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제우주정거장 ISS의 전망창, 큐폴라에 가면, 파랗게 빛나는 둥근별 지구가 크고 선명하게 보인다. 작고 창백한 별이 아니라, 파랗고 풍요로운 별, 인류의 고향이다. ISS의 창틀 너머로 보이는 그곳에는 국경이 없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싸움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 멋진 풍광을 본 인류는 5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즐겨라. Enjoy!
#2. 국제우주정거장 ISS는 우주공간에 떠있지만,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날만큼 먼 곳은 아니다. 창밖의 파란 지구에서 갑자기 붉은 불꽃들이 솟구치기 시작한다. 화산폭발인가? 아니다. 점점이 솟던 불길들이 점차 퍼져나가고 눈으로 구별되는 중요한 도시들이 불타기 시작한다. 파란 별 지구가 불타는 지옥도가 됐다. 전쟁이다. War!
국제우주정거장 ISS를 공간으로 하는 영화가 있다. 제목 자체가 <국제우주정거장(원제 I.S.S.)>이다. 2023년 제작됐는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기 시작하면서 세계인들이 보기 시작했다. 영화 속 ISS에는 미국인 3명과 러시아인 3명, 총 6명의 우주비행사가 함께 생존하면서 우주생활을 만끽한다. 평화로운 지구를 감상하며 즐기던 일상이 어느날 붉은 섬광으로 깨지기 시작한다. 지상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했다. 핵전쟁이다.
있을 법 하면서도 극적인 영화 <국제우주정거장>을 보고, 실체로서의 국제우주정거장과 그 문제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현실의 우리가 간직해야할 마음가짐에 대해 정리해 봤다.
▶400km 상공에서 하루 15번 지구를 도는 ISS
국제우주정거장 ISS. 지구 궤도를 돌면서 우주와 지구를 연결해 주는 항공모함 같은 역할을 하는 우주선이다. 하늘에서 세번째 밝은 물체인 ISS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상공 400km 지구 궤도를 시속 약 2만7000km라는 빠른 속도로 돌고 있다. 지구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는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약 한달에 한 번 러시아 모듈의 로켓 엔진으로 가속하고 있다. 게다가 소유즈 우주선과 스페이스X의 드래곤 캡슐로 주로 물자와 우주인을 나르고 있으니, 세계 많은 나라들이 함께 하는 공간임에도 미국과 러시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무게 450톤, 길이 108.5m, 폭 72.8m인 국제우주정거장은 축구경기장만한 크기로 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가장 큰 우주비행체이자 가장 비싼 단일 건축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1998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해 2030년 용도 폐기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지구를 돌고 있다.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92.9분. 그러니까 하루 15.5회 지구를 공전하는 천체인 셈이다.
이곳으로의 유인비행을 시도한 보잉의 '스타라이너'가 제대로 역할을 못해 절반만 성공함으로써, 보잉이 어려움을 겪게도 됐고, 러시아 우주비행사 올레그 코노넨코는 이곳에서 374일을 체류하면서 단일미션 최장 체류기록을 세워 닐 암스트롱 못잖게 유명한 우주인이 되었다. ISS는 수많은 지구인들에게 환호와 절망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국제우주정거장의 큐폴라에서 파란 지구를 감상하고 있는 영화 속 우주인들. / imdb.com
▶영화 속 상황, 미국 VS 러시아 '적과의 동침'
실제로 우주정거장에 머무는 우주인들은 다국적이다. 그곳에서 연구를 하는 것은 특혜에 가깝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자국의 우주인들을 보내고 싶어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주를 이루지만, 일본과 유럽 우주인들도 간혹 합류한다. ESA 유럽우주국 덕분에 국적이 더 다양해진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이를 단순화해 미국 3명, 러시아 3명, 이렇게 6명만이 머무는 상황을 설정한다. 영화니까...
우주비행사들은 대체로 군인출신이다. 공군조종사, 해군조종사 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고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니까, 실제로 현역군인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순수 과학자들도 있지만, 그들 또한 우주비행 훈련이라는 극한 체험을 마쳐야 한다.
