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넘어 우주생태계 구축"
'슬림'한 일본, 2024 난다

신년특집■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10 (3) 일본

 

2024년이 밝았다. 청룡의 해, 벽두부터 우주경쟁이 치열하다. 유인 달 탐사가 본격화되고 달 착륙 경쟁이 불붙는다. 경제와 전쟁의 해법을 우주에서 찾는 나라들도 있다. ‘우주 대항해 시대’의 개막은 이제 수사(修辭)의 문제가 아니라 필사적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그 대열에서 물러나 있을 수 없다. 이른바 ‘우주강국’들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4년을 맞으면서, 우주패권이 단순히 우주탐사 능력을 넘어서 국방과 경제를 포함한 국력의 총합이 된 ‘뉴스페이스’의 물결을 살펴봄으로써, 새해 새시대를 헤쳐나가는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 10곳은, 기존의 우주강국 개념인 우주발사/위성 역량은 물론이고, 경제 효과와 생활 개혁, 문화와 연구 등을 망라한 ‘우주능력’을 갖춘 곳 중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곳 10개국을 선정했다.

 

 

#1.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소똥을 연료로 로켓을 쏘아올렸다. 성공했다. 일본의 홋카이도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우주항구가 있다. 2023년 12월 7일, 놀라운 로켓 발사 실험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소똥으로 로켓을 날린다는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된 이 로켓 추진체 발사실험은 소 배설물에서 추출한 바이오 메탄가스를 연료로 사용해 화제가 됐다. 일본의 ‘인터스텔라테크놀로지스’라는 이름의 우주 스타트업이 이뤄낸 일이다. 인터스텔라... 기업의 이름부터 공상적이지 않은가.

 

#2. 로켓의 이름은 '제로'. 길이 32m, 지름 2.3m다. 개발과 발사기법이 완료될 경우, 2025년 발사돼 약 800㎏의 물체를 지구 저궤도로 올려보낼 계획이다. 회사 측은 "가축 배설물에서 추출한 액체 바이오 메탄 연료를 제로 로켓 추진체에서 10초 동안 연소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자랑했다. 이 회사는 발사장 인근의 농장에서 소 배설물을 공급받아 연료를 만들었다. 실제로 생활하는 주변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환경친화적' 로켓을 만들겠다는 뜻인데 경쟁력을 갖춘 우주산업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3. 디테일에 강한 일본이다. 그래서 그런지 크리스마스에 달 궤도에 오른 달 착륙선 이름이 ‘SLIM’이다. 스마트하게 목표지점 100m 안쪽에 착륙선을 보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크기도 작다. 높이 2.4m, 너비 2.7m, 길이 1.7m에 무게는 700kg에 불과하다. 그 안에 로버 2대 등 필요한 장비들이 다 들어있다. 착륙방식도 특이하다. 수직으로 내려앉는 대신, 달 표면 착륙 직전에 옆으로 쓰러지는 형태로 착륙한다. 그렇게 되면, 잘못 착륙하다 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아예 넘어졌으니까. 이같은 발상은 디테일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법이다.

 

일본의 우주산업을 몇가지 관점에서 들여다 보자면, 첫째는 달 탐사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홋카이도로 대표되는 지역 우주산업을 통한 경제 살리기요, 셋째는 다양한 형태의 스타트업 생태계다. 이제 우주산업은 국가나 국가기관 즉 JAXA 주관으로 진행되던 시대는 지났다. 소소한 영역에서 착실히 성과를 쌓아가고 있는 일본 우주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일본의 소형 달 탐사선 SLIM. 1월 20일 달 착륙을 시도한다. / JAXA

 

1. 2024년 달 탐사 가장 달아오른 나라, 일본

 

2024년 새해 초입에 달 탐사에 가장 열심인 나라를 꼽으라면, 일본이 첫손 꼽힌다. 2023년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불리며 일본의 정밀한 소형 달 탐사선 SLIM이 12월 25일 달 고도 600~400km의 타원형 달 궤도에 진입했다.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9월에 H2A 로켓47호에 실려 발사됐다. 이 로켓은 가장 연료소모가 적은 궤도를 따라 천천히 비행하면서 달에 접근해 갔다. 매우 효율적, 경제적인 우주선이다. 작아서 슬림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운영방식 또한 작다.

 

H2A 로켓은 곧 H3 로켓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다른 미션에 투입될 예정인데, H2A의 발사 성공률은 약 98%로 세계 최고수준이다. 대단히 일본적인 느낌이 든다. 오래 전에 개발되어 정밀하게 운영되다, 업그레이드로 운명을 다한다.

 

그 H2A 로켓이 실어올린 SLIM은 1월 20일 달 착륙을 시도한다. 미국의 우주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의 첫 무인 달착륙선 노바C가 새해초 발사돼 19일 달 착륙을 시도할 예정이라 이와 함께 새해 첫 달 착륙을 다툰다. 0시쯤 강하를 시작해 20분 정도 걸친 하강비행으로 달에 착륙한다. 달에 착륙하면 특수 카메라와 로버를 이용해 달 표면 암석에 포함된 광물을 종류를 측정하는 등의 미션을 수행한다.

