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거장의 '밀리터리SF의 전설'
하인라인 명작 <스타십 트루퍼스>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운명이란, 사랑하는 고향과 전쟁의 황폐함 사이에 자기 자신을 놓는 일일세.”

 

'밀리터리 SF의 전설'로 불리며 세 차례 영화로, 두 차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소설이 있다. <스타십 트루퍼스>다. SF의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의 1959년 작품이다. 지금 봐도 놀라운 미래 과학기술과 사회체계, 교육문화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작이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SF 장르의 3대 거장으로 불린다. 세 거장 중 ‘재미’ 측면에서는 가장 뛰어난 면모를 보이는데, 그러한 하인라인의 걸작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밀리터리 SF의 효시 <스타십 트루퍼스>다. 이후의 모든 우주전쟁을 다룬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테란 연방’의 군인들이 곤충형 외계종족과 싸운다는 설정은 우리의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블리자드는 이 게임의 크레딧에 하인라인의 이름을 올리기까지 하였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기본적으로 주인공 조니 리코가 테란의 군인으로 입대를 결정하고, 훈련소를 거쳐, 기동보병이자 캡슐강하병이 되어 우주거미들과 피튀기는 전투를 치르고 살아남아 결국 임관까지 하게 되는 성장스토리를 골격으로 한다. 이야기 설정부터가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게다가 방대한 성장사를 다루기 때문에 각 파트별로 진행되는 사건들이 다양한데다 이야기 진행도 1950년대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특유의 담백하고 시니컬한 문체로 놀랄만큼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기술과 전술, 사회의 체계에 대해 그려낸 경이로운 작품이다.

 

우주 버전의 공수부대라고 할 수 있는 캡슐강하병, 핵융합 추진, 음파탐지와 실시간 통신을 통한 전술, 한 명의 병사를 대대급 파괴력을 지닌 괴물로 만들어주는 강화복 등 과학적으로 뒷받침된 놀라운 상상을 통해(하인라인은 2차 대전 당시 해군 연구원으로 고고도 압력복을 연구했다) 그려낸 미래의 전투의 모습과 전술이 정말 생생하게 잘 나타나있다. 피비린내나는 급박한 전투씬의 향연 속에서도 상세한 기술적인 묘사는 정말 압도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당시로는) 상상속의 기술을 이토록 묘사할 수 있는 것은 보통의 공학적 지식으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특히 강화복에 대해서는 당시로서는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근육 조직pseudo-musculature’, 수많은 압력센서, 디스플레이와 통신장비 등 그 성능과 설정의 구체성을 보면 굉장히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진다. 하인라인이 묘사한 강화복은 이후 등장한 SF 작품들에 쓰인, 또한 현재 실제로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인 모든 전투용 강화복의 모델이 된다. 하인라인의 강화복이 병사 한 명을 대대급 파괴력을 가진 괴물로 만들어놓은 것에 비해 1997년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에서는 '뚫으면 뚫리는(?)' 그저그런 수준의 전투력으로 그려졌기에 원작 팬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스타십 트루퍼스>가 그려낸 군대조직의 모습은 사관학교를 나온 하인라인 그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잘 녹여냈다. 특히 훈련소 교관의 절대로 욕설을 쓰지않는 폭언(“그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그리고 유전적인 단점을 낱낱이 열거해 가며 우리를 모욕했다”)은 군대생활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PTSD를 일으킬 정도로 생생하다.

 

 

나의 시각에서,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이자 영화와 가장 큰 차이는 하인라인의 국가와 사회에 관한 고찰이다. 하인라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와는 전혀 다른, 어찌보면 '실질적으로 가장 잘 굴러갈 것 같은'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특히 20세기의 '이상적인' 교육과 사상, 그리고 사회체계에 대한 그의 시니컬함이 잘 드러나 있다.

 

그의 세계관에서 가장 큰 특징은 '투표권을 군복무를 마친 이들에게만 준다'는 설정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똑똑해서도, 훌륭한 인격적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 때문이다. 투표권 같은 주권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를 이루는 일원으로서의 가치다. 그 자격은 귀족 자제로 태어나서도 아니고, 머리가 좋아서도 아니고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사회에 대한 책임과 봉사'를 경험한 이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정치권력은 책임과 표리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실현되기 어렵겠지만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들에게 책임과 봉사를 요구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시스템이 그러한 사람들을 높은 자리에 올릴 수 있는지 생각해볼 시간이다.

 

 

<스타십 트루퍼스>에 아주 많이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학생과 군인들의 학습에 대한 묘사다. 이 부분에서 굉장히 독특한 것은 그들이 배우는 것에 '수학'이 엄청나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설정이다. 이 작품에서 언급되는 사회학, 철학, 심지어 윤리에 관한 이야기에도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표현이 계속 등장한다("잘 대답했네. 실제적인 이유와 수학적으로 증명가능한 윤리적인 이유로 인해 권력과 책임은 동등해야 할 필요가 있네").

 

당연히 완벽하게 말이 되는 설정이지만, 21세기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들을 생각하면 이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 중 엄밀한 수학적 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적 합의’에라도 달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저 누군가의 생각, 믿음에 불과한 것을 그들이 오래전부터 유명한 사람이라거나 유행하는 사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증명이 된 실질적 지식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배우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결과로 우리는 무엇이 믿을만한 지식인지 따지기를 잊어버리고 검증도 안된 생각에 맞추어 스스로를 검열하느라 정말 알아야할 지식들을 도외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 아이러니함은 신인류의 새로운 무지이고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는 새로운 비극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같은 선상에서 하인라인이 이 작품에서 드러낸 교육에 대한 견해 중 큰 논란이 된 부분이 있다. <스타십 트루퍼스>의 미래세계에 '태형'이 존재한다. 의아하다. 우리가 배우기로는 태형은 '전근대적'이고,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형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데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반면 하인라인의 주장에 따르면, 태형에는 근거가 있다. 고통은 우리가 진화를 통해 얻어낸 산물이고, "무엇인가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때 미리 경고해 줌으로써 우리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즉 이는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것이고, '윤리의식'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 차원의 생존을 넘어선 절대적 생존이 존재한다는 학습된 신념이므로, 국가와 인류의 단계까지 올라가는 이 단계를 갖춘 윤리이념은 개인의 생존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윤리성의 기초는 또한 '의무'에서 비롯되는데 의무가 무엇인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치지 않고, 쉴새없이 그들의 (추상적인 개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권리'만을 가르치는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어설픈 형벌론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미래 사회묘사가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에 비해, 폴 버호벤의 영화는 이러한 논의들이 생략 혹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편집되었고, 군인으로서의 훈련과 전투장면에 훨씬 공을 들였기에 라인라인 팬들에게서 지금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인물도, 스토리도 상당히 바뀌었으며 사실상 원작에서 조니의 성장기라는 중심틀과 우주전쟁이라는 컨셉만 가져온 것에 가까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덕분에 엄청나게 재미있는 작품이 탄생하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997년 작품인 영화<스타십 트루퍼스>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컴퓨터그래픽, 블랙유머와 생동감 넘치는 연출을 보여주며 현재까지도 영화 자체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심지어 원작과는 무관하게 아직도 영화 자체의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실사 영화로 세 편, 3D 애니메이션으로 두 편이 나왔다)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스타십 트루퍼스>는 SF 장르만이 제공할 수 있는 지적 상상력과 밀리터리 액션의 짜릿함을 극대화해냈다. SF장르의 걸작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지금, 이 장르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작품이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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