고도로 훈련받은 6명의 전사들이 어우러져 있다. 평화롭게 함께 연구하고, 국적 교차 사랑도 싹튼다. 같은 이상을 추구하고 같은 연구와 미션을 수행하고 있으니 서로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지만, 일촉즉발이다. 늘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작은 트리거 움직임 하나에도 분열과 싸움은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지상의 핵전쟁이라는 큰일이 벌어지고, "ISS를 장악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라는 지령도 올라온다. 그냥 전쟁상태 때문만이라도 그런 명령이 올텐데, ISS에서는 우주방사능에서부터 인간을 치유하는 연구가 진행됐고,그 자료가 축적돼 있으니, 지상으로서는 가장 탐나는 보물인 셈이다. 양쪽 모두, 꼭 필요한 자료다. 그러니 먼저 장악해야지.
지상에서 핵전쟁이 벌어지면, ISS의 우주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 imdb.com
▶평화냐 싸움이냐,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
우주에서 보는 지구에는 국경이 없다. 정말일까? 눈에 보이는 국경은 없지만, 여러가지 국경이 존재한다. 가령, ISS에서 찍은 유명한 '한반도의 밤사진'은 빛에 의해 명료한 국경선이 그어져있다. 밝게 빛나는 한국과 검게 어둠에 잠긴 북한. 미국과 러시아는 아예 대륙이 다르다. 보고자 하면 보이고, 안보려 하면 안보이는 국경이 있다. ISS의 우주인들의 마음 속에도.
핵전쟁이 벌어진 지상에서 아마도 선택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극단으로 치닫기 전, 되돌릴 수 있는 계기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 그 기회들은 무시되고, 전쟁이 시작됐을 터, 딱 출발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자동이다. 자동개입의 보복공격. 국가말살의 공격이 시작되면, 상호파괴의 전쟁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대치상황이니까.
우주공간의 ISS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쟁이 시작된 것을 목격하는 순간, 6명의 우주인들은 함께 모여앉아 대책을 논의하거나, 서로를 감시하는 방식을 택하기만 해도, 파국은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전쟁을 보는 순간, 본국에서 명령이 오는 순간, 확실한 편가르기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다. 파국.
명령을 수행할 것이냐 인간성을 지킬 것이냐, 잠깐씩 고민과 망설임의 순간들이 있지만, 결론은 명령 수행이다. 전쟁 상황에 처한 각각의 사람들이 군인이나 마찬가지인 우주인들이니까. ISS의 작은 실험 상자 속의 생쥐들이 서로를 죽이려다 몽땅 죽어버린 장면처럼, 죽고 죽이는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추락하는 ISS를 탈출하면서 동시에 지구를 살릴 연구결과를 갖고 탈출선에 탄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 imdb.com
▶평화주의자의 승리... 현실이 되려면...
영화는 대체로 최후의 희망은 남겨놓는다. 소설들은 그냥 파국을 이야기하지만, 다중을 상대로 해야하는 영화는 흔히들 희망 한자락은 깔아놓는다. 이 영화 <국제우주정거장>도 그렇다. 마침 우주선에서 방사능 치유 방법을 연구했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탈출 캡슐도 남아있다. 문제는 누가 살아남아 누가 타느냐는 것.
여기서 복잡한 현실을 영화는 아주 단순화한다. 지구를 그냥 끝낼 수는 없으니까, 인류를 명망시켜 버릴 수는 없으니까, 평화주의자들의 생존을 추진한다. 최종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하여튼 마지막 촛불을 꺼버릴 수는 없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여기서 '평화주의자'라는 것은 그냥 유약한 사람들이 아니다. 특수훈련을 받은 전사로서의 평화주의자다. 사실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 합리주의자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전쟁은 모두 죽인다는 것, 갈등은 공멸의 길이라는 것,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등등, 한발짝만 떨어져 다시 생각하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믿는 사람들이 영화 속 평화주의자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오래된 금언이 지금도 유효하지만, 준비했다고 전쟁이 피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금언은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평화를 지향하는 당신이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뜻으로 해석돼야 할 것 같다.
우주에도 명확히 국경은 있다. 다만, 우주비행사들이 지구를 넘어선 우주에 머무는 것처럼, 국경을 넘어선 '인류애 혹은 공존의 영악함'을 갖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아마도 지금 현실에서 다국적인들이 ISS에 머물며 인류 공동의 관심사를 풀어가는 경험은 극단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현명한 선택을 하는 훈련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