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우주비행의 감동, 러시아
'전쟁의 늪' 넘어 우주로?

신년특집■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10 (5) 러시아

2024년이 밝았다. 청룡의 해, 벽두부터 우주경쟁이 치열하다. 유인 달 탐사가 본격화되고 달 착륙 경쟁이 불붙는다. 경제와 전쟁의 해법을 우주에서 찾는 나라들도 있다. ‘우주 대항해 시대’의 개막은 이제 수사(修辭)의 문제가 아니라 필사적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그 대열에서 물러나 있을 수 없다. 이른바 ‘우주강국’들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4년을 맞으면서, 우주패권이 단순히 우주탐사 능력을 넘어서 국방과 경제를 포함한 국력의 총합이 된 ‘뉴스페이스’의 물결을 살펴봄으로써, 새해 새시대를 헤쳐나가는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 10곳은, 기존의 우주강국 개념인 우주발사/위성 역량은 물론이고, 경제 효과와 생활 개혁, 문화와 연구 등을 망라한 ‘우주능력’을 갖춘 곳 중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곳 10개국을 선정했다.

 

 

#1. ISS에 파견되어 있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올레그 보그다노프는 우주유영 중에 위성의 잔해 아래로 추락하는 비상상황에 처해, 심각한 폐 부상을 입게 된다. 지구로 데려와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상태. 그래서 지구의 관제실에서는 의사를 ISS로 보내 우주정거장 안에서 수술을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환자가 대기권 진입 때의 충격을 버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많은 후보들 중에서 벨랴에바가 선정되고, 스타시티에 있는 훈련센터에서 우주인 훈련을 받는다. 압력실에서 산소부족 훈련을 받고, 원심분리기에서 고압의 상태를 버티는 훈련, 무중력 훈련 등을 소화해낸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로.... 사상 초유의 우주 수술이 이뤄지는데, 우여곡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2.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우주에서 촬영한 영화의 줄거리다. 세계 우주탐사의 중심에 서 있는 국제우주정거장 ISS. 그곳에서 영화가 촬영된 것이다. 우주에서 찍은 세계 최초의 영화, 러시아가 찍은 <the Challenge>다. 톰 크루즈가 그곳에서 첫 영화를 찍고싶어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러시아가 선수를 쳤다. 영화 그 자체보다는 우주에서 처음으로 찍었다는 사실이 더 유명한 영화다. ISS에서의 첫 영화, 우주에서 찍은 첫 영화가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가 세운 우주 관련 ‘첫’ 기록은 이외에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ISS에서 촬영된 첫 영화 <the Challenge>의 한 장면. / youtube

 

1. 선두주자 러시아, 지금도 재정 쏟아붓는다

 

러시아는 지금 달 탐사에 열심이다. 러시아는 2023년 ‘루나25’를 발사해 달 남극 착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제 곧 달 궤도선인 ‘루나26’을 먼저 발사하고, ‘루나27’을 쏘아 다시 한번 달 착륙에 도전할 계획이다.

 

2021년말 기준,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주개발 투자비율 1위인 국가는? 러시아다. GDP의 0.24%가 우주개발에 투입된다. 러시아를 제외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투자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이렇게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이미 수준 높은 우주기술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쏟아부어서 따라가보자’가 아니라 ‘지금 투자하면 충분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특이하게도 독자적이고 폐쇄적인 상태에서 우주산업을 키워왔고, 그래서 지금도 외부의 협력없이 방대한 우주장비 제품군을 생산하고 유지할 수 있는 나라다. 20세기 초에는 전세계 발사 로켓의 절반 가량이 러시아 로켓이었다고 할만큼 앞서 있는 나라 러시아. ISS의 체류와 유지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러시아의 우주 수리기술이다. 그렇지만 그같은 상황 안에 우주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내부 경쟁의 부재와 우주기관 혹은 기업의 노후화된 생산 시설이다. 그러다 보니 혁신적 신제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과거 로켓 발사에서는 최고라던 평가가 미국의 스페이스X를 비롯한 민간 상업용 우주장치 발사 시장이 형성되면서 그 독보성은 빛을 잃은지 오래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러시아는 이제 재정을 퍼부어서라도 다시 우주산업 부흥에 나서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문제는 이제는 더 이상 혼자, 한 나라가 우주개발에 나서기 어려운 시기가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외협력 관계를 도모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을 제외하면 영향력 큰 협력국가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도 한때 유망한 협력국 중 하나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다.

