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마지막으로 달을 밟은 것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17호가 착륙했던 1972년 12월이었다. 이후에도 러시아와 중국, 인도 정부와 일부 민간 차원의 무인 우주선 착륙과 시도는 몇차례 있었지만, 지난 반세기 달은 인류의 우주탐험 주(主)관심 대상에선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동할 때마다 쓰레기를 남기는 동물이다. 2012년 7월 NASA는 인간이 달에 남긴 우주선과 파괴된 잔해, 각종 장비들로 구성된 인공 물질(manmade material)을 50만 파운드(약 226.7톤)으로 집계한 바 있다. 지난 달 26일 이 목록에는 일본 우주기업 i스페이스 사의 달 착륙선 하쿠토-R 잔해가 추가됐다. 달 북반구 ‘고요의 바다(Mare Tranquillitatis)’에 착륙하려던 하쿠토-R은 마지막 수백m를 남기고 감속(減速)을 위해 역추진할 연료가 바닥났고, 340㎏ 동체는 인류가 최초로 발자국을 남긴 아폴로 11호의 우주 장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애틀라스 충돌구의 깊이 2㎞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45억 년 간 일체의 변화가 없던 달에 가장 많은 쓰레기를 남긴 것은 아폴로 프로그램이다. 6대의 아폴로 착륙선과 12명의 우주인은 40만 파운드(약 181.4톤)의 인공 물질을 달에 남겼다. 달뿐만 아니다. 작년 6월 화성 탐사 로버인 퍼시비어런스는 화성의 한 바위틈 사이에서 흥미로운 물체를 발견했다. 마치 과자봉지의 안쪽 면처럼 반짝거렸다. NASA가 확인한 결과 2021년 2월 퍼시비어런스 착륙 캡슐이 화성 대기권에 진입할 때 마찰열로부터 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장착했던 블랭킷(blanket)의 일부였다. 이 블랭킷이 발견된 곳은 퍼시비어런스가 실제 착륙한 지점에서 2㎞나 떨어져 있었다.
유엔 자료에 따르면, 1971년 소련이 마스(Mars) 2·3 쌍둥이 화성 착륙선을 연거푸 보낸 이래 인간은 모두 14 차례 화성 탐사 미션을 수행하며 18개의 우주 물체를 보냈다. 이 중 상당수는 지금도 임무를 수행하지만, 나머지는 기능을 잃고 쓰레기로 남았거나 착륙에 실패하고 파괴됐다. 작년 9월 미국의 한 로봇 전공 학자는 인류가 반세기동안 화성에 남긴 쓰레기 양을 7119㎏으로 계산했다. 인류가 화성에 보낸 우주 물체의 총질량(9979㎏)에서 현재 작동 중인 것을 뺀 질량이었다.
이 화성 쓰레기 목록에는 작년 5월 이후 사실상 ‘동면(冬眠)’ 중인 중국의 주룽 탐사 로버도 곧 등재될 것 같다. 지난 달 25일 중국 화성탐사 당국은 “태양광 패널에 우리 예측을 넘는 수준으로 먼지가 쌓여, 햇빛이 발전(發電) 최저치에 도달하지 못해 로버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1967년의 외기권 우주조약은 달과 다른 천체의 유해한 오염을 피하도록 했지만, 이는 권고사항일뿐이다. 그런 가운데, 인간이 달에 남긴 쓰레기 중에는 매우 흥미로운 품목이 있다. 바로 우주인들의 대·소변과 토사물(吐瀉物)을 담은 비닐 봉지 96개다. 우주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체내에서 나온 박테리아와 바어러스 등 각종 미생물이 달의 혹독한 환경에서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한다.
