면서, 주가도 800엔(약 7530 원) 이하로 떨어졌다. 이후 점차 회복해 29일 현재 1847엔 대(약 1만7400 원)에 거래된다.


하카마다 대표는 “착륙선은 보험에 가입돼 있어 회사의 재정적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며, 매출 손실도 1억엔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스페이스 측은 또 착륙과 착륙 이후 활동을 제외하고는 총 10개의 탐사 이정표 중 8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며, 내년에 있을 하쿠토-R의 또다른 달 착륙 미션을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아이스페이스 사의 두번째 하쿠토-R은 첫번째 것보다 덩치만 약간 더 크고 거의 같은 모양이다. 이 회사의 자체 달 로버가 탑재된다. 또 2025년부터는 드레이퍼와 합작해, NASA의 과학 탐사 장비를 달로 위탁 운송하게 된다.

 

한편, 최근 10년간 달에 무인 우주선과 로버를 착륙시킨 주체는 중국 우주개발기구인 CNSA(중국국가항천국)밖에 없다. 중국은 2013년 12월에 창어(嫦娥) 3호가 탐사 로봇 위투(玉兎)를 착륙시키고, 창어 5호가 2020년 12월 달의 운석을 갖고 돌아오는 등 모두 세 차례 달 착륙에 성공했다. 2019년 무인 달 착륙선인 이스라엘 기업 스페이스IL의 베레시트, 인도우주연구기구(ISRO)의 비크람은 모두 실패했다. 

 

올해는 다음달에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인튜이티브 머신 사의 착륙선이 NASA의 화물을 싣고 달 남극에 도착하며, 또 다른 민간 우주기업인 애스트로보틱 테크놀로지의 무인 달 착륙선 페러그린도 떠날 예정이다. 또 인도의 찬드라얀 3호도 빠르면 7월12일 발사돼 달 착륙을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