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채굴... 우주면세...
룩셈부르크, 우주에서 미래 캔다

신년특집■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10 (10) 룩셈부르크

 

2024년이 밝았다. 청룡의 해, 벽두부터 우주경쟁이 치열하다. 유인 달 탐사가 본격화되고 달 착륙 경쟁이 불붙는다. 경제와 전쟁의 해법을 우주에서 찾는 나라들도 있다. ‘우주 대항해 시대’의 개막은 이제 수사(修辭)의 문제가 아니라 필사적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그 대열에서 물러나 있을 수 없다. 이른바 ‘우주강국’들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4년을 맞으면서, 우주패권이 단순히 우주탐사 능력을 넘어서 국방과 경제를 포함한 국력의 총합이 된 ‘뉴스페이스’의 물결을 살펴봄으로써, 새해 새시대를 헤쳐나가는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뉴스페이스 시대의 우주강국 10곳은, 기존의 우주강국 개념인 우주발사/위성 역량은 물론이고, 경제 효과와 생활 개혁, 문화와 연구 등을 망라한 ‘우주능력’을 갖춘 곳 중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곳 10개국을 선정했다.

 

 

 

#1. 우주탐사는 돈이다. 돈이 많이 들기도 하고, 돈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주에서 획득할 수 있는 돈은 얼마나 될까. 그 한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 소행성의 가치다. 60만 개 소행성의 가치를 분석하는 ‘애스터랭크(Asterrank)’에 따르면, 탐사ㆍ발굴의 가성비가 가장 높은 상위 10개 소행성의 가치만 합쳐도 1조5000억 달러(약 2000조원)가 넘는다. 풋볼 경기장 만한 소행성에 포함된 백금(platinum)의 가치만도 250억~500억 달러에 달한다는 금융보고서도 있다. NASA의 프시케 우주선이 향해 가고 있는 프시케 소행성에는 약 700조 달러, 80경원을 넘는 금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 우주 탐사기업들이 줄지어 본사를 두고 있는 작은 나라가 있다. 룩셈부르크다. 서울보다 조금 큰 나라에 인구는 65만명이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지만, 이 나라는 우주산업에서 아주 많이 앞서있다. 기술이 앞서있다기보다는 제도가 앞서있다. 우주에서 자원을 채굴하면 자원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기업 편에서 법률 체계를 갖고 있고, 우주로 발사되는 물체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 준다. 그러니 우주기업들이 룩셈부르크를 찾을 수밖에. 우리나라의 우주 스타트업으로 지금 기업공개를 추진하고 있는 컨텍의 유럽본사도 룩셈부르크에 있다. 룩셈부르크의 혜택이 좋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좋은 혜택 때문에 모인 우주기업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우주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작은 나라지만, 우주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큰 나라’를 지향하는 룩셈부르크는 2010년대 초반 우주활동을 연구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경제 쪽의 시각에서 보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 2020년에는 유럽우주기구(ESA)와 유럽우주자원혁신센터(ESRIC)를 설립했다. 인공위성을 소유·운영하는 글로벌 통신위성 서비스 업체 SES뿐 아니라 룩스스페이스, 유로컴포지트, 그라델 등 60여 개 기업, 공공연구소가 룩셈부르크에 둥지를 틀었다.

 

소행성에는 일일이 계산하기도 힘들만큼의 자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법과 세금 걱정없이 우주채굴을 원하면 룩셈부르크에서 사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진은 프시케 소행성. / NASA 

 

1. "법으로 확실히 못박아라" 우주에 진심!

 

룩셈부르크는 다른 우주선진국들과는 결이 다른 접근전략으로 우주 개발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다.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고, 우주정거장을 짓는 전통적 개념의 우주강국과는 다른 개념의 이른바 '뉴스페이스 시대'의 맞춤형 우주국가들 중에는 아랍에미리트(UAE)나 이스라엘과 룩셈부르크 등이 포함된다. 우주개발을 국가의 혁신 비전으로 내세우면서, 생활과 문화, 경제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추구하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 중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에 둘러싸인 유럽 내륙 작은 국가 룩셈부르크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우주개발 국가로 떠올랐다.

 

2005년 유럽우주국(ESA)에 가입하고 2018년 자체적으로 룩셈부르크우주국(LSA)을 설립한 룩셈부르크는 우주 소행성에서 희귀광물을 얻는다는 구상을 파고 들었다. 룩셈부르크의 ‘우주채굴’ 사업의 상징적인 기업은 플래니터리 리소시스(Planetary Resourses)다. 2012년 설립된 이 회사는 세계적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과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 같은 투자자를 확보한 것만으로도 국제 경제뉴스가 되기도 했다.

