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달에 핵폭탄을?
미·소 이런계획까지...

1950년대 말 우주 경쟁 초반
미·소, 달에 핵폭탄 터뜨리려 했었다

서로 우주 주도권 잡으려고 '끔찍한 계획'
미국의 프로젝트는 A119, 소련은 E-4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결론냈지만...
수소폭탄, 달 도착 전 폭발할 위험 등으로 중단
만약 실현됐다면, 닐 암스트롱의 달 발자국은 불가능

1950년대 말 소련이 우주경쟁에서 앞서자, 미공군은 미국 핵ㆍ천체 물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달에 핵 폭탄을 터뜨리는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5월 초 보도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A119. 목적은 미국의 핵무기 능력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소련을 겁주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A119의 존재에 대해선 그동안 조금씩 간헐적으로 소개됐다. 그러나 BBC 방송은 “이것이 실현됐다면, ‘인류에게는 큰 도약’이라고 했던 1969년 미국 우주인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첫 발자국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만 핵 폭탄의 달 폭발 계획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소련도 1959년 여름까지 달에 100 메가톤급 핵 폭탄을 충돌시켜 터뜨린다는 프로젝트 E-4를 진행했다. 미국이 1945년 일본에 투하한 원폭(原爆) 2개의 파괴력은 각각 TNT 16킬로톤, 21킬로톤이었다. 1961년 소련이 제조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수소폭탄인 ‘차르 봄바’는 50 메가톤급이었다. 메가톤은 킬로톤의 1000배다. 

 

 

두 나라는 지구에서도 육안으로 달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자국의 막강한 핵과 우주기술 능력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달에는 공기가 없어, 지구에서처럼 원폭의 버섯구름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2017년에야 비밀 해제된 미 공군 보고서의 제목은 ‘달 주변 비행에 대한 연구(A Study of Lunar Research Flights). 제목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고, ‘평화롭게’까지 읽힌다. 그러나 표지 그림에는 버섯구름이 포함돼 있다. 1950년대 말 미국 핵무기 개발과 테스트의 핵심 기지였던 뉴멕시코 주 커크랜드 공군 기지에 위치한 특별무기센터의 문양(紋樣)이다.

 

프로젝트 A119에 포함된 물리학자 중에는 나중에 미국인들 사이에서 우주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젊은 시절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도 포함돼 있었다. 탑시크릿인 A119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도 1999년에 나온 그의 전기(傳記)를 통해서였다. 그의 삶을 추적한 작가 키 데이비슨은 세이건이 버클리대의 유명한 밀러 기초과학연구소에 낸 펠로우십 원서에 자신의 A119 참여 사실을 적은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도, 달에 핵무기를 터뜨리겠다는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핵 탄두를 탑재한 로켓이 발사 단계에서 잘못됐을 경우 지구에 미칠 엄청난 환경 재앙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우주를 군사화하려는 계획은 보다 정교하게 발전된 첨단 기술을 토대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소련에 뒤진 우주 경쟁을 ‘한 방’에 역전시킬 방안 
미 공군은 1958년 미 핵물리학자 레너드 라이펄 교수를 은밀히 접촉했다. 라이펄은 세계 최초로 원자로를 설계한 과학자였다. 요청 사항은 달 표면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리는 방안의 실현 가능성과 효과를 “신속하게”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A119의 시작이었다. 미 군부는 달 표면이 환한 곳과 지구 그림자에 가려 어둔 곳의 경계선인 이른바 ‘터미네이터 라인(Terminator Line)에서 핵폭탄을 터뜨리길 원했다. 또는 지구에서 안 보이는 달의 뒷면에서 터뜨려서,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의 테두리가 마치 불에 타는 듯한 효과를 거두기를 원했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뒤지고 있었다. 1957년 10월 소련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한 스푸트니크 1호 위성의 발사에 성공하면서 인류의 우주 시대를 열었다. 반면에, 같은 해 12월 미국의 인공위성을 실은 뱅가드 로켓은 이륙 3초 만에 발사대에서 폭발했다. 미국 언론은 이 참사를 플롭니크(flopnikㆍ플롭은 실패라는 뜻), 카푸트니크(kaputnikㆍ카푸트는 독일어로 ‘망가져서 끝장났다’는 뜻)라고 불렀다. 미국이 1952년에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는데, 소련도 바로 3년 뒤에 성공했다. 아직 정찰 위성들이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전이라, 소련이 이미 미사일ㆍ중장거리 폭격기 수에서 미국을 앞섰다는 엉터리 분석도 만연했다. 지구에서 모든 사람이 맨눈으로 미국의 원자폭탄이 달에서 일으키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볼 수 있다면, 이는 이런 패배주의를 뒤집을 결정적 한 방이 될 수 있었다. 

 

 

라이펄 교수는 나중에 ‘현대 행성과학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는 제러드 카이퍼, ‘우주 전도사’로 알려질 칼 세이건 등으로 10명의 올스타 과학자 팀을 구성했다. 젊은 세이건은 폭발로 형성되는 먼지구름이 얼마나 팽창하는지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세웠다. 이는 지구에서 사람들이 보게 되는 먼지구름의 크기를 계산하는 핵심 작업이었다. 