 

실제로 한국이 제작했거나 한국 기업의 의뢰를 받아 제작되었거나 한국과 다른 국가의 협력을 통해 제작된 우주장치를 궤도에 올리기 위한 우주발사가 2003년 이후 진행된 20여건의 발사 중 상당수가 러시아의 로켓을 통해 이뤄졌으며, 실패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국제 정세로 인해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지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해외 협력 파트너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진화하고 있는 소유즈 로켓들. 맨 오른쪽이 소유즈5의 모델이다. / wikipedia

 

2. 전쟁의 늪에 빠진 러시아... 우주산업은 어디로?

 

러시아의 경우, 우주개발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때문이다. 전쟁 초기 인공위성의 위력을 절감한 바 있는 러시아는 전쟁을 치르는 한편, 우주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상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2023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서방언론들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우주 프로그램이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 항공인 '바이코누르' 우주기지를 운영해왔다. 러시아는 바이코누르를 스페이스X와 경쟁할 새로운 '소유즈5 로켓 프로그램'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제작 중인 소유즈5는 카자흐스탄 화폐로 대략 908억 텡게(약 257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에 가해진 제재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로 소유스5는 제작 및 발사가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다.

 

또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카자흐스탄마저도 EU와의 관계를 개선을 위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러시아의 우주개발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경우, 다시 한번 전통적 우주강국의 입장을 확고히 하고 싶어하는 러시아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늙은 산업이 되어버린 하드웨어적 현실과 전쟁이라는 블랙홀로 인해 외연 확장의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에 빠진 러시아로서는 혁신적인 계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참고로, 러시아의 향방을 좌우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간략히 조망하면 이렇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특별 군사작전 개시명령'을 선언한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비나치화, 돈바스 지역의 주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초반 압도적 무력을 선보였으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수렁과 같은 양상을 보이며 장기전이 되어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투까지 더해지면서 세계가 분열되고 있는 조짐을 보이기도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목표는 러시아에 점령된 자국의 영토를 완전 탈환하고 NATO 가입을 성사시키는 것. 러시아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내 친러파 우세 지역 점령 및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의 저지다. 돈바스 지역의 운명 다툼이 전쟁의 키포인트였으나, 종료는 국제 정세의 이해관계와 함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ISS. / NASA

 

3. 미국으로부터 뻗어온 구원의 손길?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러시아 우주산업을 살릴 구원의 손길은 미국으로부터 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를 우주정보, 우주산업 시장에서 퇴출시킬 것 같았던 미국과 유럽이 전쟁이 길어지면서 태도를 바꿔가고 있다. 중국이 발빠르게 우주산업을 확장하면서 동료국가들을 규합해 가고 있는 상황은 이같은 사태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00여일이 지난 2022년 6월엔 한동안 중단했던 유인우주선 좌석 교환을 위한 협상을 미국이 재개하겠다고 나섰다. 이 무렵 빌 넬슨 NASA 국장은 미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견고하다면서, 러시아 우주인들이 프로페셔널하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유럽국가들도 마찬가지 상태. 러시아와 함께 추진하던 화성탐사 ‘엑소마스’ 미션이 중단됐다 다시 시작됐고,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 사용을 중단했던 나라들도 다시 러시아를 찾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ISS에서의 러시아의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공감하고 있는 상태다.