 

일본은 그동안 JAXA와 민간기업이 함께 달 착륙을 시도해 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2023년 4월에는 일본 벤처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의 착륙선이 달 표면으로 착륙하던 중 추락했다.

 

그때 추락한 하쿠토R 1호에 이어, 아이스페이스가 두번째 달 착륙선 하쿠토R 2호를 올해 하반기 중에 보낼 예정이다. 아쉽게 네 번째 달 착륙 국가의 명예를 인도에 내준 일본은 하쿠토R 2호를 통해 달 토양 채취에 나선다. 2호의 주요 임무는 달의 극한 환경에서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한 소형 탐사차를 달 표면에 내려놓아, 달 토양을 채집하는 것. NASA가 이 달 토양을 구매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미션에서 일본인 우주비행사 최소 2명이 달에 착륙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NHK에 따르면 NASA가 곧 공식발표하리라고 한다. NASA는 원래 아르테미스3에서 외국인이 달 착륙한다는 입장은 정해놓은 상태. 만약 달에 일본인 우주비행사가 그에 해당된다면 일본 우주개발뿐 아니라, 세계 달 탐사 역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표적 우주 스타트업 아이스페이스는 달 자원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 ispace

 

2. 전통적 우주강국 일본, 정부 주도에서 스타트업으로~

 

그러고 보면, 일본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주 역량을 키워온 나라다. 1955년 한국이 6.25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던 시절에 일본은 최초의 인공위성 ‘오스미’를 발사했다. 1970년대에는 달 탐사선 ‘하야부사’를 발사하면서 세계가 인정하는 우주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2020년 하야부사2가 소행성 ‘류구’에서 가져온 토양샘플은 전세계 우주과학자들을 흥분시킨 성과로 꼽힌다.

 

최근에는 일본 연구진이 류구 시료에서 글라이신, 글루탐산 등 최소 20종의 아미노산을 발견했다가 하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태양계 생성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류구 표면 분석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아미노산 발견은 지구 외 다른 천체에도 아미노산이 존재하고, 이는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의 하야부사2가 가져온 류구 시료는 지금까지 연구된 태양계 물질 중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최근에 지구에 도착한 소행성 베누의 시료는 이제 막 분석이 시작되는 단계니까 논외로 하자). JAXA 연구팀은 “류구 시료의 경우, 태양계가 만들어진 뒤 약 500만년이 안된 시기, 얼음이 녹은 물과 접촉해 형성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성과를 축적해온 일본이 이제 JAXA 중심의 우주개발에서 스타트업 우주기업으로 대변되는 민간기업의 경쟁력 확보, 홋카이도 스페이스포트 같은 지방경제 문제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우주개발이 곧 경제문제임을 체험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우주산업 비전 2030’을 2017년에 발표한 바 있다. 2030년까지 일본내 우주산업 시장 규모를 2조엔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그러기 위해 JAXA와 연계한 스타트업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민간기업의 우주사업 참여를 장려한다는 행동지침을 담고 있다.

 

이같은 정책의 영향으로 일본의 우주 스타트업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스페이스, 인터스텔라테크놀로지스, 기타이, 악셀스페이스, 신스펙티브 등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이스페이스는 달 착륙선 개발을 통해 달 자원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인터스텔라테크놀로지스는 소형 발사체를 개발해 우주 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악셀스페이스와 신스펙티브는 인공위성을 활용한 지구 관측 데이터 사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기타이는 로봇팔의 양쪽 끝단에 '그래플 엔드 이펙터(grapple end-effectors)'를 결합한 자벌레 형태 월면 로봇(Lunar Inchworm Type robot)을 개발했다. 사용자는 다양한 도구를 로봇에 연결해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로봇 팔의 양쪽 끝에 엔드 이펙터가 있기 때문에 자율적인 동작 구현이 가능하다.기타이는 2023년 봄 여름에 걸쳐, 세계적인 투자자들로부터 약 4500만 달러(약 6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자금으로 미국내 사업을 확장하고 달 표면 시연 연구들을 진척시킬 계획이다.

 

JAXA와 대기업 중심의 우주개발에서 아직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스타트업을 육성해내는 시도를 통해 우주산업 생태계가 갖춰져 가고 있다.

 

소똥에서 추출한 연료로 로켓 '제로' 발사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배경에는 홋카이도 스페이스포트가 있다. / Hokkaido Spaceport

 

3. 홋카이도와 민관협력... “디테일-독창성 살려 우주생태계 구축”

 

2023년 10월, 일본의 홋카이도에서 ‘우주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본 최대 규모의 우주 비즈니스 컨퍼런스인 ‘2023 홋카이도 우주정상회담(Hokkaido Space Summit 2023)’이 홋카이도에서 열린 것은 동아시아 최초로 민간에 개방된 상업 우주항인 ‘홋카이도 스페이스 포트’가 있기 때문이다.