 

2018년 플래니터리 리소시스는 자체 디자인한 신형 소형위성을 쏘아 올렸는데, 이 위성은 중간파 적외선 영상기기를 이용해 지구 대기권 바깥에서 물의 원천을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행성 채굴권을 주장하기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의 첫 걸음을 뗀 것이다.

 

이후 부침은 있지만, 이 기업과 룩셈부르크는 소행성을 통한 초거대갑부가 탄생하게 될 수 있다는 꿈을 세상에 퍼뜨렸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룩셈부르크가 기업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법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2016년 에티엔 슈나이더 경제부총리의 주도로, 룩셈부르크는 소행성에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광물자원인 금이나 텅스텐 등을 채굴할 수 있는 법제도 구축에 들어간다. 우주자원을 채굴한 기업이 캐낸 자원에 재산권을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2016년 2월 우주자원 이니셔티브((SpaceResources.lu)를 발표했다. 근(近)지구물체와 소행성에서 자원을 발굴하는 벤처기업에게 45%까지 투자금을 환급해 주고, 각종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이다. 2017년에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우주에서 광물질을 채굴한 민간기업에게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미국은 2015년 11월 우주에서 광물ㆍ물ㆍ가스 등의 자원을 채굴한 기업과 국가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는 ‘상업우주발사경쟁력법’을 제정한 바 있다.

 

우주 개발의 혜택은 특정 개인이나 국가가 독점해서는 안 되며 인류 전체에 혜택이 돼야 한다는 1967년의 ‘우주조약(Outer Sapce Treaty)’을 피해간 법이었지만, 룩셈부르크는 민간의 우주자원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률적 보호 장치를 만들어, 우주자원 개발 기업의  유치에 나선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또 2020년 10월 미국이 함께 달의 개발ㆍ소유권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아르테미스 약정’의 최초 조인국 8개국에 합류해, 달의 표토(表土)인 ‘레골리스(regolith)’를 채굴할 권리도 획득했다. 이 협정은 기술과 자금력을 갖고 우주 자원을 선점하는 나라와 기업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는 협정으로, 우리나라는 2021년 5월에 10번째로 가입했다.  

 

이같은 법적, 조약적 근거를 마련한 룩셈부르크에는 위성과 우주채굴, 탐사 로봇 등 우주관련 기업들이 줄지어 생겨나고 있으며, 해외기업들도 이곳에 본사나 지사를 두는 등 우주탐사 관련 사랑받는 국가가 되었다. 2018년엔, 유럽 차원에서 우주 자원과 관련한 연구 개발에 전념하는 센터인 유럽우주자원혁신센터(ESRIC)도 들어섰다. 

 

세계 최대의 위성사업자로 꼽히는 SES는 전세계 3억 6000만명에서 위성TV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SES

 

2. 돈도 기술도 권력도 우주채굴에서 나온다

 

룩셈부르크의 우주자원 채굴 의지는 확고하다. 변신과 혁신을 통해 살아남은 국가로서의 자신감도 넘친다. LSA의 마크 세레스 국장은 “우주 채굴은 처음에 오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을 다시 달로 보내겠다는 지금의 국제사회 관심은 우주자원 개발에 대해 막대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선언적으로 말했다.

 

1인당 GDP는 13만5600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구가 겨우 64만 명인 나라가 우주 채굴의 꿈꾼다는 것은 느닷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룩셈부르크에게 우주로 가는 길이 꼭 초행인 것은 아니다. 룩셈부르크는 100년간 호황을 누리던 철강 산업이 1970년대에 저물자, 은행ㆍ금융업으로 옮겨갔고,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속에서 다시 우주를 주축으로 한 혁신 산업을 선택했다. 지속적 투자와 참여가 이어졌고 2020년엔 우주 예산이 1억9300만유로(약 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하는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정부 지출 중 우주 분야 몫이 2016년 GDP 대비 0.03%에서 2020년 0.26%로 10배 가까이 늘었을 정도다.

 

