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쥘 베른의 프랑스
문화의 힘, 우주에서 꽃핀다

신년특집■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10 (6) 프랑스

2024년이 밝았다. 청룡의 해, 벽두부터 우주경쟁이 치열하다. 유인 달 탐사가 본격화되고 달 착륙 경쟁이 불붙는다. 경제와 전쟁의 해법을 우주에서 찾는 나라들도 있다. ‘우주 대항해 시대’의 개막은 이제 수사(修辭)의 문제가 아니라 필사적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그 대열에서 물러나 있을 수 없다. 이른바 ‘우주강국’들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4년을 맞으면서, 우주패권이 단순히 우주탐사 능력을 넘어서 국방과 경제를 포함한 국력의 총합이 된 ‘뉴스페이스’의 물결을 살펴봄으로써, 새해 새시대를 헤쳐나가는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 10곳은, 기존의 우주강국 개념인 우주발사/위성 역량은 물론이고, 경제 효과와 생활 개혁, 문화와 연구 등을 망라한 ‘우주능력’을 갖춘 곳 중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곳 10개국을 선정했다.

 

 

 

#1. 어린왕자는 지구별에 도착했다. 외로웠다. 여우를 만났다. 여우는 ‘길들여달라’고 말했다. 그게 뭔지 어린왕자는 잘 모른다. “가르쳐줘.” “시간을 들이는 것, 관계를 맺는 것이야. 네 별에 있는 장미가시에 손을 찔리면서 물을 주고 기르는 것처럼.” 어린왕자는 알 것 같았다. 여우와 헤어질 시간,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단순하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본질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본질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잊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가 따라 말했다. “네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네 꽃에 바친 시간이란다.” “내가 내 꽃에 바친 시간이라…”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2. 이 이야기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어린왕자>의 가장 유명한 대목을 조금 변형한 것이다. 열정적인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가 쓴 환상소설 <어린왕자>. 어린왕자가 살던 별이 있다. 아주 작은 별. 석양을 좋아하는 어린왕자가 석양을 보고 싶을 때 하는 일은 의자를 조금 옮겨 석양 쪽을 바라보면 될만큼 작은 별이다. 하루에 44번 석양을 본 적도 있다. 그 별의 이름은 B612다. 프랑스 툴루즈는 요즘 우주산업의 메카로 급성장하고 있다. 그곳에는 B612라는 장소가 있다. 우주 스타트업 기업들이 첫 뿌리를 키워가는 비즈니스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에어로스페이스 밸리’가 국제적 스페이스 테크 파트너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B612에서 1, 2년간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우주 스타트업들에게 물을 주고, 그들의 앞에 놓인 가시들을 정리해 준다.

 

쥘 베른의 달 탐험 2부작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 달나라 탐험 중 달표면의 산맥에 대한 페이지. 

 

1. 19세기에 달탐사를 읽어낸 '쥘 베른 보유국'

 

<어린왕자>와 <야간비행>의 작가 생텍쥐페리라는 걸출한 작가의 나라 프랑스에는 쥘 베른이라는 위대한 선대작가도 보유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각종 소설들. 바닷속, 땅속, 밀림속, 그리고 세계일주 이야기는 물론이고 달나라에 이르기까지 신비한 곳이면 어디든 탐구적으로 그려내는 놀라운 작가가 쥘 베른이다. 그가 그려낸 달나라 소설 두편은 지금 읽어도 놀라운 과학지식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

 

쥘 베른이 <지구에서 달까지>와 <달나라 탐험>이라는 2권의 소설은 달 탐사의 예언서 같은 소설이다. 1865년, 1869년에 씌여졌다. 일종의 연작소설인 이들 소설은 달에 가는 로켓과 달의 지형, 궤도비행, 귀환을 위한 추진체 등 아주 중요한 달 탐사 요소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지구에서 달까지>는 거대한 포탄을 타고 달로 날아가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달까지 가는 포탄은 도대체 얼마나 커야할까. 크기도 크기지만, 장약을 얼마나 넣고, 어떤 각도로 초기 속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달까지 갈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이 복잡한 수식과 함께 해결되어 있다. 이렇게 쏘면 된다, 저렇게 쏘면 된다, 실패한다, 성공한다, 돌아오지 못한다, 못돌아와도 괜찮다,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갈등요소들도 다 포함되어 있다.