라이펄 “기술적으로 가능” 보고서 제출
라이펄 교수(2017년 사망)는 1999년 세이건의 전기 출간으로 프로젝트 A119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뒤인 2000년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당시 ICBM으로도 불과 3.2㎞가량의 오차로 달을 맞출 수 있고 폭발 구름은 지구에서도 목격될 수 있어, 기술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충분했다”며 “환경적으로도 달에는 작은 충돌구 하나만 생길 뿐,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영국의 과학ㆍ핵기술 발전 사학자인 알렉스 웰러스틴은 2021년에 쓴 책 ‘금지된 데이터(Restricted Data)’라는 제목의 책에서 “A119 팀은 스푸트니크를 격추하는 안도 검토했지만, 이건 너무 악의적이라고 간주해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이펄은 “나는 45억 년 간 그대로였던 달의 환경이 파괴되면 과학계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미 공군의 주(主)관심은 핵 폭발이 지구에서 어떻게 보이는지에 쏠렸다”고 말했다. 라이펄은 핵 폭발로 달의 환경이 오염되면, 생명의 기원, 태양계의 초기 생성 과정 등에 대한 매우 유용한 과학적 접근이 차단돼, 과학계에는 전례 없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당시에는 달에 미생물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학설이 우세했다. 


라이펄 팀은 1958년 5월~1959년 1월 모두 8개의 보고서를 냈다. 라이펄이 속한 연구재단 측은 1987년 모든 보고서를 파기했고, 2017년 사망할 때까지 라이펄은 보고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 미 군부가 왜 프로젝트 A119의 집행을 포기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군부는 달의 핵 폭발에 대한 여론의 역풍(逆風)이 막대하리라고 생각했고, 만에 하나라도 수소폭탄이 달로 가기 전에 폭발하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도 프로젝트 E-4로 핵 폭발 추진
기이하게도 소련도 비슷한 시기 달의 핵 폭발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미국 측 움직임이 소련에 샌 듯하다. 미국 신문들도 1957년에 “소련이 11월7일 혁명기념일에 맞춰, 달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리려 한다”고 보도했다. 1958년 1월 소련의 두 물리학자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달에 우주선을 보내 달의 뒷면을 찍어 지구로 보내고, 우주선을 달에 충돌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이게 발전된 것이 프로젝트 E-4였다. 웬만한 재래식 폭탄을 달에 터뜨려선 지구에서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을 테니, 핵 폭탄을 터뜨려 소련 우주과학의 우세를 만방에 알리자는 것이었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은 달에 100 메가톤의 핵 폭탄을 터뜨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안전성’ 탓에, 포기했다.


공기 없는 달에선 핵 폭발 이후 버섯구름은 생기지 않아 
버섯구름은 지구처럼 대기 밀도가 높은 상황에서 먼지와 파편들이 상승해서 발생한다. 즉, 핵 폭탄이 폭발하면 지표면에서 매우 뜨겁고 압력이 높은 거대한 기체가 형성돼서 위쪽으로 가속 상승하면서 버섯의 기둥 모양이 형성된다. 그러다가 이 기둥이 확대되면서 높은 고도의 공기와 같은 밀도가 되면서 상승을 멈추고 옆으로 퍼져 버섯 모양이 형성된다.


그러나 달은 기본적으로 진공 상태다. 지구와 같은 대기 밀도가 없으므로, 핵폭탄이 초래한 먼지 파편의 확장을 막을 저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치 산탄총(shotgun)을 쏜 것처럼 수많은 미세 운석이 결국 달을 벗어나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비치면 수초 간에 걸친 화염 폭발과 거대한 먼지 폭발이 달에서 번지는 것을 지구에서도 볼 수는 있다고 한다. 


달의 핵 폭발 아이디어, 우주 군사화 프로젝트로 이어져 
라이펄은 과학 잡지 네이처에 쓴 서한에서 “미래의 달 과학을 위해서도, 달에 핵폭탄을 터뜨리려는 경주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핵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로리 박사는 “인류가 지구가 아닌 세계와 처음으로 만나는 방식이 핵 폭발일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라며 “그랬더라면, 닐 암스트롱의 ‘인류를 위한 거대한 걸음’이라는 이미지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위험한 생각’이 완전히 지나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작년 10월 ‘오리지널 신(Original Sin)’이란 제목의 책에서 우주 전쟁과 관련 기술을 다룬 블레딘 보원 영국 레스터대 국제정치학자는 “달의 핵 폭발은 앞으로 형성될 우주 시대의 성격을 깊이 생각하기 전에, 1950년대~1960년대 초를 휩쓴 우주 열기의 한 부분이었다”면서도 “완전히 지난 것이 아니다. 미 국방부나 중국에서 달 환경을 둘러싼 미션 등에서 이런 우주 군사화 얘기는 계속된다”고 밝혔다. 또 미국에서 한 황당한 아이디어가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해서, 중국과 같은 곳에서도 배척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주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기로 한 1967년의 우주 조약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A119와 E-4에 포함된 핵 DNA는 우주 강국들의 우주 군사화 프로그램에 살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