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의 이탈리아
우주산업의 미래도 창조!

신년특집■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10 (8) 이탈리아

 

2024년이 밝았다. 청룡의 해, 벽두부터 우주경쟁이 치열하다. 유인 달 탐사가 본격화되고 달 착륙 경쟁이 불붙는다. 경제와 전쟁의 해법을 우주에서 찾는 나라들도 있다. ‘우주 대항해 시대’의 개막은 이제 수사(修辭)의 문제가 아니라 필사적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그 대열에서 물러나 있을 수 없다. 이른바 ‘우주강국’들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4년을 맞으면서, 우주패권이 단순히 우주탐사 능력을 넘어서 국방과 경제를 포함한 국력의 총합이 된 ‘뉴스페이스’의 물결을 살펴봄으로써, 새해 새시대를 헤쳐나가는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 10곳은, 기존의 우주강국 개념인 우주발사/위성 역량은 물론이고, 경제 효과와 생활 개혁, 문화와 연구 등을 망라한 ‘우주능력’을 갖춘 곳 중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곳 10개국을 선정했다.

 

 

 

#1. ‘made in Italy’ 이 말은 패션에서 명품을 인증하는 마법의 문구다. ‘Prada’는 그중 아주 큰 몫을 차지하는 하나의 브랜드다. 사실, 브랜드를 넘어선 라이프 스타일이며 가치 그 자체이기도 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할리우드 영화가 시니컬한 시선으로 그 위용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 프라다가 우주복을 만든다. 그것도 미국의 유인 우주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우주인들이 입는 최첨단 우주복을 만든다. 그러니, 패션저널리즘의 명가 ‘보그’가 이 소식을 흥분해 전달했다. “프라다는 미국 우주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와 협업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르테미스 3(Artemis III) 임무에 사용할 달 우주복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아르테미스 3호는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약 반세기 만에 추진되는 유인 달 착륙선인데요. 2025년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 프라다 우주복, made in Italy 우주복은 그냥 패션의 첨단을 달리는 우주복이 아니다. 우주인의 미션 수행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첨단기능의 우주복이다. 신세대 우주복이 될 이번 아르테미스3 우주인용 우주복은 유연성과 인체 보호기능을 극대화해 달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편리하도록 했고, 달표면 탐사와 샘플 채취 등이 쉽도록 각종 기능을 장착하고 있다. 앞으로 유인 우주탐사가 더 쉬워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장치들이 명품의류의 신개념이 될 판이다. 액시엄 스페이스의 마이클 서프레디니(Michael Suffredini) CEO는 “프라다의 특별한 소재와 제조 기술, 디자인은 달 표면에 있는 우주 비행사의 편안한 활동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기존 우주복에는 없었던 인간을 위한 첨단 기술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고 프라다 측은 “문명을 발전시키는 인간의 창의성과 혁신의 힘을 진정으로 기념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탈리아는 흔히들 생각하는 ‘역사를 팔아먹고 사는 나라’가 절대 아니다. 세계가 우주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부터 일찌감치 우주산업에 뛰어들었고, 초기 유럽우주국 ESA를 구축할 때도 주역이 되었던 나라다. 지금 이탈리아는 우주산업 곳곳에 ‘made in Italy’ 깃발이 휘날리길 기대하고 있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딱 맞는 맞춤형 우주산업 국가다.

 

한국군 최초의 군사정찰위성 425프로젝트의 핵심기술에 이탈리아 기업이 들어가 있다. / 스페이스X 

 