작년에 매출(148억 달러) 면에서 세계 최대 TV 위성사업자였던 SES도 이곳에 본사가 있다. 1985년 위성 하나로 시작한 SES는 현재 저궤도에 50개, 중궤도에 20개 위성을 보유하고 유럽과 인도, 브라질, 필리핀까지 전세계 3억6000만 가구에 위성 TV 서비스를 제공한다. 선박의 선명과 위치 등을 자동으로 식별하는 저궤도 마이크로 위성인 이세일(Esail)을 운영하는 룩스스페이스도 룩셈부르크에 있다. 이 회사는 2014년 세계 최초의 민간 달 탐사선인 4M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다양한 종류의 사막 모래를 소재로 해, 컨테이너 박스에서 완전 자동 공정으로 태양광 패널을 만들어내는 ‘마나(Maana) 일렉트릭’도 이 곳에 있다. 이 회사가 전기와 모래만으로 만들어내는 태양광 패널은 지구 오지의 사막뿐 아니라, 달과 화성, 그 너머 미래의 우주 식민지에서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달 표면의 레골리스를 고순도의 실리콘으로 변환해, 10가구가 한달 간 쓸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컨테이너 박스인 ‘테라박스’를 개발 중이다. 또 달의 테라박스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산소는 우주인이 호흡하는데 이용된다.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업체 ‘딥 스페이스 인더스트리스(DSI)'는 룩셈부르크 정부와 손잡고 백금계열의 금속이 있는 소행성을 찾기위한 우주 탐사에 나섰다. '프로스펙터 원(Prospector-1)' 우주선을 쏘아 올려 지구와 가까이 있는 소행성과 랑데부시킴으로써 소행성을 구성하고 있는 광물들의 가치를 분석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그 임무 수행을 위해 먼저 물이 있는 소행성을 찾는다. 물을 찾으면 수증기를 연료로 쓰는 이 소형우주선을 무한정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상태에서는 일단 물도 우주자원이 되는 셈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ㆍ항우연)의 '우주정책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룩셈부르크가 이처럼 우주 개발에 적극 나선 것은 우선 그만큼 투자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룩셈부르크 우주청은 2018년 우주 자원 활용의 사회ㆍ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우주 자원 산업은 2018~2045년까지 약 730억~1700억유로의 매출액을 기록하는 등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같은 기간 최대 180만명의 고용 창출 효과는 물론 데이터 분석, 소재 과학, 로보틱스 등 다양한 연관 분야의 낙수효과도 예상됐다. 

 

룩셈부르크는 예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기에 사활을 걸고 법과 제도를 갖추고, 동참하는 기업들을 귀한 손님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룩셈부르크는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는 법ㆍ제도적 사항을 해결함으로써 우주 기업들에 법적 안정성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국제 규범화하기 위해 각국과의 규범적ㆍ정책적 국제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20~30년 후 SES처럼 세계적인 우주 자원 채굴 기업이 룩셈부르크에서 등장할지 지켜볼 만 하다"고 결론지었다.

 

유네스코 월드 헤리티지인 룩셈부르크. 아름다운 소도시 국가인 룩셈부르크가 유럽의 스페이스허브를 선언하고 나섰다. / UNESCO

 

3. '기회의 땅' 룩셈부르크, 유럽의 스페이스허브를 선언하다

 

란츠 파이요 룩셈부르크 경제부 장관은 "룩셈부르크에서는 2013년 이후 우주 활동을 연구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기로 하고, 경제 쪽에 치중한 정책을 펴왔다"면서 "우주 분야의 혁신적인 기술은 이미 농업, 물류, 기후변화 등에서 가치를 입증했고, 가능한 지상 과제와 연결해 우주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룩셈부르크가 '우주산업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은 한국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 항공우주연구원 출신 이성희 대표가 창업한 위성 데이터 업체 컨텍는 룩셈부르크에 유럽 본사를 뒀다. 컨텍은 2022년 61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한국 데이터디자인엔지니어링(DDE)도 유럽 진출 기지로 룩셈부르크를 선택했다. DDE 관계자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룩셈부르크에 유럽 본사를 둔 이후 유럽 업체들과의 접점이 늘어나 협업 기회가 증가했다"면서 "자연어 처리, 음성인식과 합성, 예측 알고리즘 기술을 활용해 룩셈부르크 기업 그라델 등과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가 우주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미래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을 비롯한 다른우주기업들이 룩셈부르크로 몰리는 이유도 그렇기 때문에 우주산업에 진출하는 플레이어들은 해마다 늘어난다.

 

세계경제포럼은 2022년 "90개국, 1만개 이상 회사와 5000명 이상의 투자자가 우주산업에 관여하고 있다"며 우주산업을 조명했다. 유로컨설트는 2030년까지 6420억달러(약 901조원) 규모의 우주산업을 추정했다. 무수히 많은 위성들이 쏘아올려지고 있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로 대변되듯 한해에도 수백개씩 쏘아올려지는 위성은 우주산업의 팽창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해가는 우주산업의 한 가운데 서있는 룩셈부르크는 '유럽의 스페이스 허브'가 되는 것이 다음 스텝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인구소멸을 걱정해야 하고 장기적 경기침체를 염려하는 한국은 우주 산업의 인사이트를 얻는 것뿐 아니라, 국가경영을 어떻게 하면 국가 지속성이 확보되는지에 대해서도 룩셈부르크에서 배워야할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국가 자체를 하나의 기업처럼 생각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추면서 변혁을 시도해왔다. 그것이 오늘 우주강국으로 대접받는 룩셈부르크의 초상이며, 미래 모습이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