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라 줄리아 페이스의 천체사진 '달의 색들'. / NASA
2022년 5월 16일, 미국 항공우주국 NASA는 '오늘의 천체사진(APOD)'으로 영롱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달들을 모은 한 장의 사진을 실었다. 사진의 제목은 'Colors of the Moon'이고 마르셀라 줄리아 페이스라는 천체사진가의 작품이다. 모든 사람들이 달을 바라보고 감상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색상이 있는 줄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 세상은 달의 색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됐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달빛은 달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모두 태양빛을 달 표면이 반사해 생긴 것이다. 그래서 태양빛의 각도, 지구의 대기상태, 지구와 달의 위치 등에 따라 달빛은 다양하게 보일 수 있다. 달빛은 달이 숭배의 대상이 된 고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설이나 설화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며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왔으며, 첨단과학기술 시대인 현대에도 그 믿음은 지속되고 있다. 달의 색깔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정리해 본다.
달이 다채로운 색상을 지닌 것처럼, 태양도 다양한 색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왼쪽이 달, 오른쪽이 해다. / Instagram, Marcella Giulia Pace
▶레드문, 불길한 징조의 달!
달의 색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것이 레드문(red moon). 블러드문(blood moon) 또는 적월(赤月)이라고 불리는 레드문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 태양빛을 받지 못하고 어둡게 보이는 현상인 개기월식 즈음 지구에서 달의 색깔이 붉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다가 태양-지구-달 순서로 일직선에 놓이게 되면 달은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서 태양 빛은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태양 빛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이 아니고 태양 빛 중 파장이 가장 긴 붉은 빛은 지구를 거쳐서 달에 전달되는데, 이 붉은 빛을 받아 달이 지구에서 붉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 모두 레드문 또는 블러드문을 불길한 징조로 여겨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레드문이 뜨면 헤카테(Hekate) 여신이 저승의 개를 몰고 지상을 누비면서 저주를 퍼뜨린다는 전설이 있었다. 이에 따라 레드문이 뜨는 개기월식 자체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두려움은 중세 시대였던 1453년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개기월식이 발생하고 닷새만에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했던 역사가 추가되면서 더욱 흉조로 여겨졌으며, 현대에서도 2014년 레드문이 뜨고 나서 강력한 토네이도가 발생해 미국 동남부 일대를 강타하면서 레드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위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
▶블루문, 색깔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고?
2023년 8월 말, 전 세계의 관심을 끈 우주쇼가 펼쳐졌다. ‘슈퍼 블루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블루문은 파란 달이 아니다.
달의 공전 주기는 27.3일이고, 지구-달-태양의 위치 변화는 29.5일인데 양력에서 한달은 2월을 제외하고 30일이나 31일이다. 이 때문에 월초에 보름달이 뜨면 30일이나 31일경에 다시 보름달이 뜨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블루문은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현상에서 두번째로 뜬 달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 달의 색깔과는 무관하다.
동양에서는 보름달을 풍요의 상징으로 보지만 서양은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이 나타난다는 전설의 영향으로 보름달을 불길한 것으로 인식해서 한달에 두번이나 뜨는 보름달을 재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blue’에는 우울하다는 뜻도 있고, 블루와 비슷한 옛날 단어인 ‘belewe’에는 ‘배신하다(betray)’라는 뜻이 있는데, 두번째 보름달을 ‘배신자의 달’이라고 칭한 것이 블루문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여러가지 색의 달
그런데 실제로 달이 파랗게 보일 때가 있다. 화산폭발이나 대형 산불로 인해 대기 중에 먼지 농도가 짙어져 붉은 계열의 빛은 강하게 산란시키고 다른 색의 빛은 통과시키면서 하얀빛이 도는 푸른색 달이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Krakatoa) 화산이 분화했을 때와 1950년과 1951년 스웨덴과 캐나다에서 산불이 났을 때 파란색 달이 관측되었다.
일반적으로 달은 노랗거나 하얗다. 어두워지고 까만 하늘에 보이는 달빛은 노란색이지만 파란 하늘에 보이는 낮의 달은 하얗다. 색은 섞을수록 검은색이 되지만 빛은 섞을수록 하얀색이 된다. 노란 달빛과 파란 하늘빛이 섞이게 되면서 달빛이 하얗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초저녁의 달빛은 초저녁 지표면에 비치는 햇빛이 파장이 긴 주황색이나 빨간색 광선이 대부분이므로 주황색으로 보이게 된다.
유럽우주국의 화성 궤도선 마스 익스프레스가 화성으로 가던 중 촬영한 지구와 달. / ESA
▶그렇다면, 우주에서 본 달의 색은?
문득 궁금해진다. 대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달을 보면 어떤 색이 될까.
유럽우주국(ESA)은 2023년 화성 궤도탐사선 ‘마스 익스프레스’ 20주년을 기념해 먼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와 달 사진을 공개했다. 마스 익스프레스는 유럽 최초의 화성 탐사선으로 2003년 6월 2일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에 실려 지구를 출발한 뒤 6개월간 4억9100만km를 날아 그해 12월 25일 화성궤도에 진입했다. 마스 익스프레스가 지구를 출발한 지 한달 후인 7월 3일 밤, 지구에서 800만km 떨어진 지점에서 방향을 뒤로 돌려 지구와 달을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는데, 사진 속 달은 작은 점에 불과했다.
스페인 바스크 대학 천문학자 호르헤 에르난데스 베르날은 성명을 통해 “마스 익스프레스 20주년 특별 행사에서 칼 세이건의 성찰을 다시 되새기고자 했다”면서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사진을 공개했고, 거기에 달도 함께 등장한 것이다. 우주에서 본 달은 하얀색이었다. 사실, 희끄무레한 작은 점 수준이지만.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1990년 NASA가 공개한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1억km 떨어진 먼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을 통해 인간 존재의 미미함과 지구를 소중히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해 큰 파장을 낳은 바 있다. 그때의 지구만큼이나 작게 보이는 달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뉴스페이스 시대, 민간인이 우주여행을 하며 지구와 달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다채로운 달의 색깔처럼 각자가 꿈꾸던 다양한 미래가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