 

마침내 미셸과 바비케인 그리고 니콜이라는 세명의 용감한 우주인이 선정되고, 달로 발사된다. 말 그대로 발사되었다. 엄청난 충격. 세명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 한명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서서히 우주비행과 무중력 상태에 적응하면서 신나게 날아다니고, 즐겁게 춤춘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분명히 달에 착륙할 때가 됐는데, 달 궤도를 빙빙 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비행 중 마주쳤던 운석 때문에 미세하게 방향이 틀어져 우주선, 아니 포탄이 달의 중력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영원히 달을 돌며 우주미아가 되어야 하나? 그들은 달 착륙을 위해 연추진 장치를 갖고 있음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궤도에서 벗어나 지구로 귀환하는데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결말은?

 

이 스토리의 앞쪽은 <지구에서 달까지>이고, 뒷부분은 <달나라 탐험>이다. 그런데 달나라 탐험의 불어 원제는 <Autour de la Lune>다. ‘달의 둘레 돌기’다. 그러니 사실, 완성형의 소설인 셈이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이야기가 달의 궤도를 도는 동안 펼쳐진다. 어떤 인간도 자세히 관찰해 본 적이 없는 달 표면을 구경하는 것이다. 수많은 바다들(이름만 바다), 산맥과 분화구, 밭고랑처럼 생긴 거대한 골짜기들을 보고, 당연히 달의 뒷면도 본다. 달과 400km 떨어진 하늘을 돌며 달의 거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19세기의 세계관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통해 지금 21세기의 시점에서 봐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달 지형도를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여기에 2차대전 당시의 독일이 개발한 거대한 V2로켓이 실제로 초기 우주개발의 모델이었던 것 등을 더하면, 쥘 베른과 프랑스 문화의 상상력은 꿈이 아니라 과학에 근접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화국가 프랑스가 알고보면 우주국가였다는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에어로스페이스 밸리의 현황을 보여주고 있는 홈페이지 첫 화면. 

 

2. 툴루즈와 보르도, 에어로스페이스 밸리를 아시나요?

 

문화대국 프랑스답게 문화의 상상력이 19세기부터 세계인을 달나라 탐험으로 이끌었다면, 이제 프랑스인의 삶과 도시를 우주스럽게 바꿔가고 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가 한동안 세계경제의 중심에서 미래를 개척해왔듯이, 이제 프랑스의 에어로스페이스 밸리에 주목해야 할 때가 왔다고 프랑스는 주장한다. 에어로스페이스 밸리는 지역 이름이면서 비영리 기관의 이름이다. 2005년 설립된 비영리 기관인 에어로스페이스 밸리는 툴루즈와 보르도의 기업, 연구센터, 훈련기관, 대학들을 연결시켜 거대한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항공우주 엔지니어링 회사들과 연구센터들로 이루어진 클러스터다. 2024년 1월 15일 현재 862개의 기업과 단체가 멤버로 등록되어 있다. 1만명 가까운 연구자들이 일하면서 10만개가 훨신 넘는 일자리가 창출된 지역이다. 본사는 툴루즈에 있고 에어버스 부회장이 클러스터의 의장을 맡고 있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 모든 가치사슬 과정에 걸쳐 집적되어 있는 우주산업, 그리고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기관을 통해 배출되는 우수한 인력들이 툴루즈의 우주산업 생태계를 선순환시키고 있는 바탕이 된다.

​툴루즈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보면, 프랑스 우주산업의 남다른 점이 보인다.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툴루즈는 이 고장 특유의 점토로 만든 붉은빛 벽돌로 건축한 건물이 많아 ‘장미 도시’라고 불린다. 인구 50만명의 툴루즈는 작아 보이지만 파리, 마르세이유, 리옹 등에 이어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대도시에 속하는 곳이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중간, 미디 피레네 지역에 위치한 툴루즈는 유럽 남부 지역 특유의 기후와 토양이 만드는 풍요로움과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유명한 곳이다. 고대 로마시대에 기원한 풍부한 문화유산이 살아있는 이 도시를 걷거나 자전거로 돌아다니면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몸속 깊은 곳까지 빨아들일 수 있다.

 

툴루즈는 대학도시다. 1229년에 설립되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자 세계적 명문 툴루즈 대학이 있고, 프랑스 국립 항공대학교인 ENAC도 이곳에 있다.

 

1968년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 CNES가 툴루즈 센터를 만들고 프랑스 정부가 1000명의 직원들을 파리에서 툴루즈로 이주시켰는데, 이때 모든 직원과 가족에게 원하면 1년 거주하다가 돌아올 수 있는 혜택을 제공했지만 단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

 

툴루즈는 에어버스 본사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에어버스는 인공위성, 우주비행사가 탑승한 우주선부터 헬리콥터와 상업용 비행기까지 항공우주 분야의 모든 제품과 솔루션을 개발해낸 기업이다. 또한 툴루즈에는 유럽 최대 인공위성 제작사인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Thales Alenia Space)의 거점이 있으며, CNES 툴루즈 센터와 프랑스 항공우주 연구센터인 ONERA도 둥지를 틀고 있다. 400개의 우주 관련 회사가 1만2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툴루즈는 유럽 우주 산업의 중심지로, 프랑스 우주 분야 인력의 50%, 유럽 인력의 25%를 보유하고 있다.