달에 남은 골프 공, 매의 깃털, 알루미늄 망치…
미국 우주인들이 달에 남긴 것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것들은 추락한 탐사선, 착륙선, 로버와 같은 우주 장비들이다. NASA는 70대가량의 우주비행 장비, 5대의 문 로버, 12켤레의 우주인 부츠, 강력한 자외선에 색이 완전히 바랬을 성조기, 카메라 장비, 백팩, 가족 사진 한 장 등을 나열했다. 50여 년 만에 다시 달에 돌아가는 우주인들은 또 언젠가 2019년 4월 민간 차원에서 최초의 달 착륙을 시도했다가 불시착한 이스라엘의 베레시트(Beresheet) 잔해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폴로 15호 선장인 데이비드 스캇은 27.2g짜리 매의 깃털과 1.36㎏ 되는 알루미늄 망치를 동시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 두 물체는 진공 상태에서 동시에 바닥에 떨어졌다.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낙하하는 모든 물체는 같은 운동을 한다’는 갈릴레오의 법칙을 증명한 것이다.
골프광이었던 아폴로 14호 우주인 앨런 셰퍼드는 6번 아이언 헤드와 골프 공 2개를 몰래 우주복과 양말 속에 넣어서 달에 착륙했다. 아폴로 프로그램의 품목에 없어 개인이 구입한 것이었다. 그는 달의 흙(regolith)을 담을 삽 자루에 아이언 헤드를 끼고 휘둘러 인류 최초의 ‘달 골퍼’가 됐다. 이 아이언 헤드와 골프 공도 그대로 달에 남았다. 월석을 싣고 이륙하는 우주선의 중량은 세밀하게 계산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잔해와 착륙 지점은 ‘역사적인 장소’로 보존돼야
만약 앞으로 착륙선이 예기치 않게 계속 추락해, 아폴로 11호의 착륙 모듈이나 17호가 남긴 로버, 소련이 인류 최초로 보냈던 루나 2호의 잔해를 덮친다면? 이런 우려 탓에, 일부 우주 학자들은 “이들 지점과 잔해는 인간이 지구 밖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곳으로, 후손에게 그 모습이 어떠했고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릴 가장 중요한 장소로 보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NASA도 현재 각국 우주탐사 당국에 ‘아폴로 11호로부터 75m’ ‘아폴로 17호는 225m’ 안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이는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일본 하쿠토-R의 추락은 50년이 지나도 달 착륙이 얼마나 힘들며 순식간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신 사례가 됐다.
96개 배설물 봉투에 든 미생물들의 운명은
NASA의 우주인들은 인류가 심(深)우주로 나가는 현관이 될 달에, 기저귀를 비롯해 인체에서 나온 많은 것들을 남기고 왔다. 달에는 공기도, 대기도, 바람도 없으므로 남긴 것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6차례의 아폴로 미션에서 우주인 12명이 남긴 배설물 비닐 봉지 96개는 인류가 달에 다녀갔다는 가장 직접적인 흔적이다. 우주인들은 우주복 엉덩이 부분에 부착된 백에 일을 봤고, 이륙선의 탑재물 중량 한계 탓에 그것들을 담은 봉지를 달에 버리고 떠났다.
인분(人糞)의 50%는 수분이다. 또 인체의 장(臟)에는 1000개 이상의 미생물 종(種)이 산다. 따라서 인분을 담은 비닐 봉지 안은 지구에서 옮겨간 바이러스·박테리아·진균류가 서식할 수 있는 탁월한 생태계를 이룬다. 우주인들은 미션마다 2~3일을 달 표면에서 보냈다. 만약 이들 미생물이 50년이 지나서도 살아 있다면, 인류가 지구가 아닌 천체(天體)에 ‘생명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우주생물학자들은 이 비닐 봉지에 관심이 매우 높다.
