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인간유해 안치!
나바호 vs 페레그린, 기싸움?

 

달은 오랫동안 많은 민족들에게 신성한 장소로,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성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최근 미국의 민간 우주선 '페레그린'이 사람의 DNA를 싣고 달에 가 추모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천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기업의 상업성 때문만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달에 묻히고자 한 사람들의 가족이나 관계자들에게는 달이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같은 결정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행위가 달의 신령함을 해치는 행위이며, 달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미국 내에서 한때 화제가 됐다. 그런데, 페레그린이 착륙하려한 달의 지점은 달에서도 신비한 곳에 속한다. ‘그뤼튀젠 크레이터/ 돔(Gruithuisen Crater / Domes)’라고 불리는 이 지점은 용암이 강처럼 흘러가지 않고 돔처럼 쌓인 형태를 보여, 달의 미스테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뤼튀젠 돔에 만들어질 뻔한 추모의 공간, 달의 인간유해 안장을 둘러싼 공방을 소개한다. 

 

나바호 자치정부 부우 니그렌의 항의 기자회견을 안내하는 포스터. / facebook

 

나바호 인디언 국가 "모욕이며 약속 위반"

 

미국에서 가장 큰 원주민 그룹인 '나바호 자치정부(Navajo Nation)'는 달 탐사선 '페레그린'의 발사 연기를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올해 1월 8일 사상 최초의 민간 달 착륙선이 될 것이라는 큰 기대와 희망 속에서 발사됐으나, 몇가지 문제로 결국 추락하고만 바로 그 우주선이다. 

 

나바호 자치정부 부우 니그렌(Buu Nygren) 대통령은 2023년 12월 21일 성명서를 미국 교통부와 NASA에 보내 "달을 인간 유해의 안식처로 바꾸자는 제안은 우리 민족, 그리고 다른 많은 부족 국가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페레그린 프로젝트에 반대를 표명했다. 

 

성명은 "우리 부족이 숭배하는 천체에 인간 유해를 보존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모욕이다"면서 "1998년 NASA와 나바호 정부가 맺은 상호 존중과 존경의 원칙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격앙된 의견을 제시했다.   

 

나바호족이 문제 삼는 부분은 아스트로보틱의 페레그린 달 탐사선에 달 매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기업 셀레스티스와 엘리시움 스페이스가 제공한 탑재물. 이 탑재물에는 인간의 화장된 유해와 DNA가 들어있는 ‘추모캡슐’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셀레스티스의 CEO 찰스 차퍼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리의 추모 비행 임무가 달을 더럽힌다는 주장을 거부한다”며 “고인을 위한 영구 추모비가 지구 곳곳에 존재하지만 이를 모독으로 간주하지 않듯이, 우리가 보낸 달에서의 추모비는 조심하고 경건하게 다뤄지며 이는 우리 참가자들에게 감동적이고 적절한 기념비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모독과는 정반대로 축하할 일이라는 주장도 했다. 

 

NASA는 나바호 자치정부의 항의에 대해 ‘민간 우주선의 탑재물에 대해 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 한발 비켜서는 자세를 취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페레그린의 달 착륙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은 나바호족에게는 안도할 일일 수도 있어 보인다. 이 사건을 인류의 마음 속에 달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다함께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는다면 앞으로 달 탐사에서 한층 더 신중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달, 세계 곳곳 역사 속 신령한 달

 

‘애니미즘(Animism)’ 또는 ‘정령신앙(精靈信仰)’.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나 바위, 강, 바다 등의 자연물에 신격을 부여하여 자연현상을 영과 생명의 작용으로 해석하려는 원시적 형태의 종교다. 샤머니즘과 더불어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신앙 형태 중 가장 오래된 형태인만큼 언제부터 탄생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종교와 신앙을 학술적으로 다룬 이들도 대체로 애니미즘이 모든 신앙의 원초적 형태라고 인정하고 있다. 원초적 신앙의 관점에서 ‘달’은 인류에게 신성한 존재이자 삶의 축을 이루는 길잡이,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우리 민족의 경우,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문열림'에서 일월제를 시행했다고 전한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이 기록은 신라사회에 일월(신)숭배가 있었음을 알게한다. <삼국유사>에는 ‘해와 달의 정(精)’이라고 표현된 연오랑(延烏郎)과 세오녀(細烏女)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신라사회가 여성으로 간주된 ‘달의 정’을 신봉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달은 신화와 상상의 원천이었다. 고대 문명권의 수메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달은 창조설화와 관련된 신성하거나 긍정적 존재였다. 그리스 신화에선 셀레네, 아르테미스, 헤카테 등 달의 여신들이 등장한다. 이중 헤카테는 대지와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기도 하다. 반면 많은 유럽인들에게 보름달(full moon)은 악마와 연관된 그 무엇이었다. 멀쩡한 사람이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고대 신화에서 달에 사는 여신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상아(嫦娥, 姮娥·항아라고도 한다)다. 중국이 현재 ‘달 착륙’을 포함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우주 탐사 계획 ‘창어 프로젝트(嫦娥 project)'의 명칭이 바로 이 이름에서 나왔다. 

 

나바호족에게 달 개발은 어떤 형태로 이뤄지든 탐탁치 않은 일일 터이고, 다른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1967년 발효된 우주조약(혹은 외우주조약)에서 우주탐사 윤리가 답보상태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옳다 그르다고 말하기 전에, 다양한 인간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해 가능한 한 많은 국가와 기업이 공감할 수 있는 '달 개발 원칙'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다.