 

상업 우주항 ‘홋카이도 스페이스 포트(HOSPO)’는 2021년 4월 본격 가동된 우주항구다. 일본 홋카이도의 오오키마치에 있다. 동쪽과 남쪽 방향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고 광대하고 높은 지형이 우주발사와 관측에 지리적 우위성이 있어, 세계 톱 클래스의 우주항구 적격지로 일컬어지는 곳. 40여년 전부터 우주산업 유치가 진행되어 왔다.

 

이 사업을 주도한 SPACE COTAN은 ‘홋카이도에, 우주판 실리콘 밸리를 만든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로켓 발사장, 실험장 등을 운영하고 발사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새로운 로켓 발사장과 활주로 확장 공사를 지속하는 등 우주산업을 유지하면서 지역경제 발전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달과 우주에서 미래를 찾는다는 목표로 뛰고 있는 일본이 JAXA 중심, 국가 중심의 우주산업에서 탈피해 지역경제와 민간기업/우주스타트업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핵심으로 활력있는 우주산업을 형성해 가고 있다.

 

그 결과가 상업 우주항을 이용한 우주발사 대행 등의 업무는 물론이고, ‘소똥 로켓’을 만드는 작고 기발한 스타트업들의 실험이 가능해졌다.

 

JAXA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세부 사업에 주목하고 이를 산업화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2018년 시작된 ‘J-SPARC’는 우주산업과 관련한 신기술 획득과 상용화를 목표로 정부와 민간기업이 협력하는 프로젝트 모델이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우주선 정비 기술, 우주쓰레기 확산 방지 기술, 소형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체를 이용한 데이터 인프라구축 서비스 등 우주자원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부터 우주보험업, 우주설렘체험사업 등 가까운 미래 우주여행이 본격화된다는 점에 착안한 사업 아이템도 있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도 지원한다. 일본 정부가 운영하는 기업 매칭 사이트 ‘J-TECH’를 통해 국내기업은 물론 해외기업과의 매칭을 주선한다. 협업을 통해 신생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문턱도 한층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다양하게 전개되는 일본 우주산업의 목적은 ‘지속 가능한 우주항공사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 일본 우주산업은 디테일에 강한 일본 문화의 힘을 십분 활용해 각각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자신의 특성에만 집중해도 우주산업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우주 생태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JAL기 사고에도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은 이면에는 우주과학 첨단소재가 있었다. / 연합뉴스

 

4. JAL기 사고에도 ‘뉴스페이스 시대의 과학’이 숨겨있다?

 

끝으로 하나 덧붙일 사건이 새해 초입에 벌어졌다.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1월 2일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한 JAL 여객기에서 379명 탑승자 전원이 무사히 구조된 일이다. 일본인의 위기대응 능력과 침착한 국민성이 돋보인 사고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언론들이 감탄한 사건. 비록 해상보안청의 비행기에서는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했지만....

 

현장의 반응에 대한 놀라움이 걷히고 나자, 과학적인 소견이 하나 눈길을 끈다. JAL기 사고 기종이 에어버스 A350-900으로 날개를 포함한 기체의 53%가 탄소섬유 복합재로 이뤄져 있다는 것. 불에 견뎌내는 내화성이 강한 탄소섬유 복합소재는 탑승자 전원이 탈출할 수 있을 만큼 화재의 속도를 늦춰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 90초룰에 따라 가방까지 포기하고 재빠르게 내린 승객과 승무원의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뒷 배경엔 항공기 소재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탄소섬유 복합재로 이뤄진 항공기가 전소될만큼 큰 사고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 이 사고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된 이 첨단소재는 우주선을 만들 때 사용되는 소재다. 이 소재를 사용하는 최신형 항공기들은 에어버스나 보잉 같은 대형 항공사여서 일본이 그 소재를 사용해 항공기를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뉴스페이스 시대에는 기술과 소재, 그것을 이용하는 인력이 조화를 이뤄야 함을 보여준 사례라 할 만하다.

 

이 첨단소재는 기존의 항공기에 많이 사용되는 알루미늄보다 발화점은 낮지만 화재가 번지는 속도를 늦춰주는 특성이 있어, 이번 사고에서 그 특성이 십분 발휘되었다고 해석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항공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탄소섬유가 열 차단 기능을 제공했다”면서 “또한 가벼운 탄소섬유 복합재가 연료효율을 높여 기체에 남은 연료량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대형 폭발을 막을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거친 극한 환경에서 진행되는 우주탐사를 위해 인간이 개발하는 놀라운 기술들은 단지 우주에서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의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준 사례가 새해벽두에 극적으로 제시된 셈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는 이처럼 쓸모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