그러나 달에는 자외선을 차단할 오존층도, 우주 방사선을 반사할 강력한 자기장도 없다. 또 달의 낮과 밤 기간 온도는 100°C에서 -173°로 극한의 기온 차를 보인다. 일반적인 의견은 우주인의 대소변과 구토물에 포함된 미생물은 얼마 못 가 다 죽었으리라는 것이다. 플로리다대 우주생명과학자인 앤드루 슈어거는 “방사선과 100°C의 기온으로, 미생물들은 수일, 수주 내에 다 죽는다. 이 미생물들이 살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는 SETI 연구소의 생물학자 마거릿 레이스는 “미생물은 그다지 높은 수준의 보호 환경이 필요하지 않다”며 “해저 3㎞가 넘는 깊이의 빙하, 심해 바닥과 같이 극한의 환경에서도 미생물들이 쉽게 발견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달에서 총 71시간을 보낸 아폴로 16호 우주인들은 9개의 미생물 종을 우주선 밖에 놓았는데, 비록 3일이었지만 상당수는 살았다. 투기(投棄) 봉지를 잘 밀봉했다면, 그 안의 기저귀는 습기를 계속 보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주생물학자들은 또 미생물들이 죽었다고 해도, 극한의 환경에서 새롭게 적응하거나 변형된 흔적을 남겼다면 이를 발견하는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일부 박테리아는 증식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모든 대사 활동을 중단하는 휴면 상태의 내생 포자를 형성해 수 세기까지도 견딘다. 그리고 환경이 성장에 유리해지면, 다시 영양 세포로 분화한다. 혹시라도 이 의도치 않았던 50년의 실험에서 일부 미생물이 살아남는다면, 이는 행성간 여행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베레시트가 폭발하면서 달에 흩뿌린 수천 마리의 곰벌레
2019년 4월 달에 추락한 이스라엘의 민간 착륙선 베레시트에는 ‘곰벌레’ ‘물곰’이라고 불리는 완보동물(tardigrades) 수천 마리가 탑재돼 있었다. 성체의 크기가 기껏해야 1.5㎜에 불과한 곰벌레는 지구상 어디서도 발견된다. 완전히 탈수돼, 통통한 다리와 몸체가 완전히 납작해지고 모든 대사 활동이 일시 중단된 상태로 베레시트에 탑재됐다.
미국 워싱턴주 퓨짓 사운드대의 생물학 교수인 마크 마틴은 “곰벌레는 매우 질긴 생명체로, 수개월 동면 상태에 있다가도 물만 있으면 살아난다”며 “2016년에는 30년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곰벌레 두 마리를 살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유럽우주국(ESA)는 2008년 곰벌레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낸 실험한 결과, 비등점·동결점의 온도와 고압(高壓)과 진공의 우주에서도 살아남았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우주 자외선은 곰벌레에겐 치명적이었다. 운 좋게 곰벌레를 담은 통이 자외선이 차단되는 구석에 놓이기만 해도, 이 중 몇 마리는 나중에 물을 주면 살아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달 궤도의 쓰레기들
달 주변 궤도에서도 수십 년간 우주 쓰레기들이 쌓였다. 망가지거나 수명을 다한 위성, 로켓의 2단계 추진 동체 등이다. 아직 많은 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 남게 된 경위도 모르는 것이 태반이다. 달에선 지금까지 수십 건의 유·무인 미션이 진행됐고, 앞으로 10년간 6개국 정부와 민간 기업들이 100건 이상의 미션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대 지구과학자인 비쉬누 레디는 “그러나 아무도 달 주변의 물체를 추적하지 않아, 뭐가 버려졌는지도 잘 모른다”며 “앞으로 달 미션이 증가하면서 이 우주쓰레기와 우주선이 달 궤도에서 충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작년 3월4일 달의 반대쪽 표면에선 한 로켓의 3단 추진 동체가 시속 9600㎞로 낙하해 충돌했다. 천체과학자들의 조사 결과, 2014년에 중국이 발사한 창어(嫦娥) 5호 T1 미션에 사용된 3단 로켓의 동체였다. 그러나 중국 측은 이 로켓 잔해가 자국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