 

최고의 우주산업 단지에 최고의 문화와 삶의 질이 더해져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툴루즈와 프랑스의 에어로스페이스 밸리다.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2023년 11월 23일 아리안6호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 CNES

 

3. 우주에서 국방을 해결하는 ‘우주국가’, 프랑스

 

프랑스는 전통과 문화의 강국이지만, 그것만으로 ‘우주강국 프랑스’를 설명한다면 억지가 될 터, 1960년대 초에 프랑스는 벌써 우주개발에 착수했다. 1965년 우주발사체를 개발해 세계 6번째로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다. 1980년에는 유럽우주청 ESA의 아리안 로켓을 개발, 생산, 운영하는 기업 아리안스페이스를 설립했고, 1982년 6월에는 프랑스 우주비행사가 서유럽 최초의 우주인으로 러시아 우주정거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 CNES를 중심으로 유럽의 독자성을 강조한 각종 우주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는 ESA가 추진하는 많은 프로젝트의 주축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오래전 역사의 덕분으로 적도 근처에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령을 이용한 발사장 건설도 가능해진다. 1964년에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에 설립된 '기아나 우주센터'가 그 예다. 북위5˚의 저위도에 위치해 정지위성발사에 가장 적합하다. 자국의 발사체는 물론 다른 나라도 이용할 수 있는 우주기지를 확보한 것이다. 역사와 문화를 알뜰하게 우주사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한때 프랑스의 경제가 위축됨에따라 우주개발 또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2005년 프랑스 정부가 CNES와 6년간의 다년도 계약을 맺으면서 우주 예산 및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계약은 2020~2015년으로 또 갱신되었으며 프랑스 민간의 우주개발과 연구를 지원하는 쪽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주목할 대목은 민군(民軍)의 통합, 우주개발 사업의 일원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 통신 지구관측 등 상업응용 분야와 군사용 정찰위성의 추진이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 그 예가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 국방영역이 우주에 대해 걸고 있는 강력한 드라이브가 포착된다.

 

프랑스는 2024년 국방 예산안(2024 Projet de loi de finances, PLF)에 따라 우주, 사이버, 로봇 공학 분야에 10억 유로 이상을 배정했다. 2023년 10월 11일에 발표된 PLF에 따르면, 2024년 국방예산은 2023년보다 33억 유로 늘어난 475억 유로(502억 달러)로 정해졌다. 예산의 많은 부분이 군의 현대화와 우주 및 사이버 영역에 집중투자될 예정이다.

 

‘우주분야’ 항목에만 총 6억 유로가 배정됐다. PLF에 나열된 프로젝트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분야다. 우주분야 핵심 사업에는 시라큐스 IV 위성통신 지상국 11개 획득과 ‘공간 관측 기술(spatial observation technologies)’과 ‘능동적 방어 역량(active defence capabilities)’ 강화가 포함되어 있다. 초고해상도 위성인 Composante Spatiale Optique(CSO)의 2024년 발사도 포함됐다.

 

무기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지향성 에너지 무기(directed energy weapons)’와 능동적 우주 방어 역량과 같은 신흥 기술 개발에도 12억 유로가 투자될 예정이다. 국방의 거의 모든 영역이 이제 우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방 우주정책에서 ‘국방 및 국가안보백서’를 통해 방위 인프라의 필수요소로서 우주를 지목하고 있다. 국방 및 안보를 위한 우주의 중요성을 고해해 우주 관련 정부 정책과 운영 및 프로그램을 참모총장이 직접 관장하는 합동우주사령부 아래 두기도 했다.

 

이같은 범국가 차원의 우선순위에서 우주가 강조된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우주 관련 투자와 정책을 펼치고 있는 국가다. 발사체와 발사장 운영, 위성 운용 및 활용 분야 등에서도 최신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프랑스는 한때 유럽 전체의 우주 관련 제조업 매출의 50%를 차지할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강한 자율성을 갖고 있는 CNES조차도 그 역할의 상당부분을 프랑스의 우주역량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적 가시적 노력이 프랑스가 전통 깊은 문화와 상상력을 현실의 실력으로 키워내 ‘우주강국’을 이어갈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