 

ISS 운영에 러시아가 큰 영향을 미친다. 당초 2024년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다가 2030년으로 수명이 연장된 ISS에서 러시아가 협력을 중단하겠다고 한 선언을 철회하고 다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갖게 됐고, 당초 계획이던 2024년까지는 현 체제의 ISS를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벌어진 이같은 흐름은 우주산업의 경제성에 대해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미국이 스페이스X를 비롯해 자국의 우주발사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주도형 러시아 우주산업이 갖는 비용 효율성의 측면에서 러시아의 로켓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서방언론들의 분석이다.

 

즉, 중국의 빠른 확장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내부의 경제적 여건까지 맞아 떨어지자, 러시아가 갖는 전략적 위험요소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우주 분야에서 손을 잡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우주탐사보다 경제회생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고, 결국 우주패권 추구도 경제패권 확보를 위한 수단일 뿐일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세계 첫 우주비행 여성 조종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와 인류 첫 우주비행을 성공한 유리 가가린. 

 

4. 러시아의 '최초남녀'가 보여준 러시아의 미래

 

러시아가 우주산업에서 보여준 '첫' 사례들 중에서, '첫번째'이면서 시대와 체제, 개인의 역량 등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첫 우주인들이다. 이들의 존재 배경과 도전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면, 21세기의 우리가 배울 인사이트와 미래의 러시아가 찾아갈 돌파구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남과 여. 러시아 사람, 아니 옛 소련 사람들이다. 닐 암스트롱만큼 유명한 유일한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사람이고,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지구 밖으로 진출한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다.

 

그 두 사람을 살펴보면, 국가와 개인의 관계, 국가의 의지와 개인의 용기, 공산 소련이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인이 없다면 불가능한 도전인 우주탐사의 파이어니어들의 도전에 가슴이 벅차온다. 

 

“기회가 되면 다시는 못 돌아오더라도 화성에 가보고 싶다.” 이 말은 만년의 테레시코바가 한 말이다. 1937년생인 테레시코바는 여성 우주인으로 뽑힌 이유가 두 가지다. 첫째는 프롤레타리아, 즉 공장 노동자라는 것. 둘째는 낙하산 타기가 취미라는 것.

 

우주인이 되는 영광은 프롤레타리아가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판단한 흐루시초프가 직접 선발한 사람이 테레시코바였고, 당시 우주선 착륙 기술이 부족한 시대상황상 우주선 도착 때 땅에 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상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우주인이 탈출해야만 했다. 그러니, 낙하산 타기가 우주인에 적합한 자격에 해당했던 것.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도전이다. 

 

1962년에 우주비행사가 된 테레시코바는 1963년 6월, 보스토크 6호를 타고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비행 내내 멀미로 고생했다고 알려졌지만, 지구를 48바퀴, 70시간 50분에 걸쳐 돌고난 뒤 무사히 귀환해 세계 최초 여성 우주비행, 세계최연소 우주비행 등의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저 유명한 유리 가가린. “우주는 매우 어두웠으나, 지구는 푸르렀다”는 말을 남긴 우주비행 첫 인간이다.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인 보스토크 계획에 발탁되어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1호를 타고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 우주비행을 한 첫 인간이 되었다. 1시간 30분의 우주비행을 통해 그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을 자극해 아폴로 프로젝트를 낳은 이 보스토크 프로그램은 사람이 타지 않은 7번의 우주 비행선 개발 비행 끝에 유인으로 발사되었으며, 유인 비행은 가가린의 비행을 포함해 6번 모두 성공적으로 끝났다.

 

작은 키 때문에 조종사가 될 수 없을 뻔하다 간신히 조종사가 되고, 그 키 덕분에 초기의 작은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유리 가가린은 비행 후 국가적 인물이 되어 우주비행에 관여했고, 꿈이었던 전투훈련기 조종 중 추락해 34세의 젊은 나이에 별이 되었다.

 

러시아 우주탐사의 첫장에 가슴 설레는 도전이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대와 개인의 만남, 우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기회의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