1. 한국군의 필살기, ‘425 프로젝트’에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로마 북동쪽에 있는 유럽 최대 인공위성 개발기업 탈레스알레니아스페이스(TAS). 유럽 전역은 물론 튀르키에, 한국, 브라질 등 세계로 수출되는 인공위성을 제작하고 있다. 그 중에는 한국군 전용 정찰위성 ‘425위성’에 들어가는 접시 모양의 대형 안테나도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한국군은 독자 정찰위성이 없었다. 425위성 사업은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 4대와 전자광학·적외선 위성(EO·IR) 1기를 발사해 2025년까지 전력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관하고 한화시스템과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가 참여하는 이 435프로젝트에서 이탈리아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425위성 핵심 부품은 TAS가 대부분 공급하고 있다. 위성의 3대 핵심 부품은 제어장치, 안테나, 전파 송·수신기다. TAS가 자랑하는 기술 중 하나인 ‘LURA(대형전개 반사 조립체) 안테나’는 펼쳤을 때 폭이 5m에 이른다. 클수록 반사 전파를 더 많이 수신해 해상도가 높아진다. 개별 안테나 부품은 ‘꽃잎(petal)’이라고 부르는 작은 조각으로 연결돼 있어 발사 때 부피를 줄일 수 있다. 우주 궤도에 진입하면 꽃처럼 부품을 펼쳐 기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됐다. 이 아름답고 효율적이 기술은 전세계에서 극소수 기업만 갖춘 기술이다.

 

TAS가 위성 핵심 부품을 만들면 KAI가 받아 조립과 성능시험 등을 한다. 이미 SAR 위성 네 대 중 두 대의 주요 부품이 로마에서 한국으로 전달됐고, 첫 번째 군사위성은 지난해말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이를 통해 한국은 독자적인 군사정찰위성을 갖게 됐다. 이탈리아의 기술이 큰 힘이 됐다.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Thales Alenia Space)가 1억 유로를 투자해 로마에 최첨단 인공위성 생산 공장을 세운다. 이제 모든 유럽의 인공위성 사업은 로마로 통한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위성기술은 단순히 한 나라의 국토방위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데도 활용된다. NASA의 심우주 탐사 우주선 다트가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충돌하는 장면이 세계에 공개된 적이 있다.  다트에는 이탈리아의 큐브위성 ‘리차큐브’가 실려있었다. '지구방어'의 현실적 실험이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것에는 리차큐브가 있는 것이다. 

 

영화 속 공상 같은 위협이라지만, 실제로 지구를 위협하는 몇 안되는 실재하는 위협이 현실화될 때, 그것을 방어하는 기술로 쓸모있는 것에 투자하고 연구하는 국가와 기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주개발의 당위성이 확보되는 현장이다. 

 

세계 최고의 인공위성 기술을 갖고 있는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의 홈페이지. 레오나르도도 지분을 갖고 있다. 

 

2. 이미 상당한 우주선진국, 이탈리아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훨씬 앞선 우주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몇가지 기본 정보만 봐도 이탈리아가 우주강국임을 쉽게 알 수 있다. 

 

KOTRA의 2023년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항공우주산업은 세계적인 글로벌기업과 함께 중소기업들이 이탈리아 전역에 15개의 지역별 항공우주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 중 13곳은 항공우주 분야의 기술연구 및 제품 생산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으며, 2곳은 IT 등 연관 산업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형성해 효과적인 인력 양성 및 기술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역할이 큰데 이러한 기업들은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력과 제품 생산으로 맞춤형 틈새시장에서 적확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조사 및 홍보를 수행하는 심볼라재단(Fonfazione Symbola)에 따르면, 'Made in Italy'의 10대 강점 분야 중 하나인 이탈리아 항공우주산업의 경쟁력은 전문화에 있으며, 특히 우주기술 분야에서는 특허수 등 전문화 수준이 러시아와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로 조사됐다.

 

지역별로 항공우주산업 기업 분포를 살펴보면 북부 롬바르디아에 20.1%가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캄파니아에 15.4%, 라치오 14.3%, 피에몬테 10.8%, 에밀리아로마냐 5.8% 순으로 북부에 41.7%, 중부에 20.9%, 남부에 24.8%가 위치해 있다.

 

이탈리아 항공우주 분야 관련 주요 기관으로는 이탈리아 항공우주국 ASI와 이탈리아 항공우주연구센터(CIRA), 항공우주과학기술클러스터협회(CTNA)가 있다. ASI는 정부 산하 기관으로 이탈리아 우주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하고 있으며, NASA와 긴밀한 협력으로 국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CIRA는 국영 연구소로 국내 최대 규모의 항공우주 연구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테스트 시설과 최첨단 실험실을 보유하고 있다. CTNA는 항공우주산업에 연관된 각 지역 클러스터의 모든 주체가 모인 협회로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 연구기관, 학계, 정부 기관 등이 속해 있다.

