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탄. 세계시민이다. 인류 모두가 동료시민일 수 있다. 우주시대는 특히나 그렇다. 지금도 세계는 갈라지고 갈등에 휩쓸리고 있지만,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였고, 앞으로도 하나여야 한다.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도 그래야 하고, 역사적으로 하나의 조상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우리 모두가 별의 아이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냥 직관적으로, 우주에서 보면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에 바글바글 모여사는 우리가 그 안에서 서로를 챙기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는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 이웃을 생각하고, 이웃을 챙겨주고, 약자를 보듬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 출신 울트라 마라토너 윌리엄 굿지는 암 자선기금 모금을 위해 3800km 호주 횡단 달리기를 했다. / W. Goodge, Runner's Guide, X
▶암 기금 모으려고 호주 횡단 달리기
최근 놀라운 뉴스를 하나 봤다. 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호주 대륙을 횡단하는 달리기를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루 100km씩 35일간 달렸단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산에서도 뛰는 나로서도 입이 쩍 벌어질 일이다. 1년에 한두번 42.195km를 뛰어도 힘든데, 100km를 매일 뛰다? 상상만해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호주 서부 퍼스의 코트슬로비치에서 출발해 호주 동부의 심장 같은 본다이비치까지 달렸다. 4월 15일 출발해 5월 19일 도착했다. 약 3800km 거리를 35일간 매일 100km 이상을 뛰어 해냈다. 호주 대륙횡단 달리기 세계 신기록이란다. 그 동안의 세계기록은 39일이었다.
이 놀라운 일을 해낸 사람은 윌리엄 굿지(William Goodge)라는 영국의 울트라 마라토너다. 울트라 마라토너는 42km 수준의 마라톤보다 훨씬 먼 거리를 뛰는 사람들이다. 사막을 뛰기도 하고, 산악을 뛰기도 한다. 심지어 250km를 달리는 대회도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가는 사람들이다.
윌리엄 굿지의 어머니는 201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패션모델이던 굿지는 어머니가 암 투병 끝에 사망하자 슬픔을 달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후 어머니를 기리고 암 치료 관련 자선단체 기금을 모으기 위해 울트라 마라톤 선수가 됐고, 이번에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호주 횡단 달리기를 성공했다.
아무리 뜻이 좋고, 울트라 마라톤을 즐기더라도 힘들지 않을 리 없다. “힘든 순간마다 어머니가 어떤 분이셨는지, 나를 어떻게 북돋아 주셨는지 생각했습니다.” 굿지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고통을 이겨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가 주목하는 일을 해냈다.
여의도에서 열린 소아암 환우돕기 마라톤에서 많은 청년들이 달리고 있다. 나(작은 사진)는 몸 상태 때문에 기권했지만... / cosmos times
▶1년에 하루는 이웃을 위해 달리자!
5월초 서울 여의도에서는 '소아암환우돕기 서울시민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나도 참가신청을 했고, 당일날 대회장인 여의도에도 나갔다. 그런데 기권했다. 20년 가까운 마라톤 인생에서 첫 기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전날, 몸풀기 달리기를 나갔다가, 갑자기 종아리 근육에 경련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냥, 평소대로 특별한 준비 없이 뛸 걸 그랬나 싶기도 했고, 나의 체력과 훈련방식, 생활 태도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참가신청만 하고 못 뛰었지만,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 조용하지만 따뜻한 마라톤대회를 뛰었다. 21.0975km 하프마라톤부터 5km, 3km 걷기까지 다양한 코스에 도전한 사람들. 2030 젊은이들이 넘쳐났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도 있었다. 신나는 가족놀이에 헌신과 봉사의 경험까지, 산교육의 현장이었다.
이 대회는 실제로 들어가는 경비를 제외하고 수익금 전액을 소아암 환우를 직접 지원하는데 사용한다. '1년에 하루는 이웃을 위해 달리자!'는 모토로 진행되는 이 대회는 '달리는 의사들'이라는 이름의 의사들과 이동윤 원장이 헌신적으로 대회를 조직하고 운영한다. IMF 외환위기 때 무너지는 가정과 그로 인해 더욱 힘들어지는 어린 암환자들을 돕자는 취지로 시작해 올해 22회 대회가 열렸다.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소액기부 문화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공유하고, 기부의 선순환 운동에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의 대회라고 홈페이지에서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취지의 진심을 알고 있고, 믿고 있다. 평소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 가장 개인적인 운동인 달리기를 하면서, 이렇게 남을 돕는 아주 쉽고 작은 길이 있음을 알게됐을 때, 거기에 동참했을 때, 우리는 아주 뜻깊은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인류 진화의 비밀을 가르쳐준다고 알려진 멕시코의 한 원시부족은 언제나 달린다. 빠르게 오래 달린다. 미국인들이 깜짝 놀랄만큼 잘 달린다. 험한 산악에 숨어지내는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싸우지 않으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강하다. 달리기의 힘이거나, '가장 인간적인 인간은 잘 달린다'는 표상이다.
우주시대를 외치는 요즘, 수많은 젊은이들이 러닝크루를 조직하고 달린다. 미래지향 사회에서 원시적 인간의 원형이 구현되고 있다. 우주시대일수록 우리는 달려야 한다. 인간본성의 발현을 위해서도 그렇고, 진짜 우주탐사를 실현해낼 체력을 갖기 위해서도 그렇고, 우주시대 코스모폴리타니즘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다.
최윤호 코스모스 타임즈 편집장
코스모스 타임즈는 2025년을 맞아 [주말칼럼]란을 신설, 'SF읽기'와 '우주시대 건강법' 등을 게재한다. '우주시대, 달리자'를 쓰는 최윤호 편집장은 우주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몸과 정신을 고양시키는 운동을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실천하면서 칼럼을 쓰고 있다. 20년쯤전 마라톤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바위산 등산, 트레일런을 생활화하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태극권도 수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