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타임즈는 2025년을 맞아 [주말칼럼]란을 신설, 'SF읽기'와 '우주시대 건강법' 등을 게재한다. 'SF읽기'를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 우주시대의 씨앗을 뿌린 SF명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해온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명작 읽기'를 개편해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는 칼럼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지난 칼럼에서 클로이 모레츠 주연의 <페리퍼럴>을 다루고 나니, 클로이 모레츠가 주연한 또 다른 유명 소설 원작 SF 작품이 떠오른다. 자그마치 4000만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제5침공(원제 The Fifth Wave)>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캐시(카시오페아에서 따온 이름이다)의 이야기를 다룬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다.
작품 속 디스토피아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실도 그러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외계침공 같은 거대한 충격으로 인한 파국이라고 할지라도 한방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뒤집어 보면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파국의 과정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경종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든 SF 속에서든...
▶클레이 모레츠 주연의 또다른 작품 <제5침공>
외계인의 모선이 지구에 도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단순히 지구를 박살내지 않았다. 그들은 인류를 체계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일련의 단계를 거쳤다.
첫번째 침공은 전자기 펄스를 사용해 모든 전자기기를 정지시키고 세상을 암흑으로 몰아넣었다. 두번째 침공은 인공적으로 지진을 일으켜 거대한 쓰나미로 해안 도시들을 쓸어버렸다. 세번째 침공에서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려 전 세계 인구의 대부분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네번째 침공은 더 교묘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지구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인간들 사이에 자신들의 씨앗을 퍼뜨려, 인간의 몸을 갖고 있지만 외계인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키워냈고, 이들을 이용해 인간 사회에 침투, 공포와 불신을 조장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지구'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그곳에서 살고있는 인간만을 깔끔하게 없앨 수 있도록 수를 쓴 것이다. 인류는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고 있다. 우리는 항변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지구에서 살고싶다는 이유로 한 종을 싸그리 몰살하는 것이 옳으냐고. 그리고 그들은 답한다. 인류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인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고.
언제 '다섯번째 침공'이 일어날지,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주인공 캐시는 이전 네 단계의 침공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사망했고, 군인들이 어린 아이들만을 군사캠프로 데려가는 와중에 어린 동생 샘과 떨어지게 되었다. 그 캠프에서는 인간으로 변장하고 있는 외계인들을 물리치겠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데려와 군인으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캐시의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이었던 벤 페리시는 그 군사캠프에서 훈련을 받고 군인이 되었고 캐시의 동생 샘과 같은 중대 소속이 된다. 하지만 작전 도중 그들은 군사캠프에 대한 치명적인 비밀을 알게 되는데…
한편, 동생 샘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캐시. 외계인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지만 캐시를 보고 인간의 감정이 되살아나 인간의 삶을 살고자 캐시를 구하고 그녀의 여정에 함께 하게 된 에반을 만난다. 과연 이들은 군사캠프에서 샘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군사캠프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섯번째 침공'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외계인들의 두번째 공격은 지진과 쓰나미였다. / imdb.com
▶다섯단계의 침공 서사, 놀라운 세계관
릭 얀시의 작품인 <제5침공>은 SF 작품사에서 숱하게 다루어진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택했으면서도 굉장히 새로운 접근을 통해 많은 SF팬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먼저 기존의 외계인 침공 이야기들이 대규모 전투나 첨단 기술에 초점을 맞춘 데에 비해, <제5침공>은 이런 종말적 상황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정서적 영향을 탐구했다. 외계인 침공의 이야기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잘 엮어낸 것이다. 특히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등장시키며 보이지 않는 적이 인간 사회에 침투함으로써 조성되는 불신과 공포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탁월하다.
또한 캐시라는 한 소녀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면서 상황 묘사에 치우치지 않은 캐릭터 중심의 서사를 보여준다. 독자는 그녀의 여정을 통해 함께 생존과 성장에 몰입하게 된다. 그녀 외에도 벤 페리시와 에반 워커의 시점에서도 이야기가 전개되며 영화를 보는 듯한 화면전환과 다각적인 묘사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사랑 때문에 변절한(?) 외계인 에반 워커의 다층적인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벤 페리시와 에반 워커라는, 그녀를 중심으로 한 멋진 남자들의 묘한 삼각관계의 로맨스는 또 하나의 볼거리를 선사한다. 외계인 침공 작품에서 로맨스라니! (그래도 이 남자가 얼마나 멋지고 잘생겼는지를 몇 페이지에 걸쳐서 묘사하는 <트와일라잇> 정도는 아니니 골수 SF팬들은 너무 노하지 마시라.)
이 작품의 가장 독창적인 지점은 다섯단계로 이루어진 침공의 서사일 것이다. 이는 성경의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열 가지 재앙을 꼭 닮았다. 절대자에 의해 벌어지는 인간에 대한 위협. 자연재해, 전염병, 그리고 인간의 아이들. 인간의 생존력과 도덕성을 시험하는. 그리고 이는 매우 현실적이다. 그 동안 지구를 차지하러 왔다면서 지구를 죄다 엉망진창으로 부숴버리던 머리가 좋지 않은 외계인들에 비해 훨씬 섬세하고 체계적으로 문명을 해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16년 J 블레이크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소설의 사건들을 영화로 옮기는 데에 있어서는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초반의 쓰나미가 도시를 덮치는 장면은 그 엄청난 스케일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다만 원작이 외계인 침공 이후의 세계를 상세히 묘사하고, 각 단계의 침공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있게 설명한 데에 비해, 영화는 이러한 세계관 구축을 간소화하고, 캐시의 여정과 액션 장면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그러다보니 시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사건들 위주의 편집이 되었기에, 이야기의 기본적인 내용을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불친절한 작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클로이 모레츠의 연기와 각 사건들의 시각효과에 대해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소설의 깊이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일반 관객과 팬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제5침공>은 현대 SF 독자들을 위해 전통적인 주제를 새롭게 해석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외계인 침공 SF 작품으로는 굉장히 드물게 디스토피아와 로맨스 장르를 결합하였고, 단순히 외계인 침략 서사를 넘어 인간 조건, 도덕적 선택에 대한 깊은 고민을 드러내며 심리적 깊이, 현실적인 묘사로 청소년과 성인 독자 모두를 만족시켰다. 그동안 SF 장르를 너무 ‘인간미’가 없어서 꺼려했던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하는 독창성 넘치는 이야기이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 <법무취업길라잡이>(박영사, 2024), <웃게 하소서>(바른북스, 202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