 

전세계 우주항공산업을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는 레오나르도(Leonardo)가 이탈리아 기업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매년 선정하는 세계 100대 방위산업 기업에서 항상 10위권 안에 위치하는 전통의 방산기업이기도 하다. 물론 우주산업과 방위산업은 이 회사에서 동전의 양면이다.

 

레오나르도는 현재 TAS와 손잡고 우주개발을 위한 각종 연구에 진력하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텔레코뮤니케이션과내비게이션, 지구관측을 위한 위성시스템과 우주개발 장비, 궤도모듈 지원 우주정거장 기술 등을 개발해 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의 국제정세와도 궤를 같이한다.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항공우주와 방위산업에서 글로벌 공급망이 새롭게 구축되고 있고, 이때 중요한 부분이 가시성과 탄력성인데, 이런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기회라고 평가되고 있다. 민간항공기 산업의 회복은 느리기만 한데, 군용항공기 수요는 크게 확장되고 있어, 전반적 수출 확대로 연결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우주산업이 발빠르게 성장해 2026년에는 약 16억 달러의 매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가장 큰 동력은 민간우주회사의 확장과 위성분야의 전문성이다.

 

액시엄 스페이스와 손잡은 프라다가 아르테미스3 우주복을 개발한다. 아름답고 혁신적인 첨단 우주복이 기대된다. 

 

3. 한층 스마트해지는 이탈리아 우주산업의 미래

 

최근 이탈리아 국내 항공우주산업에서는 구조적 변화가 이어지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으로 '디지털화'와 '탈탄소화'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이탈리아만의 현실은 아니지만,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스마트 팩토리 등 생산방식의 디지털화를 비롯해 제품의 설계 및 개발에서 단계를 간소화하고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디지털 프로그램화가 진행 중으로 엔지니어링, 공급망, 제조 및 애프터서비스를 아우르는 디지털 통합환경 구축이 진행되고 있다. 컨설팅 전문 기관인 딜로이트 이탈리아(Deliotte Italia)는 "향후 항공우주 분야에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치사슬을 비롯해 디지털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면서 "전체 가치사슬을 모두 디지털화한다는 것은 생태계 보호에서 더 나아가 R&D 비용을 절감한 신제품 출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디지털화와 동시에 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기후변화 정책 및 규제가 강화되며 항공우주산업에서도 직접 배출량을 감소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첨단산업의 가장 선두에 있는 산업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와 함께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제조과정의 배출량 감소를 위해 투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대체 연료 및 디자인, 추진 기술에서 효율성을 높인 항공기 등 친환경 기술의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 항공우주국 ASI는 이탈리아의 우주 탐사 활동에 자금을 지원, 규제 및 조정하기 위해 1988년에 설립된 정부 기관이다. 이 기관은 항공우주 연구 및 기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국내 및 국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ASI의 본부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으며, 이 기관은 이탈리아 마테라에 위치한 CGS(우주 측지학 센터)와 자체 우주항인 브로글리오 우주 센터라는 두 개의 운영 센터를 직접 통제한다. 이를 통해 지구환경을 지키면서도 효율적인 우주개발이 가능하도록 조율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실물적인 기초 위에 프라다가 더해지면, 이탈리아 우주산업의 미래가 보인다. 'made in Italy'가 어떤 영역에서든 명품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 장인정신과 전통, 그리고 하이엔드에 이르는 집념이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 우주시대, 우주개발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집념에 가까운 헌신의 장인정신 없이는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일. 이탈리아의 우주산업에 이런 파트너가 함께한다는 것은 그 미래를 짐작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 

 

프라다가 말한 '문명을 발전시키는 인간의 창의성과 혁신의 힘을 진정으로 기념하는 일'이라는 자평이 바로 이탈리아 우주산업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