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비행사는 멋있다. 영화 속 히어로처럼, 영웅적이다. 위풍당당하고 현명하기까지 하다. 당연히 우주비행사, 즉 우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비행조종능력, 언어능력, 과학지식, 체격조건 등등 보통사람들은 감히 도전하기도 어려운 조건들이 넘쳐난다. 거기에 더해 아주 심각하고 수준 높은 체력조건도 필요하다.
우주환경은 극한의 조건이다. 가장 춥고, 가장 덥고, 공기와 중력도 지구와 다르다. 그래서 우주에서 견디는 제품들은 지구상의 어떤 곳에서도 견딜 수 있게 되니, 우주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는 제품으로 종종 만들어지곤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주환경에서 생존하면서 여러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우주인은 아마도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지금 국제우주정거장 ISS에 머물고 있는 배리 '부치' 윌모어가 2018년 우주비행을 앞두고 NASA의 휴스턴 부력연구소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NASA
▶우주인, 가장 중요한 유산소 능력
우주비행사의 체력조건 중 눈에 띄는 것은 유산소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2006년 최초의 한국인 우주인을 선발할 때 등장한 기준이 3.5km 단축마라톤을 20분안에 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남녀 공용 기준의 하나였으니, 그다지 강한 기준은 아니지만, 굳이 단축마라톤을 거기에 넣은 것은 유산소능력과 지구력이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이런 조건으로 선발된 사람은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15개월간 훈련을 받는다. 우주선 조종과 우주환경에 대한 교육 등도 중요하지만, 가혹할만큼 진지한 체력훈련도 받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수영이다. 그냥 수영이 아니라 우주복을 입고 10분 동안 연속적으로 물속 보행을 하는 것을 포함해, 75m를 쉬지 않고 수영하기, 옷 입고 75m 수영하기 등 단계별 수영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막강한 유산소 능력과 무거운 복장과 무중력을 이겨내면서 한발한발 움직일 수 있는 하체 근력을 얻게 된다.
훌륭한 연기력의 배우 에바 그린이 여성 우주인으로 등장하는 영화 <프록시마 프로젝트>를 보면, 이같은 우주인 훈련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간의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훈련들. 남녀를 구별해서도 안되고 사람 능력을 차별해서도 안된다. 우주유영과 각종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이같은 훈련과 체력이 필요하고, 해상 착륙은 물론 각종 비상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같은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도로 높은 기압이나 무중력 상태에서의 활동능력을 갖추는 것은 미션 자체의 기본조건이다. 미션의 성공과 자신의 생명, 동료의 상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훈련을 통한 체력조건을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 보통사람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 극단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우리도 살다보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어려운 때, 물리적으로 어려운 때. 그때 상황을 극복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체력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대변되는 근력도 중요하지만, 생존하고 버텨내는 데는 심폐기능을 포함한 지구력, 가동성 높은 근육, 다양한 미션을 실현해 낼 수 있는 민첩성 등이 중요하다. 우주인만큼의 체력을 갖출 필요는 없더라도, 그들이 하는 훈련의 의미를 알고, 그 수준을 낮춰 우리몸에 적용한다면, 어떤 운동을 해야할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빙벽이 된 토왕성폭포. 그 빙벽에는 하늘을 향해 오르듯, 한발한발 기어오르는 빅병 등반가들이 목숨 건 등반을 하고 있었다. / cosmos times
▶설악산 토왕성폭포에서 마주한 깨달음
설악산에는 우리나라 최장의 3단 폭포, 토왕성폭포가 있다. 평소에는 물이 별로 없다가 장마나 폭우 때가 되면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연출한다. 그보다 더 멋진 때가 있으니, 바로 한겨울 얼어붙어 하얗게 빛나는 계절이다. 설악산을 향해 들어가며 멀리서 쳐다보기만 해도 멋지다. 그래서,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2월초 토왕성목포 전망대에 올랐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 등산로이긴 하지만, 마지막 400m의 오르막 계단은 공포스럽게 느껴질만큼 가파르다. 그곳을 오르는 걸음걸음, 바로 최고의 유산소운동이다.
등산은 근력과 유산소 운동의 결합체로 최고의 운동방법이다. 설렁설렁 구경하면서 마냥 늘어져 걷지만 않는다면, 헉헉 숨 차오르는 순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순간이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하체 근력운동까지 한번에 되는 이상적인 운동이다. 그러니, 차가운 2월의 어느 날, 나는 좋은 마음으로 아픈 가슴과 허벅지를 달래가며 전망대 정상에 올랐다.
1km 밖에 떨어져 있는 토왕성폭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면, 설악의 기암괴석, 뾰족뾰족한 봉우리들과 그 사이를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빙벽이 떡하니 버티고 선 장면과 만난다. 그 절경을 감상하다 보니, 이상한 것이 보였다. 빙벽에 매달려 있는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 바로 빙벽 등반가들이다. 300m가 넘는 폭포를 기어오르는 사람들이다.
나는 전망대까지 올라온 것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는데, 빙벽이 된 토왕성폭포를 한발한발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들여다 보면, 경외감이 생긴다. 질투가 아니라, 경외감이다. "그들 중의 하나이고 싶다." 어느 영화의 멋진 대사가 떠오른다. 그들은 하늘에 잇닿아 있는 정상을 향해 온몸을 던지며 목숨을 걸고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우주인들의 비장함이 겹쳐진다.
앞에서 우주인의 체력조건을 잔뜩 이야기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험심, 도전정신일지 모른다. 우주항공의 발전 역사는 모험가들의 희생의 역사와 함께 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토왕성폭포의 빙벽을 오르는 사람들이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 까만 우주공간을 누비는 사람들은 같은 DNA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들에게 부러운 것은 그들의 막강한 체력이기도 하지만, 목숨을 걸 수 있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결기야말로 정녕 샘나는 대목이다.
겨울 토왕성폭포의 빙벽 절경을 맛보러 설악에 올랐다, 자신을 불사르는 탐험가들의 날 선 정신을 만났다.
최윤호 코스모스 타임즈 편집장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5년을 맞아 [주말칼럼]란을 신설, 'SF읽기'와 '우주시대 건강법' 등을 게재한다. '우주시대, 달리자'를 쓰는 최윤호 편집장은 우주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몸과 정신을 고양시키는 운동을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실천하면서 칼럼을 쓰고 있다. 20년쯤전 마라톤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바위산 등산, 트레일런을 생활화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태극권도 수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